북한의 황폐해진 산마다 숲을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나무의 숫자다.
햇살과 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는다는데 이 산과 저 산의 풍경은 너무 달랐다. 지난 1일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던 강원 철원군의 삼천봉 관측소(OP)에 올랐다. 60여년 동안 자연의 보고로 탈바꿈한 비무장지대(DMZ) 생태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초여름 햇살은 따가웠다. 관측소에서 바라본 산지는 푸르렀다. 산으로 둘러싸여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디가 남한 땅이고, 북한 땅일까. 동행한 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이 답을 줬다. “구별하기 쉬워요. 그냥 까져 있는 데가 북한입니다.”
화해 바람을 타고 남북 협력 논의가 봇물처럼 터져나온다. 첫 과제로 철도·도로를 잇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한반도 동해, 서해, 그리고 남북 접경지대를 H자 형태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생태·환경의 눈으로 보면 개발의 축과는 다른 ‘3대 축’이 보인다. 환경부는 백두대간, 도서 연안, 그리고 비무장지대를 한반도의 3대 핵심생태축으로 본다. 현재는 휴전선으로 세 축이 모두 끊겼다.
지난 1일 강원 철원군 중부전선에서 바라보이는 비무장지대의 모습. 비무장지대 주변은 습지와 나무로 가득한 생태의 보고다. _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통일이 되면 육상과 해양 생태계를 잇는 국토 공간의 뼈대가 다시 맞춰진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지역은 가로축에 해당하는 비무장지대다. 임진강 하구에서 금강산까지 이어지는 비무장지대는 1953년 휴전선이 그어진 뒤 사람의 발길이 끊긴 덕분에 세계적인 생태 보고로 변했다. 철책에 둘러싸인 황량한 진공이 아닌, 숲과 산지와 평원과 습지가 역동적으로 이어지는 야생동물의 천국이 된 것이다. 교류와 ‘개발’이 본격화되면 폭 4㎞, 길이 248㎞의 이 공간은 어떻게 달라질까.
현재 북한의 훼손된 산림면적은 서울의 47배에 이르는 2만840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복구하는데 필요한 나무만 49억그루라고 한다. 훼손된 자연은 재난으로 돌아온다. 북한은 2012년 세계 산림훼손 지수에서 3위를 기록했다. 2016년 벨기에 루벵대학의 재난역학연구센터가 발표한 자연재해 사망자 발생국 순위에서는 세계 4위였다. 철책선 너머 북한은 산림황폐화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접경 지역에선 비무장지대까지 밀려온 개발압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부전선 철원군에서 남북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났다.
‘얼룩덜룩’ 북쪽의 산지
쌀 산지로 유명한 철원평야. 논과 비닐하우스 사이로 군부대 표지판이 이어졌고, 군용 차량과 MP완장을 찬 헌병들이 눈에 띄었다. 크고 흰 새가 잊을만하면 몇 마리씩 나타났다. 왜가리다. 철원과 파주 등 민통선 지역은 새들의 천국이다. 의정부 64㎞, 서울 95㎞라는 표지판을 보니 최전선과 인구 1000만 도시가 이렇게 가깝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철벽경계”. 육군15사단 정훈공보참모 조랑일 소령을 따라 삼천봉OP에 도착했다. GOP(일반전초)라는 안내가 보였다.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민통선 이북지역이다. 민간인통제선(CCL)은 전쟁이 끝나고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7㎞거리에 있는 선으로 정해졌지만, 2007년에는 군사분계선 이남 10㎞ 이내로 북상했다. 더 안으로 들어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북측으로 2㎞가 북방한계선, 남측으로 2㎞가 남방한계선이다. 이 사이 지역을 비무장지대(DMZ)라 부른다. 파주 임진강변에 세워진 군사분계선 0001호 표지판에서부터 고성 동해안에 이르러 마지막 1292번째 표지판이 말뚝처럼 박히면서 냉전이 한반도를 둘로 갈랐다.
곳곳에 지뢰지대를 알리는 경고문이 이어졌다.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대 지뢰 수는 100만발에 이르고, 미확인 지뢰지대만 97㎢다. 관측 계단을 오르자 사방이 뻥 뚫렸다. 높이 815m의 삼천봉은 지리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의미가 큰 곳이다. 철원군 근남면과 근동면, 원동면이 만나는 삼각점에 걸쳐 있는 이 봉우리는 중동부전선의 분기점이다. 백두대간 추가령에서 출발한 한북정맥이 비무장지대를 관통하고 처음 만나는 남한의 봉우리이기도 하다. 여기서 적근산, 말고개를 지나 대성산 줄기에서 운악산을 거쳐 북한산까지 이어진다.
GOP 라인은 롤러코스터처럼 산줄기를 따라 이어졌다. 붉은 색으로 드러난 띠가 현재 실질적인 북방한계선 역할을 하는 북측 철책선이다. 북한이 밀고 내려오면서 우리도 좁혀들어갔다. 비무장지대 면적은 서울의 1.5배 정도인 907㎢로 알려졌지만, 실제와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북한 쪽 산지의 첫인상은 ‘얼룩덜룩’이었다. 산줄기에는 나무 대신 풀이 덮혔다. 가파른 산 중턱은 모자이크같았다. 북한 산림황폐화의 상징이 된 ‘다락밭’이다. 철책선을 경계로 국립공원처럼 울창한 우리 쪽 산림과 대비됐다.
“우리 군인들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입히고 먹이지만, 북한은 쌀 빼놓고 부식을 알아서 처리해야 하잖아요. 땔감도 산에서 해결하고. 봄이면 저쪽에선 연기가 나요. 밭농사 하려 태우고, 의도적으로 불을 내는 ‘화공작전’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 불티가 넘어오면 큰 불이 나는거죠. 연두색은 불에 타고 풀이 올라온 곳이고, 울긋불긋한 곳은 덩쿨류나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초본류들이 자리잡은 거에요. 40년 정도만 놔두면 우리처럼 자연스러운 숲이 될 텐데 말이죠.”
2000년대부터 비무장지대 산림을 조사해온 서재철 위원의 말이다.
사람보다는 지뢰가 안전?
삼천봉OP에서 만난 군인들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I급인 산양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조재혁 중사는 “멧돼지는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마주치고, 노루도 낮에 돌아다닌다”면서 “가끔 보이는 산양은 사람을 마주치면 빤히 쳐다보다 숲으로 사라진다”고 했다. 2010년 이전에는 주변 적근산에서 반달가슴곰을 봤다는 주임원사들도 있었다. 도로가 포장되기 전에는 곰이 오갔다는 것이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지난 13일 비무장지대에 총 5929종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좁은 공간에 몰려있는 다양한 생물종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101종에 달하는 멸종위기종의 숫자가 눈에 띈다. 사향노루, 수달, 산양, 검독수리, 구렁이, 삵, 담비 등 한국에 사는 전체 멸종위기 야생생물 267종의 37.8%에 달한다. 서재철 위원은 “호랑이, 표범 빼고는 다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어떤 동물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동물의 낙원이 된 이유는 간명하다. 사방이 지뢰밭이라 사람이 들어설 수 없는 탓이다. 서 위원이 “전방에서 동물을 잡으면 사고가 난다는 것은 불문율”이라고 하자 조랑일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들에겐 사람보다는 지뢰가 안전한 셈이다. 60여년의 고립이 만들어낸 기묘한 생태의 균형이다.
삼천봉 서편에 ‘휴전선의 정중앙’ 승리전망대가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선배 전우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이 곳을 알아보겠습니다. 황토띠와 철책선 사이가 비무장지대라고 불리는 공간입니다.” 조재형 상병이 주변 지형을 묘사한 디오라마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공식적으로 비무장지대의 폭은 4㎞이지만 실제론 많이 좁아졌고, 승리전망대에서 북한 철책까지는 현재 1.8㎞에 불과하다. 북한 쪽 붉은 길이 과거의 북방한계선, 그보다 남쪽의 옅은 황토색이 현재의 철책이라고 했다. 그 사이의 인공물이 북한 GP(전방감시초소), 콘크리트 성채처럼 요새화된 시설이 남한 GP다. 돌산 위로 초소와 철조망이 이어졌다.
“오성산 좌우 능선은 저격능선이라고 합니다. 북진 중이던 아군과 미군에게 중공군이 피해를 입히면서 43일 동안 전투가 이어졌습니다. 영화 <고지전>이 이곳을 모델로 했습니다.” 오성산과 저격능선 그리고 삼각고지 일대는 한국전쟁의 대표적 격전지다. 1952년 가을부터 1953년 7월까지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중국에선 ‘상감령 전투’라고 부르며 큰 의미를 두고 있고, 북중 ‘혈맹’의 상징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전쟁의 상흔 밑에 근대의 흔적도 포개져있다. 1931년 7월 개통한 금강산 전기철도다. 철원역부터 내금강산역까지 약 117㎞에 달하는 관광철도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습지 사이로 철도 노반과 전력 공급용 송전탑이 아직 남아 있다. 식민지와 전쟁으로 이어진 한반도 고난의 역사를 관통하는 유산인 셈이다.
시선을 조금 위로 돌리면 북한 선전마을인 아침리마을이 보인다. 과거 금강산 철도가 다닐 적에 이곳에서 아침을 먹으면 당일치기 여행을 할 수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난 14일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는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시범적인 조치로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남북협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면 식민지 근대유산의 흔적을 따라 금강산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 오게 될까.
그들에게 필요한 건 ‘묘판’
현재 남북협력 1호 사업으로는 북한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산림협력이 추진되고 있다. 대북 제재를 적용받지 않는 비정치적이며 비군사적인 사업이다. 연료난·식량난·경제난이 복합적으로 얽혀 황폐해진 북한의 산림을 되살릴 나무들이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의 ‘통일양묘장’에서 한창 자라고 있다. 처음 산림조합에서 사업을 준비할 때에는 통일이라는 단어를 간판에 쓰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대북양묘장’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어엿한 통일양묘장이다. 철원은 평안남북도와 기후대가 흡사해 북한 산림에 적응할 수종을 키우기에 알맞다.
양묘장에 들어서자 줄지어선 비닐하우스들마다 묘목이 빼곡하게 차있었다. 지난해 4월 비닐하우스 13동을 지었고 올 4월 야외생육시설 7동을 늘렸다. 낙엽송 60만본과 소나무 50만본을 심었다. 낙엽송이라고 보통 불리는 일본잎갈나무는 자라는 속도라 빨라 인공조림에 많이 쓰인다. 북한에 ‘창성이깔나무’라는 형제 나무가 있어 협력사업 초기 수종으로 키우고 있다. 소나무는 한민족의 나무라는 상징성 때문에 함께 심었다. 사람 가슴 높이의 나무둥치 지름이 28㎝ 정도로 자라는 데에 잎갈나무는 25~30년, 소나무는 40~50년 걸린다.
비닐하우스의 묘판들에는 한판에 24개씩 묘목이 심어져 있다. ‘17년 5/6 낙엽송 50000본’. 지난해 심은 묘목은 키가 20㎝ 넘게 자라고 줄기가 목질로 변해 제법 나무티가 났다. 올 4~5월 파종한 묘목은 움은 틔웠지만 아직 머리에 깍지를 벗지 못한 것도 보였다. 2년 정도 키우면 땅에 옮겨 심을 수 있다는데 아직 북한으로 언제 갈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양묘장 측은 내년 봄은 돼야 구체적인 계획이 정해질 것으로 본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북한의 숲 면적은 8만9900㎢로 전체 국토 12만㎢의 74%에 달한다. 하지만 이중 32%인 2만8400㎢가 황폐해졌다. 이를 복구하려면 49억 그루가 필요한 것으로 산림과학원은 추정하고 있다. 양묘장에서 해마다 수백만 그루를 키워내는 정도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북한으로 묘목을 보내는 것도 큰 일이다.
“북한이 얘기하는 건 지금 나무를 달라는 게 아니라 이 판이 필요하다는 것이더라구요.” 유창혁 철원군산림조합 기술지도과장이 묘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도 협력사업을 준비하면서 놀란 게, 북한 양묘수준이 높습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돈이 없다는 거죠. ‘순대묘’라고 해서 자체 개발한 묘를 뽑아내는 시설도 있고, 급수도 우리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하더라구요. 시설을 돌릴 전기가 없어서 첨단시스템을 활용 못 하는 거죠.”
북한식 ‘임농복합경영’
본격적인 협력 논의가 이뤄지면 양측의 사정이 겉으로 보던 것과는 다르다는 게 더 많이 드러날 것이다. “다른 분야도 수준이 상당한 것 같아요. 예전에 북한 철책 앞에서 사방공사를 한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냥 민둥산만 보여요. 나중에는 밭으로 변해있더라구요. 북한 사람들이 낮에는 눈만 빼꼼히 내밀고 있다가 밤에 나와서 밭을 만들었더라구요. 나무, 밭, 나무, 밭 이런 식으로 땅을 붙잡는 채소나 과실수를 심고 밭을 조성해놨는데 ‘정말로 독자적인 생존 방식을 찾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재철 위원이 이를 ‘임농복합경영’이라 부른다고 설명을 거들었다. 나무를 심으면서 사이사이에 식용 작물을 함께 심어서 조림과 식량을 동시에 해결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산악지대인 북한의 토지이용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숲이 줄고 농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산림 비율이 1980년대 74.9%, 1990년대 70.5%, 2000년대 68.4%로 지속적으로 줄었다. 반면에 농지는 1980년대 17.5%, 1990년대 19.7%, 2000년대 24.9%로 계속 증가했다. 모자란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다락밭을 개간하고, 마을 주변 나무를 베어내 연료로 쓰다 보니 이렇게 됐다. 나무가 사라져 헐벗은 땅이 드러나면 비가 올 때 토양이 침식된다. 표토층의 유기질과 영양분이 줄어드니 농사를 지어도 생산성이 떨어지고, 지하수도 충분히 품지 못한다. 결국은 홍수나 가뭄같은 자연재해가 잦아지는 악순환이 된다.
서 위원은 “북한은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지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이미 북한의 숲은 황폐해졌으니 조림사업과 태양광발전을 패키지로 지원해 전력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남한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을 파헤쳐 태양광패널을 깔아 갈등이 심하지만, 북한은 이미 비어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논란이 적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와 환경친화를 동시에 생각하며 남북 협력을 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무작정 묘목만 보내놓으면 결국 겨울에 땔감으로 쓰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개성공단을 조성할 때 녹화사업을 함께 했는데 ‘아침에 심으면 저녁에 사라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유창혁 과장은 “남한에선 북한의 산림 280만㏊ 정도가 황폐해진 것으로 보는데 북한은 180만㏊라고 얘기한다. 다락밭처럼 개간한 농경지 100만㏊는 황폐화로 보지 않는 것이다”라면서 “사업을 추진하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를 많이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날지 못하는 재두루미
이들 말대로, 남북 협력사업에도 다양한 결이 있다. 자원개발부터 시작해 철도, 에너지, 관광 등 다양한 ‘개발’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개성공단을 처음 조성할 당시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아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졌던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비무장지대의 상징성과 생태적 가치를 생각하면 협력과 화해를 명분 삼은 개발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의미다.
지난 1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 두루미평화타운의 야생조수류보호사에서 재두루미가 보호사 안에서 거닐고 있다. 13년 전 날개가 부러져 이제까지 살고 있다. _ 이준헌 기자
철원군 동송읍 두루미평화타운의 야생조수류보호사는 17년째 이 지역 야생동물 보호기관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다. 보호사를 거쳐가는 동물들은 독수리, 두루미, 부엉이, 황조롱이같은 천연기념물이다. 비무장지대의 철책도 훌쩍 넘는 새들이 유리창, 전깃줄, 차량에 부딪쳐 날개가 꺾인 채 이리로 실려온다. 군사지역이다 보니 철조망에 부딪치는 새들도 많다. 이곳에서 13년째 살고 있는 세계적 희귀종 재두루미가 대표적이다. 붉은 눈가에 목부터 몸통까지 은은한 잿빛이 감도는 늘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장애가 있는 녀석이다.
“2005년에 6사단쪽 남방한계선에서 오른쪽 날개가 세 군데 부러져 들어왔어요. 새들이 낮에는 평야에서 먹이를 찾다가 밤이면 비무장지대로 잠자러 들어가요. 안에 습지가 많고,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니까. 물에 있으면 삵같은 육식동물도 덤비지 못하거든요. 해 떨어질 때쯤 이동하는데 날카로운 철조망 위쪽에 쾅 부딪친거죠. 회복하는데 1년이나 걸렸는데 영영 날지 못하게 됐습니다.”
김수호 한국조류보호협회 철원군지회 사무국장이 사연 많은 동물들을 소개해줬다. “삵아”라고 부르니 덩치 큰 고양이처럼 생긴 삵이 느릿하게 걸어나왔다. 야생에 살지 못해 사람들 곁을 택한 놈인데 기계 소리에 트라우마가 있다. 옆의 새장 속 수리부엉이는 사람이 다가오자 몸을 부풀리며 경계했고 깃털드레스같은 털옷을 입은 독수리들은 새장 안에서 겅중겅중 뛰어올랐다. 자세히 보니 다들 날개가 없거나 발이 잘려 있었다. 사연은 제각각이다. 충돌사고는 기본이고, 농약에 중독돼 추락한 경우도 있다. 인근 축사의 분뇨통에 빠져서 실려오기도 한다.
역사성과 생태적 가치 지켜내야
최근의 이슈는 코앞까지 밀고 들어온 축사다. 민통선 안 땅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었는데 2010년 이후로 곳곳이 여기에서 해제됐다. 철원 일대는 2012년쯤 거래허가구역에서 풀려났고, 그 뒤로 기업형 축사가 늘었다. 사람 손에 갇힌 동물이 늘면 사람 손밖에서 사는 동물은 살 곳이 줄어든다. 분뇨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땅에 뿌려 식수원이 오염되고 야생동물 서식지들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김수호 국장은 “주민들이 기대한 개발은 이런 게 아니었을텐데 어쩌다 허가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구 많은 지역에서 기피하는 시설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남기는 힘들어진다. “철원을 두루미 고장이라고 자랑해왔는데 앞으로 개발압력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못 지키면 그냥 끝나는 거죠.”
경기 파주·연천 일대 민통선 땅이 ‘투자바람’을 타더니, 이젠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먼 철원 쪽까지 외지인들 눈길이 쏠리고 있다. 부동산 투자업체나 매체들은 “DMZ세계평화공원 유치와 경원선 복원 등에 따른 기대감” “강원도 최대 곡창지대인 철원평야의 존재감” 등을 선전한다. 수십년 동안 개발이 금지됐던 덕분에 ‘자연 상태로 살아남은’ 이곳은 어떻게 될까. 장밋빛 청사진이 다 그려지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발생할 수많은 난제들이 눈에 선했다. 서재철 위원은 “비무장지대는 한반도의 자연이 기다란 띠에 응축된 상징적 공간”이라면서 “남북 관계가 평화공존으로 바뀐다면 역사성과 생태적 가치가 큰 이 공간을 어떻게 지켜낼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녹색연합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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