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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일반고 중복지원 금지’ 효력정지...헌재 “헌법소원 최종결정 때까지 보류”

노도현·박광연 기자 hyunee@kyunghyang.com  2018.06.28


ㆍ헌재 ‘자사고 우선선발권 폐지’ 효력 정지

ㆍ전기 모집은 인정 안 했지만, 자사고 특혜 논란 재점화
ㆍ교육부 당혹 “헌재 결정 검토 후 후속조치 준비할 것”

학생들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일반고 중 한 곳을 선택해서 지원하도록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였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인 학생들은 후기 입시에서 자사고와 일반고를 중복지원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 경우 자사고와 일반고에 동시에 합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어 입시에 혼란이 예상된다.

헌재는 28일 민족사관고와 상산고등 자사고 법인과 자사고 입학을 희망하는 전북지역 중학생 및 학부모 등이 “학생선발권과 학교선택권을 침해한다”며 초증등교육법 시행령 제81조 5항에 대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인용하고, 본안 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효력을 정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며 밝힌 이유는 ‘내년도 고교 입시가 임박한 만큼 현 중학교 3학년생들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중3 학생들은 또다시 혼란을 겪게 됐다. 헌재의 이날 가처분 인용은 자사고와 관련한 사회적 논란을 재점화할 가능성도 있다. 헌재는 이날 결정이 자사고 학교법인과 자사고 입학을 희망하는 중학생·학부모가 “선발시기 일원화가 헌법상 평등권과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 학생·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본안의 결론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자사고·외고·국제고 입시를  일반고와 함께 치르는 방침은 서열화된 고교체제를 해소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의 첫걸음이었다. 지난해 8월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올해부터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도 일반고와 같은 시기에 뽑도록 하는 내용의 고교체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외고와 자사고, 국제고를 모두 후기로 돌리고 전기에는 과학고, 영재고만 남게 했다. 자사고나 외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학생들은 일반고에 임의로 배정하게 했다. 

지난해 11월 이런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이에 따라 올해 중3부터 동시선발 대상이 됐다. 새 정책이 시행되면 자사고·외고·국제고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이들 학교 입시에서 탈락하면 원하지 않는 일반고로 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사고들은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을 내며 “획일적 평등으로 환심을 사려는 포퓰리즘”이라고 반발했다.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가처분신청을 낸 현대청운고와 상산고, 민족사관고는 내년에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받는 학교들이다. 특히 현대청운고와 상산고는 지난해 신입생 전원을 전국에서 모집한 2곳의 전국 자사고였다. 지방의 광역·전국 자사고는 학생 우선선발권이 없어지면 신입생 모집에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돼왔다.

헌재는 자사고와 학부모들이 낸 가처분신청 중 자사고를 다시 전기로 돌려달라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후기 모집에서 자사고와 일반고 중 한 곳에만 지원할 수 있게 한 것은 학생들의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하지만 이는 자사고·외고에 대한 ‘특혜성 우선선발권’을 없애겠다는 정책 취지를 무력화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교육청들은 관내 모든 고교의 입학전형 시기와 절차 등 기본사항을 담은 기본계획을 확정해 미리 발표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지난 3월 ‘2019학년도 고등학교 입학전형 기본계획’을 발표했고 오는 12월10일부터 12일까지 일반고와 함께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원서접수를 함께 시작할 예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헌재 결정이 나오자 교육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헌재가 그렇게 결정한 법적인 논리를 살펴본 뒤에 후속조치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예고됐던 대로 자사고와 일반고를 동시선발하되 중복지원할 수 있게 할지, 올해까지는 기존 방식대로 자사고 신입생은 전기에 뽑게 할지 검토하고 있다.

만약 헌재가 본안 결정에서도 자사고·외고·국제고 입시를 일반고와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고교 서열화를 없애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교육부의 ‘큰 그림’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번 6·13 교육감 선거에서는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전면 공약으로 내세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진보 진영 후보들이 17개 시·도에서 14곳을 휩쓸며 자사고·외고 폐지에 힘을 실었다.

본안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현재의 중3 학생들은 또다시 혼란을 겪게 됐다. 지난해까지 통상 전기에 속했던 자사고와 외고 등은 8월에 신입생을 모집했다. 이것이 지난해 한 차례 뒤집혀 고교 진학 전략을 바꿔야 했다. 이 학년 학생들은 대입제도가 개편되는 시기에 고3을 맞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들은 입시제도의 혼란을 고스란히 덮어써야 한다며 반발해왔다. 자사고·외고 등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여전히 이들 학교에 진학하길 바라는 학생들이 적잖은 상황에서, 교육부가 성급히 정책 전환을 시도하다 혼선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