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뭐하는 곳이지?’ 10년을 바라보고 있는 혁신학교의 가장 큰 성과를 묻는다면, 이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혁신학교는 아이들을 장시간 학습노동으로 몰아넣고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만이 교육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학교와 교사에게 자율성을 주는 혁신학교가 생긴 뒤로 토론수업, 프로젝트 수업, 교사들의 연구모임, 학생자치, 학부모 참여, 지역네트워크같은 교육 키워드들이 뿌리를 내렸다.
혁신학교는 ‘진보교육’의 대표상품이다. 2009년 김상곤 교육부장관이 경기도교육감이던 시절 경기도에서 혁신학교 13곳이 처음 문을 열었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지역마다 이름은 달라도 공동체, 창의성, 자율, 평등한 관계, 개방성 등 추구하는 가치는 비슷하다. 올해 6·13 선거에서는 17개 시도 중 14곳에서 혁신학교 확대를 외친 교육감들이 당선됐다. 보수 후보들이 혁신학교 학생들의 ‘성적 저하’를 공격하기도 했으나 유권자들은 표를 통해 확실한 선택을 한 셈이다.
혁신학교는 처음 생긴지 9년 만에 숫자가 100배로 불었다. 대구·울산·경북을 뺀 14개 시·도에 올 3월 기준으로 1340개의 혁신학교가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전체의 15.3%, 중학교는 14.7%, 고등학교는 6.6%가 혁신학교다.
다음달 1일 새 교육감들 임기가 시작되면 적어도 100곳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재선된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현재 190곳인 혁신학교를 올해 200개로 늘린다고 했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2022년까지 혁신학교의 기본원리를 모든 학교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도성훈 인천교육감 당선자는 ‘인천배움학교’를 현재 30곳에서 100곳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김석준 부산교육감도 ‘부산다행복학교’를 2022년까지 65개교 이상으로 늘려 전체 학교의 10% 이상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보수 텃밭’ 울산에서 첫 진보교육감이 된 노옥희 당선인은 단계적으로 늘려 20곳을 운영하기로 약속했다.
지난해까지 5년간 혁신학교에서 근무한 이영탁 효문중 교사는 모둠이나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참여하고 얘기할 기회가 많다는 것을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개별지도도 가능하고, 교사와 학생들의 트러블은 확실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교사는 “선생님과 학생의 위계질서에서 나타나는 중압감이 줄어드니 관계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며 “문예, 스포츠, 체험학습, 동아리활동, 지역과의 교류같은 것들이 일반학교보다 많고 학생들의 자존감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사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혁신’을 지속하기 힘들다. 이 교사는 “학교를 바꾸려는 의지를 가진 교사들이 많은 학교를 중심으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혁신학교가 되면 교육청 지원 예산이 늘어나는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들을 채워넣어야 하고, 이것이 교사들의 행정부담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일이 많아진다며 불평하는 교사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사들의 반발로 혁신학교 재지정을 포기하는 곳들도 있었다.
일반학교보다 성적이 뒤쳐진다는 학생·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는 학교장과 교직원들이 혁신학교 지정을 신청하기로 했는데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위원들이 반대해 무산됐다. 학력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반론은 이 지점에서 나온다. 안선영 교육부 학교혁신정책과 교육연구사는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아이들이 수학시험에서 만점을 받고, 영어 단어 2000개를 달달 외우기를 바라는 현실”이라고 했다.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가치는 수능 성적이 아니며, 교과목 성적만이 학력이라고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백병부 경기도 교육연구원 교육통계센터장은 “흔히 얘기하는 시험성적이나 대학 진학률에서 혁신학교와 일반학교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면서 “학력저하를 거론하는 것은 혁신학교의 성과를 이데올로기화하는 대표적인 언술”이라고 지적했다. 백 센터장은 “일반학교에 비해 혁신학교에서는 가정배경에 따른 성적 차이가 작고, 가정배경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성적이 향상되는 정도도 더 높다”며 “시도교육감협의회와 교육부가 기존 학력개념과 다른 ‘참학력’의 지표를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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