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34~37도의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비 소식은 없고, 당분간 찜통 더위가 가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일사병·열사병 등 온열환자가 급증했고, 이번 폭염에 지금까지 가축 79만 마리가 폐사했다. 한국만 가마솥에 갇힌 것이 아니다. 올여름 지구촌 북반구가 ‘찜통 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기권 중상층에서 발달한 고온다습한 고기압이 오래 머물면서 뜨거운 공기를 지면에 가두는 ‘열돔(heat dome)’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지역별로 기록적 폭염의 원인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기후변화 탓에 이상현상이 늘고 기후사이클이 깨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드컵 기간, 러시아엔 산불이
월드컵이 한창이던 기간, 몽골 북쪽 러시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는 평년 기온을 7도 넘게 웃도는 더위가 계속됐고 산불이 번져 8만ha 면적이 불에 탔다. 시베리아조차 연일 30도를 넘기고 있다. 이런 이상고온으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지구온난화를 심화시키는 메탄이 분출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북미의 더위는 그야말로 기록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인근 치노에선 주 기상 관측 사상 최고인 48.9도를 기록했다. 캐나다 오타와는 47도를 찍었고 몬트리얼도 36.6도까지 올라갔다. 퀘벡주에선 지난 14일까지 최소 70명이 사망했다.
알제리 사하라 지역의 우아르글라는 51.3도가 기록됐다. 아프리카에서 지금까지 관측된 최고기온으로 추정된다. 아라비아반도 동쪽 끝 오만의 어촌마을 쿠리야트는 지난달 28일 ‘열대야 기록’을 세웠다. 한밤중 최저기온 42.6도로 세계 기상관측 사상 ‘가장 높은 일일 최저기온’이었다. 유라시아 복판, 비교적 선선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지난 4일 40.5도까지 올라갔다. 이웃한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도 2일 기온이 42도까지 올라가 각각 그 지역 7월 최고기온을 세웠다. 일본은 올해 기상이변에 말 그대로 재앙을 맞았다. 이달 들어 평년의 2~4배에 달하는 비가 쏟아져 7월 기록으로는 관측사상 최고치인 1852.5㎜의 누적 강수량을 기록했다. 곧바로 더위가 덮쳐, 교토 등에서 수은주가 38.8도까지 치솟았다. 기상학자들은 “북반구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의 폭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해마다 더위 기록이 갱신되면서, 열기를 가리키는 ‘유행어’들도 생겨난다. 인도를 비롯해 곳곳을 휩쓴 2016년의 더위는 ‘열파(heat wave)’로 설명됐다. 근래에는 폭발하듯 갑자기 발생하는 저기압으로 인한 기상이변을 가리키는 ‘날씨 폭탄(meteorological bomb)’이라는 용어가 학계에 번졌다. ‘열돔’은 폭염 때문에 2~3년 전부터 해외 언론들에 등장했다.
‘라니냐=저온’ 패턴 깨졌다
올해 폭염의 원인은 뚜렷치 않다. 지역별로 제각각 세부적인 원인이 있지만 공통되게 지구가 더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상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사이클이 깨졌다’고 지적한다. 페루와 칠레 등 남미 적도부근 태평양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엘니뇨, 낮아지는 것을 라니냐라 지칭한다. 대개 엘니뇨는 더위와 홍수, 라니냐는 추위와 가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최악의 폭염이 찾아온 2016년은 엘니뇨가 일어난 해였다. 2017년은 엘니뇨가 두드러지지 않았는데도 이례적으로 더웠다. 올해는 약한 라니냐로 시작했는데도 기록적인 고온이 찾아왔다. 경향성을 내다보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여서 엘니뇨·라니냐의 영향을 받는데, 올해 여름은 바다의 영향을 따져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기상청은 서쪽으로 수천㎞ 떨어진 티베트 고지대 고기압이 한반도까지 기운을 뻗어 장마를 일찍 끝낸 것으로 추정했다. 폭염의 원인은 제각각이지만, 결국 기후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구가 갈수록 더워지고 기상이변이 잦아지는 장기적 추세와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10일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의 결과로 “극단적인 더위와 강우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김동준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17일 경향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지구온난화라고 전 지구가 똑같이 뜨거워지는 것은 아니며, 일관성을 찾기 어려운 극단적 현상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북극에 갇혀있던 찬 공기가 저위도 지역으로 흘러나오면 겨울 기온은 오히려 더 낮아진다. 김 과장은 “요즘 기사나 관측자료를 보면 지구가 걱정스러울 정도”라고도 했다. 극단적 기후현상이 공포스러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수십년간의 경향성을 선으로 이어보면 온도가 올라가는 추세가 뚜렷하다”면서 “앞으로 훨씬 더 더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국 폭염 “당분간 계속”
17일 기상청은 전국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웃도는 폭염이 다음주에도 이어진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장맛비가 그치자마자 시작된 폭염은 일주일 째 이어지고 있으며 전국에 폭염경보나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이다. 지난 16일 경북 영천 신녕면의 무인관측기는 38.5도를 기록했다. 대기 중하층에서는 여름철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덥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 대기 상층에선 티베트에서 온 열풍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데다 맑은 날씨로 강한 햇볕이 내려쪼여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압배치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최근 30년간 폭염 일수 1위는 1994년의 31.1일이며, 2위는 2016년 22.4일이었다. 올해 폭염이 자칫 8월 중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올해 장마는 6월19일 제주에서 시작돼 7월11일 중부지방에서 종료됐다. 제주도가 21일, 남부지방이 14일, 중부지방이 16일로 평년 32일보다 짧았다. 1973년 이래 두 번째로 짧은 장마다. 장마 기간 동안 평균 강수량은 283.0㎜로 평년 356.1㎜보다 적었다. 기상청은 “6월 말부터 티베트 고기압이 평년보다 강해지면서 한반도 주변 대기 상층이 온난해지고,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이 북서쪽으로 크게 확장하면서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밀려나 장마가 일찍 끝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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