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들이 모여서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다’ 이런 말을 대놓고 해요. 제가 학교에서 페미니즘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저같은 애들이 지나갈 때 복도에서 저희를 가로막고 일부러 큰 소리로 그런 잡담을 나눠요. ‘너 멧퇘지(메갈리아와 멧돼지를 합성한 말로, 페미니스트를 비하할 때 쓰는 욕설)지?’하고 큰 소리로 물어보고요. 이런 것도 학교폭력이잖아요.”(고등학교 3학년 ㄱ양)
청소년들이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교실 안에서 여성혐오와 성차별은 일상이었다. 페미니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은 욕설을 들어야했고, 여학생들은 얼평(얼굴평가)과 몸평(몸매평가)에 시달렸다. 학생들 뿐 아니라 교사들도 성차별적 발언을 무감각하게 쏟아냈다. 일부 교사들의 성차별적 발언은 동료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있었다.
지난 18일 오후 4시.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삼각산고등학교에서 여성가족부가 주관한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에 관한 집담회’가 열렸다. 페미니즘 활동을 하거나 이에 관심이 많은 수도권 지역 학교 학생 9명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 3명이 함께 학교 내 성차별과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집담회에는 정현백 여가부장관과 박경희 동그라미대화센터 콘텐츠연구소장 등도 함께 했다.
여학생들은 교실 내에서 동급생들에 의해 성적대상화가 되었던 경험들을 털어놨다. 고등학교 1학년 ㄱ양은 “중학교 때 제 친구 중에 한 명이 몸매가 좀 드러나게 교복을 입고 다녔는데, 남학생들이 단톡방(카카오톡 메신저의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서 그 친구를 초대한 후 수치스러운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나랑 그거 하자” “나 그거 크다” 등 성희롱 발언이 쉴새없이 쏟아졌다. ㄱ양은 “친구가 울면서 부모님에게 말해서 학교 측에 그 사건이 전달됐는데, 학교에서는 쉬쉬하면서 대충 합의시키고 사건을 넘겼다”고 말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여학생들의 경우 페미니스트를 욕하는 원색적인 표현들을 면전에서 들었다. 고등학교 교사 ㄴ씨는 “일단은 페미니스트에게 욕을 하는 경우는 너무 많은데, ‘메갈년’ ‘페미년’ ‘자바꼼’(여자는 성관계를 해주면 꼼짝못한다는 뜻의 욕설) ‘삼일한’(‘여자는 삼일에 한 번 때려야 한다’는 여성혐오 표현) 같은 말들을 페미니스트라 밝힌 학생들에게 한다”고 했다. ㄴ씨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데도 어떤 교사들은 도리어 (페미니스트) 학생에게 뭐라하고 이에 남학생들이 더 기세등등해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혐오표현이나 성차별적 표현에 대해 교사들이 인지하지 못하거나 때로 가해자를 두둔하는 상황은 심각했다. 교사 ㄷ씨는 “지난해에 우리 학교에서 한 학생이 교사들의 성차별적 발언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대자보를 붙였다가 5분 만에 대자보가 수거되고,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다. “여자는 시집이나 가라” “아무데서나 여자가 누워있냐” “(선생님에게) 오빠라고 불러라” 등의 발언을 몇몇 교사가 쏟아내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 한 여학생이 대자보를 붙인 것이었다. 학교에서 그 학생이 누구인지 바로 찾아냈고, 문제발언을 한 교사와 남학생들이 여학생에게 원색적인 욕을 퍼부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교사 ㄹ씨는 “교사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별도 교육이 필요하다”며 “남자애들이 여학생의 가슴이 크다거나 하는 식으로 ‘얼평’(얼굴평가), ‘몸평’(몸매평가)을 해도 어떤 선생님들은 남학생들에 대한 제재없이 같이 맞장구를 친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ㅁ양은 “학교에서 연간 몇 시간이라도 의무적으로 학교 내 성평등 교육이나 페미니즘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며 “여학생들에 대한 성폭력·성차별 발언에 대한 처벌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강화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정 장관의 제안으로 외모에서 요구받는 학내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갔다. 학교에서 교복을 입을 때 여학생들에게는 리본을, 남학생들에게는 넥타이를 매게 하는 것, 남녀 둘 다 넥타이일 경우 여학생은 붉은 색의 넥타이만 매게 하고 남학생은 회색 넥타이만 매게 하는 것 등이 성차별의 예로 거론됐다. 고등학교 1학년 ㅂ군은 “우리학교는 여학생이 리본을 매야 하는데 남학생들이 매는 넥타이를 했다가 학교 선도위원회에 불려가서 혼까지 났다”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 ㅅ양은 “중학교 때 교복이 너무 불편해서 남학생들 교복을 입었는데 벌점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ㅇ양은 “학교에서 여자선생님들까지도 ‘너희 수업할 때 졸다가 다리가 벌어지면 남자 선생님들 시선 둘 곳이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데, 교복이 치마인 것이 문제다”라고 했다.
정 장관은 “성차별적인 사회와 문화를 매개하는 것은 성차별적인 언어와 혐오표현이다”라며 “여성가족부에서도 학교 내에서 성평등 교육을 강화하고 언어표현을 어떻게 개선해야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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