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출산’을 장려한다고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적인 테두리 밖에서 아이를 낳는 부모와 아이들도 존중받고 충분히 지원 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임은 분명하다.
9일 국회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여성가족부 공동 주최로 열린 포럼 ‘차별없는 비혼 출산, 그 해법을 찾아서’에서는 이를 위해 ‘정상가족’이라는 오랜 틀부터 바꿔야 한다는데 뜻이 모아졌다.
현재 한국의 출산·양육 지원제도는 ‘남녀간의 혼인’으로 이뤄진 가족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다. 이미 2015년에 ‘1인가구’가 모든 가구형태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할 만큼 가족의 유형은 달라졌지만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혼외출산’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같은 시기 독일은 35.0%, 미국은 40.2%였으며 스웨덴(54.6%)과 노르웨이(55.2%), 프랑스(56.7%)는 절반을 넘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국의 평균도 40.5%를 기록했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상희 부위원장은 이날 포럼에서 “(비혼출산 비율이 가족구성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로) 다른 문제가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첫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선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위기임신·출산 지원’과 ‘신뢰출산제 검토’를 제안했다. 법률혼 중심의 ‘정상가족 문화’ 속에서 비혼으로 임신·출산을 하게되는 여성에게 상담부터 쉼터제공, 의료·법률 서비스까지 한번에 제공할 수 있는 ‘종합지원센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제발표 이후 토론에 참여한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도 “현재의 복지시스템은 아이를 출산한 것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임신시기의 지원이 매우 취약하다”며 “미혼모는 임신한 시점부터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므로 임신초기부터 정보의 제공, 주거의 안정, 긴급생계비와 의료비지원을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 위원은 또 프랑스나 독일처럼 산모의 익명을 보장한 상태에서 출산할 수 있는 ‘익명출산제’나 ‘신뢰출산제’도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완벽하게 산모의 익명을 보장하며, 자녀에게도 엄마가 동의한 경우에만 정보를 공개한다. 독일은 자녀가 만 16세가 되어서야 ‘혈통증서’를 열람할 수 있으며, 친모가 이에 반대하면 소송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아동의 친부모를 알 권리’와 충돌하는 문제가 있지만, 미혼모의 아동유기 등을 거의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선 김순남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반영하기 위해 ‘건강가정기본법’을 전면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5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고 있다.
김 교수는 관련 정책에 쓰이는 용어도 ‘건강가정 상담지원’은 ‘가족상담지원’으로 ‘예비부부교실’은 ‘평등한 커플(동반자)교실’로, ‘아동기 부모교실’은 ‘아동기 양육자 교실’로 바꿔야 한다며 “결혼 관계를 넘어 ‘함께 살기’ 방식의 다양화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 국가 중 동거비율이 가장 낮고 가족주의가 강한 이탈리아의 출산율이 가장 낮다”며 “출산율은 불평등한 가족문화, 다양한 관계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전반의 인식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동거커플 사이에서 출산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동거를 할 때 본인들 보다는 자녀가 경험하게 될 편견에 대한 우려가 더욱 크고, 그에 따라 동거 관계에서 무자녀가 동시에 성립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비혼출산·양육’에 대한 편견은 사라질 수 있을까. 변 연구위원은 ‘희망이 있다’고 봤다. 변 연구위원은 “(2017년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해 우리 사회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는 90% 이상인데 반해, 본인은 편견이 없다는 견해는 55%였다”며 “우리 사회 전체로 보면 편견이 있지만, 나 개인은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런 상황에서는 법제도의 변화로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걷어내는 방법에 얼마간의 희망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또 “나 스스로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답을 택하는 분위기에서는 법제도의 강제성 또는 상징성이 인식에 작용할 수 있다”며 “노동시장, 교육환경 등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 금지한다는 것을 명문화하거나 동거 관계 인정과 관련된 제도 마련 등을 통해 사회적 편견을 줄이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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