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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기타뉴스]작약은 함박꽃? 남한과 북한의 식물 이름 절반이 다르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수정2018-08-15 18:32:11
 

작약 | 환경부

탐스러운 꽃잎이 시원스레 벌어진 ‘작약(芍藥)’은 관상용으로 널리 사랑받는다. 중국에서 건너온 작약은 ‘심한 통증을 그치는 약’이라는 뜻을 지녔다. 남한에선 약용으로 쓰이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외래어 순화를 강조하는 북한은 우리와 다른 이름을 쓴다. 화려한 생김새를 연상시키는 ‘함박꽃’으로 부르고 있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지난 1월부터 최근까지 북한 지역 식물 3523종을 담은 <조선식물지>를 국립생물자원관이 펴낸 <국가생물종목록>과 비교한 결과, 약 50%인 1773종의 식물명이 남한과 달랐다고 15일 밝혔다. <조선식물지>는 임록재 박사 등 북한 식물학자 18명이 5년 간의 연구 끝에 2000년 발간했으며, 북한 지역 식물학적 연구를 망라했다.

북한은 자체 기준에 따라 다른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유형별로 보면, 외래어 순화나 비속어 배척 등 남북한의 정책적 차이가 18% 정도였고, 합성명사(-나무, -풀)가 있고 없는 단순한 차이가 10%, 두음법칙 등 표준어 표기법 차이가 7% 정도였다. 북한은 국가 또는 일부 학자가 제시한 통일된 정책적 기준으로 식물명이 정해지는 경향도 있었다. 한자어, 외래어, 비속어 등을 식물명에서 배제하고, 지역 명칭 사용도 피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사용되는 이름에선 남북한의 사회문화적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소경불알’은 ‘만삼아재비’, ‘쥐똥나무’는 ‘검정알나무’, ‘며느리밑씻개’는 ‘가시덩굴여뀌’, ‘기생꽃’은 ‘애기참꽃’으로 비속어를 순화해 사용했다. 부르기도 민망한 ‘며느리밑씻개’는 남한에서도 일제의 잔재라는 비판이 있던 이름이다. 일본에서 가시가 많은 풀의 모양에서 착안해 ‘의붓자식 밑씻개’라는 미움받는 대상의 이름을 붙였는데, 한국에선 일제강점기에 며느리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작약’은 ‘함박꽃’으로, ‘백송’은 ‘흰소나무’, ‘리기다소나무’는 ‘세잎소나무’, ‘라일락’은 ‘큰꽃정향나무’, ‘도꼬로마’는 ‘큰마’로 외래어를 순화한 경우도 많았다. ‘일본목련’을 ‘황목련’으로, ‘중국단풍’은 ‘애기단풍나무’로, ‘서울제비꽃’은 ‘긴털제비꽃’, ‘대구돌나물’은 ‘바늘돌나물’, ‘제주진득찰’은 ‘동방진득찰’으로 지역명 사용을 꺼리기도 했다.

표준어 표기법이 달라서 생긴 차이도 있었다.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아서 ‘연꽃’은 ‘련꽃’, ‘용담’은 ‘룡담’, ‘나한송’을 ‘라한송’으로 부른 경우가 대표적이다. ‘댓잎현호색’을 ‘대잎현호색’으로, ‘난쟁이버들’을 ‘난장이버들’로, ‘밭뚝외풀’을 ‘밭둑외풀’로 쓰기도 했다.

수십년간 단절되면서 생긴 단순 차이도 많다. ‘무궁화’를 ‘무궁화나무’로 부르거나 ‘괭이밥’을 ‘괭이밥풀’로 부르는 등 ‘나무’나 ‘풀’ 같은 합성명사를 붙인 경우도 눈에 띄었다. 단순한 문화적 차이나 분류 방식의 차이도 있었는데 ‘미나리아재비’는 ‘바구지’, ‘돼지풀’은 ‘쑥잎풀’, ‘자도나무’는 ‘추리나무’, ‘꿩의다리’는 ‘가락풀’, ‘회양목’은 ‘고양나무’, ‘명아주’는 ‘능쟁이’ 등으로 불렸다.

남북한 식물명 차이가 큰 이유는 이름을 정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국립생물자원관은 설명했다. 남한에선 1937년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을 근간으로 식물명을 처음 부여한 문헌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데, 북한은 정책적으로 식물명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한자어, 외래어, 국외 지역명을 배제하는 데서 자주성을 강조하는 북한 체제의 영향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조선식물지>에는 식물 총 200과, 996속, 3523종이 담겨있었다. 전 세계에서 북한지역에서만 자라는 고유종 장군풀, 쌍실버들 등 58종이 조사됐다. 남한 문헌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식물 314종도 확인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은 검토가 필요한 139종을 제외한 175종을 국가생물종목록에 추가할 예정이다.

한반도에는 약 10만 종의 생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70년 가까이 단절된 북한에는 어떠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지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서민환 국립생물자원관 생물자원연구부장은 “한반도 생물다양성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면 남북한 생물표본의 상호교환, 연구자들의 공동 조사 등 남북협력이 필수적”이라면서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펴낸‘국가생물종목록집­북한지역 관속식물’을 기초 자료로 남북한 교류가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북한 식물명 비교

환경부 제공

■남북한 식물 사진

북한 지역에 분포하는 노랑복주머니란. | 환경부

북한 지역에 분포하는 들쭉나무. | 환경부

북한 지역에 분포하는 웅기솜나물. | 환경부

북한 지역에 분포하는 장지석남. | 환경부

가시연을 북한에선 가시련으로 부른다. | 환경부

무궁화를 북한에선 무궁화 나무로 부른다. | 환경부

소경불알을 북한에선 만삼아재비로 부른다. | 환경부

연꽃을 북한에선 련꽃으로 부른다.

용담을 북한에선 룡담으로 부른다.

일본목련을 북한에선 황목련으로 부른다. | 환경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