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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벌거벗은 ‘임금’님]①월급의 재구성···‘영끌 연봉’에 울고 웃는 사람들

김원진·조형국 기자 onejin@kyunghyang.com

“자본주의 사회에서 별수 있겠어요?”

‘임금 문제를 들여다보겠다’고 하니 직장인들은 입을 맞춘 듯 똑같이 반문했다. 평소 신경 쓰지 않는 월급 명세서를 어쩌다 곰곰이 들여다볼 때,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들이 임금을 올려달라며 파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 교도소에 갇힌 대기업 ‘오너’가 배당금 수백억원을 챙겼다거나 기업체 임원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월급쟁이들의 머릿속을 맴도는 자조 섞인 질문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월급에는 귀천이 있다. 2018년 한국 사회에서 일의 내용이나 힘든 정도, 노동시간보다 더 크게 월급을 좌우하는 것은 그 일터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좁은 문’을 거쳤나 하는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른 이들에게는 존재 기반을 무너뜨리는 얘기처럼 들린다. 명분만 놓고 보면 임금격차는 더 좋은 인재를 뽑아쓰려는 사용자와 더 좋은 일자리를 원하는 구직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노동시장의 경쟁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다.

하지만 정말로 ‘시장’이 우리의 월급을 결정할까. 근로형태나 일한 기간, 산업의 종류나 기업의 크기, 노조의 교섭력에 따라 일해서 받는 대가는 달라진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시험을 봤는지도 참작 사유가 된다. 성별이나 국적 심지어 혼인 여부까지, 사용자가 정한 방식에 따라 임금은 천차만별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저서에서 “한국의 노동시장은 완전한 시장은커녕 ‘완전하게 불완전한’ 시장에 가깝다”라고 썼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급여는 그 기업이나 시장이 정하는 게 아니라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이 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을 해서 먹고사는 모든 이들에게 임금은 곧 삶이다. 생존 수단을 넘어선 개인의 자격증명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일하는 사람들은 정당한 대가, 살 만큼의 대가를 누리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격차 줄이기를 말한다. 세계에서는 기본소득 실험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월급 때문에 간호사들이 춤을 추고, 백화점 직원이 무릎을 꿇고, 경비원들이 ‘빵셔틀’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별수 있느냐’는 철벽같은 신화에 균열이 생기는 날이 올까. 임금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고도성장과 경제위기를 거치는 사이 소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격차’의 무엇이 얼마나 문제인지, 급여와 노동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들여다본다.

조현준씨(35·가명)는 대기업 계열사 4년차 직원이다. 조씨의 세전 월급은 기본급 205만원·연장수당 40만원·직무급 70만원을 더해 315만원 정도다. 세후 월급은 260만원 안팎이다. 포괄임금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날마다 야근을 해도 추가근로수당은 붙지 않는다. 비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명절 상여금·성과급을 합치면 일년에 세후 4000만원 정도 번다.

중소기업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는 김정우씨(32·가명)의 연봉은 세전 2900만원이다. 올해 3년차. 월급은 퇴직금·4대 보험 등을 제하고 세후 205만원을 받는다. 김씨가 지난해 손에 쥔 돈은 월급과 명절 상여금을 합해 2700만원이다. 평균 주 57시간 이상 일하지만 추가근로수당은 없다.

자영업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금을 받아 먹고산다. 월급은 노동의 대가이며 일하는 이들의 삶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월급은 삶이고 영혼이다. 월급 명세서에는 임금체계와 노동현실이 담겨 있다. 명세서에 적힌 숫자에는 노동을 바라보는 기업의 시각이, 한국 사회가 노동자에게 보장해주는 항목이, 정부와 공적 영역이 한 시민을 위해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드러난다.

고용한 사람은 몇 푼이라도 인건비를 줄이려 하고, 일 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어한다. 돈을 주고받는 사이에서 권력은 비대칭적이다. 직장에 다니는 이들, 특히 젊은 노동자들은 수당 하나하나 ‘영혼까지 끌어모은’ 영끌 연봉에 인생을 걸지만 정작 자기 월급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법적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월급 명세서를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 않는 고용주들도 적지 않다.

‘영끌 연봉’을 아시나요

올해 6월 결혼을 앞둔 박정민씨(29·가명)는 세종시의 한 정형외과에서 치료기사로 일한다. 예비 장인어른은 넌지시 박씨에게 연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물었다. 박씨는 “박봉인 데다 기본급은 낮고 수당 구조가 잡다해서, 있는 거 없는 거 다 더해 3000만원 가까이 된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정미영씨(33·가명)는 홍보회사에 다니다 외국계 회사로 옮기려 하고 있다. 정씨는 이직하려는 회사와 연봉협상을 할 때 이전 회사에서 받았던 온갖 수당을 더한 금액을 제시한다. 정씨는 “대부분 이직을 할 때 월급 명서세에 잡히지 않는 수당까지 ‘영끌 연봉’으로 계산한다. 최대한 많이 받은 것으로 해야 협상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연봉’의 축약어인 영끌 연봉은 취업준비생이나 사회 초년생 사이에 몇 년 전부터 퍼진 말이다. 기본급 외에 수당 항목이 많은 임금 체계에서 유래했다.

법에 명시된 수당은 연장근로수당, 야간·휴일근로수당, 연차미사용수당, 주휴수당, 휴업수당 정도다. 하지만 기업마다 자의적으로 책정하는 수당이 많다. 출납수당, 기술수당, 팀장·조장수당, 현장수당, 자격수당, 운전수당, 근속수당. 심지어 ‘김장수당’도 있다. 비과세 수당인 식대·육아수당·운전보조금 등도 추가된다.

5년차 중소기업 사원 안정호씨(36·가명)의 월급 명세서에는 기본급 외에 14개 수당 항목이 있다. 업무수당부터 식대, 직책수당, 기술수당, 야근수당, 만근, 단수조정, 휴가특근수당, 토요수당1, 토요수당2, 차량유지비, 월차수당, 연장수당, 연차수당, 그외수당까지 이름도 다양하다.

기본급이 낮고 수당 항목이 많으면 노동자들은 일하는 시간을 늘리게 된다. ‘수당 체제’로 노동시간이 늘어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용자들은 통상임금을 줄일 수 있으니 이 편이 좋다. 야간·휴일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 등 법정 수당은 통상임금의 150%를 줘야 한다. 통상임금 액수가 늘어나면 법정 수당도 늘어나니, 기업들엔 부담이 커진다. 지난해 대법원이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했지만 아직은 일부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일이다.

식대나 운전보조금처럼 비과세 수당을 늘려 사용자가 4대보험 부담을 줄이려 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나온다. 4대보험과 국민연금 산출액이 기본급과 과세 수당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4대보험과 국민연금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절반씩 부담한다. 비과세 수당이 늘어나면 기업이 직원의 4대보험과 국민연금에 보태야 하는 부담도 줄어든다. 노동법률사무소 ‘시선’의 김승현 노무사는 “기업이 합법적으로 국가 재원을 갉아먹는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사라진 수당은 어디에

반대로, 월급을 줄이려고 수당을 한데 합치기도 한다. 중견기업 2년차 유진수씨(31·가명)의 월급 명세서는 단순하다. 기본급 238만5000원에 식대 12만원, 시간외수당 84만3000원이 전부다. 근로계약서에는 기본 하루 8시간 외에 추가 근무 2시간을 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2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외수당은 기본급의 150%로 지급된다고 적혀 있다. ‘포괄임금제’의 대표적인 예다.

유씨는 매주 두세 차례 밤 10시 넘어까지 일한다. 일이 몰릴 때는 밤샘근무도 해야 한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일한다 해서 더 나오는 수당은 없다. 근로계약보다 많이 일해도 포괄임금제라는 명목으로 연장근로수당을 주지 않는 기업들이 많다. 게임업계나 정보기술(IT)업계에선 특히 흔한 일이다. 포괄임금제를 적용한다 해도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시간보다 더 일했다면 연장근로수당이나 야간근로수당을 받아야 하지만 법은 멀고 ‘사장님’은 가깝다.

유씨가 다니는 회사는 올해 하반기부터 업무 지침을 바꾼다. 포괄임금제 적용이 끝나는 오후 8시 이후에 일을 하면 그만큼의 연차를 주기로 했다. 밤 10시까지 일하면 2시간의 연차가 발생한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되, 돈 대신 휴가를 주겠다는 것이다. 노동법을 전공한 최석환 명지대 교수는 “포괄임금제는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계약이 아니라 사용자와 계약자가 자의적으로 맺은 계약일 뿐이다. 사용자가 계약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구조이므로, 포괄임금제를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오산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정성훈씨(29·가명)의 월급 명세서에 적힌 내역도 기본급 136만8500원과 ‘제수당’ 23만원2100원이 전부다. 회사에선 일한 시간을 매일 체크해 시간외수당을 준다고 하지만, 제수당으로 뭉뚱그려 나오니 제대로 돈을 받은 건지 알 수가 없다. 포괄임금제를 도입하진 않았지만 수당 항목이 거의 없는 중소기업도 많다. 최저임금에 가까운 기본급과 최소한의 시간외수당만 주는 것이다.

우진만씨(가명·23)는 경기도 안산의 부품 제조 공장에서 석달째 일하고 있는 생산직 노동자다. 직원이 스무명 남짓한 작은 사업장이다. 지난해 11월 월급 명세서에는 기본급 134만2500원에 추가수당 21만3500원이 찍혔다. 하루 1시간씩 22일 잔업을 한 대가로 최저임금의 150%인 추가수당이 지급됐다. 문상흠 안산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노무사는 “안산 지역 생산 공장을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80% 정도는 월급 명세서를 준다. 근무시간을 표기해놓기도 한다. 그런데 명세서를 보면 수당은 거의 없다. 법에서 규정한 수당을 주긴 하는데, 법의 최저선에 맞게 임금을 지급하는 사업주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의 ‘깜깜이 월급’

캄보디아에서 온 스룬 알리씨(28·가명)는 지난해 4월부터 충남의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농장주가 내준 비닐하우스에서 먹고 잔다. 근로계약서에는 142만8800원을 받기로 돼 있는데 그가 받은 돈은 월 112만8800원에 불과했다. 월급 명세서를 따로 주지 않으니 30만원가량이 왜 공제된 것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30만원을 뺀 근거는 ‘이면 계약서’에 있었다. 농장주가 알리와 쓴 근로계약서 외에 ‘숙소비 30만원 공제’가 적힌 이면 계약서를 만들어 월급에서 떼어 간 것이다. 노동자의 월급은 전액 지급하고, 뒤에 비용을 돌려받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원칙의 예외가 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2월 시행한 ‘외국인근로자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관련 업무지침’에서 고용주가 이주노동자에게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를 숙소로 제공하면 통상임금의 13%까지 사전공제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렇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142만8800원의 13%면 18만5700원인데, 고용주는 지침의 상한선보다 많은 30만원을 잘라내기 위해 이면계약서를 썼다. 이주노동자 쉼터 ‘지구인의정류장’의 김이찬 소장은 “예전에도 월급 명세서를 지급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임금 체불 등으로 문제를 제기할 때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아예 명세서를 주지 않는 사업주가 많다”고 말했다.

그나마 주는 명세서도 ‘모양을 갖춘’ 것은 드물다. 김 소장이 이주노동자들에게서 2015~2016년 받은 명세서를 보면 은행 현금봉투에 월급 액수를 쓰거나 사장이 카카오톡 메시지로 월급 내역을 알려준 것이 전부다. 심지어 기숙사비 20만원, 쌀값 2만원, 전기요금 2만6880원을 일방적으로 뗀 사업주도 있었다.

알바노동자에게도 월급 명세서는 남의 일이다. 알바노조에 상담을 요청해온 이들 10명 중 9명은 월급 명세서를 받지 못했다. 주 15시간 일하면 줘야 하는 주휴수당이나 사용자가 본인 사정으로 일찍 가게 문을 닫을 때 지급해야 하는 휴업수당을 떼어먹는 일은 다반사다. 그러나 월급 명세서가 없으면 이런 부당한 행위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9월 알바노조에 주유소에서 2년간 일한 60대 남성이 상담을 받으러 찾아왔다. 퇴직금을 정산하려 하는데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월급 내역을 검토했던 김한별 알바노조 인천지부장은 “근로계약서는 있었지만 월급 명세서가 없는 상황에서 과거 월급이 제대로 들어왔는지, 퇴직금은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계산하려니 너무 복잡했다”고 했다.

임기현씨(24)는 스무살 이후 일곱 곳에서 알바를 했다. 프랜차이즈 업체 한 곳과 버거킹, 편의점, 순대국집, 한식부페, 주꾸미집, 그리고 임금체불로 문제가 된 이랜드 계열사 애슐리에서 일했다. 그러는 동안 단 한 번도 월급 명세서를 받지 못했다. 사장과 점주가 주는 대로만 월급을 받았다. 임씨는 “알바 노동자니까 당연히 명세서를 안 주겠거니 싶어서 내역을 달라고 요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정수씨(19·가명)는 최근 인천의 한 족발집에서 한달 동안 167시간30분의 알바를 했다. 시급은 지난해 최저임금보다 높은 7000원이었지만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사장은 출근 첫날 그에게 “사흘치 시급은 보증금으로 뗀다”고 했다. 이달 초 월급 117만2500원을 받았는데 명세서는 따로 없고 통장에 총액만 찍혔다. 일일이 계산해보니 시급은 다 챙겨줬고 보증금도 떼지 않았다. 다만 주휴수당 20여만원을 주지 않았다. 사장에게 요구해 따로 받았다. 사장이 말한 ‘보증금’은 노동자가 말도 없이 일을 그만두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 법적으로는 금지돼 있다. 김씨는 “아마 내가 도망가지 않아서 보증금은 공제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명세서에 찍힌 인생

대기업 계열사 5년차 대리 김수지씨(33·가명)의 월급 명세서에는 지난해 11월 월급 총액 439만원·실지급액 360만원이 찍혔다. 김씨의 월급 명세서는 기본급 191만원, 직책수당 60만원, 고정 시간외수당 81만원, 직무평가금 107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절 상여금·연말 인센티브를 합치면 연봉은 세후 5000만원에 조금 못 미친다.

김씨는 “일을 시작하고 난 뒤에는 생활하는 데 돈이 모자란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급여 수준이 절대 낮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거래처 중소기업 직원들이 월 300만원이 안되는 돈으로 아이를 키운다고 할 때 속으로 ‘과연 애 키우면서 저축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간혹 거래처 중소기업 직원들이 책임감 없는 모습을 보일 때면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그는 일을 무성의하게 처리하는 거래처 직원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과 함께 월급받는 만큼만 일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과연 나라면 솔직히 저 돈 받으면서 열심히 일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지금 내 월급으로도 50살 이후의 삶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데, 중소기업 직원들은 오죽할까 싶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수화씨(31·가명)의 지난해 10월 총 급여는 234만7750원이다. 이중 기본급은 137만원이다. 기본급이 총 급여의 61% 수준이다. 1983년 노동부가 94개 업체의 월급 명세서를 조사했을 당시 기본급 비율(68.1%)보다 낮다.

이씨의 월급 세부 내역을 보면 직무수당 29만6500원, 교통비 10만원, 식대 10만원, 영업수당 10만원, 보건수당 10만원, 차량유지비 15만원, 시간외수당 13만1250원이 붙었다. 보직수당·관리수당·기타수당·체력단련비·세미나보조비·연차수당 등 추가 수당 항목도 있다. 상여금과 성과급은 회사 사정에 따라 부정기적으로 나온다. 이씨는 “월급도 얼마 안되는데 수당 항목이 워낙 많다. 어쩔 수 없이 매번 월급 명세서를 확인한다. 아직 경험한 적은 없지만 가끔 회사에서 떼어먹을 수 있다는 농담반 진담반 섞인 선배들의 충고를 들은 적 있다”고 말했다.

월급 알림도 ‘아웃소싱’

대기업 사원 조현준씨의 월급 명세서는 크게 둘로 나뉜다. 일반 월급 명세서와 명절과 연말에만 나오는 상여금·성과급 명세서가 다르다. 월급 명세서는 회사 행정시스템으로 확인하거나 e메일로도 받아볼 수 있다. 조씨는 “e메일로 오니까 보긴 보지만 어차피 매달 들어오는 액수가 거의 비슷하다.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은 아니고 총액 정도만 잘 들어왔나 확인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사원 김정우씨도 월급 명세서를 e메일로 받아본다. 김씨는 “주말에 출근하면 시간에 관계없이 무조건 8만원을 준다. 어쩌다 주말 근무를 했다면 월급 명세서를 보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제목만 보고 ‘휴지통’에 넣는다. 어차피 들어오는 액수는 200만원대 초반인데 숫자를 보면 마음만 아프지 않냐”고 말했다. 최석현씨(28·가명)는 문자로 월급 명세서를 지급받는다. 회사 규모가 작아 월급 정산시스템은 따로 없다. 매달 기본급 195만원과 식대 10만원이 고정급으로 들어온다. 최씨는 스마트폰으로 문자 알림이 떠도 ‘터치’만 하고 읽지는 않는다.

이주노동자들이 받은 ‘월급명세서’. 기본급에서 숙박비와 휴무 엿새 동안의 급여를 빼고 숙소비용도 공제했다는 내용을 손으로 적었다. 급여를 담아 주는 은행 현금봉투 뒷면에 금액을 적은 것도 있다. 기본급에서 숙박비와 쌀값, 전기요금 등을 공제했다는 내용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전달받은 이도 있었다.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종이 월급 명세서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대부분 없앴다. 최근에는 많은 회사들이 사내 월급정산 시스템 외에 e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이용한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급여를 확인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 직원 수가 100명이 안되는 기업은 월급 명세서 지급이나 관리를 전문 아웃소싱 업체에 맡기기도 한다. 한 월급 명세서 아웃소싱 업체는 지난해 8월부터 카카오톡으로 월급 명세서 알림 서비스를 시작했다.

보통 공시된 대기업·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월급 수준이 공개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명세서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한 중견기업은 사내 윤리준칙에 “월급 명세서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었다. 월급 명세서에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 달라”는 문구를 써넣은 대기업도 있다.

국세청이 지난달 발표한 ‘2017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6년 근속 근로소득세를 연말정산한 노동자는 1774만명이었다. 하지만 1774만명이 모두 월급 명세서를 받진 않는다. 급여의 내역을 노동자에게 문서로 통지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상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 대신 돈을 다오

서울 강남의 중견기업에 다니는 최정아씨(32·가명)는 지난달 한 호텔에서 열린 회사 창립기념일 행사에 참석했다. 저녁 식사는 스테이크·랍스터가 포함된 1인당 8만원짜리 코스 요리였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아나운서가 행사의 사회를 봤다. 최씨는 “섭외비에 행사장 대관비와 식비를 모두 합치면 1인당 10만원이 넘을 것 같았다. 차라리 돈으로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동료들과 했다”고 말했다.

격려는 됐으니 돈으로 달라는 것은 대부분 직장인들의 속내다. 사내 체육대회에 쓰는 돈이나 팀 회식비를 차라리 월급으로 달라는 푸념이다. 최씨는 보통 한 달에 두 번, 많을 때는 한 달에 네 번 부서 회식에 참석한다. 최씨는 “회식을 해도 어차피 술 많이 먹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2차, 3차까지 가는 사람도 늘 똑같다. 차라리 회식을 더치페이로 하고, 법인카드로 나가는 회식비를 직원들에게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주현씨(30)가 지난해까지 다녔던 회사의 사장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다. 사장은 인테리어 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3000만원을 들여 사무실을 꾸몄다. 정씨는 “회사가 강남으로 이전할 때 다시 복구하느라 3000만원 정도가 또 들어갔다. 사원이 서른 명 안팎이니 그 돈으로 명절 상여금 100만원씩만 줬으면 좋겠다는 얘길 동료들과 했었다”고 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자사 제품 할인 혜택’도 비슷하다. 기업들은 마치 명세서에 찍히지 않는 ‘제2의 월급’인 듯 생색을 내지만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기업은 주로 계열사 제품을 살 때 10~50% 할인 혜택을 준다. 유통업체가 있거나 식음료를 파는 롯데, CJ가 대표적이다. CJ는 초봉 3500만원 수준으로 대기업치고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주면서 외식업체, 화장품 유통체인 등을 통해 할인 혜택을 준다. 삼성전자에는 25% 할인된 가격으로 자사 제품을 파는 직원 전용 온라인 쇼핑몰이 있다. 최근에는 지상파 방송사가 작가 등 프리랜서 스태프들에게 돈 대신 상품권을 줬다가 비판을 받았다.

복지카드 형태로 제공하는 현금성 복지는 그나마 직장인들의 불만이 적은 편이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현성씨(30·가명)의 복지카드에는 매달 10만원씩 들어온다. 그 돈을 쓰고 회사에 영수증을 내면 복지카드에서 월급 통장으로 돈을 집어넣어 준다. 돈이 쌓이면 회사 지정 쇼핑몰에서 텔레비전, 로봇청소기 등을 10~30% 할인된 가격에 살 수도 있다. 김씨는 “임금이 낮은 대신, 사원들을 위로하는 차원의 혜택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현금성 복지는 임금에 포함되지 않아 비과세 수당처럼 사용자 입장에선 4대보험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어 ‘합법적 탈세’라는 지적도 있다.

중소기업 직장인에게는 복지카드나 할인 혜택은 먼 얘기다. 최저임금에 가까운 기본급, 기본급처럼 들어오는 이름만 제각기 다른 수당이 임금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김정우씨는 “다 필요 없고 일한 만큼 수당만 꼬박꼬박 챙겨줬으면 좋겠다. 그게 어렵다면 월급받은 만큼만 일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