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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열전

간호사 ‘죄인’ 만드는 ‘태움’ 문화, “생명 다룬다는 핑계로 이어진 악습 끊어야”

“너무 우울하다. 내 삶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매일매일이 끔찍하다.”

최근 한 병원에 간호사로 입사한 ㄱ씨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선배 간호사들이 신입을 대상으로 ‘영혼이 재가 되도록 혼낸다’는 이른바 ‘태움’이 입사 사흘째부터 시작됐다. 지도 담당 간호사(프리셉터)는 ㄱ씨에게 일을 시켜놓고도 계속 불러 다른 일을 주면서 “아직도 다 못했느냐”며 괴롭혔다. “쥐어 팰 수도 없고.” “내가 하는 말에는 대꾸하지 말고 무조건 ‘예, 알겠습니다’로 대답해라.” 폭언은 일상이었다.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이게 눈에 안 보이냐”며 “눈깔을 빼서 씻어줄까”라는 말까지 했다. ㄱ씨는 “나는 항상 죄인처럼 걷고 죄인처럼 대답하고 죄인처럼 밥 먹고. 1년 버틸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지난 15일 서울 아산병원의 신입 간호사 박모씨(27)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과 지인들은 병원의 ‘태움’ 관습이 박씨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한다. 유가족은 “자신감 넘치던 아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은 입사 후 한 달이 지난 시점부터였다”고 했다. 박씨는 이모와 통화하면서 ‘내가 전화를 잘 못한대’, ‘나는 손이 느린 것 같아’, ‘우리 선생님은 잘 안 가르쳐주는 것 같아’라고 털어놓곤 했다. 박씨는 숨지기 전 휴대전화에 “업무 압박과 선배 눈초리에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해졌다”는 메모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그동안 간호사들로부터 받은 제보를 분석한 내용을 25일 공개했다. ㄱ씨처럼 신입 간호사가 교육을 빙자한 가혹행위를 당하는 경우가 잦았다. 지난 11월부터 받은 병원 내 갑질 제보 수백 건 가운데 40여건이 신입 간호사 사례였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핑계로, 신입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인격모독과 폭언이 공공연하게 자행됐다.

간호사들은 업무 중에 다치거나 몸이 아파도 선배 간호사로부터 힐난을 듣는다고 했다. ㄴ씨는 환자 이송 중에 이동침대에 발이 깔려 깁스를 하고 출근했다. 선배 간호사는 “답답해 뒤지겠으니까 빨리 좀 하라”며 재촉했고, 수간호사도 “다리 다친 게 대수냐”며 무리한 업무를 줬다. ㄴ씨는 결국 통증이 심해져 간호사 일을 그만뒀다. ㄷ씨는 출근길에 발목을 다쳐 뼈가 부러졌는데도 “몸 관리를 잘 못했다”는 수간호사의 질책에 산재 신청은 커녕 병가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18일부터 올해 2월14일까지 약 2개월간 벌인 ‘의료기관 내 갑질문화와 인권유린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한 간호사 41.4%(2524명)가 태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는 “병원은 고질적인 간호사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방식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병원에서 오랫동안 태움이 이어져온 것은 총을 다룬다는 핑계로 군대에서 오랫동안 폭력이 없어지지 않은 것과 같다”면서 “악습을 없애자는 간호사들의 자성운동도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새내기 괴롭힘 이렇게 막자" 신입직원 태움 금지법 발의

"새내기 괴롭힘 이렇게 막자” 신입직원 태움 금지법 발의

직장 내 새내기 괴롭힘을 막도록 하는 ‘신입직원 태움 금지법’이 발의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바른미래당 간사 최도자 의원(여수갑 지구당위원장·사진)은 26일 “직장내 신입직원에게 가해지는 과도한 폭언·폭행·가학행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위험 수위에 이르러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면서 “이런 직장 새내기들의 아픔과 부담을 덜기 위한 ‘신입직원 태움금지법’을 의원 12분의 도움을 받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특히 “신입직원 교육훈련을 법률적으로 ‘근로’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어 ‘근로기준법’ 일부를 개정하게 됐다”면서 “이번 법률 개정안에 강제적이고 폭압적인 교육·훈련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조항도 명확이 넣었다”고 덧붙였다.

최 의원은 “현재 판례와 노동부는 사용자 지휘감독 아래 이뤄지는 신입직원 교육훈련을 ‘근로’로 인정하고 있는데도 기업 대부분이 이를 외면하면서 최대 몇 달에 걸쳐 진행하는 신입직원 교육·훈련 과정에서 폭언·폭행 등 정신적·신체적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의원은 나아가 “기업들이 정신력과 팀워크를 강화한다는 미명 아래 철야행군, 제식훈련 등 업무와 연관되지 않는 가학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않는 급여를 일비 형식으로 지급해오고 있다”면서 “이런 불법적인 행위가 지속돼온 것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처벌 규정이 없어 기업체나 책임자를 문책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연수·교육기간 동안 근로계약서 미체결, 임금 미지급, 연장·휴일근로 위반 등이 상습화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최 의원이 발의한 ‘신입직원 태움 금지법’은 근로기준법 상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는 ‘근로’의 정의를 ‘근로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하며, 원할한 노동을 위해 사업주가 근로자를 교육·훈련시키는 것도 포함한다’고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또 제7조 ‘강제근로의 금지’ 조항을 ‘강제근로와 교육훈련의 금지’로 개정, 이를 어기면 ‘최대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했다.

최 의원은 “교육생, 신입직원이란 이유로 가학적인 교육·훈련을 참아내야 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조차 받지못하는 현실을 이른 시일안에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