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먹고살기 힘든데 무슨 연금을 올리고, 65세까지 내라고 하나.”
지난 10일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가 재정 소진을 막기 위해 보험료율을 올리고 납입기간을 늘리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 뉴스에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젊은 세대는 더 내고 덜 받으며 착취를 당한다” “돈을 더 걷어도 결국 기금 고갈을 못 막을 것”이라는 불신이 쏟아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국민연금은 실패한 제도”라며 청와대 홈페이지에 폐지 청원을 올렸다.
학계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맘이 무겁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노후의 버팀목이자 가장 큰 사회보장 중의 하나이며, 민간기업들의 사보험보다 안정적이고 수익률이 높다. 하지만 최저생계비조차 맞춰주지 못해 ‘용돈연금’이란 비아냥을 듣고 있고, 재정 유출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해법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형태를 바꿔 ‘더 내고 모두가 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뿐이다.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에서 현재 논의되는 개선방안도 이런 틀을 향하고 있다.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차장은 “연금개혁은 국정과제이기도 한 만큼, 시민들이 단순한 비판을 넘어 생산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갈 걱정이 ‘불신’으로
시민들이 국민연금을 믿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기금이 소진되면 보험료를 내고도 연금을 못받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정부는 5년마다 연금 재정이 얼마나 건전한지 판단한다. 2013년 3차 재정추계에선 “2060년 적립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4차 재정추계 결과는 오는 17일쯤 공개되는데, 보험료를 내야 할 인구는 줄고 연금을 받을 고령층은 늘고 있어 고갈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나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적립금이 소진돼도 미래세대가 연금 혜택을 못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그 해 필요한 연금을 그 때 그 때 보험료로 걷어 지원하는 ‘부과방식’으로 바꾸거나, 보험료율을 높이고 연금 수령액수를 줄이는 식으로 개혁을 해서 소진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은 ‘내는 돈’을 늘리고 ‘받는 돈’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금 급여수준도 불만을 키웠다. 가입자들이 낸 돈보다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이지만 도입된 지 30년밖에 되지 않았고 가입자 수가 단계적으로 늘었기 때문에 현재의 수급자들 중에는 가입기간이 짧은 이들이 많다. 지난해 새로 연금을 받기 시작한 이들의 평균 가입기간은 17년 정도였으며 소득대체율(생애 월평균소득 대비 연금수령액 비중)은 약 24%였다. 평소 월 218만원을 벌었던 사람이 퇴직 뒤 노후 연금은 52만3000원 정도만 받는다는 얘기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가 문제
올해 30주년을 맞은 국민연금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도입 첫 해에 443만명이던 가입자는 지난해 2167만명으로 늘었다. 수급자는 1989년 1798명에서 428만명으로 증가했다.당초 지나친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전두환 정권은 1988년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 3%의 보험료율에 70%나 되는 소득대체율을 제시했다. 정부는 그 후 부족한 재정을 메우려고 소득대체율을 계속 내렸다. 2007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낮아져 2028년에는 40%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과 군인 등 특수직역 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 수급자들은 월평균 36만8570원을 받았다. 2016년 퇴직공무원 1인당 월평균 퇴직연금지급액은 241만9000원이었다. 공적 연금인데 급여 차이가 7배 가까이 나는 것이다. 특수직역연금은 재정이 부족해질 경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내주도록 법에 보장돼있지만 국민연금은 그런 보장이 없다는 것도 불신의 한 축이다.
소득대체율 높이고 가입기간 줄일까
국민연금 제도개선을 위해 구성된 제도발전위원회는 연금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방안을 찾느라 고심 중이다. 소득대체율을 45%로 고정하자는 제안이 내부에서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소득대체율은 내년에 44.5%로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대략 올해 수준으로 맞춰서 더 낮아지는 일은 없게 하자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제도발전위 관계자는 “보험료를 올리자는 얘기부터 하면 가입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우선 급여를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최소 120개월(10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만 수급연령이 됐을 때 노령연금을 탈 수 있게 돼 있다. 납부 예외나 장기체납 등으로 최소가입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그간 낸 보험료에 약간의 이자를 붙인 반환일시금만 받는다. 노인 빈곤층일수록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최소가입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7월말 이미 최소가입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실제 법제화까지는 많은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군인연금과의 형평성은 제도발전위에서 제대로 논의하지도 못하고 있다. 여러 부처가 관련돼 있고 정치적 부담도 큰 사안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급보장을 해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도 법 해석상 국가가 책임부담을 지는 것으로 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제도발전위는 17일쯤 공청회를 열고 연금개혁안에 대한 시민들 의견을 모은다. 김남희 참여연대 팀장은 “일부에서 폐지론까지 나오지만 공적으로 노후를 보장하는 제도는 중요하다”라며 “시민들의 합의로 조금이나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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