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사는 김더워씨가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직장으로 출근하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거리 때문이 아니다. 나무가 빽빽한 집 주변보다 빌딩으로 빼곡한 직장 근처는 5도 가까이 덥기 때문이다.
서울 최고기온이 기상관측 111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1일, 기상청이 자동기상관측장비(AWS)로 서울 시내 30곳에서 측정한 기온을 보면 지역에 따라 온도차가 5.7도까지 벌어졌다. ‘서프리카’라는 말까지 나온 이날 종로구 송월동 관측소의 ‘공식 기록’은 39.6도였지만 강북구 수유동의 AWS는 무려 41.8도를 기록했다. 북악산 기슭 평창동은 36.1도였다. 서초구 서초동 41.1도, 송파구 잠실동 40.8도, 강남구 삼성동 40도 등 도심에서 거리가 가까운 곳들은 40도를 웃돌았다. 반면 산지와 가까운 관악구 신림동은 38.6도, 강서구 화곡동은 38.1도, 은평구 진관내동은 38.3도였다. 도심이지만 남산 기슭인 중구 예장동은 38.4도였다.
시간대별로 보면 송월동 관측소 기준 서울 기온은 출근길인 8시부터 뜨거워지기 시작해 오후 15시36분에 정점을 찍었고, 퇴근 무렵인 7시쯤부터 조금씩 온도가 내려가고, 오전 6시쯤 최저기온으로 떨어진다. 오후 3~4시가 가장 뜨거운 이유는 도심 빌딩들이 열을 축적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거리를 에워싼 고층건물들은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복사열을 내뿜는 ‘열섬 현상’을 일으킨다. 반면 숲의 나무는 수분을 증발시켜 온도를 낮추고, 그늘을 만들어 지표면을 식힌다.
서울의 경우 대체로 여름철 서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도심을 통과하며 데워지기 때문에 동쪽 지역이 더 덥다. 하지만 이번엔 ‘서풍 탓’이 아니라 고온건조한 ‘동풍 탓’일 수도 있다. 날씨를 결정짓는 요인들은 단순하지 않고, AWS에 찍히는 기록들도 어느 한 요인으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 윤기한 기상청 사무관은 “수유동의 경우 분지 형태여서 AWS 기록이 더 올라갔을 수도 있다”고 했다.
도시의 기온분포를 결정하는 것들이 간단치 않다 해도, 열섬의 주된 변수는 결국 ‘빌딩’과 ‘숲’이다. ‘환경영향평가’에 2016년 발표된 논문을 보면 도심 기온은 남산보다 7도 이상 높았고, 북한산·관악산 주변과는 10도 넘게 차이가 났다. 녹지는 폭염 사망률도 낮춘다. 폭염 초과사망 위험도를 보니 용산구·마포구·서대문구에서 위험도가 높았다. 초과사망은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사망자 수를 넘어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를 가리키는데, 도봉구와 강북구처럼 산림이 가까운 곳에서는 초과사망 위험이 거의 없었다. 국립기상과학원 김규랑 연구관은 “건물이 밀집한 지역에선 낮시간 ‘열 스트레스’가 심할 수 있다”면서 “녹지는 열 스트레스를 줄이고, 특히 밤 시간대 최저 기온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2016년~2017년 경기도 수원시를 분석한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공원이나 녹지와 얼마나 가까우냐에 따라 같은 도시 안에서도 여름 길이가 두 달 가까이 차이났다. 도로나 상업지구처럼 ‘그레이(회색)인프라’가 많은 지역은 여름의 기간, 평균기온, 열대야 날짜 수 모두 높아졌다. 숲이나 공원같은 ‘그린(녹색)인프라’가 많은 곳은 “봄과 가을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봤다. 결국 녹지를 늘리는 것이 평상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일 뿐 아니라 기후변화로 점점 심해질 폭염재난에 대비할 방법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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