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3학년들이 치르는 2022학년도부터는 수능위주 전형(정시)이 30%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가교육회의의 의견에 따라 교육부가 대학들에 ‘30% 이상 확대’를 유도하기로 결정했다. 수능 국어·수학 과목 등에 ‘공통+선택형’ 구조가 도입되고, 기하와 과학Ⅱ는 선택과목으로 출제된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7일 서울청사 별관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2022학년도 대입제도개편 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을 발표했다. 공론화로 표출된 여론을 반영해 각 대학에 정시 비율을 30% 이상 확대 권고하기로 했다. 아예 재정지원사업인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신청 자격조건에 이를 포함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산업대와 전문대, 원격대 등과 수시 학생부교과전형 30% 이상인 대학은 권고 대상에서 제외하기 때문에 실제로 얼마나 늘어날 지는 미지수다.
수능의 국어·수학·직업탐구에 공통+선택형 구조를 도입한다. 탐구영역은 문·이과 구분을 없애 총 17개 과목(사회 9개, 과학 8개) 중 두 과목을 고르게 한다. 기하와 과학Ⅱ의 4개 과목도 선택과목으로 포함시켰다. 학교생활기록부에 수상경력은 학기당 1개씩, 자율동아리는 학년당 1개씩만 쓰게 하기로 했다.
이번 교육부 개편안은 국가교육회의가 시민 공론화 뒤 내놓은 권고안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 ‘수능 전면 절대평가’는 미뤄졌고, 기존 절대평가 과목인 영어와 한국사에 제2외국어/한문만 추가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 공약이었던 절대평가에서 대폭 후퇴하는 등 1년을 돌고돌아 ‘다시 제자리’로 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 정시 30% 확대, 대학들 참여할까
2020학년도 기준으로 정시와 학생부교과전형 비율이 모두 30% 이하여서 정시 확대 권고 대상이 되는 대학은 전국 198개 4년제 대학 가운데 17.7%인 35개다. 이 대학들의 정시 평균 비율은 22.5%인데 이를 30%로 늘리면 수능 선발 인원은 5354명 늘어날 것으로 교육부는 추정했다. 지역적으로 35개 중 지방대학은 9개에 불과한 반면 수도권에는 서울대·고려대·이화여대·한양대 등 26개나 해당된다.
결국 서울·수도권 주요 대학들이 정시 비율을 얼마나 늘릴 것이냐가 관건이다. 교육부는 정시를 늘리지 않으면 재정지원사업에 신청하지 못하게 해 정시 확대를 유도하겠다고 하지만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은 계속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을 통해 우수학생을 우선 유치할 가능성이 높다. 포항공대와 서울대는 현재 학종 비율이 각각 100%, 79.6%에 이른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대표는 “사실상 모든 것이 대학 결정에 넘어간 것”이라며 “정시를 30% 이상 늘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수시 학생부교과전형을 30% 이상 늘려 정시를 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이날 개편안 발표 뒤 곧바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단과 오찬을 하면서 대학 총장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이 자리에는 대교협 회장인 장호성 단국대 총장과 김영환 홍익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서울대의 경우 정부 지원사업이 걸려 있는 문제인만큼 국립대학으로서 교육부 요청을 받아들이는 쪽을 검토하겠지만, “당장 늘리기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시 비율 ‘30%’라는 수치가 나온 배경에 대해 심민철 교육부 대학학술정책관은 “정시 인원을 45% 이상 확대하는 1안과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요구하는 2안의 차이가 무의미해 45%로 정하긴 어려웠다. 시민참여단의 68.5%가 정시 비율의 적정수준으로 ‘30% 이상’을 선택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 활용은 대학 자율로 하되, 선발방법의 취지에 맞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하기로 했다.
■학생부 공정성 강화는 어떻게
교육부는 지나친 경쟁과 사교육 유발을 막기 위해 학생부 기재사항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수상경력 개수는 한 학기당 1개, 총 6개로 제한하고 자율동아리도 학년당 1개만 기재하도록 했다. 소논문은 적지 않도록 했다. 자기소개서 대필이나 허위작성이 확인되면 입학을 취소한다. 대학들의 학종평가 기준을 공개하고 대입전형별로 신입생들의 고교 유형과 지역정보를 공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적성고사는 없애고 구술고사는 최소화하며 논술고사도 단계적으로 폐지하도록 한다. 면접시 출신고교 등을 보지 않도록 블라인드 면접을 도입하기로 했다.
수능과 비슷해 수시 모집의 취지와 위배된다고 지적받아온 수시 적성고사는 폐지를 추진하며 논술도 단계적으로 폐지하도록 대학들을 유도한다.
김 부총리는 “교육부는 확정된 대입제도를 안정적이고 책임감 있게 운영할 것이며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혁신방안도 흔들림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학종의 문제점이 일부 개선됐지만 근본적인 공정성 확보나 불확실성 제거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학종의 비율이 여전히 정시보다 큰 만큼 특목고나 강남 지역 고교에 대한 선호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한 교육계 인사는 “특목고 학생들이 학종으로 상위권 대학을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시까지 일부 확대되면 입학전형의 선택권이 다양해져 특목고 쏠림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수학·과학계 반발에 ‘선택과목’ 들어간 기하와 과학2
2022학년도 수능과목에 ‘기하’와 ‘과학Ⅱ’(물리Ⅱ·화학Ⅱ·생물Ⅱ·지구과학Ⅱ)를 포함하는 문제는 정시 비율을 얼마로 정하느냐만큼 큰 관심사였다. 기초학문을 등한시한다는 수학·과학계의 거센 반발에 밀린 교육부는 결국 두 과목을 수능에 포함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교육부는 지난 6월 2022학년도 수능 과목 시안을 공개하면서 기하와 과학Ⅱ를 제외하겠다고 했다. 현재 기하는 이과 학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수학(가)형에 포함돼 있고, 과학Ⅱ는 과학탐구 선택과목이다. 두 과목을 수능에서 제외하기로 한 건 수학·과학 분야 학습량을 줄여주기 위해서였다. “수능 문제풀이가 아닌 진정한 수학·과학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현장 교사들의 요구도 한몫했다. 교육부는 기하와 과학Ⅱ를 주로 고3 때 배우는 심화과목(진로선택과목)으로 남겨 학생이 원하면 공부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 등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공계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필수 기초 소양조차 학습하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성명서를 내며 거세게 반발했다. 반면 교원·교육단체들은 기하와 과학Ⅱ를 수능에 넣지 않아도 고등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점, 진로선택과목을 수능에 포함하면 2015개정교육과정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 등을 들었다. 결국 교육부는 학계의 손을 들어줬다.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해 수능과목으로 남겼다고 했다. 선택과목이므로 학생들 부담이 지금보다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홍임 경기 대화고 교사는 “교육부는 선택과목이라 괜찮다고 하지만, 대학이 이들 과목을 선택해야만 입학할 수 있다고 하면 고등학교에선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 이과학생들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기하는 주로 3학년 때 편성돼 있으나 1, 2학년 때 진도를 끝내고 3학년 진로선택과목 시간에 수능 문제풀이를 하는 학교들이 적지 않다. 김 교사는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계속될 수 있고, 개정된 교육과정에 맞춰 심화학습을 하는 게 아니라 진도 나가기에 급급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교육계 진보·보수 모두 반발
김 부총리는 “공론화 과정은 큰 의미가 있었다”며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또 의견수렴을 하고 국민 모두의 뜻을 읽어나가는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입개편안이 일부 미세한 사항들을 빼곤 현행 체제를 유지하는 쪽에 가깝게 나오자 교육단체들은 크게 반발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좋은교사운동 등 진보성향 교육단체 5곳은 성명을 내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맞는 대입제도를 마련하고 고교교육을 혁신하겠다는 대통령 교육공약이 파기됐다”며 “이에 책임을 지고 김상곤 부총리과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대입개편특별위원장은 사퇴하라”고 밝혔다. 32개 교육단체가 참여한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육혁신연대’도 “교육부 대입개편안은 불충분하고 불완전한 공론화 결과에만 의존해 2015 개정 교육과정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수능 전형을 늘리자고 주장해온 보수 성향의 공정사회를위한시민모임 역시 “공론화에서 수능전형을 45% 이상 확대하는 안이 가장 지지를 많이 받았는데 교육부 대입개편안은 국민의 뜻을 짓밟은 것”이라며 김 부총리의 사퇴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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