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의 후폭풍이 거세다. 고교 내신과 수학능력시험의 현행 상대평가를 유지하면서 수능 위주 전형(정시)을 30% 이상 확대한다는 새 개편안은 그간 교육현장이 2015 교육과정 개편 취지에 따라 도입해온 토론·참여형 수업과 정면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런 수업이 힘을 받으려면 고교학점제·고교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번 발표 이후 고교 현장은 다시 문제풀이식 입시 경쟁에 매몰될 우려가 커졌다. 교사들은 “상위권 학생들을 위해 교실은 다시 대부분의 아이들을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토론수업 의욕이 꺾였다”
지난 17일 교육부 발표 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수능 영향력이 강화되면 다시 문제풀이 수업이 확대되면서 학습 혁신은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현장에선 벌써부터 이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교육부 방침대로라면 정시 확대 권고 대상 대학은 전국 35곳이다. 이 대학들이 정시 비율을 30%로 늘릴 경우 총 5354명이 수능 전형으로 추가 입학하게 된다. 2022학년도 대학 입학정원 41만여명의 1.2%일 뿐이지만 학교에 끼치는 파급력은 크다.
우선 ‘문제풀이 교실’로의 회귀가 예상된다. 보수정권에서조차 수능 영향력을 줄이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통합형 인재를 키우자며 수능에서 영어·한국사를 절대평가하고 토론 참여식 수업을 크게 늘리는 쪽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했다. 이 노력들은 물거품이 될 상황이다.
전주 신흥고 최재훈 교사는 “지방에는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한 학생들이 적지만 토론식 수업이 활성화되면서 학생들의 수업 참여가 늘고 입시에 대해 희망을 가졌는데 이제 그런 의욕이 없어질 듯하다”고 말했다.
기약 없는 절대평가·고교학점제
현재 고교들은 개학 직후 1학년을 대상으로 과학과 사회 선택과목을 신청받는데, 특정 과목에 신청자가 몰린다. 사회 과목의 경우 학생 60%가 윤리를 선택하며, 세계사·경제 등은 외면받는다. 상위 4%가 1등급으로 분류되는 상대평가 체제에선 학생수가 적을수록 1등급 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가령 20명이 선택과목으로 세계사를 들을 경우, 1등조차 상위 5%여서 2등급을 받는다. 또 2명이 공동 1등을 하게 되면 둘 다 ‘공동 2등’으로 내려가는 구조다. 서울 일반고의 한 교사는 “동점자가 여럿 나오면 학사관리를 못하는 것으로 지목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제를 꼬아서 출제해야 한다”며 “정부 개편안에 기대를 걸었는데 현장의 문제에 대한 해법은 하나도 안 보였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들은 뒤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고 졸업하는 고교학점제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고교 1학년을 대상으로 진로선택과목에 대해 절대평가를 우선 실시하고 제도를 정비해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를 본격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사들은 수능 전 과목과 내신 절대평가가 없으면 고교학점제를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수능과 내신 상대평가 기조가 유지되는데 좋아하는 과목을 고를 ‘소신’ 있는 학생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숭의여고 김진훈 교사는 “학교에서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더라도 학생들은 수능과 연계되는 과목만 들으려 할 것”이라며 “이번 대입제도 개편안은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휘둘려 고교교육의 창의성을 저해하고, 교육개혁의 흐름을 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교사들은 예정대로 2025년 고교학점제가 추진돼도, 그때 고교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대학입시를 치를 때가 돼야 제도가 안착할 것으로 본다. 2022년에 대선이 실시되는데,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교육공약 중 하나였던 고교학점제는 10년 뒤를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엔 이 기간 동안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불신이 팽배하다.
1·2·3학년 모두 다른 수능 과목
입시제도가 계속 바뀌면서 내년 고교에서는 1∼3학년 각각 출제범위가 다른 수능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교육부가 당초 2021학년도부터 대입제도를 바꾸려다 2022학년도부터 새 대입제도를 적용하는 것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년 고3 학생들의 경우 수학 ‘가’형은 미적분Ⅱ, 확률과 통계, 기하와 벡터가 출제범위다. 수학 ‘나’형은 수학Ⅱ와 미적분Ⅰ, 확률과 통계에서 출제된다.
반면 내년 고2 학생들의 경우 수학 ‘가’형 출제범위는 수학Ⅰ, 미적분, 확률과 통계이고 기하는 빠진다. 수학 ‘나’형의 출제범위는 수학Ⅰ, 수학Ⅱ, 확률과 통계로 ‘지수함수와 로그함수’ ‘삼각함수’ 등이 새롭게 추가된다.
내년 고1 학생들이 치를 2022학년도 수능에선 수학Ⅰ과 수학Ⅱ를 출제범위로 하는 공통과목 시험이 있고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가운데 1개를 필수선택과목으로 치르게 된다. 정시를 확대한다고 했으니 교사들은 수능에 대비해 이렇게 각기 다른 과목들에 비중의 차이를 둬서 수업을 해야 하고, 학생들 입시전략을 짜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재수와 삼수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서울대 등 정시 확대 땐 ‘특목고·자사고·강남’ 쏠림 심해질 듯
정시 30% 확대 대상에 ‘상위권대’ 많아 수능 점수 줄세우기
정부 ‘고교 서열화 해소’ 목표와 거꾸로…되레 부추길 수도
교육부가 ‘정시 30% 이상 확대’를 골자로 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놓자 외고 등 특목고와 자사고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대 합격생 숫자’로 고등학교들이 서열화되는 상황에서, 특목고·자사고 쏠림과 ‘서울대 줄세우기’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17일 발표한 대입제도 개편안에서 정시 비중을 ‘30% 이상’으로 제시했다. 2020학년도 대입의 정시 비중(19.9%)보다 약 10%포인트 높다. 수시 학생부교과전형 선발 비중이 30% 이상인 대학은 권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실제 ‘30% 가이드라인’이 적용될 수 있는 대학은 35곳 정도지만 이 가운데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학생들의 대입 준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2020학년도 입시에서 정시 선발 비율이 낮은 고려대(17%), 서울대(21%), 중앙대(22%) 등은 정시 비율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겠다며 내세워온 정책 목표와는 정반대로 특목고, 자사고 강세가 나타날 수 있다. 그동안 특목고와 자사고들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위주로 학생들을 진학시켰다. 정시 비율이 높아지면 수능 성적이 상대적으로 높은 특목고·자사고 학생들이나 서울 강남 일반고 학생들에게 유리해질 수 있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평가팀장은 “올해부터 자사고·외고와 일반고 입시를 동시에 실시해 자사고·외고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으로 봤지만 헌법재판소의 효력정지 결정으로 (이 학교들의) 숨통이 트였다. 대입제도 개편안까지 정시를 확대하는 방향이어서 특목고·자사고 지원자들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학종으로 80% 가까이 뽑았던 서울대 입시에서 합격자들의 출신 고교는 다양해지는 추세였다. 올해 입학생들의 출신고는 800곳이 넘고, 특히 지역 고등학교들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이전 3년간 서울대 합격자가 한 명도 없다가 지난해 새로 배출한 일반고가 전국 90여곳이다. 학종 확대가 지역·계층 간 편차를 줄이는 데에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재로선 서울대는 정시 확대에 난색을 표하고 있으나, 만일 정시 비중을 늘리게 된다면 이런 추세가 다시 뒤집힌다. 특목고·자사고와 강남 일반고 중심의 고교 서열화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재수생이 일반적으로 수시보다 정시에서 강하기 때문에 ‘재수생 강세’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현 중3, 고1, 고2가 치를 입시제도가 모두 달라 무조건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의대 입시도 정시 확대 분위기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의대는 그동안에도 수시 확대에 소극적이었고 정시 선발인원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수시에서도 까다로운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요구해왔다. 의대들은 현재 기조를 유지하거나 정시를 지금보다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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