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용 스마트폰에 내 위치정보나 저장된 전화번호, 사진까지 읽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라고 회사가 요구한다면?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된다며 이런 앱 설치를 거부했다가 징계를 받은 직원에게 법원이 “징계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노동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고 앱을 설치하라는 지시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한 첫 확정판결이다.
20일 KT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앱 설치를 거부했다가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은 KT 직원 이모씨가 낸 정직처분무효확인소송에서 징계처분은 무효라고 최근 판결했다. KT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씨는 이달부터 원래 직무로 돌아가 일하고 있다.
KT는 2014년 무선통신 품질을 측정하는 안드로이드 기반 휴대전화 앱을 만들고, 업무지원단 직원 283명 중 일부의 업무용 휴대전화에 앱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KT는 노사합의로 임직원들에게 직무 구분 없이 업무용 휴대전화를 지급하고 있었다. 이 앱은 언제든 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고 전화기능과 문자메시지 기능을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자 위치와 저장된 전화번호·일정·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 등 모두 12개 권한을 필요로 했다.
이씨는 개인정보가 침해될 수 있다며 설치를 거부하고 사업용 단말기를 지급해달라고 요구했다. 안드로이드가 아닌 다른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직원들에게는 사업용 단말기를 따로 내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KT는 2015년 6월 이씨가 ‘업무수행을 거부하고 성실의 의무, 조직 내 질서를 존중할 의무 등을 위반했다’며 정직 1개월 징계를 내리고 다른 부서로 발령했다. 이씨는 앱을 설치하라는 회사의 지시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기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KT는 “근무시간 중에는 업무 목적으로 회사가 지급한 휴대전화의 사용 요구를 직원이 거부할 수 없고 앱이 무분별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회사가 휴대전화를 지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임금보전·복리후생 성격이라 개인용으로 쓰는 직원들이 많았다”며 “과학기술 진보로 기업의 근로감시가 확대되고 있고 대부분의 앱 이용자들은 서비스제공자가 어떤 정보를 수집해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근로자들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줄 것을 사용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노동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진전된 판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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