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하고 돈 벌기

[현장]비정규직은 점심값도 차별···화력발전소 노동자가 숨진 자리엔

13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3호기 보일러에 연료를 공급하는 ‘트리퍼타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석탄을 운반하고 있다. 국내 최대 화력발전소인 이 발전소에서 석탄을 저장·운반하고 유해물질이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 설비를 고치는 일은 협력업체나 민간위탁업체 소속 비정규직 7500여명이 맡아 한다. 남지원 기자

13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3호기 보일러에 연료를 공급하는 ‘트리퍼타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석탄을 운반하고 있다. 국내 최대 화력발전소인 이 발전소에서 석탄을 저장·운반하고 유해물질이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 설비를 고치는 일은 협력업체나 민간위탁업체 소속 비정규직 7500여명이 맡아 한다. 남지원 기자

13일 오후 4시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3호기 보일러 안. 석탄을 컨베이어벨트로 실어나르는 ‘트리퍼타워’ 내부는 탄광처럼 어둡고 뜨거웠다. 석탄 운반을 맡은 연료설비직종 운탄노동자 두 명이 하얀 조명에 의존해 바닥에 쌓인 석탄가루를 삽으로 퍼날라 컨베이어벨트에 싣고 있었다.

삽을 들어올릴 때마다 석탄가루가 까맣게 날려 눈앞이 흐려졌고, 얼굴에 맺힌 땀에는 검정 가루가 덕지덕지 붙었다. 5분도 안 돼서 방진복과 방진마스크로 둘러싼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내부 온도가 45도까지 올라가는 이곳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터다.

비정규직 숨진 자리엔 ‘제재 경고문’만

3호기 보일러 안에서는 지난해 11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정비작업을 하던 노동자 ㄱ씨(42)가 기계에 머리가 끼어 숨졌다. 그가 숨진 자리에는 사망사고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사고지역’이라는 글자 아래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원인: 작업안전수칙 미준수, 조치결과: 사건조사 후 징계 및 과태료.”

ㄱ씨는 사고가 난 날 구급차량이 아니라 승용차에 실려 병원에 갔다고 한다. 징계와 과태료가 두려웠던 하청업체가 사고 사실을 뒤늦게 알렸기 때문이다. 이 사고 이후 발전소는 후속조치라며 ‘안전수칙을 2회 이상 위반하면 작업반을 전원퇴출하겠다’는 내용의 ‘제재사항’을 공지했다. 앞으로도 하청업체는 퇴출되지 않으려면 사고를 은폐해야 한다.

국내 최대 화력발전소인 태안화력발전소의 가장 어둡고 뜨겁고 위험한 곳에서는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한다. 석탄을 저장하거나 보일러까지 나르고, 미세먼지와 황 같은 유해물질이나 폐수가 발전소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거르는 등 발전 전후의 과정들을 책임지는 ‘연료환경설비운전’ 직종, 발전소 설비를 고치는 ‘경상정비’ 직종 7500여명 전원이 협력업체나 민간위탁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다.

발전5사에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 337명 중 원청 정규직 직원은 10명뿐이고 나머지 327명은 모두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다. 하청업체들이 사고를 숨기는 일이 잦기 때문에 실제 다치거나 병에 걸린 사람은 훨씬 많을 것으로 노조는 보고 있다. 석탄을 다루는 노동자들은 종종 폐질환을 호소하지만 아직까지 폐질환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사람은 없다.

지난해 11월 하청업체 노동자가 작업 중 숨진 자리 근처에 사고지역을 알리는 팻말이 서 있다.

지난해 11월 하청업체 노동자가 작업 중 숨진 자리 근처에 사고지역을 알리는 팻말이 서 있다.

화력발전소를 찾은 이날도 하청업체 노동자 두 명이 작업 도중 다쳐서 병원에 실려갔다. 회사는 이 사고도 ‘본인 귀책’으로 판단했다. 감독자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작업을 했다는 이유다. 연료환경운전설비 분야 하청업체인 금화PCS 소속 노동자 송상표씨는 “우리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작업을 거부하고 싶지만 다음 입찰에 영향을 줄까 봐 그 말이 입안에서만 맴돌고 밖으로는 안 나온다”고 말했다.

점심시간과 밥값도 차별

노동자들은 “일상 속 사소한 차별은 말하기도 민망하다”고 말한다. 발전노조가 조사한 내용을 보면 동서발전의 한 구내식당은 지난해까지 정규직 밥값이 4000원, 하청업체 비정규직 밥값이 4500원이었다. 동서발전은 "지난해부터 4000원으로 동일하게 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서부발전의 또다른 구내식당은 정규직의 식사시간이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인데 비정규직 식사시간은 오전 11시45분부터 오후 1시까지로 15분 짧다. 발전소 특성상 업무 도중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노동자들은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배달받아 먹는 경우도 많은데,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는 배달이 되지 않아 햇반이나 컵라면,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정부 ‘정규직화’ 방침 무시, 발전소 정비·운전 비정규직에 계속 맡기려는 전력회사들

하청업체 비정규직들은 발전사가 자신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발전소에서 내뿜는 오염물질들을 관리하는데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 업무 자체가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하고, 일부만 정지돼도 전국 전력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정부가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못박은 ‘생명안전업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발전소 운전·정비업무는 노동조합법과 시행령에 ‘발전부문 필수유지업무’로 분류돼 있다. 발전소 같은 필수공익사업장 업무 중 정지될 경우 공중의 생명·건강·안전이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를 말한다.

쟁의 막고 싶을 때엔 ‘필수업무’, 정규직화 거부할 땐 ‘필수업무 아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이 나온지 1년이 넘도록 정규직 전환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연료환경설비운전업종은 지난 6월부터 노·사·전문가협의체가 구성돼 정규직 전환 대상인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사측은 “필수유지업무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노조법상 필수유지업무 규정은 쟁의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지 정규직 전환을 보장하는 조항이 아니라는 논리다.

용역이 아니라 민간위탁 형태로 업무를 민간기업에 맡긴 경상정비업종은 아직 협의체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유향열 남동발전 사장은 “고용노동부가 진행중인 민간위탁 분야 실태조사가 끝나고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 그에 따라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이학영·우원식·송옥주·김성환 의원은 이날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설을 둘러보고 발전5사 사장단과 만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라”고 강조했다.

김성환 의원은 “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외주화를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일터에서 벌어지는 사고의 책임을 밖으로 돌리기 쉬운 구조, 한국전력과 발전사 임직원이 퇴직해 민간회사로 가던 구조를 깨뜨리기가 불편했던 발전사와 정부가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해왔던 것”이라며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발전사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