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계는 38도를 가리켰다. 아스팔트 열기는 50도가 넘는 듯했다. 숨이 막혔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오체투지 행진을 하며 해고노동자 김주중을 떠올렸다. 깡마른 몸, 왜소한 체구, 작은 키에 순박한 얼굴의 친구였다. 쌍용차 회사와 이명박 정부가 ‘노조와해 시나리오’를 짜고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2009년 8월5일, 그는 옥상에 있었다. 경찰 테이저건을 막기 위해 식당에서 가져온 솥뚜껑을 들고 있었다. 경찰특공대는 군홧발로 짓밟고 방패를 내리쳤다. 그는 피를 흘리며 끌려가 감옥에 갇혔다. 집행유예로 범죄자 낙인이 찍혔다.
구속에서 풀려났지만 구치소 밖 세상은 사회적으로 매장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으로 퇴직금과 집이 가압류되었다. 정부와 언론이 폭도와 빨갱이로 만든 쌍용차 출신에게 직장을 내어주는 곳은 없었다. 금융거래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삶이 10년 동안 계속됐다. 사회가 감옥이 되었고, 국가폭력 트라우마가 감옥이 되었다. 10년 동안 그는 감옥에 갇혀 살았다. 그가 용기를 내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 그 날의 진실을 알렸다. 그런데 회사도, 정부도 그의 짓밟힌 인권과 명예를 회복시켜주지 않았다. 그는 목을 매달았다. 죽음으로 명예회복을 요구했다. 14일은 김주중의 49재다.
해고생활 10년, 2009년 당시 77일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들은 모두 ‘책임자’가 되어 쌍용차 사태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졌다. 감옥에 갇혔고, 통장과 아파트를 압류당했다. 지금도 101명이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가압류로 경제권 행사가 가로막혔다. 그리고 30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서 고통을 짊어지며 책임을 지고 있다. 나는 10년 가운데 6년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으로 살았다. 책임의 한 축이기에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슴에 사무친다.
10년을 투쟁하는 동안, 국가로부터, 회사로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가해자로 지목받았다.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저항한 죄로 책임을 물었다. 때로는 양보를 요구하기도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우선순위를 양보하면 다 복직될 수 있다는 기나긴 희망고문도 모자라 ‘누가 먼저 들어갈지’를 두고 의자놀이를 했다. 복직 과정마저도 ‘형벌’이었다. 10년 동안 더러는 우리에게 ‘피해자’라고 했다. 국가폭력의 피해자, 정리해고 피해자, 최근에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의 피해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데 해고노동자들이 가해자가 되어 민형사상 처벌과 죽음으로 책임에 내몰리는 동안, 우리를 피해자라고 한 국가는, 회사는, 사법부는 대체 어떤 책임을 졌을까.
지난 10년을 쌍용자동차 사태를 해결해달라고 외쳤다. 감옥 같은 해고노동자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30명의 희생자들은 죽어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죽어도 해고노동자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살아남은 우리가 목격한 현실이다.
우리는 책임을 요구한다. 경찰도, 회사도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한다. 그 결과 힘없는 해고노동자들만 법적 처벌을 받았다. 책임은 해고노동자만 지고 있는 셈이다. 해고노동자만 책임을 져서는 쌍용자동차 사태는 해결될 수 없다. 사태를 일으킨 쪽도, 사태를 키운 쪽도 해고노동자들이 아니다. 최근 드러난 노조와해 문건에는 책임자가 명시됐다. 공권력 투입을 지시하고 실행한 경찰, 사측과 비상연락망을 두고 수시로 상황을 공유하면서도 해결에서 뒤로 밀려있던 노동부, 해고노동자에 대해서만 즉각 기소한 검찰, 이 모든 기획을 사전에 준비하고 실행한 쌍용자동차, 왜 이들은 처벌받지 않는가?
해고노동자들이 국가에 해결을 요구하면, 국가는 한 발 빼고 나선다. 노사관계에서 국가와 정치권은 마치 제3자인 양 뒤로 물러선다. “노력하겠다”는 답변만 10년을 들었다. 30명의 희생자는 말한다. “노력만으로는 살 수 없다.”
노사관계에 국가는 개입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개입하지 말았어야 한다. 쌍용차 사태는 철저히 처음부터 국가기관의 개입으로 벌어진 사회적 참사다. 문재인 정부여서 책임지라는 게 아니다. 참사의 책임자인 이명박 정부에서도, 박근혜 정부에서도 똑같이 외쳤다. 국가의 개입으로 벌어진 참사에 대해 더 이상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길 바란다. 이제는 국가가 책임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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