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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생태계가 바뀐다](2)노고단에 하얗게 센 구상나무···삐걱거리는 지리산 계절 시계

2018년 8월 2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바라본 임걸령 부근에 고사한 구상나무들이 눈에 띈다. 정지윤기자

2018년 8월 2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바라본 임걸령 부근에 고사한 구상나무들이 눈에 띈다. 정지윤기자

“생태계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갑니다. 기후변화는 거기에 엇박자를 만드는 거죠. 지금은 조금씩 어긋나고 있지만 어느 순간 한계를 넘으면 어떻게 될까요. 바퀴가 부서지고 영원히 멈춰버리겠죠.”

백두대간 지리산의 계절 시계가 파열음을 내고 있다. 북방산개구리가 겨울잠에서 일찍 깨어나고, 구상나무는 1년 새 수십 그루가 죽어버렸다. 나무가 눈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시기도 뒤죽박죽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동식물의 계절 변화 모니터링을 시작하고 채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벌어진 일들이다. 개별 사건들의 원인은 제각각이지만, 근본적인 배경은 하나로 모인다. 기후변화다. 짧은 시간 안에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생물에 일어난 변화의 원인을 달리 설명할 방법은 없다.

지난 21일 노고단에서 바라본 지리산은 짙은 녹음으로 사방이 푸르렀다. 하지만 정상부에 가만히 눈을 머물면 잎을 떨군 채 허옇게 말라버린 고사목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껏 외면해온 기후변화의 위협이 올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실체화한 것처럼, 지리산 생태가 변화하는 속도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 구상나무가 된 ‘쿠살낭’

‘Abies Koreana Wilson’. 소나무과 전나무속에 속하는 한국 고유종 ‘구상나무’의 학명이다. Abies는 뾰족한 잎, Koreana는 처음 발견된 곳, wilson은 명명자를 뜻한다. 다 자라면 18m를 넘기는 크고 잘생긴 나무다.

“일제강점기 때 윌슨이라는 학자가 분비나무와 구상나무를 처음 구별해서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전나무는 잎이 뾰족해서 아이들한테 위험한데 구상나무는 잎 끝이 옴폭해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럽과 미국에서 최고로 친다네요.”

국립공원관리공단 신창근 주임(37)이 지리산을 함께 둘러보면서 들려준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다. 1907년 제주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 위르벵 포리 신부는 한라산에서 자라는 특이한 나무를 발견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의 저명한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 박사에게 표본을 전했다.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분비나무로 여겨졌지만, 윌슨 박사는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해 1917년 제주를 직접 찾았다.

지리산 돼지령에서 바라본 노고단 아래의 고사한 구상나무들. 정지윤기자

지리산 돼지령에서 바라본 노고단 아래의 고사한 구상나무들. 정지윤기자

당시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과 동행했는데, 윌슨은 구과(毬果)의 껍질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분비나무와 다른 신종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구과식물은 소나무처럼 바늘잎에 방울모양의 열매를 맺는 나무를 가리킨다. 윌슨은 이 나무를 제주 사람들이 ‘쿠살낭’이라고 부르는데서 ‘구상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쿠살’은 성게, ‘낭’은 나무를 가리킨다. 나카이는 자신이 신종의 이름을 붙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이제 구상나무는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한라산에서 반출된 구상나무가 해외에서 품종 개량돼 ‘한국전나무(Korean Fir)’로 불리며 널리 퍼져나갔다고 한다. 구상나무는 한라산에 가장 넓게 분포하지만 지리산과 덕유산, 속리산, 가야산 등에서도 만날 수 있다.

세계에서 인기라는데 정작 토종 구상나무는 ‘멸종위기’다. 고지대에 살고 있어 기후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온대지방에서 해발 1500~2000m는 고산지대에 버금가는 ‘아(亞)고산대’라 부르는데 여기가 구상나무가 살 수 있는 높이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선 돼지령, 반야봉, 토끼봉, 연하봉 등에서 고사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해발 1400~1900m 지점에서 집단고사가 두드러진다. 현재 지리산 반야봉 일대 1㎢에 1만5000여 그루의 구상나무가 있으며, 이중 45%인 6700여 그루가 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상나무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노고단 입구에서 돼지령으로 걸음을 옮겼다. 잎사귀의 모양으로 침엽수, 활엽수 정도만 구분할 정도인 까막눈에는 다 푸르른 나무다. 이삼십분쯤 걸음을 옮겼을까. 신 주임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아, 저기 보이네요. 저게 구상나무 고사목이에요.”

■ 하얗게 센 나무들

나무가 하얗게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거대한 짐승의 갈비뼈처럼 굵은 줄기를 중심으로 삐죽삐죽한 가지가 하늘로 뻗어 있었다. 울창한 녹음과 대조를 이루니 기괴한 느낌마저 들었다. 고사가 처음 시작될 때는 줄기의 겉껍질이 벗겨지면서 검은 빛을 띄고, 가지 끝 부분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하지만 1년 정도 고사가 진행되면 잔가지가 완전히 사라지고, 줄기와 가지가 하얀색으로 변한다.

지리산 돼지령 부근의 말라죽은 구상나무. 고사 단계에 들어서면 처음에는 줄기 겉껍질이 벗겨져 검은 빛을 띈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나면 잔가지가 사라지고 줄기와 가지가 하얀색으로 변한다. 정지윤기자

지리산 돼지령 부근의 말라죽은 구상나무. 고사 단계에 들어서면 처음에는 줄기 겉껍질이 벗겨져 검은 빛을 띈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나면 잔가지가 사라지고 줄기와 가지가 하얀색으로 변한다. 정지윤기자

구상나무는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이라고들 한다. 살아선 세모꼴로 곧게 퍼진 상록수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고, 죽어서도 기묘한 형상으로 눈길을 사로잡기에 나온 말이다. 그런데 고사목이 한두 그루면 그윽한 멋을 주며 산의 풍경에 다채로움을 보태겠지만, 최근의 변화를 보면 운치를 찾을 상황이 아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소속 국립공원연구원이 지난해 나이테 분석으로 반야봉 일대에서 무더기로 말라죽은 구상나무 94그루를 분석해보니 “생육 스트레스가 장기간 누적되어 고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바꿔 말하면 ‘기후변화’ 때문이다. 죽은 구상나무 94그루는 1960년부터 생육부진이 이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눈에 띄는 점은 89.4%인 84그루가 2000년 이후 말라붙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해마다 죽는 나무가 나왔다. 2011년 9그루, 2012년 11그루, 2013년 28그루 등 고사하는 나무 숫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2000년 이후 고사한 84그루의 평균 수명은 69년, 최장 118년까지 산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서 70~80년 된 것들이 절반을 차지했다. 구상나무의 수명은 200~300년 정도다.

계절별로는 겨울에 죽은 나무가 많았다. 2월에 기온이 올라간 것이 이 나무들이 살아가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반야봉 일대 2월 평균 기온을 측정해보니 2012년 영하 9.1도에서 2018년 영하 5.3도로 연평균 0.76도씩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봄철에 눈이 녹아서 토양에 수분을 공급해야 하는데 겨울철 기온이 오르면서 적설량이 줄었고 구상나무가 살기 어려워진 것이다.

봄철에 내리는 비가 줄어든 것도 구상나무를 위협하고 있다. 2012~2017년 반야봉 일대 3월 강우량을 측정해보니 2012년 137.5㎜에서 2017년 22.5㎜로 연평균 약 23㎜씩 감소했다. 그 탓에 토양에 함유된 수분도 25.3%에서 8.8%로 크게 줄었다. 비가 줄고 흙이 마르니, 5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생육을 시작하는 구상나무가 말라죽게 된 것이다. 연구진은 기후변화가 더욱 심해지면 봄철 기온상승으로 구상나무가 왕성하게 자라는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며, 이른 봄 수분 부족이 나무에 미치는 영향도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 계절시계가 빨라진다

구상나무는 수만년 전부터 기후변화의 첨단에 있었다. 이 나무는 원래 북반구 한대지방이 고향으로, 빙하기 때 번성했다. 남쪽으로 확장된 빙하를 따라 내려왔다가, 빙하기가 끝나 기온이 올라가자 높은 산으로 이동해 살아남았다. 한반도까지 내려온 구상나무는 지리산과 한라산 등의 아고산대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셈이다.

자연의 대변동을 버텨낸 구상나무는 이제 인간이 일으킨 기후변화로 단기간에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신 주임은 “아고산대는 척박한 지대라 이곳에 적응한 동식물들은 겨우겨우 살아가는 처지이고, 환경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할 수 밖에 없다”면서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수분이나 대체할 양분도 없어서 빠른 속도로 죽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돼지령 부근 곳곳에서 하얗게 변한 구상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구상나무는 200~300년을 사는데, 지리산에서는 70~80년 된 나무들이 고사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정지윤기자

돼지령 부근 곳곳에서 하얗게 변한 구상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구상나무는 200~300년을 사는데, 지리산에서는 70~80년 된 나무들이 고사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정지윤기자

걸음을 재촉해 반야봉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에 도달했다. 해발고도 1732m의 반야봉은 천왕봉에 이어 두 번째 높은 봉우리인데 쌍봉이라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정상부 아래에 희끗한 지점들이 보였다. “여름에 줄기가 보이는 나무는 모두 어딘가 이상한 나무예요. 아프거나 죽었거나 둘 중 하나죠.” 신 주임의 손길을 따라 눈을 옮길 때마다 잎을 떨구고 허옇게 바랜 구상나무 고사목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신 주임은 생태계를 위해선 죽은 나무도 필요하다고 했다. “죽은 나무는 작은 생명체들의 이마트라고 할 수 있어요. 다양한 균류와 곤충들이 모여들어서 ‘먹이 파티’가 벌어집니다. 우리가 생태계의 순환이라고 부르는 현상이죠.” 하지만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하기엔 지금의 집단고사는 너무 극단적이다. 기후변화의 스케일이 수십년 단위이다 보니 여전히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실질적인 위협으로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지리산국립공원 남부사무소에 온지 3년 정도 된 신 주임도 사실 이전과의 변화를 크게 느끼진 못한다고 했다. 그가 왔을 때에는 이미 나무들이 많이 죽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리산을 오래 다닌 등산객들은 다르다. 서울에서 온 장지훈씨(48)는 “예전 지리산 종주를 할 때 제석봉 주변에서 죽은 나무들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10년 만에 다시 와보니 이전에는 못 봤던 고목들이 돼지령 주변에서도 눈에 띄어 놀랐다”고 말했다.

■ 동식물 위협하는 기후변화 ‘시차’

기후변화 연구는 최소 30년 정도의 데이터를 축적해 결론을 도출한다. 한국에서는 기후변화 관련 동식물 연구를 한지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장기간의 측정치가 없는데도 구상나무가 고사한 것을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신 주임은 “너무 급격하게 변화가 일어나고, 너무 빨리 죽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기후는 온도와 습도, 강우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한다. 온도가 변하면 습도와 바람이 바뀌고, 증발량이 늘어나면 비구름으로 이어지는 등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유기물이 적은 고지대의 식물들은 천천히 조금씩 내리는 비에 적응해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호우가 쏟아져 양분이 쓸려나가면 배겨낼 재간이 없다. 특히 한라산 구상나무는 최근 기록적 폭우가 이어지면서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미국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이 명명한 구상나무는 외국에선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가 많다. 정지윤기자

미국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이 명명한 구상나무는 외국에선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가 많다. 정지윤기자

이런 변화의 연쇄를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 ‘생물계절학(Phenology)’이다. 계절에 따라 자연계의 동식물이 나타내는 여러가지 현상의 변화를 기후나 기상과 관련지어 연구하는 분야다. 일본 교토에선 벚나무 개화시기가 1000년 전부터 기록돼 있다고 하는데, 장기 경향을 분석해보니 1800년 이후로 꽃 피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에선 20세기 후반 사스래나무와 참나무의 봄 개엽 시기를 조사한 사례가 있다. 1984년 이후 초봄과 늦봄 모두 개엽 시기가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만이 아니라 곤충, 양서류, 조류 등에서 개화, 개엽, 첫 출현, 산란, 이동시기가 10년마다 1~4일 정도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는 생태계의 구성원들 사이에 ‘엇박자’를 낳는다. 기온이 올라가고 기후요소가 바뀌는 것과, 오랜 세월 적응해온 동식물의 생태가 달라지는 것 사이에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미주 대륙을 오가는 노랑부리뻐꾸기라는 새는 겨울엔 남미 쪽으로 내려갔다가 봄이면 북미로 올라온다. 그런데 미국 동부에선 봄에 식물의 잎이 돋는 시기가 해마다 1.2일씩 빨라지고 있다. 반면 노랑부리뻐꾸기가 이동하는 시기는 매년 0.2일씩만 빨라지고 있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10년이 지나자, 노랑부리뻐꾸기는 봄이 시작되고 무려 열흘이 지나서야 찾아오는 꼴이 됐다. 그때가 되면 먹을 게 남지 않아 생존을 위협받는다. 반대로 미국 서부에서는 새들이 너무 일찍 찾아와 메마른 가지에서 서성이는 상황이 됐다는 최근 연구결과가 있다.

기후변화로 꿀벌이 활동하는 시기와 식물이 꽃피는 시기가 어긋나면서 꿀벌과 식물들의 생존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멸종위기라고 하면 흔히 북극곰이나 호랑이를 떠올리지만, 지구 생태계를 한번에 흔들 수 있는 것이 꿀벌의 멸종이다.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생산량의 약 70%가 꿀벌의 수분으로 생산된다. 꿀벌이 사라지는 군체붕괴증후군(Colony Collapse Disorder)은 세계 곳곳의 고민거리다.

■ 지리산 생태지표 ‘북방산개구리’

노고단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물의 기척이라도 있을까 귀를 기울였지만, 사람이 걸음을 옮기며 내는 숨소리만 들렸다. ‘로드킬’을 주의하라는 간판에는 뱀이 그려져 있다. 척박한 정상부에는 뱀 말고는 딱히 로드킬을 걱정해야 할 동물이 없단다. 개구리들도 더위를 피해 숨는지 한여름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21일 지리산국립공원남부사무소 신창근 주임이 노고단의 기후변화 관측카메라를 점검하고 있다.정지윤기자

지난 21일 지리산국립공원남부사무소 신창근 주임이 노고단의 기후변화 관측카메라를 점검하고 있다.정지윤기자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생물계절과 관련해 대표적으로 관찰하는 식물은 신갈나무이고, 동물은 북방산개구리이다. 북방산개구리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 널리 분포하는 종으로, 한국 전역에서 볼 수 있다. 성체는 곤충이나 거미 같은 소형동물을 먹고, 올챙이는 낙엽이나 수초, 작은 수서동물의 사체를 먹는다. 산란기는 보통 2~4월 사이이며, 암컷은 1년에 1개의 알덩이를 낳는다. 이 개구리를 모니터링하는 이유는 ‘흔해서’다. 전국에 널리 분포하는 동물을 살펴봐야 기후변화의 영향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서든 뭍과 물을 오가는 양서류는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받으며 가장 크게 멸종 위협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에 민감한 이런 동물을 ‘기후 카나리아’라 부르는데, 지구상의 양서류 6600여 종 중 약 3분의 1이 멸종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변온동물인 양서류는 날씨가 추워지면 겨울잠을 잔다. 초봄의 온도는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 활동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성장 속도는 온도에 비례하는데, 발육이 시작되는 온도를 ‘발육영점’이라 부른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연구진은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지리산에 사는 북방산개구리의 산란시기를 관찰했다. 첫 산란일은 2010년에 비해 16일 빨라졌다. 지난해는 2월6일 구룡계곡 일대에서 북방산개구리가 낳은 알덩어리를 그해 봄 처음으로 확인했다. 2010년 첫 산란일은 2월22일이었다. 첫 산란일이 가장 빨랐던 때는 2014년의 2월1일이었고, 가장 늦었던 때는 그 이듬해의 3월4일이었다.

올해는 지난해 2월6일보다 23일이나 늦은 3월1일에 첫 산란이 확인됐다. 지난 겨울이 유독 추웠기 때문에 모니터링 지점인 구룡계곡에서 산란이 늦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이상 한파의 원인으로는 또 기후변화를 지목할 수밖에 없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 바다의 얼음이 녹으면서 풀려나온 찬공기가 유입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겨울철 기온이 변덕스러우면 개구리의 산란일정이 꼬인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생태계 먹이사슬의 중간 단계에 있는 북방산개구리의 산란일이 일정하지 않으면, 먹이가 되는 곤충 따위의 출현 시기와 맞지 않아 개구리 숫자가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올해도 북반구를 덮친 기록적인 폭염 뒤에 예년보다 일찍 한파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봄 잠에서 일찍 깬 놈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얼어죽을 것이다.

[생태계가 바뀐다](2)노고단에 하얗게 센 구상나무···삐걱거리는 지리산 계절 시계

기후변화는 그저 여름이 더워지고 혹독해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변화의 충격이 도미노를 무너뜨리듯 먹이사슬에 있는 생물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리면서 ‘생태계 아마겟돈’을 부르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생태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 있는 인간인들,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신갈나무의 24시

기후변화로 어떤 생물이 사라질 것이며 그 자리를 누가 채울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저 지켜보면서, 극단적인 변화를 늦추기 위해 애를 쓸 뿐이다. 지리산에서 연구원들이 유심히 살펴보는 또다른 생물은 생태계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신갈나무다. 흔히들 ‘도토리나무’라고 하는데, 도토리는 참나무속 너도밤나무과에 속한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의 열매를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나무 종류는 제각각이어도 열매의 크기나 모양은 대체로 비슷하다. 신갈나무도 전국에 분포하지만 상수리나 졸참나무 같은 형제들에 비하면 높은 지대에 살아서 낮은 땅의 사람들에겐 덜 익숙하다.

신갈나무는 한국의 숲을 이루는 대표적인 수종이다. 봄에는 새로 나온 잎이 나비나 나방 애벌레의 먹이가 된다. 여름에는 온갖 동식물들에 그늘을 드리워준다. 가을에 떨어진 열매는 다람쥐와 멧돼지가 찾아와 먹는다. 낙엽 밑에선 곤충들이 겨울을 난다. 자연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무인 셈이다.

신갈나무는 잎과 꽃이 함께 돋아나기 때문에 새로 나온 잎의 푸른 빛을 관찰하기에 적합하다. 이 나무도 최근 들어 첫 잎이 나오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지리산에선 두 곳에서 기후변화 관찰 장비로 신갈나무의 개엽(開葉) 시기를 살핀다. 카메라는 대략 1000m 고지인 성삼재 주차장 주변에 설치돼 있다. 사람들이 많이 접근하지 않으면서, 주변의 장애물 없이 나무를 관찰할 수 있는 위치다.

기둥 상단에 카메라가 달려있고, 렌즈가 향하는 방향에 뻥 뚫린 하늘을 배경으로 신갈나무가 서 있었다. 나무에도 잎사귀에서 2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카메라가 있다. 한 시간마다 촬영을 해서 연중 내내 나뭇잎의 변화를 지켜본다. 눈이 트이고, 잎의 모양을 갖추고, 가을로 접어들어 잎이 떨어지는 시기를 기록으로 남긴다. 상선암 주변인 861지방도로 길섶에 설치된 카메라는 신록의 변화를 관찰한다. 종석대 능선을 멀리서 지켜보며 봄철 언제 푸른 옷을 갈아입고 가을 어느 때 붉게 물이 드는지 사계절의 변화를 살펴보는 중이다.

관찰 결과 신갈나무 개엽시기가 2013년은 5월11일이었으나 2017년에는 4월30일로 11일 빨라졌다. 같은 기간 지리산과 멀지 않은 남원의 4월 평균기온은 2010년 8.3도에서 2017년 13.36도로 높아졌다. 신갈나무 개엽은 4월 평균기온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온이 갈수록 올라가면 앞으로 개엽시기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고단 아래에 설치된 관측카메라를 통해 신갈나무의 신록의 변화를 24시간 관찰할 수 있다. 정지윤기자

노고단 아래에 설치된 관측카메라를 통해 신갈나무의 신록의 변화를 24시간 관찰할 수 있다. 정지윤기자

빨라지는 것은 나무만이 아니다. 또다른 모니터링 대상인 노랑붓꽃도 꽃 피는 시기가 달라지고 있다. 아직은 데이터가 부족하지만, 4월 평균 기온이 어느 해보다 높았던 2016년에 개화 기간이 급격하게 짧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 변화에 반응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꽃이 빨리 피면 곤충에게 빨리 먹힐 수 있고, 햇빛을 받는 양도 달라진다. 노랑붓꽃 분포의 남방한계선인 순천, 광양 일대의 개체군이 소멸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 한반도 100년, 여름 늘고 겨울 줄고

국립기상과학원이 최근 발표한 ‘한반도 100년의 기후변화’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6년 동안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12.6도에서 14.0도로 1.4도 높아졌다. 최고기온은 17.1도에서 18.2도로 1.1도 올라갔다. 최저기온도 8.0도에서 9.9도로 1.9도 높아졌다. 장기간의 기후는 겨우 1도가량 움직였다지만, 그것만으로도 올여름의 충격적인 폭염같은 이상현상이 일어난다. 계절별로는 겨울철 최저기온 상승폭이 가장 컸다. 겨울 최저기온은 10년마다 0.25도가 올라갔다.

사계절의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겨울은 109일에서 91일로 줄었고, 여름은 98일에서 117일로 크게 늘었다. 봄은 85일에서 88일로 늘었고, 가을은 73일에서 69일로 줄었다. 한반도의 ‘사계절’이 ‘이계절’로 점차 변하고 있는 것이다. 강수는 ‘극단화’되고 있다. 과거의 30년(1912~1941년)과 최근의 30년(1988~2017년) 연평균 강수량을 비교했다. 과거 평균은 1181.4㎜였는데, 최근 평균은 1305.5㎜로 무려 124.1㎜나 늘었다. 비가 온 날의 숫자는 76.5일에서 78.1일로 1.6일 늘어나는데 그쳤다. 비가 한 번 내릴 때 더 많이 퍼붓는다는 의미다.

이 연구결과를 발표한 국립기상과학원 변영화 기후연구과장은 “일시적인 변동은 있지만, 장기적인 추세에서 우리나라가 온난화를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온실감스를 줄이려는 노력과 함께 “이미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산업화 이전의 온도로 돌아가기엔 늦어버린 것이다. 이대로 ‘기후변화의 공습’이 이어지면 몇 세대 후손들에게는 영화 <매드맥스>에서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대재앙 이후)’의 삶이 일상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산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산에서 내려오니 태풍 솔릭이 밀어올린 뜨거운 수증기로 후덥지근했다. 신창근 주임은 기후변화를 모니터링하는 것도 태풍 예보와 비슷하다고 했다. “태풍이 올라오면 피해를 입으리라는 점을 아니까 예보를 통해 미리 대비하도록 하는 거잖아요. 지금 생태계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큰 피해가 우려되니까 사람들에게 심각성을 알리려는 것이죠.”

기후변화가 급격하다 해도 생태계는 어떻게든 균형을 찾겠지만, 어떤 종들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구상나무와 북방산개구리는 어긋나고 있는 시계를 바로잡을 시간이 많지 않다며 경고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