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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가 바뀐다](4)2050년 기상예보입니다…“폭염 3주째 8월, 낮 최고는 42도”

[생태계가 바뀐다](4)2050년 기상예보입니다…“폭염 3주째 8월, 낮 최고는 42도”

“오늘도 폭염이 이어지겠습니다. 서울과 춘천·대전의 낮 최고기온 42도, 광주 41도, 대구 40도 등 오늘도 40도를 넘는 곳이 많습니다. 폭염 피해가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셔야겠습니다.”

2050년 8월 초 어느 날. 폭염이 3주째 끝날 줄을 모른다. 오래전엔 낮 최고기온이 33도가 넘으면 ‘폭염’이라 했다는데 이젠 폭염도 3단계, 4단계가 있고 40도를 넘기는 날이 여름마다 일주일은 된다. 땀을 흘려도 지워지지 않는다는 신제품으로 공들여 한 화장도, 머리 손질도 외출 1시간도 안돼 무용지물이 된다. 이마, 콧등, 겨드랑이 할 것 없이 온몸에 땀이 난다. 인공지능(AI) 기상캐스터가 우비와 우산을 홀로그램으로 장착한 모습도 못 본 지 오래다.

그래도 항상 가방에 우산을 넣고 다닌다. 언제 비가 퍼부을지 모르니까. 30년 전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일기예보에서 비 소식을 전할 때만 우산을 챙겼는데, 이젠 해가 쨍쨍해도 우산이 필수다. 요즘엔 하루 걸러 한 번씩 ‘스콜’이 내리는 것 같다. 아열대 기후로 바뀌면서 예측하기 힘든 비가 많이 내린다나. 시간대마다 동네 날씨를 알려주는 예보 소프트웨어도 정확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유료서비스라 그런지 제법 잘 맞는 편이다.

“상층부에 고기압이 많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려면 저기압이 올라와야 하는데 다른 성질의 기압은 서로 밀어내기 때문에 올라오지 못하죠.” 종종 참고하는 유튜브 기상채널의 크리에이터가 말한다. 폭염이라고 비가 오지 않는 건 아니란다. 폭염에는 강수일수가 줄어들지만 한번 비가 오면 집중호우로 바뀐다.

땅 위엔 녹지, 쇼핑몰들은 지하로

제아무리 슈퍼컴퓨터를 갖다놔도 비를 예측하기는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기상학자들은 말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습도가 올라갑니다. 냄비에 물을 넣고 불을 가하면 수증기로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수증기가 다시 물로 변할 때 엄청난 열이 나옵니다. 열기가 공기의 흐름을 바꾸고, 바람이 세지면 대기 이동이 빨라지죠. 비구름이 갑자기 생겼다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비가 내리는 시간은 짧아지고 한꺼번에 쏟아붓죠.” 구름이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지니 방향을 관측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생태계가 바뀐다](4)2050년 기상예보입니다…“폭염 3주째 8월, 낮 최고는 42도”

보름간의 휴가가 다 가고 있다. 6월 말에 일주일을 쉬었고 이번에 일주일을 더 쉬었다. 5월부터 9월까지 긴 여름을 버티려면 일주일짜리 휴가 한 번으로는 어림없다. 무더위를 도저히 버틸 수 없어 두 차례 나눠 쉬었다. 초등학생인 아이의 여름방학은 7주. 패시브쿨링 컨디셔너에서 바람이 나오는 시원한 집을 놔두고 아이가 밖에 나가자고 보챈다. 밖이 더운 탓에 집 안에 너무 오래 있었나보다.

예전엔 에어컨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많다고 아우성이었다. 기후변화협정이 5년 주기로 갱신되면서 옛날식 에어컨은 사라졌고, 20년 전부터 여름철 전기대란 얘기도 없어진 것 같다. 요즘 인기 있는 것은 인도 기업이 만들었다는 물 순환식 패시브쿨링 컨디셔너다. 물과 공기의 이동이 열기를 가라앉히며 ‘마이크로 기후’를 만드는 것에 착안한 제품이란다.

옆집은 벽에 컨디셔닝 셸프를 달았다. 선반 모양으로 된 컨디셔너의 한쪽에선 커피포트를 데우고 다른 쪽에선 화초를 수경재배한다. ‘에어컨의 아버지’ 윌리스 캐리어가 사망한 지 올해로 100년이 됐다며, 컨디셔너 업체들이 온갖 기념 영상들을 내보낸다.

“쇼핑몰 구경이나 갈까?” 아이가 부리나케 신발을 신는다. 전기차 충전소의 대기 리스트가 오늘따라 유난히 길다. 스마트그리드로 집과 자동차와 태양광 제너레이터가 연결돼 있는 대단지 아파트나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상관없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오래전 부모 세대들이 주유소에 줄을 섰듯 충전 대기를 해야 한다. 이동식 패널과 ‘스마트 인버터’도 있지만 이용료가 비싸다. 에너지조합들이 운영하는 공유시스템은 아무래도 충전 속도가 좀 느리다.

감자 대신 카사바

오래전 지어진 철도역사에 붙어 있는 마트 건물은 요즘 지탄받는 ‘통유리 빌딩’이다. 한때 사방을 유리벽으로 세운 건물들이 유행했지만 다 옛날이야기다. 냉방 효율이 떨어지는 그런 건물마다 햇빛 가림막을 설치하는 데에도 예산이 많이 들었다지. 지하 2층에서 장을 보고 지하통로를 지나 쇼핑몰로 넘어갔다.

도심 더위를 줄이느라 땅 위에는 공원을 늘렸고, 쇼핑몰들은 전부 지하로 들어갔다. 시멘트 바닥이 주를 이루던 건물 1층과 옥상은 작은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초록빛 모자이크가 장관이다.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요샌 커피 맛도 예전 같지 않다. 남부지방에서 나온 원두라는데, 국내 커피농사가 30년이 넘었는데 어느 지역은 벌써 토질이 바뀌어 제맛이 안 난단다. 아이는 망고주스를 시켰다. 제주산 애플망고의 맛은 언제나 좋다.

망고나 파파야, 커피를 한국에서 키운다는 게 뉴스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요샌 강원도 감자도 특산물로나 남아 있고, 카사바가 마트에 많이 나온다. 사실 내겐 카사바가 추억의 음식이다. 어릴 적 유행하던 대만식 버블티에 들어 있던 동글동글한 알갱이, 그걸 만드는 원료였으니까. 얼마 전 국내 카사바 재배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미 2014년 농촌진흥청에서 가뭄에 강한 카사바가 ‘기후변화 대응 작물’이 될 것으로 꼽았다고 한다.

“엄마가 꼬마였을 땐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게 최고의 피서였어.”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할머니에게 한강에서 스케이트를 탄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저런 표정이었겠지. 요즘 아이들에게 피서지는 뭐니뭐니해도 ‘동굴’이다. 얼마 전 가족과 충북 단양의 고수동굴에 다녀왔다. 한여름에도 동굴 안은 14도밖에 안된다. 뉴스에선 인공동굴을 너무 많이 파들어가는 것이 문제라고도 한다.

해수욕이나 국토대장정 같은 건 거의 사라졌다. 겨울에 스키를 타려면 한국을 벗어나야 하는 것은 좀 아쉽다. 한국에서 동계올림픽도 개최했다는데, 겨우내 눈이 쌓여 있는 스키장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우리 세 식구는 내년에 가기 위해 북극 패키지여행 적금을 붓고 있다. 북극 해로가 전부 열리면서 여행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손목의 스마트칩에서 가상 영상이 뜬다. “폭염경보, 야외작업 자제, 충분한 물 마시기.” 텃밭을 가꾸는 낙으로 사는 엄마가 걱정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이렇게 더운 날 서로 안부를 묻는다는 것이다.

제주도엔 겨울이 없어진다

이 가상 이야기는 근거 없는 허구가 아니다. 실제로 마주할 가능성이 높은 날씨를 묘사한 것에 가깝다. 기록적인 호우, 막강한 슈퍼태풍, 폭설과 한파, 더위를 넘어선 열파(heat wave)는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로 이미 시작된 ‘현실’이다.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1980년대 이후로 뚜렷하게 상승했다. 인위적인 온실가스 증가가 주원인이다. 국립기상과학원은 2050년 기후를 전망하면서 탄소 배출이 줄어들지 않으면 한국의 평균기온이 2011년보다 3.2도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폭염일수는 연간 25일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보고서를 내놓은 게 2011년이다. 폭염일수는 2016년 22.4일, 지난해 14.4일이더니 올해 31.2일을 기록했다.


또 2050년 열대야는 연간 30일로 늘어날 것으로 봤다. 내륙 산지를 뺀 전국이 아열대 기후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서울 날씨는 지금의 부산 날씨와 비슷해지고, 서울 기준으로 겨울은 27일 줄고 여름은 19일 늘어난다. 제주도와 울릉도는 겨울이 아예 없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2050년이 되면 집중호우가 많아져 하천 유역과 도심의 홍수 피해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폭염과 열대야가 한 달 넘게 이어지면 노인과 같은 취약계층의 피해가 커진다. 말라리아와 뎅기열 같은 아열대성 질병이 늘어날 수도 있다. 평균기온이 1도 올라갈 때 말라리아가 발병할 가능성은 3%, 쓰쓰가무시병은 6% 높아진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한반도 미래 폭염 피해 시뮬레이션 결과’는 2029년 온열질환 사망자 수가 100명에 육박한다고 전망했다. 한 해 100명이 열사병, 일사병으로 숨진다는 얘기다. 2050년에는 폭염 피해 사망자 수가 250명을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올해는 지난 5월20일부터 8월18일까지 4368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7월 이후 45명이 세상을 떠났다. 폭염은 ‘조용한 살인자’라고 불린다. 태풍과 홍수처럼 요란하진 않지만 소리없이 다가와 오래갈수록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봄철과 겨울철 찾아오는 가뭄은 더욱 심각해진다. 최근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하는 ‘해수 담수화’ 기술이 주목받는 건 기후변화의 영향에 구애받지 않고 물을 공급할 수 있어서다. 한반도 주변 해양 수온이 꾸준히 상승해 어민들은 어획량 감소와 양식장 집단 폐사와 같은 피해에 시달린다. 뜨거워진 바다가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지고 태풍이나 해일 등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해안가 침식이 나타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도시계획까지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변화를 막을 순 없지만 그 정도를 더디게 할 수는 있다. 기상청이 지난해 낸 ‘신기후체제 대비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체제가 가동돼 온실가스 배출량이 소폭 줄어들면 21세기 전반기(2021~2040년)에는 지금보다 평균기온이 0.8도, 중반기(2041~2070년)에는 1.6도, 후반기(2071~2100년)에는 3.0도가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파리 기후변화협정 등에서 국제사회가 목표로 잡고 있는 것이 ‘금세기 기온 상승폭을 2도 이내로 맞춘다’는 것인데, 일부 과학자들은 2도라는 목표치도 재앙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온실가스를 적극 감축하면 온도 상승폭을 1.8도 선으로 제한할 수 있다. 21세기 중반 이후 온실가스 농도가 안정되면서 기온이 더 이상 치솟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다. 또 기상청은 폭염일수, 열대야일수, 여름일수와 같은 고온 극한지수는 늘어나지만 한파일수, 결빙일수, 서리일수 등 저온 극한지수는 줄어들 것으로 봤다. 기후변화는 지구 전체에서 나타나지만 지역에 따라 영향은 다르다. 박수진 한국기후변화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강원도는 비교적 한파가 많이 증가하고 서울과 남쪽 지방에서는 폭염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달라진 기후에서 사는 법

지구온난화는 지구 전체가 1년 내내 더워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구의 평균온도가 올라가지만 지역에 따라, 계절에 따라, 위도와 지형에 따라 온갖 다양한 형태의 격변들이 일어난다. 기후변화는 곧 ‘기후위기’가 된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질병이나 자연재해 같은 재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을 지나면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갑니다. 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기후변화 모델을 통해 최대한 예측하려 애쓰지만, 예상치 못한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거죠.”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장의 말이다.

정부는 최근 2030년까지 2억7700만t을 줄이는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한국의 감축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자 국내에서 최대한 감축하면서 일부는 해외에서 감축하고 나머지는 산림으로 충당한다는 수정안을 내놨다. 그러나 여전히 기후변화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인식과 정책 대응은 부족한 편이다.

온실가스를 지금부터 줄여나가면 ‘지구적인 파국’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시작된 기후변화를 피하기는 어렵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길은 두 가지다. 온실가스를 적극적으로 감축하는 것, 혹은 적응하는 것. 한 가지가 더 있다고 말한다.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 팀장은 말한다. “적응마저 실패하면 준비하지 않은 만큼 고통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적응이라는 건 폭염에 대비해 무더위 쉼터를 마련하고, 야외노동자들이 무더위에 일하지 못하게 하는 거죠. 올해도 미리 대비하진 못했지만 사후적으로 조치를 했어요. 해수면 상승이 예견되면 거기에 맞춰 도시 구조물을 바꾸는 것도 적응 방법의 하나죠. 하지만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기후변화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고통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