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줄무늬가 있는 이 놈이 청줄돔입니다. 보이세요? 이런 아열대성 물고기가 5년 전에 100마리쯤 있었다면 지금은 500마리, 1000마리로 늘어났을 겁니다.”
늦여름 제주의 새벽 햇살은 따가웠다. 지난달 27일 오전 6시30분 제주 북촌 앞바다. 전날 쳐놓은 그물을 선미의 도르래로 돌돌 감아 올리자 검은 그물에 낚인 물고기들이 주렁주렁 딸려 올라왔다. 알록달록한 몸에 이국적인 줄무늬를 뽐내는 물고기들이 눈에 띠었다. 주황색 바탕에 얇게 그려진 밝은색 줄무늬가 어두운 곳에서는 형광 파랑빛을 띠는 청줄돔, 연노란 몸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범돔, 노랑 바탕에 그물망처럼 생긴 엷은 회색 무늬를 가진 거북복. 주로 일본 오키나와와 대만, 중국 동남쪽 바다에 사는 아열대성 어류들이다.
날씨가 더워지면 바닷물 온도도 올라가고,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 기후변화가 가속화된다. 이런 순환이 한반도 근해에 사는 물고기 종류까지 바꾸고 있다. 제주 앞바다에는 방어, 한치 같은 토착어종과 함께 남쪽에서 올라온 아열대성 어류들이 산다.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에서는 2012년부터 제주 동·서·남·북 앞바다 네 곳과 가파도 주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전체 중에 아열대성 어류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것들이 살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제주수산연구소 고준철 박사는 “2000년대 이후로 아열대성 어류가 제주도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잡아보니 절반 가까이가 아열대성 어류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4년 동안 제주 연안에 출현한 아열대성 물고기는 어획된 전체 어종의 40%를 넘겼다. 이날 조사에서는 아열대성 어류인 청줄돔, 가시복, 거북복, 호박돔, 아홉동가리, 쥐돔, 철갑둥어 등이 그물망에 걸렸다. 연구소의 현장 조사는 2·5·8·11월 네 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태풍 ‘솔릭’이 제주도를 휩쓸고 간 8월 말, 다행히 맑은 날씨 덕에 예정대로 조사를 할 수 있었다. 이 연구소 자원변동실 연구원들이 배를 타고 나가 물고기를 낚고, 연구실로 돌아와서 분석작업을 하기까지 하루를 함께 했다.
■ 검은 그물의 알록달록 물고기들
북촌 앞바다에서 출발한 배는 1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수심 10~15m의 얕은 바다에 도착했다. 조사 18시간 전인 전날 오후 2시에 연구진이 미리 통발 20여개를 드리워놨다. 배가 멈추자 연구팀 고 박사와 ‘남양호’ 선주 이순열씨(70)가 줄을 당겨 통발을 끌어올렸다. 생선, 소라, 작은 게 따위가 통발마다 10~15마리씩 들어있었다. 통발에서 나온 낙지 한 마리가 갑판 위를 돌아다니다가 연구원에게 잡혀 아이스박스 안으로 던져졌다.
통발에서 나온 것들이 플라스틱 판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김보연 연구원이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서 산소가 공급되는 박스 안에 재빨리 집어넣었다. 은회색 몸통에 흑갈색 띠가 있는 녀석이다. 김 연구원은 “아열대 어류 중 몇 마리는 실험실에서 먹이를 주면서 적응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산 채로 가져간다”고 설명했다.
제주 토착종인 쏨뱅이도 있었다. 적갈색 바탕에 둥근 반점들이 있는 쏨뱅이는 ‘빨간우럭’이라고도 불린다. 10~15cm의 작은 메기처럼 보이는 물고기들 수가 제법 많았다. 아열대성 어류인 ‘쏠종개’다. 고 박사는 목장갑을 낀 손으로 쏠종개를 조심스럽게 쥐었다. “가슴이나 등에 있는 지느러미에 침이 있어서 찔리면 무척 아프니 조심해야 합니다.”
통발 작업을 마친 배는 10분을 더 달려서 그물이 있는 지점에 멈춰섰다. 전날 연구팀은 통발과 함께 450m 가량의 그물을 바다에 쳐놨다. 그물이 너무 촘촘해서 작은 물고기까지 다 잡히기 때문에 어민들에게는 사용이 금지됐고 연구목적으로만 쓸 수 있는 ‘삼중망’이다. 그물이 갑판 위로 올라오자 연구원 두 명이 작은 갈고리를 손에 쥐고 주저앉아서 그물에 얽혀있는 해초와 소라, 물고기들을 뜯어냈다.
통발에서는 많이 보이지 않던 아열대성 어류들이 검은 그물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따뜻한 바다에서 온 물고기라고 모두 다 화려한 외양을 가진 건 아니지만, 대체로 토착어류보다 빛깔과 줄무늬가 화려하다. 거북이 등껍데기를 연상시키는 거북복과 형광 줄무늬를 자랑하는 청줄돔, 아홉개의 줄무늬가 있는 아홉동가리가 잡혔다. 갈고리로 물고기를 뜯어내던 고 박사가 갑자기 “이야!”하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아열대 어종인 쥐돔이다. 길이가 30cm 정도로 제법 크다. 고 박사는 산소가 공급되는 통에 재빨리 쥐돔을 집어넣었다. 지켜보던 선장 구동전씨(76)가 “저렇게 큰 쥐돔은 처음 보네”라고 말했다.
■ “식용으로 팔기엔 아직…”
“이 쥐돔은 최소 4살 이상은 된 것 같은데, 조사하면서 이렇게 큰 것은 처음 봐요. 이렇게 큰 놈이 있다는 건 쥐돔이 제주 앞바다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살아왔다는 뜻이거든요. 특히 제주 동·서·남·북 바다 중 가장 수온이 낮은 북쪽에서 이런 큰 놈이 잡힌 것을 보면, 아열대 어류가 제주도에서 꽤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아열대성 어류들이 이렇게 많이 잡힌다면 시장에도 내다팔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잡은 아열대성 물고기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인지 물었다. 고 박사는 “어부들은 물고기를 많이 잡다보니까 종종 먹기도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낯선 물고기는 잘 안 먹는다”고 했다. “거북복은 복어목에 속하지만 독이 전혀 없기 때문에 먹을 수 있어요. 배를 가른 뒤에 화로에 뒤집어 올려 구워먹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옆에서 듣던 구 선장은 “먹어봤는데 너무 기름져서 내 입맛에는 잘 안 맞더라”고 했다.
“어부들이 먼저 먹어본다거나 해서 고기에 대한 정보가 점점 알려져야만 사람들이 먹겠죠. 실제로 몇십 년 후에는 토착성 어류들이 훨씬 줄어들고 아열대성 어류가 늘어날테니, 식용 가능한지 독이 있는지 미리 파악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고 박사의 설명이다.
구 선장은 제주 북쪽 앞바다에서 50년 넘게 조업을 했다. 구 선장은 “아열대 어종이 늘어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토착종이 잡히는 양은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제주대학에 연구원으로 있는 아들이 연구 목적으로 쓴다면서 제주 토착종인 능성어를 잡아달라고 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그래도 작년엔 이 근방에서 13~14마리 정도는 나왔는데, 올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더라고.”
그물에서 풀어낸 물고기는 커다란 아이스박스 2개를 가득 채웠다. 3시간가량 계속된 조사는 플랑크톤을 잡는 과정으로 마무리됐다. 커다란 자루처럼 생긴 채집망을 바다에 넣어서 식물성 플랑크톤, 동물성 플랑크톤을 채집했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동물성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동물성 플랑크톤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된다. 플랑크톤을 파악하면 아열대성 어류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이들이 살아갈만한 먹이풀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 암반을 뒤덮는 그물코돌산호
제주시 외도 2동 제주수산연구소. 연구실에 돌아온 연구원들이 잡아놓은 물고기들을 철판에 쏟아냈다. 종별로 분류한 뒤에 물고기들의 상태를 좀 더 세부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연구원들은 저울로 물고기의 무게를 재고, 줄자가 붙어있는 도마에 올려 길이를 쟀다. 난자와 정자를 생성하는 난소나 고환을 생식소(생식샘)라 부른다. 물고기 배를 갈라 생식소를 꺼내는 작업을 하던 고 박사가 “성숙, 0.2그램”이라고 하자 옆의 연구원이 받아 적는다. 물고기 안에 들어있는 생식소가 ‘미숙, 중숙, 성숙, 완숙’ 네 단계 중에 성숙 단계이며 0.2g이라는 뜻이다. 개체의 크기, 생식소의 발달 정도, 산란 여부 등을 조사하면 물고기가 제주 앞바다에 얼마나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날 잡아온 물고기 중 소라류를 제외한 전체 어류가 24종에 159마리였고, 이중 아열대 어종은 8종에 10마리였다. 뒷지느러미에 진한 노란색 띠가 있는 무점황놀래기, 주둥이가 뾰족하고 몸에 가로줄이 길게 여러줄 나 있는 줄벤자리, 아홉동가리, 범돔 등이다. 제주 북쪽 앞바다는 남쪽이나 서쪽보다 수온이 낮다는 데도, 아열대성 어류가 종수로만 전체의 33%를 차지했다. 제주 전체 바다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제주에 사는 아열대성 어종의 비율은 2014년 43%, 2015년 43%, 2016년 41%, 2017년 42%로 40%를 웃돌았다.
연구실 한 쪽에는 두꺼운 잠수복이 걸려 있었다. 한 주 뒤에 예정된 잠수조사에서 고 박사는 직접 바다에 들어가서 산호류를 살필 것이다. 아열대 바다에 많이 자라는 그물코돌산호를 지표종으로 삼아서 매번 조사때마다 분포 정도를 확인한다. 수심 5∼25m에 분포하는 이 산호는 최대 지름 2m까지 성장한다.
“2012년에 처음 조사를 시작할 때에는 서귀포 남쪽에만 있었는데 몇년 새 서쪽, 동쪽, 북쪽까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퍼졌어요. 사람에게는 해가 없지만 그물코돌산호가 암반을 다 덮어버리면 소라나 전복이 암반에서 살지 못하고 이동하다가 죽어버려요. 기존에 살던 종들에게는 그물코돌산호가 유해하다고 볼 수도 있는 거죠.”
아열대 바다생물 중 일부는 독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다. 서너 해 전부터 제주를 비롯한 남해 일대에서 맹독을 지닌 파란고리문어나 넓은띠큰바다뱀이 발견되고 있다. 대만과 일본 류큐 열도에 주로 사는 것들이다. 최근엔 경남 거제를 비롯해 동해안인 울산과 경북 영덕에서도 목격됐다. 아열대 바다생물들이 점점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파란고리문어에 사람이 물릴 수도 있고, 독성이 있는 물고기를 먹고 사람이 아플 수도 있어요. 미리 조사를 해놔야 해요. 앞으로 아열대성 어류가 더 많아지면 수산자원으로 어떻게 활용할지도 연구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 “해초가 줄어들어요”
하루 6~8시간씩 바다에 사는 해녀는 물의 변화를 맨 먼저 느끼는 사람들이다. 구좌읍 평대리에서 고려진씨(34)를 만났다. 고씨의 어머니, 외할머니까지 3대가 모두 해녀다. 고씨와 어머니는 지금도 해녀로 일하고 있다.
“파란고리문어는 제가 물질을 시작할 때만 해도 못 보던 것인데, 근래 들어서 종종 보여요. 물 속에서 파란색이 형광색으로 밝게 빛나요.” 어머니를 비롯한 선배 해녀들은 고씨에게 “안 보이던 해산물, 모양이 화려한 것들은 건드리지도 말아라. 화려한 것은 다 독을 가지고 있다”고 조언했다. 고씨는 “꼬리 부분만 노랗거나, 몸통이 파란 작은 물고기들이 많이 보인다”며 “이름을 잘 모르니까 무조건 안 건드리고 피한다”고 했다. 파란고리문어, 바다뱀 같은 것들은 해녀들 사이에 이미 ‘주의보’가 내려진 지 오래다.
해녀들이 주로 잡던 것들은 줄고 있다. 고씨는 “물질을 시작한 게 4년 전인데 그 뒤로 바다가 달라진 게 많다”며 “오분자기, 솜, 군소, 소라 같은 것들이 예전보다 확 줄었다”고 했다. “우리 엄마가 한창 물질할 때만 해도 오분자기는 발에 채일 정도였다는데, 지금은 거의 안 나와요. 지금 오분자기라고 팔리는 것들은 대부분이 전복 새끼일 걸요.”
성게들 중에서도 보라성게보다 솜(말똥성게)이 더 많이 나왔었는데, 요즘엔 솜을 더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얕은 바다의 바위 지대에 많이 사는 보라성게는 한여름에 산란을 한다. “군소(바다달팽이) 같은 것들은 예전에 돌멩이처럼 많다고 해서 ‘굴멩이’라고 불렀는데 4년 만에 줄어든 게 느껴져요. 제가 물질 초짜였을 때 1시간에 120~130마리 잡았는데 요즘은 물질이 많이 늘었어도 한 시간에 70마리 겨우 잡아요.”
해녀들이 무분별하게 남획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6~9월에 바다생물들이 자랄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일을 쉬는 ‘금채기’를 가진다. 평소에도 덜 자란 것은 잡지 않는다. 소라는 7cm, 전복은 10cm 이하일 경우 눈에 보이더라도 캐오지 않는다. 고씨가 생각하기에 솜, 전복, 소라가 줄어드는 것은 확실히 수온 변화와 관련이 있다. “소라는 여름에 물이 더워지면 깊은 곳으로 갔다가 온도가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바다 가장자리로 나오기 시작해요. 그래야만 잡는 건데, 물이 너무 뜨겁다보니 소라가 깊은 데서 점점 안 올라와요.”
고씨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바닷말이 줄어든 것이다. 수온이 올라가면 김이나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의 싹이 녹아서 자라지 못한다. 바다가 사막처럼 변하는 ‘갯녹음’ 현상이다. 고씨는 “수온이 올라가면 해초들이 병에 걸린 것마냥 삭아든다”고 표현했다. “군데군데 풍성하게 펼쳐져 있던 우뭇가사리가 군락을 이루지 못하고 듬성듬성 자라나고, 감태나 미역, 톳도 엄청나게 줄어들었다”고 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평대마을은 우뭇가사리가 제일 많이 나는 동네였는데 요즘엔 수확량이 확 줄었다. 고씨는 “해초가 줄어드니까 그걸 먹고 사는 해산물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여름에는 지나치게 덥고, 겨울에는 지나치게 추운 이상기후는 해녀들을 힘들게 한다. 물에 오래 들어가 있기 때문에 체온을 유지하려고 여름에는 3mm 두께의 수트를, 겨울에는 5mm 수트를 입는다. 고씨는 “장시간 물질을 하려면 덥다고 수트를 안 입을 수도 없고, 춥다고 더 두꺼운 걸 입을 수도 없다”며 “수온이 점점 올라가면서 10~11월에는 더워서 숨이 턱턱 막히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힘들다”고 말했다.
■ “겨울 방어가 안 내려온다”
어부들도 바다의 변화를 느낀다. 홍진호의 선장 강순남씨(71)는 모슬포쪽에서 30년 넘게 어업을 했다. 겨울에 특히 인기가 많은 방어, 젓갈용으로도 쓰이고 회로도 먹는 자리돔을 많이 잡는다. 강씨는 제주 대표어종으로 꼽히는 방어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뻘 되는 선배들이 ‘추자도에서 방어 물면(잡히면) 사흘 뒤엔 여기(모슬포)서도 문다’고 했어요. 그런데 추자도에서 방어 많이 문다 소리가 들려와서 한참을 기다려도 마라도에서 문다는 얘기가 없어요.” 추자도는 제주 최북단에 있는 섬이다. 강 선장은 “방어들이 내려오다가 물이 뜨거우니까 다시 올라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얘기들을 한다”고 전했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생긴 가장 큰 근심거리는 상어다. 강씨는 “방어나 자리돔을 잡을 때 상어가 달라붙어서 그물을 다 끊어버리는 일이 많아 문제”라면서 “어민들이 연구소나 대학교에 상어 퇴치법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상어 배를 째서 물에 담가 놓고 피를 흘리면 상어가 도망간다는 말을 듣고, 지난해 2월에는 실제로 해보기까지 했다. 강씨는 “그렇게 하니 상어는 물론 방어도 다 도망가버렸다”고 했다.
영화 ‘조스’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백상아리는 주로 열대와 온대 바다에 사는데 최근 한반도 근해에도 자주 출몰해 골칫거리가 됐다. 지난 4월 27일에는 경남 거제시 남부면 앞바다에서 백상아리로 보이는 상어 한 마리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 지난해 8월 경북 영덕 앞바다, 2014년 6월 충남 보령 앞바다, 2014년 1월 강원도 고성 앞바다, 2013년 8월 전남 완도 앞바다에서도 백상아리가 잡혔다.
아열대 어종은 이제 어부들에겐 익숙하다. 강씨는 “매일 같이 많이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잘 못 보던 것들이 한꺼번에 걸릴 때가 있다”고 했다. 2년 전만 해도 보지 못했던 것들이 그물에 몇백 마리가 걸렸다. 위탁판매를 해볼까 했지만 도매상부터 수협 직원까지 무슨 물고기인지 아는 사람이 없어서 바다에 다 던져버렸다.
박융갑씨(54)는 서귀포 쪽에서 25년 동안 고기를 잡았다. 옥돔, 광어 등 사시사철 다양한 어종을 잡는다. 그는 “봄철에는 독가시치 같은 것들이 넘쳐났는데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고, 벵에돔이랑 무늬오징어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 생선들은 양식기술이 발달해 시장에 늘 많이 풀리니 소비자들은 변화를 느끼기 쉽지 않지만, 제주 토착종의 어획량은 확실히 많이 감어들었다. 박씨는 “참돔, 돌돔, 벵에돔처럼 횟감으로 쓰이는 것들이 예전보다 훨씬 안 잡힌다”고 했다.
“바다 오염도 문제겠지만 아열대 산호같은 것들이 들어와서 해초를 다 죽여버린 게 아마 큰 원인일 건데. 나 어릴 때는 해초 때문에 수영을 못할 정도였어요. 독가시치 같은 어종은 해초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해초가 줄어드니까 따라서 줄어들었을 거예요.”
■ 고등어·멸치 늘고, 명태·꽁치 줄고
제주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인 제주시 동문시장을 찾았다. 평생 물고기를 만지고 팔아온 상인들도 해녀나 어부들과 비슷한 말들을 털어놓는다. 40년 넘게 전복, 해삼, 소라 등을 취급했다는 김영란씨(68)는 “오분자기는 거의 20년 전부터 없어졌다”라며 “그런 건 해초가 있어야 자라는데, 해초가 없으니 자랄 수가 있나”라고 말했다. “전복도 줄었지만 양식이 많아져서 사먹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거고, 소라는 정말 많이 줄었어요.”
이 시장에서 40년가량 장사를 했다는 고경희씨(63)도 “바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중방어, 대방어가 좀 덜 나온다”며 “대방어들이 강원도 쪽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질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양식이 없었다면 지금쯤 도미는 한 마리에 10만원이 넘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1968년 이후 50년 간 우리나라 해역의 표층 수온은 1.23도 올랐다. 같은 기간 전 세계 바다물 온도가 0.48도 상승했는데, 한반도 주변 바다는 그 2.6배가 높아진 것이다. 동해는 1.48도, 서해가 1.18도, 남해는 1.04도 따뜻해졌다.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 이준수 연구원은 “한국은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중위도에 위치하고 있어서 수온 변화가 크다”고 했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경계가 북상하면 난류의 영향을 받는 지역이 넓어진다.
바닷물이 덥혀지면서 30여년 전부터 한반도 근해에서 주요 어종의 서식지와 어획량이 변하기 시작했다. 통계청이 지난 6월 펴낸 ‘기후(수온)변화에 다른 주요 어종 어획량 변화’ 보고서를 보면 1990년 이후 연근해에서 고등어류, 멸치, 살오징어 같은 난류성 어종의 어획량이 증가했고 명태, 꽁치, 도루묵 등 한류성 어종은 감소했다.
특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명태 어획량은 한반도 전역에서 크게 줄었다. 명태는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이다. 국내 어선이 연근해 어업으로 잡은 명태 어획량은 1986년 4만6890t에서 지난해 1t으로 줄었다. 사실상 연근해 명태어업은 사라진 셈이다. 통계청 사회통계국 농어업동향과에서는 “동해안 해역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명태가 북태평양으로 이동했고, 어린치어(노가리) 남획이 있어서 명태 어획량이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류 어획량은 1970년 3만6256t에서 2017년 11만5260t으로, 멸치는 같은 기간 5만4047t에서 21만943t으로 늘었다.
50년 후 우리 밥상에는 낯선 생선들이 더 자주 올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열대성 물고기들이 ‘불가피한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제주수산연구소 미래양식연구센터의 김대중 박사는 “양식어종을 개발할 때에도 높은 수온에 견딜 수 있는 종류를 선정해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방어를 예로 들었다. 방어의 한 종류인 잿방어는 초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 많이 잡힌다. 그렇다면 한겨울이 제철인 방어보다는 잿방어를 고수온 대응 어종으로 골라 양식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앞으로의 바다 환경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많이 잡히던 자리돔이 울릉도에서도 잡힌다는데, 그런 것들을 양식 대상 연구종으로 삼을 수는 없잖아요. 앞으로는 양식에서도 기후변화를 더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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