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간 경리 업무로 잔뼈가 굵은 ㄱ씨는 아이를 낳은 뒤 산전후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을 썼다. 휴직 기간이 끝날 무렵 복직 일정을 논의하려고 사장에게 수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얼마 뒤 따로 연락온 회사 임원은 “애초에 휴직을 줄 땐 복직은 안된다는 게 전제였다. 복직하더라도 30일만 지나면 퇴사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ㄱ씨는 노동부에 진정을 넣은 끝에 복직했지만 경리업무 대신 기술영업부 소속으로 전보돼 마케팅업무를 맡게 됐다. 또 “사적인 대화를 금지하며 업무 상대방 외 다른 직원들과 이야기하면 녹취하겠다”는 황당한 지시까지 받았다. ㄱ씨는 “이런 일을 다 받아들이고 근무하기에는 너무 힘겹고 괴롭다”고 털어놓았다.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은 아이를 키우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는 법적 권리지만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저인 1.05명으로 떨어진 지금까지도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직장갑질119는 지난 10개월 동안 카카오톡 오픈채팅방과 밴드, e메일 등을 통해 육아휴직과 모성보호 관련 ‘갑질’ 제보를 300여건 접수받았다고 26일 밝혔다.
신원이 확인된 제보 56건 중 육아휴직 후 불이익을 받은 경우가 26건으로 가장 많았고, 퇴사를 강요한 경우도 16건이나 됐다.
한 회사에서 중간관리자급으로 일하던 ㄴ씨는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뒤 한 달 동안 업무 없이 방치됐고, 그 후에는 집에서 77㎞ 떨어진 곳에 발령나 관리자 업무가 아닌 입사 4~5년차가 하는 일을 했다”고 제보했다. 육아휴직을 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다른 직무로 발령내는 등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은 불법이다. 적발될 경우 사용주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임신한 상태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제보도 13건 들어왔다. 공공병원에서 약사로 근무했던 ㄷ씨는 임신 중 유산 위험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육아휴직을 요청했지만 상사는 “내가 일할 땐 의자도 없이 하루종일 서서 일했는데 지난 20년간 유산한 사람은 한 번도 본 적 없다”며 거부했다. ㄷ씨는 결국 퇴사했다.
간호사 ㄹ씨는 임신한 뒤 야간근무를 빼달라고 병원에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노동부에 확인했더니 불법이 아니라고 한다’며 근무 변경을 해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여성노동자가 원할 경우 육아휴직은 출산 전 임신기간에도 사용할 수 있으며, 회사 측은 임신부가 야간근무를 원한다고 먼저 요구하지 않으면 시킬 수 없다.
직장갑질119는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은 여성노동자가 e메일이나 내용증명으로 회사 측에 ‘통보’만 하면 사용할 수 있다”며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게 하거나 괴롭힌다면 녹취 등의 증거를 남겨놓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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