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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날 위해 울어준 그분, 내 인생을 바꿨다”

한영선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왼쪽)와 이은영 한국여론연구소 소장이 지난달 15일 서울 사당동의 한 카페에서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주최로 열린 ‘일탈 청소년의 실태와 욕구’ 심층면접조사에 참석해 어린 시절 소년부 재판을 받고 보호관찰 등의 처분을 받아본 적 있는 이들 3명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한영선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왼쪽)와 이은영 한국여론연구소 소장이 지난달 15일 서울 사당동의 한 카페에서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주최로 열린 ‘일탈 청소년의 실태와 욕구’ 심층면접조사에 참석해 어린 시절 소년부 재판을 받고 보호관찰 등의 처분을 받아본 적 있는 이들 3명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나를 위해 울어준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그것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올해 28살인 ㄱ씨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에서 나왔고, ‘돈이 필요해서’ 범죄에 빠져들었다. 21살이 될 때까지 폭행과 절도, 사기, 도박 등으로 소년부 재판을 14번 받았다. 그 과정에서 보호관찰 같은 처분을 7번 받았고 소년원에도 2번 갔다. 빈곤, 폭력, 가출, 범죄의 내리막길을 치달은 ‘비행 청소년의 삶’이었다.

ㄱ씨는 소년원에서 9개월 일찍 나와 보호관찰을 받던 중 드라마처럼 인생의 멘토를 만났다. “수도권에서 혼자 지내다가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지방에 내려갔는데 관할 보호관찰소에서 ‘지역 이동은 임시퇴원 위반’이라며 구속영장을 신청했어요. 내려가기 전 보호관찰소를 옮겨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안 들어주고 영장을 때리니 너무 억울했어요.” 이 과정에서 만난 법무계장 한 명이 ㄱ씨의 인생을 바꿨다. “그분이 주위에 절 살려달라고 부탁하며 우시는데 정말 충격이었어요. 절 위해 울어준 사람은 그 분이 처음이었거든요.”

ㄱ씨는 그 뒤로 자신이 “완전히 변했다”고 말했다. 대학에 진학해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과대표를 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ㄱ씨는 현재 소년원 출원생 등의 자립을 지원하는 교육훈련센터에서 일하며 강연도 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돕고 있다.

또래 여중생을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폭행한 뒤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초등학생을 유괴해 잔인하게 살인한 ‘인천 초등생 살인’ 등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청소년 범죄를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다. 과거에 비해 어른처럼 구는 영악한 아이들이 많아졌다며 형사처벌을 면하는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부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현행 만 14세에서 13세로 낮추기로 했다.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은 얼마나 흉포하고 영악했기에 범죄에 발을 디뎠을까. 형사처벌을 강화하면 과연 청소년 범죄가 줄어들까.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과 함께 어린 시절 소년부 재판을 받았던 이들 3명을 최근 만나 ‘그들의 눈으로 본 청소년 범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성장기 불우한 환경과 빈곤이 우리를 범죄에 빠지게 했다”고 털어놨다.

빈곤은 범죄의 유혹에 쉽사리 빠지도록 만드는 덫이 되곤 하지만, 특히 성인에 비해 자기통제력이 약하고 노동의 가치와 대가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미성년자들에겐 치명적이다. ㄱ씨(28)도 처음 비행의 동기는 단순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아빠와 같이 살았는데 맞는 것은 이골이 났어요. 아빠를 피해서 따로 독립해서 살고 있는 오빠들을 찾아갔는데 그들의 폭행이 더 심했죠. 통금시간을 어기거나 말을 안 들으면 쇠파이프로 때렸어요. 계속 맞다가는 죽겠구나 싶어서 15살 때 처음으로 가출했어요. 돈이 필요한데 어리고 할 줄 아는 것은 없으니 범죄에 빠졌고요.”

한영선 교수, 이은영 소장과 만난 세 사람은 “성장기의 불우한 환경과 빈곤이 우리를 범죄로 몰아갔지만,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으로 삶을 바꿀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_ 김영민 기자

산업체 군복무요원인 ㄴ씨(23)도 비슷하다. “4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열등감이 심한 아이로 자랐다”는 그는 우연히 또래 무리와의 몸싸움에서 이긴 후 소위 ‘싸움 짱’으로 거듭났다. 중학교 진학 후 폭력은 이어졌고, 그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신고하면서 소년원에 가게 됐다. 어릴 적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ㄷ씨(24)는 “형들에게 맞기 싫으니 나도 때릴 수밖에 없었다”며 “보호시설에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나중에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절도·폭행·공동갈취 등의 혐의로 소년교도소에 수감됐다. “당초 소년부 송치를 받았는데 다른 아이들이 소년원에 2년 있기 싫다면서 재판 도중 난동을 부렸어요. 화가 난 판사가 형사법원으로 보냈고 1년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저로선 억울했죠.”

소년부 판사가 보호처분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경제적 상황과 부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ㄱ씨는 “물건을 같이 훔쳤어도 멀쩡한 보호자가 있는 아이는 가벼운 처분을 받고 집에 가지만, 가난하고 당장 달려올 부모가 없으면 그냥 소년원에 간다”고 말했다.

처벌이 되풀이될수록 사회에 대한 반항심만 커졌다. 이들이 일상적이고 평범한 현재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주변의 작은 관심과 칭찬 덕이었다. ㄴ씨는 “소년원에서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자격증을 따니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했다. 더 이상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특히 소년원에서 만났던 한 선교사는 그가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다잡아주고 진로상담을 해줬다. ㄴ씨는 “그분을 존경하고 동경해서 헤어스타일까지 똑같이 하고 다닌 적도 있다”고 말했다. 모범성을 인정받은 ㄴ씨는 8개월 일찍 소년원을 나왔다. 현재 학점은행제를 통해 대학 공부를 하면서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 청소년 흉악범죄가 늘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 ㄴ씨는 “인터넷 때문에 이슈가 많이 돼서 그렇게 보일 뿐 그런 일들은 과거에도 많았다”고 일축했다. 반면 ㄷ씨는 “몇 년 전보다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다”며 “흉악범의 경우 처벌을 세게 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ㄱ씨는 “소년법에 청소년을 건전하게 육성한다는 목표가 있지만 실제로는 교화보다는 처벌 중심으로 가고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성인 범죄자를 만드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청소년들이 과거에 비해 몸집은 커졌지만 마음이 아픈 경우는 더 많아졌다고 강조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상해져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부모조차 소년원에 갔다온 자기 자식을 치부로 여기고 안 보려고 해요.” ㄱ씨는 “아이들이 반성하고 집에 돌아가도 주변 환경은 그대로인데 아이들이 어떻게 변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비행에 빠지는 거예요.”

ㄴ씨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소년보호협회를 통해 아프리카 봉사를 다녀온 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자신도 누구를 도와줄 수 있다는 데서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청소년을 쓰레기로 보면 썩고, 꽃으로 보면 새롭게 핀다고 말해요. 교화 프로그램에도 현재는 직업교육만 있는데 그보다는 세상을 넓게 보여주는 게 더 도움이 돼요. 놀이공원만 다녀와도 바뀌어요. 그 아이들은 자라면서 안 해본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늘렸으면 좋겠습니다.”


정부가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만 14세 미만에서 13세로 낮추는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2018년 상반기 청소년 범죄 통계다. 이에 따르면 형사미성년자 중 10~13세가 저지른 범죄는 전년 동기 대비 7.9% 늘었고, 13세 범죄만 놓고 보면 14.7% 증가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 해의 통계만 놓고 소년 범죄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섣부르다고 지적한다. 전체 소년범죄자 중 14세 미만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8년 2.8%에서 2010년 0.4%, 2012년 0.8%, 2014년 0.04%, 2016년 0.1% 등 계속 줄고 있다. 경찰통계에서도 촉법소년(만 10세 이상~14세 미만으로 범법행위를 한 형사미성년자) 수는 2012년 1만2799명을 기점으로 해마다 줄어 2016년엔 6788명에 머물렀다.

해외 사례를 봐도 형사처벌을 늘리거나 강화해서 소년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증거는 없다. 미국은 미성년자라도 특정 강력 범죄를 저질렀거나 재범의 위험이 크면 소년법원이 아닌 형사법원으로 보내 성인과 똑같이 처벌하는 ‘형사이송제도’를 1979년에 도입했다. 그러나 소년법원에서 교육·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범들과 비교했을때 형사처벌을 받은 청소년의 재범 범죄 수가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미국은 2004년부터 형사이송 연령을 다시 높였다.

[진단-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날 위해 울어준 그분, 내 인생을 바꿨다”

일본은 1997년 고베에서 14세 중학생이 초등생을 살해한 ‘사카키바라 사건’ 이후 2000년 소년의 형사처분 가능 연령을 16세에서 14세로 낮췄다. 또 2003년 남아 유괴 살인사건 등을 계기로 2007년 소년원 송치 대상 연령을 14세에서 12세로 낮추고, 2014년엔 소년에 대한 유기형의 상한을 15년에서 20년으로 늘렸다. 강경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소년법 개정논의의 정당성 검토’라는 논문을 통해 “일본은 2000년 이후 ‘엄벌화’ 개정에도 불구하고 양적·질적인 측면에서 소년범죄를 줄이는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울소년원장을 지낸 한영선 경기대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2007~2016년 소년 범죄자 비율은 전체 청소년 인구 대비 1.5%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고, 소년 범죄자 중 초범이 아닌 재범자의 비중도 2013년 이후 계속 줄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현 변호사는 “언론에 노출되는 사건들은 충격적이지만, 소년범죄가 다른 범죄보다 특별히 흉포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낮추는 것은 아동인권에 관한 국제인권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진단-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날 위해 울어준 그분, 내 인생을 바꿨다”

세간의 우려처럼 청소년 범죄가 늘거나 흉포해지고 있다는 통계적인 근거는 없으며,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려면 현행 소년법을 보완하고 집행의 실효성을 높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가령 소년범이 재범을 하는 경우 10건 중 7건 이상이 1년 이내 발생하기 때문에 초기 보호관찰이 중요하다. 정부는 보호관찰관 수를 늘려, 현재 보호관찰관 1명이 118명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41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소년원 과밀수용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소년부 보호처분은 엄밀히 말해 전과기록이 아니지만 평생 따라다니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과거 폭행으로 소년원에 다녀온 김모씨는 여러차례 직업군인 관련 시험에 응시해 필기시험과 신체검사를 통과했지만 번번히 신원조회에서 탈락했다. 그는 “소년부 송치를 사실상 전과로 보기 때문”이라며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신분제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최근 청소년 범죄를 강력 처벌하자는 여론이 늘어난 것에는 소년법이 소년범들에게 사회에 통합될 기회를 주는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피해자들이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년법과는 별개로 ‘피해자특별법’을 만들어 소년 범죄로 피해를 입은 청소년들을 적극 보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형사처분 안받는 ‘형사미성년자’ 연령 13세로 낮춘다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 연령이 낮아진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가 올해 안에 형사처분을 받지 않는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확정했다. 경미한 학교폭력은 학교에서 자체 해결하고 가해 학생의 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않는 방안을 공론화한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18년도 제8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학교 안팎 청소년 폭력 예방 보완 대책’을 심의·확정했다.

정부는 우선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하향 조정하는 형법·소년법 개정이 올해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와 협력하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예전보다 청소년의 정신적·신체적 성장 속도가 빠르고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의 연령이 낮아져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소년범 등 위기 청소년에 대한 선도·교육 기능도 강화한다. 청소년비행예방센터를 중심으로 전 기관에서 활용할 수 있는 범죄예방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청소년에 대한 재범 방지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보호관찰관 1명이 담당하는 소년 수를 올해 118명에서 41명까지 줄여 소년범에 대한 사후관리를 강화하고 민영소년원도 설립한다. 

실효성·전문성 논란이 일었던 학교 현장의 학교폭력 대응방법도 정비한다. 단순·경미한 폭력은 전담기구 확인을 거쳐 학교에서 해결하는 ‘학교 자체 종결제’를 도입하는 방안과 가해 학생에 대한 경미한 조치는 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않는 방안을 공론화할 계획이다.

위기 학생에 대한 진단·상담을 체계적으로 하고자 가칭 ‘학교상담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한편, 2020학년도 임용고사부터 전문상담교사 임용 시험에 상담실무·실기평가를 도입한다. 

폭력 피해자를 위해서는 공립형 대안학교 형태의 학교폭력 피해 학생 전담기관(해맑음 센터) 2곳을 신설하고, 피해 학생들이 전학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교육청의 전학 관련 지침을 개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