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꼭 동물원에서 진귀한 야생동물들을 구경해야 할까. 대전의 한 동물원 우리를 탈출한 퓨마가 4시간30분만에 사살된 사건은 한국 사회에 ‘동물원은 과연 필요한 곳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퓨마 뽀롱이는 지난 18일 오후 5시쯤 직원이 실수로 열어놓은 문을 통해 우리 밖으로 나갔고, 동물원 내 야산을 배회하다 밤 9시44분쯤 사살됐다. 동물원 밖으로 나가 사람을 공격하면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사살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아메리카대륙에 사는 퓨마는 시속 80㎞까지 달릴 수 있어 활동범위가 넓다. 좁은 동물원 우리 안에서만 살다가 밖으로 나간 지 4시간여만에 목숨을 잃은 뽀롱이에게 동정과 애도가 쏟아지는 이유다. 동물원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에는 수만명이 서명했다.
동물원의 역사는 오래됐다. 로마 시대에는 권력자들이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희귀한 동물을 수집했고, 18세기에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왕실이 왕권을 상징하는 동물원을 만들었다. 동물원이 지금처럼 교육과 오락 목적으로 대중에게 개방되기 시작한 것은 1828년 영국 런던에 최초의 현대적 동물원이 만들어지면서다. 근대화가 진행되며 동물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대중들이 즐길 만한 공공 오락시설이 필요해진 게 동물원의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에서 잡아온 진귀한 동물들이 인류 문명의 한복판인 유럽의 동물원에 전시됐다.
이후 자연을 그대로 살린 사파리 형태의 동물원이 새로 생겼고, 동물원이 점점 멸종위기종을 보존하고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게 됐지만 아직도 야생동물들이 오락거리로 전시되는 일은 19세기 때 모습 그대로다. 야생에서 살던 동물들은 퓨마 뽀롱이처럼 종종 탈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원숭이들의 대탈출
1935년 10월 미국 롱아일랜드의 정글캠프 동물원. 이 동물원에는 붉은털원숭이 570마리가 인공호수 안에 조성된 인공섬에 살고 있었다. 관리인은 섬으로 들어가려면 보호벽에 걸린 널판지를 내려 작은 다리를 놓아야 했다. 이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다리를 놓아 섬에 들어갔던 관리인은 일을 하던 중 실수로 널판지를 다시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급히 밖으로 나갔지만 이미 붉은털원숭이 172마리가 공원 밖으로 탈출한 뒤였다.
동물원 주변은 곧 탈출한 원숭이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철도에서 원숭이 50여마리가 돌아다니는 바람에 기차가 비상정차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많은 원숭이들이 주변 민가 마당에서 뛰어놀거나 과일을 훔쳐먹다가 발견됐다. 해가 질 때까지 동물원으로 돌아온 원숭이는 30마리뿐이었다. 동물원 운영자는 “원숭이를 잡아서 돌려보내주는 사람에게 동물원 프리패스 티켓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몇 마리가 동물원으로 돌아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상습 탈출범 오랑우탄
1971년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태어난 오랑우탄 켄 앨런. 켄은 1980년대 여러 차례 우리를 탈출하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다른 오랑우탄들을 데리고 우리를 탈출하기도 했다. 팬클럽이 생겼고 켄의 얼굴이 인쇄된 티셔츠도 불티나게 팔렸다. 사육사들이 오랑우탄들을 잡으려고 동물원을 뛰어다니는 동안 관람객들이 탈주를 응원하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사육사들은 도저히 켄이 어떻게 탈출했는지 알 수 없어서 관람객으로 위장하고 오랑우탄들이 벽을 오르길 기다리기도 했지만, 오랑우탄들은 속지 않고 감시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켄은 우리는 자주 탈출했지만 동물원을 떠난 적은 없다. 우리에 다시 데려다 놓을 때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동물원은 결국 켄이 탈출 자체를 즐긴다고 결론내렸다. 켄은 29년간 살다가 2000년 암으로 사망했고, 켄의 부고 기사는 지역신문에까지 실렸다.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2005년 미국 캔자스의 세지위크 컨트리 동물원에서 플라밍고 한 마리가 탈출했다. ‘492번 플라밍고’라고 불렸던 이 플라밍고는 1996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랐고, 2004년 다른 플라밍고 39마리와 함께 캔자스로 옮겨졌다. 동물원들은 새들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도록 날개 깃털 일부를 잘라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플라밍고는 다른 플라밍고들의 깃털이 잘리는 틈을 타 탈출에 성공했다. 이 플라밍고는 이후 위스콘신과 루이지애나 등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올해 6월, 캔자스에서 1000㎞ 떨어진 텍사스에서 야생동물동호회 회원들이 하늘을 관찰하고 있던 중 갈매기 무리에 섞인 플라밍고를 발견했다. 미국에서 야생 플라밍고가 사는 곳은 플로리다밖에 없다. 이상하다고 여긴 이 동호회 회원들은 플라밍고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고, 영상을 확대한 결과 숫자 492가 적힌 밴드가 감겨있는 것이 발견됐다. 13년 전 탈출한 492번 플라밍고가 미국을 반쯤 종단해 1000㎞나 떨어진 남쪽으로 날아온 것이다. 플라밍고는 야생에서 50살까지 살 수 있기 때문에, 492번 플라밍고는 앞으로도 30년 가까이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극으로 끝난 맹수 탈출 사건들
2007년 크리스마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에 살던 ‘타티아나’라는 이름의 4살 시베리아호랑이가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관람객 3명을 공격했다. 한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은 큰 부상을 입었다. 10대와 20대였던 이 관람객들은 술에 취한 상태로 동물원을 찾았고, 폐장시간 뒤까지 머무르며 우리 안에 물건을 던지고 큰 소리로 괴롭히다 화가 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타티아나는 출동한 경찰에게 즉시 사살됐다.
맹수의 탈출은 인명피해나 사살 같은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2013년 11월 과천 서울대공원에서는 3살 시베리아호랑이 ‘로스토프’가 우리를 탈출해 사육사의 목을 물었다. 이 호랑이는 본래 있던 호랑이사가 공사에 들어가는 바람에 절반 크기의 여우사에서 생활하며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사육사는 보름만에 끝내 사망했다. 로스토프는 내실에 격리된 뒤 다시는 공개되지 않았다.
탈출한 동물에게 변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맹수를 돌보던 사육사가 사망하는 일은 2015년 어린이대공원에서 또 벌어졌다. 동물원 맹수마을 우리에서 일하던 사육사가 사자 2마리에게 공격당해 숨진 것이다. 이 사자들은 내실에 격리돼 지내며 새끼를 낳았고, 2016년 새끼와 함께 미국 콜로라도의 야생동물 보호소로 떠났다.
■꼬마와 삼팔이의 서로 다른 ‘해피엔딩’
동물이 탈출했다가 돌아온 다음 뒤늦게나마 사육시설을 개선한 경우도 있다. 2010년 탈출해 많은 에피소드를 남긴 말레이곰 ‘꼬마’가 그 예다. 꼬마는 2010년 12월 앞발로 문고리를 열고 우리를 탈출해 청계산으로 도망쳤다. 꼬마는 등산객들이 먹다 버린 과일이나 도토리를 먹고 살았고, 청계산 정상 부근 노점에서 음식과 막걸리를 몰래 먹고 달아나기도 했다. 꼬마는 9일 만에 포획틀에 걸려 동물원으로 돌아왔다. 꼬마가 돌아온 뒤 서울대공원은 말레이곰 우리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 기존 우리보다 4배 정도 넓은 공간을 제공했고, 샤워시설과 웅덩이도 만들어줬다. 부부가 될 암컷 말레이곰도 들여왔다. 꼬마는 아직까지 서울대공원에서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불법 돌고래쇼에 동원되던 남방큰돌고래 삼팔이는 양식장을 탈출해 제주 바다로 돌아갔다. 삼팔이는 2010년 제주 애월 앞바다에서 불법포획된 뒤 공연업체로 넘겨저 돌고래쇼를 하다가, 2013년 대법원의 몰수 판결로 방류가 결정된 돌고래다. 삼팔이는 함께 야생으로 돌아가게 된 제돌이, 춘삼이와 야생 적응 훈련을 받던 중 뚫린 그물 틈으로 탈출해 먼저 바다로 돌아갔다. 삼팔이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지 3년 만인 2016년 엄마가 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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