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금을 제 돈인 양 쓰는 사립유치원의 행태에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근본적으로 비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돈을 받으면서도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립유치원들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 부총리는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사립유치원 비리 관련 교육부 국장회의에서 사립유치원들의 비리를 두고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무관용 원칙에 따라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16일 박춘란 차관 주재 전국 시·도교육청 감사관 회의와 18일 유 부총리 주재 부교육감 회의를 잇따라 열어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설세훈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은 “감사 원칙을 만들고 회계 책무성을 확보할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사립유치원의 공공성을 높일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해 이른 시일 안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의 서울시·경기도·인천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는 사립유치원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교육감을 향한 질타가 이어졌다. ‘비리유치원’ 명단을 공개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금은 사립유치원 원장들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크지만, 감사를 통해 문제를 확인하고도 방치한 교육감과 교육당국에 대한 분노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감들은 모두 사립유치원 정기감사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전국의 유치원생 75%가 사립유치원에 다닌다. 전국 9500여곳에 달하는 유치원의 1차 관리·감독 권한은 시·도교육청에 있다. 교육청들이 유치원 전체 감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지만 당장 공개할 수 있는 ‘전국 유치원 회계감사 자료’가 아예 없다. 현행법상 사립유치원은 교육당국의 감사를 받을 의무가 없고, 시·도별로 감사 방식도 제각각이다. 박 의원이 앞서 공개한 ‘명단’도 일부 유치원을 선별 감사한 자료였다. 비리가 적발돼 행정처분을 받더라도 이 사실을 공개할 의무 또한 없다. 정부 차원에서 통일된 감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립유치원들은 정부 보조금과 지원금, 학부모들이 내는 돈으로 운영된다. 특히 매년 2조원에 달하는 만 3~5세 누리과정 지원금을 받지만 이 돈을 어디에 쓰든 책임을 묻기 어렵다. 횡령죄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정부보조금을 부적절하게 썼을 때뿐이고, ‘지원금’은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국회 법제실에 사립유치원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바꾸는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유치원이 운영자금 출처와 사용처를 반드시 회계프로그램에 기입하게 하고, 부당하게 썼을 때에는 보조금을 환수하는 내용도 담았다. 또 비리를 저지른 유치원 원장들이 간판만 바꿔달고 다시 유치원을 차리지 못하도록 개원 제한기간을 두는 조항도 포함시켰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공립유치원을 이용하는 원아 비율을 40%로 늘리겠다고 공약했으나, 현실적으로 국공립유치원 수를 당장 대폭 늘리긴 어렵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공영형 사립유치원’이다. 사립유치원에 공립 수준으로 지원을 해주고, 법인이사 절반을 개방이사로 뽑게 해 회계 투명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최은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 지원을 받되 간섭을 받는 것은 싫어하는 사립유치원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면서 학부모 부담도 덜 수 있는 방안이지만, 지금은 사립유치원들이 참여할 유인이 별로 없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제도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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