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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배문규의 에코와치] 살인개미요? 붉은불개미, 오해와 진실

“삶의 가혹한 순간들로 비참하게 사로잡혀 있을지라도/ 나는 결코 움츠리거나 소리 내 울지 않았다./ 몽둥이로 내리쳐져 내 머리 피투성이 될지라도/ 나는 결코 굽히지 않았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즐겨 읊었다는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인빅투스(Invictus)’는 정복할 수 없는, 굴하지 않는 자라는 의미를 지녔다. 이 거창한 라틴어 이름을 공유하는 곤충이 있다. 최근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있는 ‘붉은불개미(Solenopsis invicta)’다. 이 개미의 종명인 인빅타는 옛날 로마 제국을 일컫는 ‘무적의 로마(Roma invicta)’에서 따온 표현이다.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하는 이들은 한국에서 독개미로 악명을 떨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위험성이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지난 17일 대구 북구 매천동에서 붉은불개미 예찰 활동을 벌인 환경부 직원들을 따라다니며 보고 들은 내용도 비슷했다.

고양이 사료에 홀린 붉은불개미

“얘가 그 유명한 ‘살인개미’인가요?” 국립생태원에서 납작한 유리 용기에 담아온 붉은불개미를 손등에 올리자 개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마릿수를 늘려봐도 개미들은 물지 않았다. “사는 곳이 공격당하거나 위협을 느껴야 하는데 별 관심이 없네요.” 반영규 국립생태원 생태보전연구실 전문위원이 지난 방역 과정에서 물린 흔적을 보여주며 말했다.


정부는 솔레놉신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 붉은불개미의 독침에 물리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에서 지난 80년 동안 연간 사망자가 1명꼴, 아시아에선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정작 정부에서 신경 쓰는 부분은 붉은불개미의 탁월한 적응력이다. 중앙아메리카에 살던 붉은불개미는 1930년대 미국 남동부로 진출해 60여년 만에 서부까지 퍼져나가더니, 2001년 호주로 진출하고 최근에는 중국·일본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일단 정착하면 구제가 거의 불가능해 초동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9월28일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지난 8일 경기 안산시 물류창고까지 8차례 확인됐다. 이날 방문한 대구 북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지난 9월17일 조경용으로 수입한 중국산 석재에서 개미떼가 발견됐다. 커다란 돌덩이에 흙과 나무뿌리가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 숨어서 배를 타고 한국까지 건너온 놈들이었다. 현장 직원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검역당국 관계자들은 살충제를 뿌린 뒤 석재를 밀봉하고, 이튿날 전문가 합동조사를 실시했다. 여왕개미 1마리와 공주개미 2마리, 수개미 30마리, 번데기 27개, 일개미 770마리 등 약 830마리가 발견됐다. 빠른 대처로 석재 주변에선 개미를 박멸했지만, 인근으로 퍼져나갔을 가능성이 있어 한 달째 예찰 활동을 하고 있다.

김동언 국립생태원 생태보전연구실 전임연구원이 굵은 주사통처럼 생긴 유인 트랩을 땅에 절반 정도 박아넣었다. 용기에는 부동액과 알코올을 1 대 1로 섞은 녹색 보존액이 반쯤 채워져 있고, 윗부분에는 고양이 사료가 매달려 있다. 동물성 기름 냄새에 홀린 개미가 트랩 윗부분에 여기저기 뚫린 지름 2㎜ 남짓한 구멍으로 들어오면 다시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힌다. 한여름에는 통의 절반 넘게 개미로 채워지기도 했다는데 날이 쌀쌀해지면서 이제는 1~2마리가 나올까 말까다. 설치된 트랩에서 추가로 발견한 붉은불개미는 없었고, 한국 토착종인 주름개미나 곰개미들이 많이 발견됐다고 한다. 첫 일주일 동안은 매일 트랩을 교체하다가 요즘은 2주에 한 번 정도 바꾼다.

지난 17일 환경부 직원들의 붉은불개미 예찰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대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경향신문 기자가 자신의 손등 위에 붉은불개미를 올려놓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지난 17일 환경부 직원들의 붉은불개미 예찰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대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경향신문 기자가 자신의 손등 위에 붉은불개미를 올려놓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교체할 트랩은 모두 400개. 붉은불개미가 처음 발견된 공사 현장에 150개를 심고, 나머지 250개는 2㎞ 반경에 있는 공원, 아파트단지 곳곳에 설치해 촘촘한 방역망을 구축한다. 반영규 위원은 기다란 호스가 달린 ‘흡충기’를 입에 물고 잔디밭을 훑었다. 땅에 다니는 개미를 빨아들여 어떤 개체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런 식으로 샅샅이 뒤지다보면 한 지역의 예찰 작업에만 꼬박 이틀이 걸린다. 김동언 연구원은 “발견된 현장 주변에선 사실상 박멸됐고, 11월부터는 날이 추워져 개미들도 활동을 접는다”면서 “다만 어딘가 숨을 가능성도 있어 2년 정도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꿀벌보다 약한데 살인개미?

붉은불개미는 어쩌다 ‘살인개미’가 됐을까. 발단은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지난해 8월 배포한 ‘북미대륙에서 한 해 평균 8만명이 쏘여 100여명이 사망’한다는 홍보 자료였다. 시민들의 공포가 커지자, “인체에 미치는 위험이 크지 않다”며 “일본 환경성 자료를 활용했는데 일본에서도 자료를 내린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는 궁색한 해명을 내놨다. 논란을 줄이기 위해 ‘붉은독개미’라고 불리던 이름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본래 속한 ‘열마디개미’가 아닌 ‘불개미’로 이름을 붙여 졸속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는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개미 박사’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미국에서 해마다 1400만명이 쏘이지만, 병원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과민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0.01%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곤충학자 저스틴 슈미트가 개발한 ‘독성지수’로도 1.2밖에 되지 않아 작은 말벌이나 꿀벌의 2.0보다도 낮다. 벌초하다 쏘이는 꿀벌보다도 약한 독인데 ‘살인’ 타이틀을 얻은 셈이다.

“공격 대상을 찾으면 입으로 문 다음에 꽁무니를 활처럼 휘었다가 쏘는데, 뾰루지처럼 부어올랐다 며칠 뒤 사라지더라고요.” 현장에 나갈 때마다 서너방씩 물린다는 김동언 연구원은 “모기보다는 따끔한 정도”라고 설명했다. 대신에 물리고 나면 ‘아디다스 모기’로 불리는 숲모기보다는 간지럽다고 했다.

해외에선 사람들이 붉은불개미 둥지를 실수로 밟으면서 인간과 개미의 접촉이 일어난다. 개미 수백마리가 다리를 타고 올라와 침을 놓는데, 작은 동물이 이 같은 공격을 받으면 죽을 수도 있다. 잡식성인 붉은불개미는 양배추, 수박, 딸기, 해바라기씨 등 식물류를 좋아하지만, 개구리처럼 소형 동물을 공격해 먹기도 한다. 가축들도 눈이나 생식기를 물려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지난 17일 환경부 직원들의 붉은불개미 예찰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대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경향신문 기자가 자신의 손등 위에 붉은불개미를 올려놓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지난 17일 환경부 직원들의 붉은불개미 예찰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대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경향신문 기자가 자신의 손등 위에 붉은불개미를 올려놓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붉은불개미가 전 세계적으로 위험한 침입자로 꼽히는 이유는 지역 개미들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해 영토를 넓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홍수가 나면 일개미들이 뭉쳐 뗏목을 만들고, 여왕개미를 태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코코넛껍질, 목재, 가구, 폐지 심지어 가전제품에도 들어가서 산다. 안산의 스팀청소기 물류창고에서 발견된 붉은불개미의 경우 개미가 목재 외에 다른 곳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우려를 낳았다.

개미사회와 인간사회

연구자들은 역할이 철저히 나뉜 개미의 계급 사회가 인간사회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정점에 여왕개미가 있고, 짝짓기를 준비하는 공주개미와 수개미 같은 소수의 특권층, 그 아래에 다수의 일개미와 병정개미들이 있다. 공주개미가 맑은 날에 100~200m 상공으로 결혼비행을 하면, 수개미들이 따라 올라가 짝짓기를 한다. 수정에 성공하면 새 여왕은 적당한 곳에 안착, 날개를 떼고 산란을 해 새로운 무리를 거느리게 된다. “생긴 것도 다 달라요. 수개미는 검은색에 머리가 작고, 병정개미들은 머리가 커요. 작은 일개미들은 주로 먹이를 찾으러 다니죠. 여왕개미는 1㎝가 약간 안되는데 배가 엄청 커요. 공주개미는 크기는 여왕이랑 비슷한데 짝짓기를 안 해서 홀쭉하고 날개가 달렸죠.” 김동언 연구원은 “아직 국내에선 결혼비행에 성공한 경우가 없어 군락이 생태계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최재천 교수는 이러한 개미사회를 ‘제국’으로 설명한다. 여러 여왕개미가 동맹을 맺어 연합 왕국을 이루기도 하고, 다른 종족을 침략해 노예 사냥을 벌이며, 친어미인 여왕개미를 축출하기도 하는 개미사회를 설명하는 데 여러 나라·민족·체제를 결합해 통치하는 제국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다는 것이다. 붉은불개미가 미국에서 매년 200㎞씩 영토를 넓힐 수 있는 이유도 다수 여왕제로 거대 군락을 구축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붉은불개미 제국이 한국에 진출하면 어떻게 될까. 전선까지 갉아 먹는다는 붉은불개미의 악명대로라면 각종 피해가 우려되지만, 생태계의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곤충학자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은 “도마뱀·두꺼비·새부터 개미귀신·개미집귀뚜라미와 같은 곤충 포식자들이 있고, 개미살이맵시벌처럼 기생자도 있다. 초기에는 머뭇거리다 붉은불개미를 점차 먹이로 인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무역이 활발해지고, 기후변화로 한반도의 환경이 바뀌면서 외래종의 유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이들을 제어하려면 토착종들이 온전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게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재로선 막는 것이 최선이다. 환경부에선 붉은불개미 의심이 될 때는 즉시 신고(044-201-7242)해달라고 당부했다. 확산이 걱정되면 스프레이형 가정용 살충제를 뿌리면 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몸 전체가 불그스름한데 꽁무니가 검은색이고, 크기가 다양한 개미들이 모여 있으면 일단 붉은불개미로 의심할 수 있다”면서 “육안으로는 다른 개미와 구별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개미의 무리로 보이지 않을 경우 신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당부했다.

최재천 교수는 “한국에서 무역이 활발한 10개 항구에서 전문가들이 참여해 선제적 방역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처럼 신고를 받고 조치에 나서는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이번 붉은불개미의 ‘살인개미’ 소동을 계기로 개미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간사회를 성찰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인간은 아무리 거대한 제국을 구축해도 권력은 끝까지 단 한 사람이 움켜쥐려 하지만 개미 제국은 연합국들의 왕권을 확실히 보장해주는 듯하다. 이 동맹이 인간들이 만든 그 어떤 제국보다 강력하고 영속적인 제국을 만든 것이다. 권력은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누수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개미는 이미 터득했고 우리는 아직 못한 것 같다. 우리보다 역사가 훨씬 긴 개미들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으리라. 이번에는 그런대로 발 빠르게 대처해 한반도 침입을 어느 정도 저지한 듯 보이지만 그들의 침략은 앞으로 점점 더 빈번해질 것이다. 거대 군락이나 다수 여왕제로 제국을 구축한 개미들에 관한 연구는 우리가 개미들을 상대로 어떤 방어 체계를 갖춰야 하는지 혜안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