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의 “인체에 전혀 해가 없다”는 광고문구에 대해 지난해 ‘위법성 판단 보류’ 결정을 내렸던 공정거래위원회가 애초엔 형사고발과 함께 331억원 한도의 과징금을 부과하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공정위가 판단 보류 결정을 내린 지난해 10월은 이미 기만적 표시·광고죄의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이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 ‘너나우리’의 이은영 대표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송기호 변호사는 15일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위 사무처가 지난해 7월 작성했던 SK케미칼·애경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폭로했다. 이들은 공정위가 공소시효를 며칠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심의를 종료해버려 더이상의 심의를 받지 못하게된 점이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보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황이다. 이날 공개된 심사보고서는 헌법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것이다.
이 대표와 송 변호사가 공개한 공정위 사무처의 심사보고서 ‘애경산업(주) 및 에스케이케미칼(주)의 부당한 표시광고행위에 대한 건’을 보면, 당시 공정위 사무처는 가습기메이트에 대해 “반드시 표기되어야 할 인체의 안전과 관련된 정보를 은폐 누락하면서 유익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기만적인 표시광고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 사무처는 그러면서 두 기업에 대한 형사고발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심사보고서에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인명사상의 피해가 발생하는 등 사회적 파급효과 및 생명·건강 등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하고 소비자 피해가 크다고 판단되므로 고발조치함이 타당하다고 판단됨”이라고 명시돼 있다.
공정위 사무처는 또 SK케미칼과 애경에 대해 각각 250억원, 81억원 한도의 과징금을 부과해야 하며, ‘기만적인 표시광고를 해 시정명령을 받았다’는 일간지 공표를 하게 해야한다는 의견도 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공정위 사무처가 내린 이러한 결론은 다음달 전원위원회 심의에서 완전히 뒤집혔다. 공정위는 사무처에서 심사보고서를 제출하면 전원위원회 위원들이 이를 토대로 심의·의결하는 구조다.
지난해 공정위 전원위원회는 위법성 여부 판단을 보류하면서 2012년의 질병관리본부 동물시험 결과를 이유로 댔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의 2012년 발표는 산모 7~8명의 의문사 이후 추가피해를 막기 위해 서둘러 실시된 연구의 결과만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당시 연구진은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의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폐손상간 인과관계부터 공식화했다.
하지만 당시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는 그렇다고 가습기메이트에 쓰인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 성분이 안전하다는 결론은 아니었다. 환경부는 이미 외국에서는 흡입독성이 확인된 CMIT·MIT에 대한 동물시험연구를 지난해 발주한 상태다.
게다가 가습기메이트 단독 사용자들 가운데 9명은 2015·2016년과 올해 정부로부터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상의 ‘피해자’로 공식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공정위 전원위원회는 2012년의 질병관리본부 시험발표의 성격, 가습기메이트 단독 사용자가 정부의 공식 피해자로 인정된 점은 외면한 채 ‘판단 보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당시 공정위 전원위원회는 “이 사건 제품의 인체 위해성 여부가 최종 확인된 이후 이 사건 피심인들 행위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판단 보류결정을 내렸던 지난해 8월24일은 이미 기만적 표시·광고죄의 공소시효(8월31일)가 코앞인 상황이었다. 특히 공정위 전원위회는 독성물질 함유 기재 여부에 대해서만 심의를 했을 뿐 가습기메이트 포장재에 표기된 ‘인체 무해’ 광고문구에 대해서는 아예 판단도 하지 않았다.
송기호 변호사는 “공정위는 앞서 2011년에도 가습기메이트 광고에 대한 신고를 받고 ‘제품 용기에’ 표시광고가 없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면서 “조사 개시 이후 5년이라는 공소시효가 2011년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2016년 7~8월의 기회를 놓쳐버린 이상) 이제 공소시효 만료 때문에 에 두 기업에 기만표시광고죄를 적용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의 전원위원회 의결이 사실상 ‘면죄부’를 준 셈이 되었다는 비판이다.
송 변호사는 “당시 심사보고서를 왜 뒤집었지에 대해 공정위는 답해야 하며, 인체무해 성분광고를 한 ‘가습기메이트’에 대한 공정위의 면죄부 문제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공정위에 가습기메이트 광고문제에 대해 신고를 했던 이은영씨는 ‘공정위가 왜 판단을 뒤집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SK케미칼을 보호해주기 위해서 이런 심사보고서를 작성하고도 그것을 은폐할 수밖에 없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일반인이 이렇게까지 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공정위가 혁신을 얘기했는데 이해하기 힘든 결과가 나온 배경에 대해 어느정도 사실관계는 알려줘야 하고, 공정위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영씨는 2008년 감기에 걸린 아들을 위해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9년이 지난 지금 아들의 코 안쪽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이른바 코 섬유화(병명 ‘섬유성 골 이형성증’)를 앓고 있다. 증상이 뇌나 눈으로 진행되면 뇌신경 혹은 시신경 손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씨 또한 급성천식과 자가면역질환으로 투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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