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한국늑대거미의 학명은 Arctosa coreana Paik다. 한국에서 발견됐다고 하여 코레아나(coreana )가 붙었다. | 국립생물자원관, 명명자 서보근
‘호모 사피엔스’는 인간을 일컫는 학명이다. Homo는 속명, sapiens는 종본명이라고 부른다. 18세기 분류학의 선구자인 린네가 정리한 이명법에 의한 표기다. 속명은 무엇이고, 종본명은 무엇일까. 개·늑대, 고양이·호랑이처럼 닮은 동물들은 학명도 비슷할까. 생물의 학명 세계를 국립생물자원관 남은정 연구사의 도움을 받아 들여다 본다.
개와 늑대 사이 ‘familiaris’가 있다
백과사전 등에서 우리가 익숙히 아는 동·식물의 이름 뒤에 이탤릭체의 복잡한 표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를 ‘학명’이라 한다. 18세기 스웨덴의 린네(1707~1778)라는 의사는 생물학을 연구하면서 모든 생물을 간단하게 표기하는 이명법을 만들었다. 그의 이명법은 학명을 만드는 기본원리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이후 오랜시간에 걸쳐 몇가지 국제 기준이 추가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이 31일 아시아에서 세번째로 번역했다고 밝힌 ‘국제동물명명규약’은 린네의 이명법을 기초로 동물에 학명을 붙이는 국제규약을 말한다. 1961년 국제동물명명심의회에서 처음 발표됐으며 2000년 영어·프랑스어로 작성된 제4판까지 출판돼 있다. 국제동물명명규약 외에 국제식물명명규약도 있다. 학명은 사어가 돼, 더이상 변하지 않는 라틴어를 활용한다.
학명은 어떤 원리로 붙이는 걸까. 생물의 기초단위는 종(species)이다. 그리고 여러 유사한 종들을 묶어서 속(genus)이라고 한다. 이것만 알면 학명의 기본원리는 알 수 있다. 학명은 속명+종명(종본명)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개의 학명은 Canis lupus familiaris이다. Canis가 속명, lupus가 종명이다. 라틴어로 lupus는 늑대, canis는 개를 뜻한다. 그렇다면 familiaris는 왜 붙었을까. 늑대와 개의 관계를 알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개는 원래 늑대의 일부개체를 인간이 길들이면서 새로운 갈래로 진화한 동물이다. 이럴 때 종(species)의 하위개념으로 아종(subspecies)을 활용한다. 원래는 같은 종이었지만 다른 환경에서 진화해 왔음을 보여주는 이름을 덧붙여주는 것이다. Canis lupus familiaris에서 familiaris는 즉 ‘아종명’이다. familiaris는 ‘가족의’를 뜻하는 라틴어 형용사다.
남 연구사는 “개, 늑대 말고도 원래는 같은 종이었다가 일부개체가 다른지역에 격리되어 자손을 낳다가 다른 특징을 갖게 될 때 아종명을 붙인다”고 했다. 즉 아종명이란 “진화는 계속되니까 변화해가는 중간단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속명+종명(종본명)+아종명을 결합해 표기하는 것은 삼명법이라고 한다.
늑대와 개처럼 같은 속(genus)에 속하는 관계가 또 있다. 호랑이와 사자다. 호랑이와 사자는 각각 학명이 Panthera tigris, Panthera leo다. 라틴어 Panthera는 한국어로 표범으로 번역한다.
영장류 최초로 우주비행을 한 침팬지 ‘햄’. 사람과 침팬지는 모두 사람과(Hominidae)에 속한다. 말하자면 두 ‘Hominidae’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NASA
침팬지와 사람…“우리는 같은 ‘과’(family)”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에게도 유사한 종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학창시절 배운 네안데르탈인의 학명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다. 알다시피 네알데르탈인을 비롯한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빌리스 등은 멸종됐고 호모 사피엔스만 남아 현생인류가 됐다. 현생인류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다.
생물분류는 동물들의 관계를 엿보는 창이기도 하다. 기본단위인 종(species) 그리고 유사한 종을 묶은 속(genus), 다시 유사한 속을 묶은 과(family)…. 같은 방식으로 계속 나열하면 목(order) 강(class) 문(phylum) 계(kingdom)이 된다. 즉 사람은 sapince종, Homo속, 사람과(Hominidae), 영장목, 포유강, 척추동물문, 동물계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사람 모두 같은 사람과(Hominidae)다.
생김새가 비슷한 호랑이와 고양이는 어떨까. 이들 역시 같은 과(family)다. 집고양이의 학명은 Felis catus 혹은 Felis silvestris catus인데, 학명(속, 종)에 드러나지 않은 과(family)는 Felidae이다. Felidae는 ‘고양이과’라는 뜻이다. 호랑이에 따라 학명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은 대개 고양이과에 속한다. 재규어, 치타 역시 마찬가지다. 사자 역시 이 과에 속한다.
제주깨알달팽이 ‘제주언시스’. | 국립생물자원관
한국에서 새로 발견된 종은 어떻게 이름 붙일까
한국에서 새로 발견한 생물에 학명을 붙일 때 종종 한국 지명을 라틴어처럼 만들기도 한다. 한국늑대거미(Lycosa coreana Paik, 1990)의 종명인 코레아나(coreana)는 한국을 라틴어화한 것이다. 고려뭉툭뿔장수노벌레(Cletocamptus koreanus Chang, 2013) 역시 종명에 고려를 라틴어처럼 만든 코레아누스(koreanus)를 붙였다.
제주도가 제주언시스(chejuensis)가 되기도 한다. 제주깨알달팽이의 종명(Diplommatina chejuensis Kwon & Lee, 1991)엔 제주언시스가 붙어있다. 독도를 라틴어처럼 부르면 어떻게 될까. 독도긴털용선충의 종명 자리에는 ‘독도엔스’(Prochaetosoma dokdoense Rho et al., 2010)라고 표기돼 있다.
남 연구사는 “동물명명규약에 따르면 학명에 사용되는 철자는 라틴어를 사용해야 하며 그 생물의 모양을 따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발견된 지역명 혹은 그 종의 발견에 기여한 사람의 이름을 사용해 붙이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학명이 Mola mola(몰라 몰라)인 ‘개복치’. |게티이미지코리아
실제로 한국의 학자이름이 포함된 학명도 있다. 빗살무늬가시예소옆새우의 학명에는 ilhoii가 포함돼 있다. 연구자에게 이 생물의 표본을 기증한 김일회 강릉원주대 교수를 기념한 것이다. 훈수애벌레윤충에도 hoonsooi라는 명칭이 들어있다. 한국의 원로 분류학자인 김훈수 교수를 기념한 것이다.
학명의 기본표기는 속명과 종명의 결합이지만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의 성, 보고한 연도를 함께 표기하기도 한다. 다만 표기할 때는 성과 연도는 빼고 학명까지만 이탤릭체로 표기한다. 이를테면 기둥축해면(Axinella columna Sim, Kim & Beyon, 1990)은 한국의 심정자, 김영아, 변희영 박사가 발견해 1990년에 학계에 보고한 것이다.
우리말로 발음하면 재미있는 학명도 있다. 개복치의 학명은 Mola mola 즉 ‘몰라 몰라’인데 라틴어 Mola는 맷돌을 의미한다. 맷돌 모양의 물고기라는 뜻이다. 또 해변에서 많이 발견되는 말미잘 속에서 발견된 절지동물인 갈색말미잘속살이의 학명은 Critomolgus malmizalus다. 말미잘에서 발견됐다고 해서 한국 학자가 종명에 한국어 ‘말미잘’을 라틴어처럼 만든 ‘말미잘루스’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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