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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김장겸 이후의 MBC]“한 사람 물러났다고 마법처럼 새로워지겠나”

ㆍMBC 파업 마무리 집회
ㆍ사장 교체·공정성 회복 과제 ‘방송장악 백서’로 과오 반성…백종문 부사장도 사직서

MBC 노조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상암동 사옥 로비에서 전날 김장겸 전 사장의 해임 소식을 전하는 노조특보를 앞에 두고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있다. 대부분 조합원들은 일터로 돌아가지만, 부당 전보를 당한 이들의 본사 ‘출근투쟁’과 일부 지역 MBC의 파업은 계속된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MBC 노조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상암동 사옥 로비에서 전날 김장겸 전 사장의 해임 소식을 전하는 노조특보를 앞에 두고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있다. 대부분 조합원들은 일터로 돌아가지만, 부당 전보를 당한 이들의 본사 ‘출근투쟁’과 일부 지역 MBC의 파업은 계속된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시청자들이 우리의 승리에 박수 쳐주는 건 딱 오늘까지일 겁니다.”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로비에서 열린 파업 마무리 집회에서 박성제 해직기자는 “정상화를 서둘러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지난 9월4일 총파업 돌입 뒤 72일 만에 ‘파업 승리’를 선언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김장겸 전 사장의 퇴진은 방송 정상화의 시작일 뿐”이라며 앞으로 무너진 공정방송의 가치를 다시 쌓는 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전날 김 전 사장의 해임 절차가 완료됨에 따라 노조는 15일 오전 9시부터 총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한다. 다만 대전지부는 이진숙 대전MBC 사장이 퇴진할 때까지 파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보도·시사 부문 조합원들도 김장겸 체제 간부들이 물러날 때까지 제작 중단을 계속한다. 부당 전보 중인 기자·PD·아나운서들은 ‘유배지’인 경인지사,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등이 아닌 상암MBC로 복귀해 출근투쟁을 계속할 예정이다. 

이날 MBC 구성원들은 김 전 사장의 해임을 기뻐하면서도 “이제 정상화의 첫 단추를 끼운 것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앞으로 새 경영진을 선임하고, 보도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을 복원하는 게 더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라며 각오를 다지는 이들도 많았다.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치는 온라인 1인 시위로 파업의 불씨를 당긴 김민식 PD는 경향신문과 만나 “한 사람이 물러났다고 해서 마법처럼 MBC가 좋아지는 순간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PD는 “김 전 사장이라는 선명한 적과 싸우는 일보다 나의 잘못, 내 동료의 잘못을 돌아보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라며 “지난 몇년간 우리가 투쟁한 의미를 증명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4년째 비제작부서인 미래방송연구소로 쫓겨나 있는 양윤경 기자는 “편향적 신념을 가진 경영진과 보직자들의 자리를 대체하고,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남은 과제”라며 “사회가 요구하는 언론의 상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기자회장으로 제작 거부를 이끌다 해직당한 박성호 기자는 연단에 올라 “파업에 쏟아진 응원과 지지에 빚을 갚는 일만 남았다”며 “시청자를 소비자로만 대하고 파업 때만 찾았던 오랜 습관을 이제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MBC’를 건설하기 위해 구성원들은 스스로의 과오부터 되돌아보고 있다. 노조는 지난 9년간 공영방송 장악의 역사를 기록한 ‘MBC 방송장악 백서’를 작성 중이다. 1차 원고 작성이 끝나가는 단계다. 이 백서에는 세월호·국정농단 등 주요 이슈에 대한 편파보도, 현 경영진의 뉴스 사유화, 시사 프로그램 퇴출, 정윤회 아들 특혜출연 사건, 부당 징계와 전보 등 보도부터 경영까지 모든 부문에 걸쳐 그동안 일어난 문제들이 기록된다. 공영방송으로서 MBC가 지향할 가치, 공정 보도와 제작 자율성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 등이 담긴 ‘MBC 재건 리포트’도 만든다. 노조는 제작 환경이 나빠지면서 크게 늘어난 비정규직 실태를 먼저 나서서 조사하고 장기적 해법을 찾겠다고도 약속했다. 

김 전 사장 해임에 이어 이날 백종문 부사장도 사직서를 제출해 경영진 재편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김연국 노조위원장은 “정치권이 손을 떼고, 사장 선임 과정을 완전히 공개해야 한다”며 “방문진 이사들은 시청자의 뜻만을 받들어 독립적으로 사장을 뽑아달라”고 말했다. 

공영방송 이사 국민이 뽑는 ‘이용마법’ 만들어질까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ㆍ정의당 추혜선 의원, 이 기자 제안 활용한 방송법 개정안 발의

공영방송이 정치적 독립을 지킬 수 있도록 이사를 시민들이 직접 뽑게 하는 방송관계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김장겸 전 MBC 사장 해임을 계기로 공영방송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할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공영방송 이사 선임 방식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시민 200명으로 구성된 ‘이사추천국민위원회’에서 공영방송 이사를 선정하자는 내용의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과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다고 14일 밝혔다. 개정안은 지역과 성별, 연령 등을 두루 고려해 위촉한 시민 200명으로 국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위원회에서 KBS와 EBS, MBC 최대주주인 방문진 이사를 추천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국민위원회는 공영방송 이사 후보자들의 공개 면접을 하고 표결에 부쳐 득표 순으로 13명을 추천한다. 추천 이사 가운데는 청년, 여성, 경영, 방송기술 분야 인사가 1명씩 포함돼 있어야 한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KBS와 방문진 이사에는 지역방송 분야 인사 1명, EBS 이사에는 교육 분야 인사 1명을 포함시키자고 했다. 사장을 선임할 때는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3당이 공동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여야가 7대 6 비율로 이사를 추천해 공영방송 이사회를 구성하는 내용이다. 여권 추천 이사들이 3분의 2를 차지하는 이사회를 통해 정권이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는 구조를 깨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사 선임 절차가 정치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여야 양쪽의 눈치를 모두 보는 기회주의자가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추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이 기자가 제안한 ‘국민대리인단’ 제도가 모티브가 됐다. 

새 방송법 개정안이 나오면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국회와 시민사회의 논의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올 초까지 방송법 개정에 반대했던 자유한국당도 개정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 한국당 강효상 의원은 최근 KBS 이사를 지방정부가 추천하는 4명, 대한변호사협회, 한국신문협회, 대학총장협의회, 한국교원총연합회 등 ‘명망있는 사회단체’가 추천하는 9명으로 구성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정치권력이 공영방송에서 손을 떼는 방향으로 진전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라스’ ‘나 혼자’ 녹화분 이번주 방영…‘무도’·라디오는 내주부터 방송 재개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ㆍ시사·교양 제작 거부는 지속

[김장겸 이후의 MBC]‘라스’ ‘나 혼자’ 녹화분 이번주 방영…‘무도’·라디오는 내주부터 방송 재개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등 MBC 파업으로 방송 차질을 빚었던 간판 프로그램들이 정상화의 길을 걷게 됐다. 언론노동조합 MBC본부(MBC노조)가 15일 오전 9시를 기점으로 총파업을 잠정 종료키로 하면서 <라디오스타> <나 혼자 산다> 등이 이번주 중 정상 방송되며, <무한도전>은 16일 녹화를 재개해 다음주에는 정상방송을 한다는 계획이다. 음악만 송출했던 라디오 방송도 오는 20일부터 정상 방송될 예정이다. 다만 뉴스 등 보도 부문이나 시사교양 부문은 제작거부를 이어간다. 

<무한도전> 제작진은 14일 “오는 16일 멤버들과 간단히 첫 녹화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며 “물리적인 이유로 방송 재개는 25일부터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5일 방송에서는 파업 기간 시청자와 만나지 못한 무한도전 멤버들이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전할 것으로 보인다.

<라디오스타>는 파업 철회 당일부터 정상 방송한다. 제작진은 “공식 업무 복귀 시기가 15일로 결정돼 바로 방송을 재개한다”며 “파업 전에 준비돼 있던 녹화분으로 방송한다”고 밝혔다. <나 혼자 산다> 역시 파업 전 녹화 분량이 확보돼 있어 오는 17일부터 정상 방송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외에도 <섹션TV 연예통신>은 18일 녹화를 진행하고 다음날인 19일 정상 방송한다. 

드라마의 경우 외주제작 비중이 높아 파업 중에도 대부분 정상 방송됐다. 다만 <20세기 소년소녀> 등이 파업 영향으로 첫 방송 시기를 맞추지 못하는 등 잡음이 났던 만큼 드라마국 전체 분위기를 재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제작 거부를 지속한다. 김장겸 사장이 물러났을 뿐, MBC의 전체적인 상황이 변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MBC 노조는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MBC) 뉴스는 심각하다. 기자, PD 등 개별제작자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 현 보도국 간부들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보도국에서 쟁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만 송출했던 라디오 방송은 다음주 월요일부터 정상 방송된다. 다만 표준 FM에서 방송하는 <신동호의 시선집중>은 진행자 교체에 따라 재정비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노조 측은 “기존 진행자인 신동호 아나운서는 하차하고 적절한 새 진행자를 찾기 전까지 임시 진행자가 음악 구성 프로그램을 당분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과 배현진 아나운서 등은 파업 기간 노조원들로부터 부당노동행위를 이끈 장본인으로 지목받았다. MBC 노조 소속 아나운서 28인은 지난달 16일 신동호 국장을 부당노동행위, 형법상 업무방해죄 등으로 고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