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지난 13일 열린 방송문화진흥회 임시이사회에서 김장겸 MBC 사장의 해임안이 결의 되자 방문진 앞에서 기다리던 MBC 노조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MBC 김장겸 사장이 마침내 해임됐습니다.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13일 2017년 제8차 임시이사회를 열고 김 사장에 대한 해임 결의의 건을 안건으로 올려 과반수인 찬성 5표로, 기권 1표로 의결했습니다. 이어 바로 열린 주주총회에서도 김 사장의 해임안은 통과돼 해임이 확정됐습니다. 방문진은 MBC 지분의 7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김 사장은 이날 이사회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방문진 야권 측 이사인 고영주·권혁철·이인철 이사는 불참했고, 김광동 이사는 기권했습니다. 김 사장 해임에 따라 71일째 파업 중인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이르면 15일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합니다.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MBC의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8차 임시이사회에서 이완기 이사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MBC는 지난 9월4일 총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의 눈길은 MBC 구성원들이 한 목소리로 퇴진을 요구해온 김장겸 MBC 사장에게 쏠렸습니다. 지난 정권의 방송장악에 철저히 협력하며 기자·PD·아나운서들을 부당 전보해 ‘유배지’로 보내온 김 사장은 고용노동부의 부당노동행위 조사에 불응했다가 체포영장까지 발부받기도 했습니다.
김 사장은 정치부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거쳐 지난 2월 사장에 취임했습니다.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사장 후보자 3명의 면접을 할 때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등 이사진과 사장 후보자들이 언론노조 소속 기자와 아나운서, PD들을 업무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MBC 노조는 지난 8월16일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등이 2012년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들, 앵커들을 업무에서 제외시킬 방법이 없냐고 묻는 내용이 담긴 이사회 속기록을 공개했습니다.
▶"앵커로 안 내세우고, 중요한 리포트 안 시킬 수 있느냐" MBC 사장 면접서 '블랙리스트 논의'
김 사장은 당시 이사들에게 “(사람을 쓸 때) 히스토리를 주로 본다. 이 양반이 회사를 여태까지 쭉 다니면서 어떻게 했는지”라고 말했습니다. 파업 참가자가 대거 부당전보된 MBC 상황을 고려할 때, 과거 파업에 참가한 전력이나 노조와의 관계 등을 살핀다는 뜻의 발언으로 해석됩니다.
사장이 된 이후에 김 사장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박근혜 정권 말기였지만, 이미 부당 전보로 제작부서 밖에 쫓겨나 있던 노조원들을 ‘유배지’로 보내는 인사를 했습니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MBC를 상대로 특별근로감독에 나섰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언론장악' 조사…'공영방송 정상화' 신호탄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은 2012년 파업 이후 노조원에 대한 잇단 징계·해고 등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해 바로잡겠다는 취지였습니다. 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은 6월29일부터 7월 10일까지 노조의 신청을 받아들여 MBC 특별근로감독을 했습니다.
파업 이전에는 제작 거부가 있었습니다. 7월 하순부터 김 사장 퇴진과 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며 MBC PD, 기자, 아나운서들이 잇달아 제작거부를 시작했습니다. 8월 들어 MBC 뉴스 프로그램들이 결방되거나 단축되는 파행이 빚어졌습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은 “공적 책임을 지키지 않았다면 공영방송 사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밝혔고,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 건에서 (사측의) 불법행위가 발견되면 고소·고발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작거부가 회사 안팎으로 확산되면서 MBC 사태는 중대 국면을 맞았습니다.
▶이효성 "MBC 사장·방문진 이사에 책임 물을 수도"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는 지난 8월23일 고영주 당시 방문진 이사장과 김장겸 사장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방송언론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발했습니다. 기자, 카메라기자, PD, 아나운서 등 노조원 108명이 고발장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김 사장은 퇴진을 거부했습니다. 그날 확대간부회의에서 김 사장은 “경영이 어려운데도 노조가 억지스러운 주장과 의혹을 앞세워 전면 파업을 하겠다고 한다”며 “퇴진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는 “본 적도 없는 문건으로 경영진을 흔들고 있다”고 부인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효성 방통위원장의 공영방송 정상화 발언을 거론하면서 “정치권력과 결탁해 합법적으로 선임된 경영진을 억지로 몰아내려 한다”며 노조를 비난했습니다.
▶김장겸 MBC 사장 "공영방송 문제, 대통령이 판단할 일 아냐" 퇴진 거부
▶[사설]MBC 김장겸 사장이 공정방송 지키겠다는 코미디
하지만 8월 26일 노조가 총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가면서 MBC 간부들의 이탈이 가속화됐습니다. 센터장·부장급 간부들이 줄줄이 보직을 사퇴하고 노조에 가입한 데 이어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체제’ 핵심 인사로 평가받아온 법무실장까지 사표를 냈습니다.
MBC 김장겸 사장이 지난 19월1일 오후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방송 진흥 유공 포상 수여식에 참석해 있다.연합뉴스
노동부는 김 사장이 부당노동행위 조사에 수차례 불응하자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습니다. 9월1일의 일입니다.
▶'부당노동행위' 조사 불응 김장겸 MBC 사장 체포영장 발부
김 사장은 서울서부고용노동지청의 4~5차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체포영장 발부 당시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54회 방송의 날 축하연에 참석중이었던 김 사장은 소식을 듣자마자 행사장을 빠져나갔습니다.
▶한국당 "김장겸 MBC 사장 체포영장 발부는 한국판 문화대혁명"
자유한국당은 법원이 김 사장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에 대해 “과거 군사 독재정권에서도 보지 못한 탄압이고, 비상계엄 때에도 없었던 유례없는 폭거”라며 “김대중 정부 때 언론사주 구속에 이은 한국판 문화대혁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사장은 그 후 사흘동안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나간 뒤 서울 상암동 사옥과 여의도 자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지난 9월4일 새벽에 출근해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남아 있는 직원들을 ‘격려’했습니다.
▶'체포영장 발부 후 잠수' 김장겸 사장, 새벽 출근해 '인증샷'
사측에 따르면 김 사장은 이날 오전 6시 회사로 출근해 임원들과 함께 TV주조정실, 라디오 주조정실, 보도국 뉴스센터 등 핵심 방송시설 운용을 점검한 뒤 오전 8시30분 임원회의를 열었습니다. 김 사장은 “비상 근무자들의 노고가 방송의 독립과 자유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고 MBC 홍보국은 전했습니다. 김사장의 ‘인증샷’도 공개했습니다.
2017년 11월2일자 경향신문 그림마당
노조원들은 이날 오전 7시30분 김 사장의 출근시간에 맞춰 로비에서 피케팅 시위를 하려 했으나, 김 사장이 새벽에 기습 출근한 사실을 알고 임원실 앞으로 옮겨가 시위를 했습니다.
이날 오전 노동부 서울서부지청 근로감독관 5명은 상암동 MBC 사옥을 방문해 김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했습니다. 그러자 김 사장 측은 “5일 오전 10시 자진출석하겠다”며 입장을 바꿨습니다.
▶체포영장 집행 시도하자.. 김장겸 MBC 사장 "내일 자진출석"
김 사장은 5일 오전 서부지청에 출석해, 12시간가량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사를 마치고 오후 10시쯤 나오면서 그는 “아는 만큼 성실히 임했다”고 밝혔습니다. 서부지청은 지난 9월28일 김 사장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습니다. 김 사장 외에 김재철·안광한 전 사장, 백종문 부사장과 최기화 기획본부장, 박용국 미술부장 등도 같이 묶였습니다.
▶노동청 출석한 MBC 사장들, 부당노동행위 '오리발'
김 사장 해임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먼저 ‘철퇴’를 맞았습니다. 고 이사장은 지난 2일 열린 정기이사회에서 불신임됐습니다. 고 이사장의 이사임기는 유지됐습니다.
▶'고영주 OUT'...방문진 '극우시대'의 종말, MBC 정상화 신호탄
김장겸 MBC 사장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열린 임시이사회에 노조원들의 항의 속에 출석하고 있다. 김사장은 회의실 앞에서 노조원들이 항의가 계속되자 “이런 분위기에선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며 발길을 돌려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우철훈 선임기자
고 이사장이 물러난 뒤에도 김 사장의 해임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8일에는 자신의 해임안이 상정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 소명을 위해 참석했다가 파업 중인 MBC 노조원들의 항의와 질문이 쏟아지자 “회의에 참석할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회의장 앞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10일 이사회에는 아예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사회는 김 사장의 참석이 없더라도 13일에는 의결에 들어가기로 결정했고, 마침내 결론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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