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근로감독관들은 매년 2만여곳의 사업장 점검을 할 때마다 ‘직장 내 성희롱’ 여부를 반드시 살펴본다. 성희롱·성폭력이 발생한 회사와 사업주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아진다. 최근 인테리어 전문업체 한샘 등에서 성폭력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정부가 강력한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14일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는 “최근 성희롱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분위기가 실제 직장 내 성희롱 근절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긴급하게 대책을 마련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직장 내 성희롱이 갈수록 늘고 있어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신고 건수는 2012년 263건에서 지난 10월 기준 532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은 조직 안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고 신체적인 접촉을 하거나 성적인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통틀어 말한다. 수직적인 권력관계 때문에 피해를 입어도 호소하지 못하거나, 피해자가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는 등 2차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사업장 점검을 나갈 때마다 근로감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직장 내 성희롱 여부를 반드시 살피기로 했다. 노동부는 매년 2만여개의 사업장에 대해 장시간 노동과 비정규직 실태점검, 업종별 감독 등 다양한 형태의 근로감독을 벌이는데, 이 때마다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여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업주가 어떤 조치를 했는지 등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또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상담과 신고절차를 노사단체, 여성단체 등과 협조해 집중 홍보하기로 했다. 피해 신고에 앞선 기초 상담은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대표전화 1350)나 전국 15곳의 고용평등상담실에서 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나 지방노동청, 국민신문고를 통해 성희롱을 신고하면 관할 지방노동청에서 조사한 뒤 시정지시와 사법처리를 한다.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더 강화된다. 지난 9일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된 벌칙이 일부 상향됐지만, ‘성희롱 피해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한 경우(3년 이하 징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조항은 여전히 과태료 처분에 그친다. 노동부는 벌칙 수위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보고, 과태료를 징역이나 벌금형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기업 내 성희롱 예방·대응 시스템도 마련한다. 정부는 기업들이 사내 전산망에 사이버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성희롱 고충처리담당자를 지정하도록 권고할 계획이다. 성희롱 피해자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신고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할 때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표준 가이드라인’을 적극 활용하도록 지도할 방침이다. 가이드라인에는 일반적인 성희롱 관련 지식 외에도,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엄격한 방침과 처리절차를 세우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여성가족부는 성희롱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작업에 나선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잦은 이유가 성 문제에 관대한 조직 문화에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 공공부문에서는 성폭력·성희롱 피해 예방지침을 개선하고, 민간부문에서는 소규모 사업장 등 교육 접근성이 낮은 기업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폭력예방교육’을 확대한다. 기존에는 공무원들만 받던 성평등 교육도 기업 임원과 시도 의원,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등 파급효과가 큰 사람까지 대상을 넓혔다. 또 성 관련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사담당자들이 피해자 관점에서 성폭력·성희롱 사건을 처리하도록 교육 지원도 확대한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은 이날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성차별 없는 일터의 조성을 위해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이지만, 사회의 뿌리 깊은 남녀차별 인식과 관행을 바꿔 나가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라며 “노사단체, 여성단체 등과 함께 여성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9일 국회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업주 의무를 강화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 금지’에 해고·계약해지 같은 고용 상 불이익뿐만 아니라 업무배제와 인사조치 같은 ‘근로조건의 불이익’까지 포함하도록 했다. 사업주는 피해를 신고받자마자 사실확인 조사를 실시하고, 근무장소 변경이나 유급휴가를 통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아울러 2차 피해를 두려워해 신고를 꺼리는 피해자 대신, 노동조합이나 제 3자 등 ‘누구나’ 피해사실을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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