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직접고용지시 취소청구소송’의 첫 심리가 열린 22일 서울행정법원 지하 2층 대법정. 고용노동부와 파리바게뜨 운영사인 파리크라상 관계자들, 그리고 보조참가인으로 출석한 파리바게뜨노조 제빵기사 10여명이 방청석을 빼곡이 채웠다. 지난 9월 노동부가 프랜차이즈 업계에선 처음으로 파리바게뜨에 내린 불법파견 판정의 파장 속에 열린 첫 재판이었다.
정부의 ‘직접고용 시정지시’가 적법한가 하는 문제는 회사 측이 소송을 내면서 법원으로 공이 넘겨졌다. 이날 눈길을 끈 것은 양측의 법률대리인, 즉 ‘변호인들’이었다. 파리바게뜨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대리인으로 세웠다. 노동부는 김선수, 김도형, 김진 변호사를 선임했다.
대법관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던 김선수 변호사는 최고의 노동법 전문가로 꼽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에서 전교조 대리인을 맡는 등, 주로 노동자 편에서 정부와 사용자들을 상대로 법리를 다퉈 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부회장인 김도형 변호사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고발을 주도하는 등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 편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온 사람이다. 역시 민변 소속인 김진 변호사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유족측 추천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난 보수정권 동안 주로 정부와 싸워온 이들이 나란히 정부의 대리인이 됐다는 것은 상징적이었다. 이들이 국내 최대 로펌이자 ‘기업들의 방패’인 김앤장에 맞서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 것이다. 경영계 대 노동계·정부의 대리전으로 번진 파리바게뜨 사건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했다.
파리바게뜨는 지난달 31일 노동부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직접고용명령 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동시에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신청도 냈다. 이와 별도로 파리바게뜨에 제빵기사 인력을 공급해온 협력업체들은 체불임금 110억원을 지급하라는 노동부 지시에 맞서 ‘체불임금 지급지시 취소소송’을 냈다. 22일 법정에서는 본사의 가처분신청과 협력업체들의 취소소송에 대한 심리가 같이 열렸다.
가장 뜨거운 쟁점은 노동부의 ‘지시’가 취소를 요구할 수 있는 ‘행정처분’에 해당하냐는 것이었다. 노동부가 파리바게뜨에 통보한 것은 시정명령이 아닌, ‘권고’에 무게를 둔 시정 지시였다. 파리바게뜨는 “노동부가 (직접고용)이행에 대한 증빙자료 제출 등의 의무를 부과한 것을 보면 단순한 지도나 지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행정처분’에 가깝다”라는 주장을 폈다. 노동부가 이행 시기를 못박고, 따르지 않을 경우 과태료와 형사입건 등 법적 조치를 예고한 만큼 ‘명령’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파리바게뜨는 또 “당장 직접고용을 이행하지 않아도 근로자들의 피해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부는 직접고용 지시가 사측에 불법을 개선할 기회를 준 것일 뿐, 강제성을 지닌 ‘명령’이 아니기 때문에 행정소송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도형 변호사는 “노동부는 시정 지도를 통해 파리바게뜨가 불법을 자율적으로 시정할 기회를 준 것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공방이 발생한 것은 근로감독관 집무규정 때문이다. 임금체불이나 불법파견에 대해 수사의 칼날부터 들이대면 정작 노동자들이 권리를 구제받기 어렵기 때문에, 집무규정을 두고 먼저 사업주에게 시정할 기회를 준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그 때 가서 파견법 등을 적용해 과태료와 사법처리에 들어간다. 그동안 노동계는 이를 두고 ‘법을 어긴 사업주들에게 너무 무른 것 아니냐’고 비판해왔는데, 파리바게뜨는 이마저 과도하다고 소송을 낸 셈이다.
불법파견 자체를 놓고도 양측은 설전을 벌였다. 파리바게뜨 측은 “제빵기사들은 기본적으로 가맹점주를 위해 일했으니 본사가 사업주라 하는 것은 파견법 취지에 맞지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선수 변호사는 “실질적인 지휘명령은 파리바게뜨가 했다”면서 “근로감독 직전에 본사가 전산시스템에 제빵기사들의 출퇴근 시간을 지시한 공지사항을 지우는 등 증거를 인멸한 정황도 있다”고 말했다.
심리는 1시간30분 정도 걸렸다. 재판부는 “양쪽의 입장을 충분히 들었으며 다음주 29일 이전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인용’인지 ‘기각’인지는 24일에서 늦어도 27일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파리바게뜨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회사 측은 본안소송 판결이 나올 때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을 번다. 가처분이 기각되면 5300여명의 제빵기사를 고용하거나 500억원대로 추산되는 과태료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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