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0시간을 일한 중소기업 노동자 ㄱ씨. 만약 일요일에 출근해 3시간 동안 밀린 업무를 했다면 그가 받을 수 있는 수당은 총 4만5000원이다. 시급 1만원에 휴일근로수당 할증률 50%를 곱했다. 하지만 연장근로수당은 받을 수 없다.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르면, 휴일에 일하는 것은 연장근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휴일수당과 연장수당을 둘 다 주는 것을 ‘중복할증’이라 한다.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을 논의해온 국회가 중복할증의 암초에 부딪혔다.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간사단이 ‘중복할증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합의안을 내놓자, 노동계뿐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국회 상임위 ‘폐지 합의안’ 여 일부 의원 반대로 무산
지난 23일 환노위 법안소위는 여야 간사가 합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치려 했으나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이용득 의원과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반발로 무산됐다. 여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과 야당 간사들의 잠정 합의안은 휴일에 일하면 중복할증 대신 대체휴가를 준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업들의 인력수급이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기업 규모에 따라 내년 7월부터 3년간 단계적으로 법을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이 합의안 뒤에는 노동시간을 둘러싼 복잡한 논쟁의 역사가 깔려 있다. 일주일은 7일이라는 것이 세상의 상식이지만,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1953년 이래로 노동부는 근기법상의 일주일을 ‘근로의무가 있는 날만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주 5일제 근무라면 일주일이 닷새인 것이다. 주말에 일하면 ‘근로의무가 없는 날’에 일하는 것이기에, 역설적이게도 연장근로가 되지 않는다. 이는 기업들에겐 노동시간을 늘리는 도구가 됐다. 법정 최대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고 노사 합의로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여기에다가 ‘근로일’이 아닌 주말 이틀간 16시간의 휴일근로를 덧붙일 수 있었기 때문에 실제 최대노동시간은 주 68시간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서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커졌고 여야도 최대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정상화’하자는 쪽에 공감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일주일은 7일이며 휴일근로도 연장근로에 포함된다’는 내용을 못박았다. 하지만 개정안은 상임위 법안소위조차 넘지 못했다. 한국당 등 야당은 개정안 시행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중복할증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자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통과하기 어려우면 행정해석을 바로잡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며 여야를 압박했다.
‘돈 대신 대체휴가’에 노동계 “근로기준법 개악” 반발
여당은 법 개정을 연내에 끝내려 하지만 법안소위 통과의 열쇠는 야당이 쥔 상태다. 그런 와중에 중복할증이 협상 카드로 떠올랐다. 지난달 홍영표 환노위원장은 대한상의 강연에서 ‘기업 부담’을 들며 야당에 양보해 중복할증을 폐기할 수 있다는 뜻을 비쳤다. 하지만 애당초 초과근무에 할증을 붙인 것은 노동자들에게 피로와 긴장을 주는 휴일이나 연장 근로에는 ‘비싼 값’을 매겨 장시간 노동을 억제하자는 뜻이었다. 대법원의 관련 판결 14건 중 11건도 중복할증을 인정해줬다. 그런 상태에서 여당 간사가 ‘돈 대신 주중에 휴일을 주겠다’는 합의를 해준 것이다.
경총 관계자는 “중복할증 폐지는 중소기업들의 요구가 수용된 것”이라며 반겼다. 하지만 노동계는 “근로기준법 개악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환노위 법안소위는 28일 오전 심사를 재개하기로 했지만 합의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복할증이란
주중 40시간 이상 근무한 노동자가 휴일에 일하면 기본수당(통상임금의 100%)에 휴일근로수당(50%)과 연장근로수당(50%)을 더해 200%를 지급하는 것. 지금은 ‘연장근로에 휴일근로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 해석에 따라 휴일근로수당만 추가해 150%를 지급하면 된다. 다만 휴일에 8시간 넘게 일했으면 휴일·연장 근로수당을 모두 받을 수 있다.
'일하고 돈 벌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당 '나홀로 반대'에 물건너간 건설노동자법...레미콘 기사 퇴직금, '무제한 노동' 특례업종 축소도 무산 (0) | 2017.12.28 |
---|---|
[제빵기사 직접 고용 ‘물꼬’]법원, 파리바게뜨 ‘직접고용 정지 신청’ 인정 안 해 (0) | 2017.12.28 |
“학원이 정한 비율로 보수 받는 강사는 노동자” (0) | 2017.12.26 |
'노동부 대리인'으로 출동한 노동·인권 변호사들···'파리바게뜨 불법파견' 첫 심리 (0) | 2017.12.26 |
'또래 친구 죽음' 진실 밝히려 나선 고교생들...제주도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사망사건 조사 (0) | 2017.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