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정답 고르기 지장은 없어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 문학 제시문 속 중요한 시어가 수험생들이 공부한 EBS 연계교재 내용과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오자가 아니라 최신 연구자료를 원전으로 삼았다”고 해명했다. 수험생들이 정답을 고르는 데도 크게 지장은 없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평가원이 지정한 수능 연계교재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제시문이 수능에 출제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평가원 홈페이지 수능 이의신청 게시판에는 “국어영역에 출제된 이정환의 연시조 ‘비가’ 1수의 종장에 오자가 있었다”는 지적이 올라왔다. 전날 치러진 수능 국어영역 33~37번 제시문으로 출제된 ‘비가’는 이정환의 문집 <송암유고>에 실린 작품이다. 수능 문제지에는 ‘비가’ 1수의 마지막 구절은 ‘반갑다 학가선객(鶴駕仙客)을 친히 뵌 듯하여라’라고 표기돼 있다. 하지만 올해 수능-EBS 연계교재였던 <2018학년도 수능완성 국어>에는 ‘학가선객’ 대신 ‘학가선용(鶴駕仙容)’이라고 표기돼 있다. ‘학가선용’은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를 상징하며 시조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어다.
이의를 제기한 최규백 강한국어스쿨 대표강사는 “EBS 교재와 교과서뿐 아니라 <송암유고>를 주제로 한 박사논문 등에서도 ‘학가선객’이라는 표현은 쓰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험생들이 일반적으로 접하는 수능 대비 교재 등에도 ‘학가선용’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최 강사는 “학생들이 공부한 연계교재 내용을 바꾸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며 “다만 문제풀이에는 지장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시문에서 해당 시어가 의미하는 바를 각주 형태로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어와 관련된 문제 자체는 수험생들이 비교적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던 편이었다.
평가원은 오자가 아니라 2012년 발간된 <고시조 대전>을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평가원 관계자는 “<송암유고> 원본은 오래 전 망실돼 확인할 수 없고, <고시조 대전>은 한국연구재단 발주로 모든 시조 텍스트의 원문을 확인하고 집대성해 현재 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시조 자료집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가원이 원전을 제시한 만큼 이 문제가 ‘오자’로 처리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교육부가 발표한 수능 연계교재와 실제 출제된 지문이 다른 점을 확인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만일 정답과 직결되는 부분이면 수험생 혼란이 컸을 가능성도 크다. 평가원은 수능 당일인 23일 이 제시문이 EBS 연계 출제 문항 중 하나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까지 평가원 홈페이지 이의신청 게시판에는 250건 이상의 이의신청글이 올라왔다. 올해는 아직까지 특별한 오류가 발견되지 않았다. 평가원은 출제오류가 반복되자 올해부터 검토위원장 외에 검토자문위원단 8명을 두고 문제를 철저히 점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통 한 달이 조금 넘는 짧은 기간 안에 교육과정과 EBS 등을 반영해 문제를 내고 역대 수능에 나온 문제들을 피하면서 난이도 조절까지 해야 하는 출제시스템 자체가 오류를 낳는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매년 나온다.
우여곡절 속에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수시모집 대학별고사와 정시모집으로 이어지는 ‘입시 2라운드’의 막이 올랐다. 수능 가채점 결과를 종합하면 문제 자체는 지난해 수준으로 어려웠지만 수험생들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올라 1등급 구분점수(컷)는 소폭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영역이 절대평가로 전환되자 수험생들이 국어·수학·탐구영역 공부에 상대적으로 집중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해의 변수 ‘영어’
올해 입시의 변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 절대평가’였다. 24일 EBS와 입시업체 등 입시관련 9개 기관이 수험생 가채점 결과를 집계해 자체적으로 추정한 커트라인 예상치를 살펴보면, 국어영역 1등급 컷은 93~94점으로 지난해의 92점보다 1~2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수학 가형과 나형 커트라인은 9곳 모두가 지난해와 같은 92점으로 내다봤다. 2~3등급 컷도 소폭 올랐다. 한국사를 제외한 사회탐구영역은 9과목 중 최대 5과목의 1등급 컷이 50점 만점일 것으로 예측되는 등 평이했고, 과학탐구영역은 1등급 컷이 43~47점 수준으로 예측돼 비교적 까다로웠다.
전날 현직 교사와 입시업체들은 문제를 검토한 뒤 2011년 이후 가장 어려웠다는 지난해 수능과 난이도가 비슷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학생들 성적이 오른 이유는 ‘영어 절대평가’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실장은 “난이도가 높았지만 영어가 절대평가화되면서 영어 1~2등급을 안정적으로 받는 최상위권의 학습부담이 크게 줄었다”며 “영어공부를 거의 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상위권 수험생일수록 다른 세 과목에 시간을 쏟을 수 있어 상위권과 중위권의 점수격차가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시전문가들은 대체로 최상위권을 변별하는 ‘킬러 문항’의 난이도가 높아 최상위권과 상위권의 간극도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상위권 변별력은 확실하겠지만 중위권으로 갈수록 눈치작전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남은 수시모집 대학별고사와 정시모집에서도 영어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영어영역 응시생 중 8~9%가 1등급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내 주요 대학의 최저학력기준인 2등급을 충족하는 학생들은 더 늘어나 수시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수능 최저학력을 충족시킨 지원자가 많아져 수시모집 논술·면접·내신 합격선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며 “수시모집 대학별고사에 더욱 충실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수능’에 수험생들은 담담
지난해 갑자기 어려워진 수능에 수험생들이 ‘멘탈붕괴’에 빠졌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이미 어려운 6월·9월 모의평가를 겪은 뒤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은 비교적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이날 오전 9시40분쯤 찾은 서울 용산고에서는 가채점을 하러 온 고3 학생들이 친구들,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10시쯤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 가채점이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다는 학생도 있었다.
이 학교 3학년 김현겸군(18)은 “어려웠던 만큼 등급도 그에 맞춰 나왔다. 난이도는 모의고사와 비슷했는데 돌려서 나오는 문제가 좀 있어서 어려웠다”고 말했다. 박만재군(18)은 “6월과 9월보다는 쉬웠지만 대체적으로 어려웠고 국어 비문학과 과학탐구가 특히 어려웠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고 3학년 송민진양(18)은 “국어 비문학은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다”며 “남은 기간 열심히 준비해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험생들은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정시모집에서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을 가늠해봐야 한다. 단순합산점수를 통해 지원가능대학을 폭넓게 찾아본 뒤, 반드시 수능 영역별 반영비율과 가산점 등이 포함된 대학별 환산점수를 산출해야 지원할 대학들을 좁힐 수 있다. 수능 반영방법과 환산방법에 따라 개인별 유불리가 크게 갈리기 때문이다.
수시모집에 지원한 경우 정시로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을 추려보고, 수시모집 대학별고사에 응시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서초고 황병숙 교사는 “가채점 결과가 기대보다 낮다면 대학별 논술·구술고사를 보는 것이 좋다”며 “다음달 12일 수능 성적통지표를 받아보고 정시모집 전략을 잘 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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