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서울 마포대교를 가득 메운 건설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을 그만둘 때 받는 ‘퇴직공제금’을 늘리고 레미콘 조종사나 덤프트럭 운전사도 퇴직공제부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건설근로자법을 고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노동자 1만여명이 대교 앞에서 연좌농성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야 간 이견도 별로 없었던 법 개정이 물 건너간 것은 자유한국당의 ‘몽니’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원인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의 파행이었다. 29일 환노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날 열린 법안소위에서 임이자 소위원장은 “상임위원 중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표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앞서 23일 회의에서 휴일·연장근로 수당을 모두 지급하는 ‘중복할증’ 폐지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여야 간사의 합의만으로 표결에 부치려 하자 여당 의원들이 반대해 진통을 겪었다. 이를 의식해 일단 표결을 미루려 한 것이다.
28일 소위에 상정된 것은 근로기준법과 건설근로자의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 세 가지였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이견이 적은 건설근로자법을 먼저 논의하자”고 제안했지만 신보라 한국당 의원이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다”며 반대해 심사도 하지 못했다.
공사장을 옮겨다니는 건설노동자들은 퇴직금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사업주가 노동자의 근무일수만큼 퇴직공제금을 적립하고 일을 그만둘 때 지급하는 퇴직공제부금 제도를 두고 있다. 하지만 사업주가 내는 공제금은 노동자 1인당 하루 4000원에 불과하다. 일반 기업에서 직원들 퇴직금으로 적립하는 돈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그래서 공제금을 하루 5000원 이상으로 올리고, 1인 사업자인 레미콘, 덤프트럭 등 건설기계 조종사도 공제부금에 가입시키는 내용의 개정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신 의원의 반대로 무산됐다.
신 의원 측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건설기계 모든 업종을 가입시키는 데에 야당 일각에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이자·장석춘 의원 등 한국당 의원들도 건설근로자법 개정에 찬성해왔기 때문에 신 의원이 ‘나 홀로 반대’를 한 것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안 통과가 수포로 돌아가자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마포대교 남단 차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했다. 건설노조는 29일 “시민들의 불편을 유발한 것은 죄송하지만, 일부 국회의원들이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초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줄이기 위한 법 개정도 환노위 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근로기준법 59조는 운수업과 우편업 등 26개 업종을 특례로 지정해 법정 최대노동시간인 주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장시간 근무에 시달리던 버스 기사의 졸음운전 사고와 집배원들의 과로사가 잇따르자 특례업종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환노위 법안소위도 지난 7월 특례업종을 10개로 줄이고 노선버스업을 제외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
현재 전체 임금노동자의 42.8%인 400만명이 특례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합의안이 통과되면 약 270만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법에 정해진 시간만큼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특례업종 문제라도 처리하자”고 했지만, 한국당은 “근로기준법과 묶어서 논의해야 한다”며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1년이 못 되게 일한 노동자에게도 퇴직금을 주도록 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도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28일 소위가 끝난 뒤 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 의원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국회 합의가 모두 수포로 돌아간 책임은 전적으로 더불어민주당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야의 이견이 적고 노동자들의 삶에 밀접한 법안들마저 무산된 것은 쟁점이 아닌 법안들까지 ‘패키지 처리’를 고집한 야당 탓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29일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건설노동자 고용 개선 논의가 한국당의 거부로 무산됐다”며 “추운 날씨에 국회 앞에 모인 건설노동자들의 간절한 바람을 저버린 결과”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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