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경과 생태

[송윤경의 똑딱똑딱]은행이 지구를 뜨겁게 한다는데...한국의 은행들은?

은행을 선택할 때 우리는 대개 예·적금 금리, 대출금리, 우대금리 수준, 포인트 혜택 등을 살핀다. 그러나 환경운동가들은 한 가지를 더 고려해달라고 호소한다. 기후변화를 앞당기고 공기를 더럽게 만드는 은행인지 여부다. 

금융과 환경은 전혀 다른 영역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발전소 건설, 석유 채굴 같은 사업은 은행이 사업 자체의 수익을 보고 거액을 대출을 해주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없으면 성사되기 힘들다. 한국과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지어지고 있는 석탄발전소 뒤에는 자금줄을 대주는 은행들이 있다.

지속가능성, 환경, 인권 등의 관점에서 은행을 감시하는 미국 ‘뱅크트랙’ 홈페이지.


■석탄과 손잡은 은행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기후변화와 환경보호, 인권의 관점에서 금융회사을 감시하는 문화가 자리잡혀 있다. 이를테면 2003년 네덜란드에서 설립된 글로벌 시민단체 뱅크트랙은 최근 ‘더러운 석유’로 불리는 오일샌드(타르샌드) 개발프로젝트에 돈을 대고 있는 미국 JP모건체이스에 항의서한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다. 오일샌드는 숲을 황폐하게 만들 뿐 아니라 석탄보다 이산화탄소를 더 배출한다. 영국에서는 타르샌드네트워크가 오일샌드(타르샌드) 사업에 돈을 대는 은행들을 비판하는 시위를 한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독일 환경단체 우르게발트는 석탄 개발에 대한 금융지원을 중단을 촉진하기 위해 일종의 석탄기업 ‘블랙리스트’인 글로벌 석탄퇴출목록(Global Coal Exit List)’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르게발트는 기후변화 문제에서 금융회사들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이들이 석탄 기업에 1달러씩 투자할 때마다 회복 불가능한 기후변화에 1표를 행사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1년 4월 영국 타르샌드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이 타르샌드 사업에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하고 있는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C) 앞에서 석유를 마시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2011년 4월 영국 타르샌드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이 타르샌드 사업에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하고 있는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C) 앞에서 석유를 마시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뱅크트랙 역시 “은행과 투자가들이 석탄 산업 투자를 빨리, 완전히 끝내지 않으면 지구의 기온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2015년 세계는 ‘파리협약’을 통해 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의 기온이 2도~1.5도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유지하기로 했다. ‘2도’는 지구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할 선이다. 과학자들은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기온이 2도 넘게 오르면 육지의 탄소 흡수량이 줄어 멸종하는 생물이 늘어나며 폭풍·홍수같은 재해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본다. 

현재 지구 기온은 산업화 이전에 비해 이미 1도 상승했다.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협정을 통해 기온 상승을 줄이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나 메탄같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석탄발전소 사업에 금융회사들이 계속 자금을 계속 댄다면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개도국 위한 ‘적도원칙’ 

환경단체들의 압박에 세계 금융회사들도 자율적인 규제에 나섰다. 환경파괴와 오염을 일으키거나 원주민들의 인권침해를 유발하는 사업에 대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은 ‘적도원칙’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남반구(저개발국)와 북반부(발전된 나라들) 사이의 균형을 잡고 저개발국들이 몰려 있는 저위도 지역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며 붙인 이름이다. 

적도원칙의 시작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시티그룹, 네덜란드 ABN AMRO, 영국 바클레이즈 등 대형 금융회사들은 2003년 국제금융기구(IFC)가 설정한 환경·사회 정책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에 한해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 기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3년 뒤에는 이 원칙을 선진국의 개발 프로젝트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2013년 개정된 3차 적도원칙(EP3)이 채택돼 세계 91개 금융회사이 참여한다. JP모건체이스, BNP파리바, ING, 도이치뱅크 등은 석탄발전소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석탄발전소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은행들 | 환경운동연합

석탄발전소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은행들 | 환경운동연합 

물론 이들도 환경보호 원칙에 늘 충실한 것은 아니다. JP모건체이스나 RBC 은행은 적도원칙에 가입했는데도 오일샌드 프로젝트에 투자해 비판을 받았다. 환경단체들은 적도원칙이 세밀하지 않아 은행들이 피해나갈 구멍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기후변화를 막고 원주민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적도원칙협회가 최근 개정 논의를 시작했다. 

■국내 은행들은 어떨까 

한국에도 적도원칙을 채택한 은행이 있다. 산업은행은 올해 초 적도원칙에 따르겠다고 밝히면서 지속가능한 개발사업 위주로 투자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 인천에 설치한 녹색기후기금(GCF)의 이행기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실제로는 적도원칙과 정반대되는 투자를 계속해 환경단체들의 비판을 받는다. 

석탄발전소 투자가 가장 문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조배숙 의원과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2008년 이후 석탄발전소·석탄열병합발전소 사업에 1조9000억원을 쏟아부었다. 현재 건설 중인 고성하이석탄화력발전소 1·2호기 사업에는 3800억원을 대출해줬다. 고성하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 장기적인 ‘탈석탄’을 선언하며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한, 공정률이 10%도 안 되는 화력발전소였다. 그러나 고성하이 1·2호기 공사는 대선이 끝나고도 계속됐고 현재 공정률이 25%를 넘겼다.

산업은행 앞에서 석탄발전소 투자를 비판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 환경운동연합

산업은행 앞에서 석탄발전소 투자를 비판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 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의 이지언 에너지기후팀장은 “적도원칙을 채택한 선진국 은행들도 원칙에 어긋난 대출을 할 때가 있지만 적어도 환경단체의 감시와 견제, 사회적 압력을 받는다. 그런데 국내에선 산업은행조차 이제 막 적도원칙의 걸음마를 뗀 상태이고 견제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적도원책을 채택한 산업은행이 이 정도이니, 이런 원칙에 관심이 없는 민간은행은 인식 수준이 더 낮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고성하이 사업에 4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을 하고 있다. 새로 짓고 있는 강릉 안인석탄발전소의 경우 KB국민은행이 대출주선 등 금융조달을 맡은 액수가 4조5000억원에 이른다. 

국민은행의 석탄발전소 투자를 규탄하는 환경운동연합의 팸플릿 | 환경운동연합

국민은행의 석탄발전소 투자를 규탄하는 환경운동연합의 팸플릿 | 환경운동연합

KB국민은행은 신설되는 석탄발전소가 ‘친환경’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투자를 합리화했다. 그러나 정부가 반박에 나설 정도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논리다. 환경부는 “어떤 청정기술을 도입하든, 연료의 속성상 석탄발전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보다 청정할 수는 없다”면서 “석탄발전은 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같은 대기오염물질을 LNG발전보다 16~18배 더 배출한다”고 밝혔다.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은 공기 중에서 2차적으로 미세먼지를 만들어낸다. 즉 KB국민은행은 ‘신형 석탄발전’을 강조하면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농도를 높이는 프로젝트에 돈을 대고 있다는 얘기다. 

세계는 기후변화를 막는 ‘윤리적 소비’를 하기 위해 은행까지 감시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을 환경과 자연, 인권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핵 위기에 따른 지구의 멸망을 경고하는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를 본떠,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생물종의 위기 등을 표현하는 ‘환경위기시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 아사히글라스재단이 100여개국 정부와 환경운동가들의 의견을 조사해 매년 전세계의 환경위기시각을 발표합니다. 0∼3시는 ‘양호’, 3∼6시는 ‘불안’, 6∼9시는 ‘심각’, 9∼12시는 ‘위험’을 의미합니다. 12시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최후의 시각입니다. 처음 발표된 1992년 바늘은 오후 7시49분을 가리켰습니다. 지난해엔 9시31분이었습니다. 시계바늘을 되돌리는 근본적인 길은 시민들이 환경의 가치를 보호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경향신문은 [똑딱똑딱] 코너를 통해 생활 속에서 기후변화를 저지하고 환경을 보호할 방법을 모색해보려 합니다. 콘텐츠에 대한 의견과 아이디어, 제보는 kyung@khan.kr로 보내주세요.
한국의 환경위기 시계(환경재단과 아사히글라스재단 발표) | 기상청

한국의 환경위기 시계(환경재단과 아사히글라스재단 발표) | 기상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