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소년은 학교를 다녀오면 마루에 가방을 던져놓고 꼴을 베러 나갔다. 강원도 평창의 너른 초지를 마구 돌아다녔다. 때로는 소를 끌고 산에 올라가 직접 풀을 먹이기도 했다. 덩치가 소년의 서너 배 되는 소가 졸래졸래 그를 따라왔다. 소는 때때로 길가에 똥을 쌌다. 논둑과 하천, 동구 밖까지 소똥이 나뒹굴었다.“그때는 심심찮게 소똥구리 애들을 만났지. 생생히 기억이 나.”
강원도 평창에서 지금도 소를 키우고 있는 전모씨(62)는 소똥구리를 본 적이 있는지를 묻자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줬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의 얘기다. 어린 시절부터 소를 다루며 자란 그는 말수가 적었다. 뜨문뜨문 꺼내놓는 전씨의 얘기를 듣다 무심코 대꾸했다. “소똥이 여기저기 있었으면 냄새가 많이 났겠네요.”
1970년대부터 사라진 소똥구리
예상치 못한,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옛날 소똥은 요즘 같은 그런 구린내가 안 났어. 사료를 먹이기 시작하면서 돼지똥, 사람똥 냄새가 나기 시작한 거야.” 전씨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그는 곡물사료 때문에 소똥구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료를 먹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는 “죽 같은 똥”을 쌌다. 특히 그는 수입 사료에 들어 있는 방부제 때문에 소똥구리가 견디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달 말 환경부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 추진단이 소똥구리 50마리를 몽골에서 들여올 무역업자를 구한다는 입찰공고를 냈다(경향신문 12월7일자 11면 보도)는 소식이 전해진 뒤 포털 사이트에선 그 많던 소똥구리들이 한국에서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 사실이냐, 왜 사라진 것이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소똥구리가 사라진 원인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도 전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소똥구리 권위자인 김진일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2012년 저서에서 “1970년대 이후 농촌 새마을운동으로 근대화가 추진됨에 따라 소똥구리가 서식하는 목초지가 감소하였고, 가축 사육 시 인공사료 및 살충제의 사용으로 인한 급격한 서식 환경 변화의 영향으로 (소똥구리가 자취를 감췄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소똥을 경단으로 만들어 굴리는 소똥구리는 1970년 이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전씨는 지금 200평짜리 비닐하우스형 축사에서 소 32마리를 키운다. 4~5년 전까지는 방목을 했지만 지금은 몸이 좋지 않아 그마저도 못하게 됐다. 그래서 소들 편하라고 공간이라도 넉넉하게 마련해줬다. “자연에 말이죠, 멸종은 없어. 다시 풀을 먹이면 소똥구리는 나타날 거라고.” 그는 몇 해 전 초지에 소를 방목해 키울 때 소똥구리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다만 그것이 환경부가 최근 입찰공고를 낸 소똥구리종(Gymnopleurus mopsus)에 해당하는지는 전씨도 확신하지 못한다. 소똥구릿과에는 30여종이 있으며 그중 애기뿔소똥구리(Copris tripartitus)는 지금도 말 목장에서 간간이 볼 수 있다. 전씨는 그래도 몇 차례 힘주어 말했다. “어떤 소똥구리가 됐든 소를 소답게, 풀 먹여 키우면 사라졌던 것들은 다시 돌아온다”고.
소똥구리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
“아니에요. 중간에 한 번 사라지면 다시 생겨나지 않더라고요.”
양평곤충박물관의 김기원 학예사는 전씨와는 생각이 달랐다. 김 학예사는 한 번 사라지면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의 왕소똥구리를 들었다. “그곳에 가면 꼭 볼 수 있었죠. 그런데 소 주인이 돌아가시면서 소가 팔렸고 왕소똥구리도 다 죽었어요. 몇 해 뒤에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소를 사서 그곳에 다시 들였는데, 안 돌아오더라고요.”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마지막으로 왕소똥구리가 관찰된 것은 2000년이다. 왕소똥구리 역시 멸종에 다다른 소똥구릿과의 한 종류다. 소똥구리와 왕소똥구리, 긴다리소똥구리만 똥을 경단으로 만들어 굴린다. 모두 멸종위기종에 속하지만 특히 소똥구리는 ‘지역절멸’에 이르렀다. 그나마 긴다리소똥구리는 2013년 곤충학자들에 의해 20여년 만에 발견된 적이 있다.
김 학예사는 대학원 시절부터 7~8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소똥구리를 찾으려 애써왔고, 지금은 양평곤충박물관에서 소똥구리 복원사업을 맡고 있다. 생태도시를 표방하는 양평은 소똥구리를 상징물로 삼으려 한다. 박물관 측도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 추진단처럼 결국 국내에서는 소똥구리를 찾지 못했다. 김 학예사는 “소를 방목해 키우더라도, 조금도 사료를 먹이지 않는 소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이 박물관도 올해 몽골에서 소똥구리를 들여왔고 곧 복원에 돌입한다.
환경부의 소똥구리 구매공고가 알려지자 “왜 그런 것에 예산을 낭비하느냐”, “환경이 나빠져 이미 멸종했다면 복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들도 적잖게 나왔다. 하지만 학자들은 소똥구리의 가치를 알면 자연스럽게 ‘곤충의 귀환’을 기다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정종철 박사는 “소똥구리는 소똥 속의 유기물을 분해해 거름이 되게끔 해 준다”고 지적한다. 초식동물인 소, 말, 양의 똥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소똥구리가 주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가축 분변은 축산 농가들의 골칫거리다. 특히 비가림막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상태로 쌓아놓은 분변이 주변 하천에 쓸려들어가면 강이 오염된다. 소똥구리가 있었다면 돼지 오줌은 몰라도 소똥만큼은 오염원이 아니라 흙을 비옥하게 하는 자원이 됐을 것이다.
호주가 소똥구리를 수입한 까닭은
소똥을 생태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소똥구리를 인위적으로 번식시킨 국가도 있다. 바로 호주다. 호주 원주민들은 원래 소를 기르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호주에 소를 대량으로 들여와 키우기 시작했는데, 1960년대에 초지 곳곳에 널린 소똥이 심각한 문제가 됐다. 소를 키우지 않았던 땅이었기에, 이를 분해할 곤충이 충분하지 않았다.
호주 당국은 1965년부터 1985년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소똥구리를 들여와 초지에 풀었다. 아프리카의 소똥구리는 코끼리똥까지 해치울 정도로 분해 능력이 뛰어나다. 남아공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소똥구리를 보호하기 위해, 코끼리가 지나간 길에는 자동차나 사람이 다니지 못하게 할 정도로 신경을 쓴다.
소똥구리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현대인이 그동안 지구 생태계에 무슨 행위를 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 호주 클리블랜드 자연사박물관의 니콜 군터 박사가 최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소똥구리는 공룡이 존재하던 1억3500만~6500만년 전 백악기 전반기부터 지구에 살았다. 그러니 애초 이 듬직한 곤충이 굴리던 것은 소똥이 아닌 공룡의 똥이었던 셈이다. 공룡이 멸종하면서 소똥구리 역시 위기를 맞았지만 다양한 식물과 초식동물 덕에 살아남았다. 그러나 1억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 땅에서는 이 오랜 친구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소똥구리가 많이 살던 유럽의 프랑스와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산업화로 인해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 소똥구리를 볼 수 있는 곳은 연구자들의 실험실이나 전시공간뿐이다. 환경부는 소똥구리를 ‘정서적 곤충’이라고 설명한다. 자기 몸보다 큰 소똥 경단을 부지런히 굴리는 소똥구리는 문학작품과 동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지금도 ‘소똥 경단이 최고야’ 같은 동시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고, 소똥구리를 다룬 어린이책이 수십권이다. 여전히 아이들은 책과 사진을 통해 소똥구리를 접하며 자라난다. 하지만 어른들은 소똥구리를 가르치면서도 정작 이 곤충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멸종에 이르게 했다.
알이 부화할 때까지 굶으며 지키는 엄마
간헐적으로나마 복원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는 것은 다행이다. 현재 농촌진흥청 대변인인 방혜선 전 국립농업과학원 연구관은 10여년 전 뿔소똥구리와 애기뿔소똥구리를 사육하는 연구를 했다. 멸종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이들 역시 예전만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방 대변인은 “개미와 벌은 군집생활을 하며 역할을 분담하기 때문에 사회적 곤충이라고 부르지만, 소똥구리는 어미의 행동 때문에 준사회적(subsocial)인 곤충이라 부른다”고 소개했다.
소똥구리는 소똥 경단에 알을 낳는데, 알이 부화할 때까지 어미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그 옆을 지킨다. 경단에 곰팡이가 생기면 알에서 나온 유충이 박테리아에 감염돼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농업과학원은 소똥구리의 유충에서 ‘천연 항생제’를 찾아내기도 했다.
고려대 배연재 교수 연구팀은 2013년 국립생물자원관의 의뢰로 소똥구리 460여마리를 몽골에서 들여왔다. 지난해에는 짝짓기를 통해 2세가 태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적절한 소똥을 찾지 못해 말똥을 먹여 애지중지 키운 결과였다.
배 교수팀은 자연 방사까지 고려해 제주시 해안동의 목장과 노형동의 승마장, 전남 장흥의 방목장, 전남 신안의 자은도 해변, 충남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 등 적절한 서식지까지 물색했다. 그러나 자연 방사까지 이르지 못한 채로 연구가 마무리됐다. 지난해 번식한 소똥구리들은 지금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에 있는 고려대 부속 농장에 있다.
환경부는 이 소똥구리를 건네받아 복원 사업에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다양한 DNA를 가진 개체가 많아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 몽골에서 소똥구리를 들여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입찰은 지난주 마감됐지만 업체 한 곳만 신청해 유찰됐고 재입찰을 할 예정이다.
“제 처가가 몽골에 있는데 거기서 가져와도 됩니까?” “몇 달 전에 마당에서 소똥구리를 봤는데요.”
환경부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 추진단이 소똥구리 50마리를 몽골에서 들여올 무역업자를 구한다는 공고를 낸 사실이 알려진 뒤 추진단에는 제보·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30분에 한 번꼴로 전화벨이 울렸다.
추진단은 소똥구리를 들여오는 일이 일반인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진땀을 뺐다. 일단 조달청에 등록된 동물 관련 무역업체만 입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검역을 뚫기가 까다롭다. 소똥구리는 소똥에서 살기 때문에 구제역을 비롯한 가축 질병 바이러스를 옮겨올 수 있다. 이 때문에 매우 엄격한 검역을 거친다. 소똥구리들의 분변을 모두 토해내게 해서 검사를 하고, 소똥구리 자체를 씻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소똥구리가 폐사할 수도 있다. 허가 없이 가져온 소똥구리는 국내 반입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흥미 삼아 가방에 담아왔다가는 공항에서 모두 압수당하고 과태료를 물 수 있다.
소똥구리를 봤다는 제보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소똥구리는 1970년 이래 국내에서 곤충학자들도 발견하지 못했다.
곤충학자들의 생각이 닿지 못한 곳에 소똥구리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전문가들은 시민들이 다른 소똥구리와 환경부가 찾는 소똥구리를 헷갈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경단을 만들어 굴리는 소똥구릿과에는 왕소똥구리, 긴다리소똥구리, 소똥구리가 있다. 긴다리소똥구리는 경단을 굴리는 모양이 비슷하고 육안으로 봤을 때는 소똥구리와 구별하기 힘들다. 긴다리소똥구리는 2013년에도 발견된 적이 있는 만큼 국내에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경단을 굴리지 않지만 소똥을 먹고 살아가는 애기뿔소똥구리를 보고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농촌진흥청 방혜선 대변인은 “국내에 많은 똥풍뎅이는 크기가 작고 소똥구리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착각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 추진단 관계자는 “그래도 혹시 소똥구리가 살아 있을 실낱같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 “현행법상 멸종위기종은 임의로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봄이 되어 소똥구리가 나타나면 장소 등을 다시 제보해달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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