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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용산 미군기지 지하수, 벤젠 기준치 670배 초과했는데...조사해놓고 발표 미룬 환경부

송윤경·허진무 기자 kyung@kyunghyang.com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지하수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기준치를 최대 670배 초과해 검출됐다. 시료를 채취해 조사를 해놓고도 공개를 미루다 환경단체들의 거센 항의를 받아온 환경부가 마지못해 발표한 자료를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환경부는 29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는 우리 정부가 지난해 1월과 8월 시행한 주한미군 용산기지 내·외부 지하수 환경조사 자료를 공개한다”면서 13쪽가량의 발암·유해물질 검출량 통계를 배포했다. 환경부는 “최종보고서는 아직 미군 측과 협의 중”이라면서 수치만 공표한 뒤 구체적인 분석결과는 내놓지 않았다.

환경부가 공개한 미 용산기지 내 지하수 조사 결과의 일부.


이날 나온 자료를 보면 용산기지의 지하수에서 기준치의 671.8배에 이르는 벤젠이 검출됐다. 생활용수의 벤젠 기준치는 ℓ당 0.015㎎ 이하인데, 무려 10.077㎎이 검출된 곳도 있었다. 벤젠이 대량 검출된 관정의 위치는 기지 내 주유소가 있는 지점으로 추측되지만, 환경부는 정확한 지점에 대해 “양국 간 합의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지난해 1월과 8월 미군기지 안팎의 관정 54곳과 59곳을 각각 조사해 지하수의 발암·유해물질을 조사했다. 벤젠 외에 기준치를 최대 7배 초과한 톨루엔도 나왔다. 에틸벤젠과 자일렌도 각각 기준치의 최대 6.4배, 13배 수준으로 검출됐다. 벤젠은 단기간 흡입하면 현기증, 두통, 졸도를 겪을 수 있으며 고농도 흡입했을 때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장기간 노출되면 빈혈과 암을 유발하거나 면역체계에 영향을 준다. 톨루엔은 중추신경계통 기능을 떨어뜨리거나 언어소통의 문제를 일으키며 두통과 불면증 등을 유발하는 물질이다.

환경부는 이날 조사결과를 공개하면서 “우리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한·미 합동위원회가 논의해 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지만, 실상은 소송까지 내면서 공개를 요구한 시민단체들과 법원의 판결에 등 떼밀려 공개한 것이었다. 환경부가 이번에 공개한 것은 용산기지 2차, 3차 조사결과다. 1차 조사를 한 것은 2년 전인 2015년이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이 정보공개 청구소송까지 냈음에도 환경부는 조사결과를 밝히는 것을 거부했고, 1심과 2심에서 패소하자 항소와 상고로 맞섰다. 결국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까지 받고서야 지난 4월에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나마도 분석은 없이 검출량만 적은 1쪽짜리 자료여서 무성의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녹색연합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은 2·3차 조사결과도 공개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올 4월 서울행정법원에 이어 최근 서울고등법원도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환경부 관계자는 오염원 위치, 오염수 흐름 등에 관한 분석이 빠진 데 대해 “SOFA에 따라 최종보고서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공개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미군기지 오염 실태를 고발해 온 녹색연합은 이날 발표에 대해 “지금이라도 측정 자료를 공개한 것은 이전보다 진보한 것이긴 하지만 분석결과가 빠져 있고 정화계획 등에 대한 정부 입장도 알 수 없다”면서 “조만간 설명회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미 용산기지의 지하수 환경조사는 2001년 녹사평역 오염사고가 계기가 됐다. 당시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의 지하수가 휘발유 등의 기름 때문에 심각하게 오염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미군 측은 “기지 내 오염원에 대해서는 주한미군 환경관련 기준에 따라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기지 바깥의 지하수는 서울시가 지금까지 약 47억원을 들여 정화를 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녹사평역 인근 지하수를 퍼 올리면 둥둥 떠 있는 기름이 육안으로 확인된다. 실제로 지난해 녹사평역 주변 지하수에선 벤젠이 기준치의 587배, 석유계총탄화수소(TPH)는 18배, 톨루엔·에틸벤젠은 2배, 크실렌은 5배 초과해 검출됐다. 서울시는 이처럼 정화작업에 별 진전이 없는 것은 근본 오염원이 미군기지 내부에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기지 내·외부 지하수 오염에 대한 한·미간 최종 보고서 마련이 늦어지면서, 녹사평역 오염 사고가 발생한 지 17째인 지금까지도 근본적인 오염정화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다. 환경부 관계자는 “미국은 기지내부 오염원을 적정하게 처리해왔다는 입장이어서, 일단 지하수 환경조사 분석결과에 대한 합의부터 돼야 정화책임 등을 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