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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삶

"박근혜가 '조용히 처리하라' 하자 졸속으로 화해·치유재단 설립" 여가부의 '사죄'

화해·치유재단이 공식 출범한 지난해 7월28일 김태현 이사장(오른쪽에서 두번째),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맨 왼쪽), 강은희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맨 오른쪽) 등이 현판 제막식 후 박수를 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화해·치유재단이 공식 출범한 지난해 7월28일 김태현 이사장(오른쪽에서 두번째),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맨 왼쪽), 강은희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맨 오른쪽) 등이 현판 제막식 후 박수를 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조용히 추진하라’고 지시하자마자 여성가족부가 나섰다.”

여성가족부가 2년 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박근혜 당시 대통령 지시에 따라 화해·치유재단 설립과 운영에 적극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한 사업에 대해서 지원을 끊은 것도 확인됐다. 일본과 합의를 하고 열흘 만에 박 전 대통령이 지시를 내리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재단 설립에 나선 것이다. 여가부 공무원이 재단 사무실 임대계약을 대리로 맺었고, 닷새 만에 재단설립허가가 나오는 등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여가부는 27일 화해·치유재단 설립·운영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념사업’에 대한 점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5년 12월28일 한·일 합의 이후 재단의 설립과 정부가 지원하는 위안부 관련 사업에 대해 비판이 끊이지 않자 여가부는 지난 7월 점검반을 꾸리고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여가부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화해·치유재단 사업과 ‘지원금 현금지급’에 대해 “할머니들께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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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식 여가부 기조실장은 “한·일 합의 후속조치로 외교부를 통해 (당시)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받았다”면서 “후속 조치로 신속하게 재단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재단 설립 절차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당초 8월 말쯤 조사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외교부가 한·일합의에 대한 점검 결과를 발표하는 시점에 맞춰 이날 공개했다. 

■ “박근혜 지시 따라 졸속 추진” 

이날 발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가부는 박 전 대통령이 “조용하고 신속하게 설립을 추진하라”고 지시하자 외교부와 함께 민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재단 설립을 전폭 지원했다. 모든 절차는 여가부가 지난해 1월6일 외교부로부터 전달받은 박 전 대통령 지시사항에 따라 진행됐다. 하지만 모든 내용이 구두로만 전달돼 외교부로부터 받은 문서는 없다고 여가부는 밝혔다. 

여가부가 구두로 전달받은 내용을 문서로 정리한 ‘한일외교장관회담 후속조치 관련 VIP 지시사항 및 외교부 제안 보고’ 내용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재단 설립과 관련해 “조용하고 신속하게 설립 추진할 것, 관련 민간단체 참여는 배제하고 민간 중 중립적·건전한 인사를 참여시킬 것, 1월 중 재단설립을 위한 민관TF 발족 완료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반면 여가부가 지원하던 위안부 기록물 등재와 관련해서는 “추진 과정에서 정부 색을 없애라”고 지시했다. 졸속합의된 일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위안부 강제동원이라는 반인도적인 전쟁범죄를 인류 기록유산으로 남기는 작업에선 정부가 발을 빼려 한 것이 드러난 셈이다.

화해·치유재단은 한·일 합의 후 7개월만인 지난해 7월28일 여가부 산하 민간 재단으로 공식 출범했다. 김태현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이사장이 됐고 일본 전문가와 법조계 인사 등 10명으로 이사진을 구성했다.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선 시민단체나 위안부 전문가의 자리는 없었다. 민간 재단 형태였지만 외교부와 여가부 담당국장이 당연직 이사로 1명씩 포함됐고 정부가 상근직원을 파견했다.

여가부는 평균 20일이 걸리는 법인 설립허가를 5일만에 내줬다. 설립허가를 받으려면 법인사무실 임대차 계약서가 필요했다. 여가부 공무원 ㄱ씨가 계약을 대리체결했다. 이 일을 담당했던 공무원은 이번 조사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출연금이 들어오기 전에 사무실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스무곳 넘게 알아보러 다녔고, 여가부 산하기관 사무실을 쓸 수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다”고 했다. 윤 실장은 “재단 설립 절차에 일부 흠결이 있기는 하지만 설립 자체를 좌우할 정도의 중대한 위법사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다.

■ “피해자들에 일본이 준 ‘치유금’ 받으라 권유” 

재단은 일본이 낸 10억엔을 가지고 합의일 기준 생존 피해자들에게 1억원을, 사망자 유족에게 2000만원을 ‘치유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사업을 해왔다. 당시 기준 생존자 47명 가운데 34명에게 현금이 지급됐다. 9명은 한·일 합의에 반대하며 관계자들을 만나지 않았다. 사망한 피해자 유족들 중에는 68명이 지급을 신청해 지금까지 58명이 돈을 받았다. 

조사 결과 외교부와 여가부, 재단 관계자들이 한·일 합의 직후부터 생존자들을 만나 합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현금을 받으라고 적극 권유한 정황들이 확인됐다. 한 관계자는 피해자를 만나 “받을 건 받아야죠. 할머님 받으셔야죠. 돌아가시고 난 다음엔 해 주지도 않아요”라고 설득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동안에는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인정 안 했어요. 그런데 합의할 때는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도 인정하고”라고 할머니를 회유하기도 했다. 노환인 할머니가 ‘으으’ 하는 소리를 내자 재단이 현금수령에 ‘동의’한 것으로 치고 돈을 지급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11월3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제 단체 시국선언’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92)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지난해 11월3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제 단체 시국선언’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92)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여가부는 위안부 피해자 기념사업 예산 일부를 떼어 재단 운영비로 지원하기도 했다. 본래 이 지원을 받는 민간단체는 관련 사업 실적이 있어야 하고 지원 받기 전에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여가부는 이런 절차를 모두 건너뛰고 재단에 1억5000만원을 내줬다. 

■ 유네스코 유산 등재엔 ‘지원 중단’ 

여가부는 2014년부터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을 맡기고 예산을 지원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한·일 합의 이후 기록물 등재 사업에서 “정부색을 없애라”고 지시했고, 청와대 인사가 여가부에 “한·일 합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가부는 결국 지원을 중단했다. 외부에는 “정부가 참여하면 당사국 반발로 오히려 심사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둘러대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교수나 단체를 지원 사업에서 배제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나타났다. 2015년 말 여가부는 예산 3억원이 드는 ‘일본군 위안부 국외자료 조사사업’ 공모를 냈다. 2016년 1월엔 서울대인권센터를 사업자로 선정하고 ‘계약을 하자’고 통보까지 했다. 

여가부는 서울대인권센터의 책임연구원 한 명이 한·일 합의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 달만에 선정을 뒤집었다.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실이 여가부에 ‘연구원이 한·일 합의 반대 성명에 참여했다’면서 관련 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내라고 하자, 여가부는 내부 논의 뒤 서울대인권센터를 떨어뜨리기로 했던 것이다. 여가부의 ‘블랙리스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여가부는 이런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재단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고, 현금지급 과정에서도 갈등과 심적인 고통을 드린 것에 깊이 사죄드린다”고 했다. 또 “앞으로는 관련 기념사업을 하면서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고 했다.

그러나 재단과 남아있는 기금을 어떻게 할지는 이날 밝히지 않았다. 재단은 일본 정부 출연금으로 지금도 사무실 임대료와 인건비같은 운영비를 쓰고 있다. 정관에 따르면 재단 임원을 선임하거나 재단을 해산하는 것같은 중요한 사안은 이사회 의결 뒤 여가부 장관이 외교부 장관과 협의해 승인할 수 있다. 윤 실장은 “향후 재단 운영방향 등에 관해서는 관계기관과 협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