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아기를 낳기 전 임신 기간에도 여성들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또한 기업들은 성별에 따라 임금과 승진에서 차별을 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정부가 2022년까지 5년간 추진할 여성 일자리정책에 담긴 내용들이다. 여성의 일을 가로막는 유리천장과 ‘독박 육아’, 경력 단절같은 장벽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은 26일 ‘문재인 정부 여성 일자리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임서정 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은 “이번 대책은 차별없는 여성 일자리 환경 구축, 재직 중인 여성노동자의 경력 단절 예방, 그리고 여성의 재취업 촉진 세 분야로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2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임서정 고용정책실장(가운데) 등이 여성 일자리대책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기업들의 성차별적인 고용관행에 먼저 손을 대기로 했다. 직장 내 유리천장을 낮추기 위해서도 국가가 적극 개입하기로 한 것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임금·교육·승진·해고 등에서 차별할 수 없게 하고 있고, 근로기준법에도 생리휴가와 육아시간 보장 조항이 있다. 그동안 노동법의 사각지대나 다름없었던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이 규정들을 적용하기로 했다. 사업주가 고의적으로 임금·승진 등에서의 성차별을 되풀이했을 때에는 손해액 또는 차별 금액의 3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2006년부터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를 시행해, 기업들이 여성 노동자와 관리자를 일정한 비율 이상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관리자는 5명 중 1명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중앙정부 산하기관만 따르고 있는 AA를 2019년까지 지방공기업에도 도입하기로 했다. 민간부문에는 5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하고 있는데, 2022년까지 300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여성고용 기준을 따르지 않는 기업 명단을 공개하고 공공사업 입찰에서 감점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임신한 여성 3명 가운데 1명은 아이를 낳기 전 회사를 그만둔다. 이들의 경력단절을 줄이기 위해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 출산에 앞서 육아휴직 1년 중 최대 10개월을 앞당겨 쓸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뒀던 여성을 고용한 기업에는 세액공제 혜택이 간다. 경력단절 여성을 재고용한 중소기업의 세액공제 비율은 10%에서 30%까지 늘어난다.
여성들의 경력이 끊기는 가장 큰 요인은 육아다. ‘독박 육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남성들의 유급 배우자 출산휴가를 지금의 사흘에서 열흘로 늘린다. 부모가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할 때, 두번째 육아휴직자의 급여가 현재는 최대 150만원이지만 내년 7월부터는 200만원으로 늘어난다. 대부분 엄마가 먼저, 그 다음에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는데 급여를 늘려 아빠 휴직을 권장하려는 취지다.
또 임신 중에 하루 최대 2시간까지 유급으로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전체 임신 기간 중에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임신 12주 이내, 36주 이후에만 쓸 수 있었다. 만 8세 이하 아이를 키우는 이들이 주당 15~30시간 줄여 일할 수 있게 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도 확대한다.
지금까지는 육아휴직 1년 중에 석달을 썼으면 남은 9개월만 이 제도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남아 있는 휴직기간의 두 배, 즉 18개월까지 단축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출산휴가 3개월에 부모의 육아휴직 각각 3개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각각 18개월을 합하면 부모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을 쉬거나 줄일 수 있는 기간이 최대 3년9개월까지 늘어나는 것이라고 노동부는 설명했다.
육아·출산 제도의 혜택은 계속 확충되는 추세이지만 대기업과 정규직에 쏠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내년 중에 고용보험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기간제 노동자는 출산휴가 중에 계약기간이 끝나도 출산휴가 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고, ‘거점형 공공직장어린이집’도 추진한다. 중소·영세사업장에 다니는 저소득 맞벌이 가정도 집 부근에서 직장보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현장에서 얼마나 지켜질 것이냐다.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기업과 직장인들이 많다. 노사발전재단이 700개 기업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임신·육아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용하고 있다는 기업은 4~5%에 그쳤다. 야근을 당연시하는 기업 문화, 법에 적힌 휴직조차 보장해주지 않는 문제 등은 넘어야 할 산이다. 대기업과 공공기관들에선 육아휴직이 자리잡아가고 있으나 작은 사업장들에는 널리 퍼지지 못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칼퇴근’을 하기 힘든 직장 문화에서는 두어시간 단축을 신청해도 효과가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근로시간 단축제도 사용 기간을 두 배로 늘리면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설]여성 일자리 로드맵이 실효성을 높이려면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추진할 여성 일자리의 로드맵을 26일 내놨다. 여성 노동자의 임신·출산·육아 지원과 남녀 차별 없는 일자리 환경을 구축해 ‘유리천장’과 ‘독박육아’, 경력단절 등의 장벽을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눈에 띄는 대책으로는 임신한 여성 노동자의 퇴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임신기간에도 1년간 육아휴직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또 임신기간 일부에 한해 실시돼온 노동시간 단축도 임신기간 전체로 확대하도록 했다. 배우자의 출산휴가도 현행 3일 유급에서 10일로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늘어난다. ‘경단녀’로 통칭되는, 출산이나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재고용하는 중소기업의 인건비 세액공제율이 10%에서 30%로 늘어난다.
성차별을 막기 위해 여성 노동자와 관리자를 일정 비율 이상 고용토록 하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제도의 시행 사업장도 단계적으로 늘어난다.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조항이 2019년에 5인 미만 전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되고, 근로기준법상 여성보호조항도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된다. 임금·승진·해고·퇴직과 관련해 여성이 차별대우를 받았을 경우 사업주가 손해액의 최대 3배를 물어야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도 주목된다. 이번 대책에는 새로 도입되는 내용들도 적지 않고, 박근혜 정부 정책에 비해 포괄적이고, 진전된 내용들이다. 충실한 여성 일자리 대책은 심각한 저출산을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결혼·출산·육아가 여성의 삶과 일을 억압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과 맞닿는다.
다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취지가 좋은 정책이라도 실제 기업에서 실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실태점검이 미흡하고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면 정책의 실효성은 떨어진다. 최저임금의 경우 고용노동부가 2012~2016년 2만337건의 위반행위를 적발했지만 사법처리나 과태료 처분을 한 사례는 0.5%인 92건에 불과했다. 정책 홍보에도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임신·육아기 노동시간 단축제도는 이미 시행 중인 정책이지만 ‘활용하고 있다’는 기업이 4~5%에 불과할 정도로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기업들도 이번 기회에 여성인력 고용관행을 재점검하고 바꾸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성들이 맘편히 일하려면 야근을 당연시하는 기업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남성들이 떳떳하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야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해진다. 모처럼의 정책이 ‘꿰어지지 않은 구슬 서말’이 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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