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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화유기>스태프 추락현장 조사한 언론노조 “불나면 못 나올 것 같은 곳에서 여전히 촬영중”

남지원·고희진 기자 somnia@kyunghyang.com
추락사고가 발생한 <화유기> 세트장. 무너졌던 천장이 보수된 흔적이 흰색 선으로 보인다. 언론노조 제공

추락사고가 발생한 <화유기> 세트장. 무너졌던 천장이 보수된 흔적이 흰색 선으로 보인다. 언론노조 제공

<화유기> 촬영 세트장 한켠에 방치된 페인트들. 언론노조 제공

<화유기> 촬영 세트장 한켠에 방치된 페인트들. 언론노조 제공

“추락사고와 함께 무너져내린 세트장 천장은 보수돼 있었지만, 천장을 지탱하는 목재와 합판 사이는 여전히 벌어져 있었다. 세트장 내 이동통로는 매우 어둡고 비좁았다. 바닥에는 각종 케이블과 목재, 페인트 같은 인화물질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낙상사고나 화재로부터 취약한 구조다. 세트장을 재설치하거나 보강하지 않고 현장을 땜질식으로 수습해 촬영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달 28일 전국언론노조가 경기 안성시에 있는 tvN 드라마 <화유기> 세트장을 찾아 목격한 것들이다. 언론노조가 현장을 찾기 닷새 전인 23일 새벽 1시쯤, MBC아트 소속 스태프 ㄱ씨는 세트장 천장에 올라가 샹들리에 작업을 하다가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3m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척추 골절로 인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ㄱ씨는 의식이 또렷하게 돌아왔지만 아직까지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다.

언론노조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화유기> 세트장 현장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정부가 현재 제작중인 모든 드라마 현장에 대한 긴급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제작사인 JS픽쳐스가 현장조사 때까지도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사고 현장에서 촬영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언론노조에 따르면 사고 이후 급하게 복원한 ‘비밀의 방’ 세트장 샹들리에가 달린 천장은 급하게 복원한 듯 흰색의 땜질 흔적이 역력했다. 사고위험이 있는 나무사다리가 사고 현장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어서 현장을 본 고용노동부 평택지청 소속 근로감독관이 사용을 즉각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근로감독관은 타카로 작업돼 있지만 마감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목재와 합판 사이가 들뜬 천장에서 작업을 하는 것도 금지했다.

세트장 통로마다 이동이 힘들 정도로 전선과 도구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고 밀폐된 현장 내에 페인트 같은 인화물질도 많았다고 언론노조는 전했다. 현장에 다녀온 관계자들은 “언제라도 사고가 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PD 출신인 김환균 위원장은 “촬영현장에 나갔을 때 너무 무질서해서 대단히 놀랐고 두 번이나 넘어질 뻔 했다”며 “잘 정리된 TV 화면 속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고 다치기까지 하는 것을 시청자들이 안다면 그렇게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기 언론노조 정책국장도 “만에 하나 세트장에서 화재라도 발생한다면 아무도 대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현장조사 뒤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을 찾아 <화유기> 세트장에서의 작업중지 명령, 안전진단 실시 등을 요구했다.

언론노조는 “현재 제작중인 모든 드라마 현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하라”고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기관 5곳에 요구했다. 이들 5개 부처는 지난달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방송제작인력 안전강화와 인권보호, 노동환경 개선 대책 등을 내놓은 바 있다. 언론노조는 “정부 대책 발표 4일 만에 <화유기> 제작현장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안전불감증과 법 위반 관행은 계속되고 있다”며 “정부가 종합대책에 따라 드라마 제작현장에 대한 집중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위험요소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