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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금강 수문을 여니, 멸종위기종 '호사비오리'가 날아왔다


호사비오리는 러시아 극동, 북한과 중국에 걸쳐진 장백산맥 등 동아시아의 추운 북쪽지방에서 알을 낳고 한반도 남쪽이나 중국으로 내려가 겨울을 보내는 철새다. 수컷은 붉은 부리에 머리가 까맣고, 뒤통수쪽 깃털이 부스스하게 뻗쳐 있다. 이 오리는 지구상에 3600~6800마리만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레드리스트(위기종 목록)’에 올라있는 멸종위기종이다. 러시아 숲이 사라지고 밀렵이 횡행했던 탓이다. 국내에서도 멸종위기종 2급, 천연기념물 448호로 보호받고 있다.

이 새가 최근 금강에 날아왔다. 꼬리끝을 빼고는 온몸이 황갈색인 황오리도 7년만에 돌아왔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된 뒤 사라졌던 철새들이, 수문을 연 뒤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세종보 수문을 개방한 후에 금강의 생태가 조금씩이나마 제 자리를 찾아갈 조짐을 보인다. 4대강 사업이 완공된 2012년부터 매달 한두차례 현장조사를 해온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정책국장은 “최근 조사에서 황오리, 참수리, 호사비오리 등을 발견했다”고 14일 밝혔다.

지난해 11월 금강 세종보의 수문이 열린 뒤,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호사비오리가 금강에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가 검은 것이 수컷, 노란 것이 암컷이다. _ 대전환경운동연합 제공


금강 합강리는 세종보 상류에 위치한 곳이다. 2012년에 강물을 물그릇에 담듯 제대로 흐르지 못하게 막아놓은 보가 설치된 뒤 이곳의 물흐름은 정체됐다. 대전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금강의 평균수심은 약 80㎝였다. 그런데 이곳을 파고 수심 4m에 이르는 보를 만드니 물이 느려진 것이다. 대학시절부터 조류 탐조를 했다는 이 국장은 “합강리 일대는 해마다 기러기 5000여마리가 찾아오는 내륙의 중요한 철새 도래지였는데 4대강 사업 이후 이곳을 찾는 철새가 10분 1 이하로 줄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4대강 보 7곳의 수문이 열리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환경부는 세종보 수문을 개방해 ‘물그릇’의 수위가 최저로 낮아질 때까지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세종보의 수위는 4m에서 2.5m 정도로 낮아졌다. 정부는 금강의 공주·백제보, 낙동강의 합천창녕보, 영산강의 승촌보도 수문을 열었다. 낙동강 창녕함안보는 생활용수를 취수할 수 있는 정도, 영산강 죽산보는 최저수위보다 조금 높은 하한수위에 이를 때까지 강물을 흘려보냈다.

수문을 열어 시간당 2~3㎝ 높이로 강물이 줄어들게 하는 데에 열흘가량 걸렸다. 그러고 나서 금강에선 작지만 확실한 변화가 보였다. 무엇보다 그간 정체돼 있던 강의 흐름이 맨눈으로 보기에도 빨라졌다.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진 모래톱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모래톱 위에선 여러 철새가 날아와 쉰다. 먼저 황오리가 7년만에 처음 보였다. 이 국장은 “금강의 작은 모래톱에서 서식하던 황오리 200여마리는 2010년 이후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발견된 황오리는 단 두 마리 뿐이었지만 그는 “생명의 강으로 회복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모래톱에서 쉬고 있는 참수리도 발견됐다. 물고기를 잡아먹는 참수리는 천연기념물 243호로, 야생생물보호법에 정해진 1급 멸종위기종이다. 4대강 사업 뒤에도 매년 금강을 찾기는 했지만 이번엔 모래톱에서 쉬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전엔 보지 못했던 세계적인 희귀종 호사비오리도 왔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이 이곳에서 확인한 호사비오리는 약 6마리다. 이 국장은 “수문 개방 뒤에 찾아온 겨울철새는 금강의 희망”이라면서 “녹조와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하고 물고기 30만마리가 죽어갈 때 절망을 보았는데, 지금은 희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