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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철새도 로밍한다...AI 계기로 본 철새들의 달라진 이동패턴

청둥오리 암컷(왼쪽)과 수컷. _ 경향신문 자료사진

윤기 있는 짙은 녹색 머리나 갈색 얼룩무늬를 지닌 몸길이 50~60㎝의 오리. 겨울 초입에 들어서면 추운 북쪽지방에서 한국으로 내려오는 대표적 겨울철새인 청둥오리 암컷과 수컷이다. 강가나 논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오리들이 이번 초겨울엔 평소만큼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면 예민한 관찰자라 할 수 있다. 청둥오리를 비롯해 오리와 기러기류 등 겨울철새들의 한국 방문이 전반적으로 늦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8일 국립환경과학원과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야생조류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 검출 경향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겨울철새들의 도래가 예년보다 한 달 안팎 늦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 철원 평야, 전북 고창의 동림저수지 등 겨울철새가 주로 찾는 곳들을 조사해 보니 2016년 10월에는 약 50만마리가 한국을 찾은 데 비해 지난해 10월에는 38만여마리로 줄었다. 11월에는 2016년 동월보다 30만마리가 줄어든 60만마리가 왔다. 전년 동월 대비 뚜렷한 감소세다. 그러다 12월엔 2016년 동월의 119만마리와 비슷한 수준인 108만마리가 집계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정원화 생물안전연구팀장은 “전반적으로 겨울철새가 우리 땅을 한 달 정도 늦게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015년 1월5일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후평리 한강 하구 지역에 큰 기러기 무리가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2015년 1월5일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후평리 한강 하구 지역에 큰 기러기 무리가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올해 한국 도착이 늦어진 철새는 주로 청둥오리, 큰기러기 등 오리·기러기류였다. 국립생물자원관은 1999년부터 매년 1월에 한국을 찾는 겨울철새 현황을 파악해왔다. 하지만 AI가 대규모로 확산됐던 2014년부터는 10월부터 매달 조사를 한다. 그 덕분에 겨울철새가 한국을 찾는 시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 철새들은 중국 동북부나 러시아 혹은 북극해 주변에 살다가 추위가 심해지면 상대적으로 온화한 한반도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 새들이 왜 올겨울엔 늦게 날아왔을까. 정 팀장은 “겨울이 다 지난 뒤 분석을 해봐야겠지만 고위도 지역과 우리나라의 기상 여건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관계자 역시 “단정 짓기는 이르지만 이번 월동기 초반에 북쪽 기온이 평소보다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철새의 이동 패턴이 바뀌면서 AI 바이러스 검출 경향도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예년에는 중부지방의 야생조류에서 먼저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는데 올해는 11월13일부터 순천, 제주 등 남부에서 먼저 나왔다. 이어 12월13일부터 중부지방인 용인, 천안, 안성의 야생조류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정 팀장은 “청둥오리, 큰기러기 등 전반적으로 겨울철새 이동이 늦어진 가운데 북극해에서 날아와 한국의 남해안과 제주에서 잠시 머무는 홍머리오리, 고방오리는 평소처럼 왔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겨울 남부지방에서 먼저 확인된 AI 바이러스는 홍머리오리에서 나왔다. 정 팀장은 “철새들이 늦게 이동해 온 까닭에, 2월까지도 AI 경계령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 예찰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겨울철새의 경로를 추적하는 데는 인공위성과 이동통신망이 쓰인다. 100마리 남짓한 표본 철새에 발신기를 달아 인공위성이나 이동통신망으로 위치자료를 송신받는 식이다. 이동통신의 경우 최근엔 국경을 넘으면 스스로 ‘로밍’이 되는 발신기가 개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