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윤경 기자
“길고양이 사료 및 물주기 근절을 위해 홍보하여 왔으나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주거환경을 저해하는 동물의 먹이주기는 삼가시기 바라며….”
서울 용산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협조문을 지난해 11월 게시했다. “차량훼손, 배관훼손, 환경오염, 안전사고 발생 등으로 입주민 생활에 많은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였다. 이어 12월엔 “근절이 안 되고 있다”면서 길고양이 돌봄으로 인한 환경오염, 시설물파괴를 다시 언급했다. 첫 협조문에선 비둘기도 거론했지만 12월 협조문을 보면 타겟이 ‘길고양이 보호활동’임이 명확해진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한 시민의 제보로 9일 공개한 내용이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말라는 내용의 아파트관리사무소 협조문 _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화면 캡처
길고양이 돌봄 활동을 반대하는 이들은 이 협조문과 같이 ‘다른 주민이 피해를 입는다’는 논리를 자주 내세운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서 고양이 돌봄활동을 해 온 제보자는 “잡히지 않는 2마리를 제외하고 전부 TNR(중성화)했고 번식을 할 수 없으니 개체수는 오히려 줄고 있다”면서 “먹이도 밤에 주고 새벽 출근길에 바로 치우기 때문에 먹이가 남아 부패하거나 해충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길고양이 돌봄 활동이 다른 주민들에게 피해를 초래하느냐는 사실 오래된 논쟁거리다. 고양이 먹이가 길가에 버려져 있는 등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은 문제라면 그나마 갈등 해소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봉사자가 청소 뿐 아니라 중성화수술로 개체수를 줄이는 등의 노력을 다하는데도, 고양이 돌봄 그 자체가 다른 주민에게 폐를 끼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경우엔 갈등을 풀기가 어렵다.
일단 카라 측은 서울 용산의 이 아파트를 직접 찾아가 ‘길고양이, 새, 해충이 모여든다’ ‘먹이 잔여물이 부패한다’ ‘아파트 시설물이 훼손된다’는 관리사무소 측 주장의 사실관계를 살폈다.
카라 활동가들은 1시간여 동안 단지 내를 살피는 동안 새를 5마리 확인했다. 또 단지 내 두곳에서 고양이가 새를 사냥한 흔적이 발견돼 오히려 길고양이에 의해 조류 개체수가 조절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길고양이에 준 먹이의 부패로 인한 피해는 사실일까. 카라 활동가들은 이곳의 ‘케어테이커’들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공간인 단지 내 정자를 찾았다. 카라 활동가들은 이곳에서 먹이 잔여물이나 해충은커녕 고양이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카라는 길고양이 돌봄활동을 펼치는 자원봉사자들을 ‘캣맘’이나 ‘캣대디’가 아니라 ‘케어테이커(Caretaker)’라고 부른다.
카라 활동가들은 또 시설물 훼손 주장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아파트 지하실 창문과 배관을 살폈으나 훼손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구체적인 상황 파악을 위해 경비원도 인터뷰했다. 경비원 세 사람은 각각 “고양이는 거의 안보인다” “가끔 보이지만 새끼고양이는 보지 못했다” “어쩌다 한마리씩 보인다. 이 아파트는 고양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주민과 상인들의 답변도 대동소이했다.
카라는 현장조사를 끝낸 후 “관리사무소 협조문이 부당하고, 오히려 주민들의 갈등을 유발한다고 판단해” 이 아파트의 관리사무소에 해당 협조문의 게시 중단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상태다.
물론 카라 활동가들이 방문조사로 확인하지 못한 이 아파트 주민들의 피해사례가 있을 수도 있다. 또 길고양이에 대한 호오가 갈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생명을 보살피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돌봄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길고양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길고양이 돌봄을 둘러싼 주민들간 갈등을 해결할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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