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9 김원진 기자
이정민씨(31·가명)는 수화기 너머로 100명이 넘는 ‘고객님’들의 목소리를 하루 8시간씩 꼬박 듣는다. 통화는 평균 3분, 길게는 50분까지 이어진다.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는 사람, 반말하는 사람, 생떼를 쓰는 사람을 비롯해 100명의 기분을 맞추려면 적절히 ‘쿠션’도 줘야 한다. 쿠션은 고객에게 양해의 말을 에둘러 표현한다는 뜻의 업계 은어다. 쿠션을 주지 않거나 공감을 충분히 표하지 않으면 업무 평가에서 감점을 받는다. 평가 점수가 낮으면 이듬해 급여에 영향을 받는다.
이씨는 서울 강남의 한 온라인 도서판매업체 콜센터 상담 노동자다. 올해로 3년차인데 정규직은 아니다. 동료 100여명은 모두 여성이고, 한두명 외에는 다들 비정규직이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8시간이다. ‘진상’ 손님과 1시간 가까이 통화를 마친 뒤에도 숨 돌릴 틈은 길어야 1분. 연말연시 성수기에는 화장실도 순번을 정해 가야 한다.
그가 소속된 회사는 지난해 상반기 매출이 2000억원을 넘어섰고 전년 대비 영업이익도 두 배로 뛸 만큼 성장하고 있다. 이씨가 받는 급여는 월 170만원 남짓, 1분 단위로 지급되는 야근수당과 토요일 반근 수당까지 더한 액수다. 이 회사 정규직들은 연간 3000만원 넘게 받는다. 이씨는 “일이 고되다 보니 들어온 지 2년도 안돼 나가는 사람들이 많고, 10년 경력이 있어도 월급은 3~4년차와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중장년 이상의 세대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씀씀이가 헤프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사니까 돈을 못 모으지”라는 말을 흔히 한다. 벌이에 맞춰 살면 된다는 얘기다. 쥐꼬리 월급을 받으며 결혼조차 머뭇거리는 청년들은 “아이 낳고 맞벌이하면 다 먹고살게 된다”는 조언도 자주 듣는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잘살게 된다는 것은 고도성장 시절엔 ‘진리’였다. 연차가 쌓이면 월급이 늘었다. 가정을 꾸리고 콩나물값까지 아껴가며 모으면 아파트 평수를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수출경제가 세계적인 저성장에 가로막힌 지금은 통하지 않는 얘기다. 미국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식당 종업원, 치매환자 요양시설 도우미, 월마트 매장직원, 청소원 등 여러 일을 직접 체험해보고 쓴 책 <노동의 배신>에서 “중산층은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절약법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한다. 안락한 집과 자동차, 안정된 일자리와 건강보험이 없는 저소득층은 이런 것들을 갖춘 사람들보다 오히려 생활비를 더 써야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매일 100명에게 전화로 시달리고, 하루에 환자 15명의 근육을 풀어주면서 한 달에 200만원 안팎을 받는 이들의 가계부에 적힌 숫자를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이들은 윗세대의 생각과 달리 월급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여유나마 누리며 살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그들은 얼마를 더 벌고 싶어할까. 돈을 더 번다면 어디에 쓰고 싶어할까.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올해 한국의 한 달 최저임금은 157만3770원이다. 이 돈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을까. ‘생존’을 넘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생활임금, 적정임금, 기본소득 같은 개념이 한국에서도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우리에겐 얼마만큼의 임금이 필요할까.
“카페인과 초콜릿 없인 못해요”
이씨가 전화 상담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반품돼 온 물건을 확인하고 포장해야 할 때도 있다. 간혹 상품이 품절됐는데 고객이 “어떻게 해서든 보내달라”고 요구하면, 이씨는 다른 유통업체에 전화를 걸어 재고를 확인한다. 재고가 있으면 먼저 사비로 구입한 뒤 고객에게 퀵서비스로 보낸다. 물건값은 회사에서 충당해준다. 한 달에 30건씩 들어오는 미회수 물품 처리도 상담원 몫이다.
불량상품이나 파손상품을 돌려보내지 않는 고객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야 한다. “분명히 물건을 보냈는데 무슨 소리냐”는 고객이 있으면 관리자에게 보고를 한다. 관리자가 교환 승인을 해주면 이씨는 고객에게 사과하고 다시 물건을 보낸다. 그는 “결정할 권한은 하나도 없는데 최전선의 총알받이처럼 욕은 우리가 먹는다”고 했다.
전국의 콜센터 상담노동자는 40만~50만명으로 추산된다. 2013년 서울시와 금천구가 저임금 여성노동자 5000명을 조사한 ‘금천 여성건강관리사업 보고서’를 보면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 716명 중 절반이 넘는 366명이 ‘고위험 감정노동’에 노출돼 있었다. 일하는 시간과 야근 여부, 우울증 유병률 등 22개 항목 가운데 14개 항목에서 ‘최악 수준’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전화 통화 씨름에 지친 이씨의 버팀목은 카페인과 당분이다. 그의 하루 ‘고정지출’에는 3500원짜리 아메리카노와 1000원 안팎의 하리보 젤리, 허쉬 초콜릿이 포함돼 있다. 한 달에 22일 근무한다고 치면 적어도 9만9000원이 커피와 달달한 군것질거리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는 유독 딱딱한 초콜릿과 질긴 젤리만 찾는다. “우적우적 뭔가 씹으면 그래도 기분이 좀 나아진다”고 했다.
사무실이 번화가 한복판에 있어 하루 식비 또한 적어도 8000원가량 들어간다. 본사에는 상대적으로 값이 싼 구내식당이 있지만 정규직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다. 가끔 지출을 줄이려고 편의점에서 4000원 안팎의 도시락을 사먹기도 한다. 주말과 평일을 합쳐 한 달 식비는 40만원이 나간다. 통신비는 4만원, 교통비는 8만원씩 쓴다. 부모님께 용돈 20만원을 드린다. 부모님이 적적함을 달래려 키우는 반려견에도 사료값 따위로 10만원 가까이 들어간다.
오롯이 자신을 위해 쓰는 돈도 있다. 한 달에 복싱 강습 10만원, 책을 사고 영화를 보는 비용 10만원이 나간다. 이씨는 문화생활비 대부분을 자신이 속한 업체에서 쓴다. 최우수등급 회원이기도 하다. 기관지가 안 좋아 방에 공기청정기가 있는데 필터값이 분기마다 4만원씩 들어간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 달에 50만원씩 적금도 들고 있다. 그에게 적금은 유일한 저축성 지출이다. 이씨는 “아직 부모님과 살고 있어 월세를 아낄 수 있으니 적금이라도 넣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은 유튜브로만
170만원을 받아 이런 지출을 하고 나면 끝이다. 요새는 연애도 안 한다. 누군가에게 정서적으로 기대거나 버팀목이 돼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다. 그 덕에 돈은 좀 굳었다. 이씨는 “연애라도 했으면 못해도 한 달에 10만~20만원은 분명 더 썼을 텐데”라고 했다. 그는 흔한 암보험이나 실비보험도 들지 못했다. 근래 건강이 안 좋아진 것 같아 검진을 한 번 받았더니 30만원 훌쩍 넘는 진료비가 청구됐다. 목돈 30만원을 고스란히 병원비로 냈다.
이씨는 “몇 천원 차이 때문에 살까 말까 머뭇거리는 내 모습에 비참해질 때가 있다”고 했다. 음악 스트리밍이 대표적이다. MP3 다운로드·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패키지에 가입하려면 1만2000원가량을 내야 한다. 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만 신청하면 7000원 정도다. 그래서 스트리밍으로만 음악을 듣는다.
물티슈나 샴푸도 싼 것만 고른다. 도심 복판의 사무실은 닦아도 닦아도 먼지가 끼는데,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이니 두꺼운 물티슈로 싹싹 닦고 싶지만 그마저도 아까울 때가 많다. 미용실 가는 횟수도 1년에 두세번으로 줄였다. 옷 쇼핑은 안 한 지 두 달이 넘었다.
정지현씨(28·가명)는 지난해 말 친구와 함께 듣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해지했다. 그 대신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에서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 무료로 음악을 듣다 보면 중간중간 광고가 나온다. 월셋집의 와이파이 신호가 약해 노래는 자꾸 끊긴다. 정씨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정씨는 서울 강북의 한 요양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5년차 작업치료사다. 물리치료사는 기구를 쓰는 치료와 전기치료 등을 주로 하지만 작업치료사는 근육 마사지 같은 기본 물리치료와 함께 장보기·머리감기처럼 일상생활 복귀를 위한 치료도 병행한다. 지난 5일 오전, 정씨가 일하는 요양병원 2층 치료실에는 스무명 남짓한 환자들이 작업치료사, 물리치료사들에게 치료받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환자도 있고, 매트에 누운 채 근육 마사지를 받는 환자도 있었다. 보조기구를 잡고 보행 재활훈련을 하는 이들도 보였다. 정씨는 오전 내내 일흔 살이 넘는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종아리와 허리, 손목을 자극해주는 치료를 했다.
그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일하며 하루에 환자 15명을 치료한다. 밥 먹는 시간 1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손과 발의 근력을 써서 힘껏 환자의 근육을 눌러야 한다. 자신의 어깨나 허벅지로 거동하기 힘든 환자를 부축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그러다 보면 정작 정씨의 몸 이곳저곳이 쑤셔 온다.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리면 혼자 왼손으로 주무르고, 손이 닿지 않는 등 근육이 뭉치면 동료에게 마사지를 부탁한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손이 얼얼하고 몸이 너덜너덜해진다”고 했다. 그러니 퇴근 이후나 주말에는 뭔가를 해볼 여력이 없이 그저 쉬어야 한다.
지금도 빠져나가는 학자금 대출
정씨는 최근 80㎏이 넘는 환자를 부축하다 오른 발목을 삐끗했다. 하는 수 없이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주 1회 도수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한 번에 10만원이지만 실비보험을 들어놔 9만원은 보험사에서 환급받는다. 정씨는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동료 20명 중 절반이 손목, 발목, 어깨, 허리 통증 때문에 물리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업무 스트레스로 감기와 함께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와 부인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근무 중에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일은 다반사다. “젊고 예쁜 아가씨가 만져줘서 좋아”라거나, 통증 부위가 아닌데도 성기 아래쪽을 가리키며 “주물러달라”는 남성 환자들이 있다. 정씨는 “치매 환자에게 뺨을 맞은 적도 있고 치료 중에 은근슬쩍 가슴을 만지시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이런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대가로 그는 지난달 기본급과 추가근로수당을 더해 189만원을 받았다. 경력이 더 오래된 선배 작업치료사의 월급도 정씨보다 10만~20만원 많을 뿐이다. 그나마 더 주는 것도 병원 측에선 꺼려 한다. 그는 “병원은 경력 있는 치료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가구특성별 소비지출액 비중’을 보면 1인 가구는 주택(25.5%), 음식·숙박(13.6%), 교통(11.9%), 식료품(11.6%)에 돈을 많이 썼다. 오락·문화(5.9%)나 교육(2.6%) 비용은 적었다.
혼자 사는 정씨의 씀씀이도 비슷하다. 전북에서 올라온 그는 서울에서 “189만원을 가지고 가까스로 한 달을 버틴다”고 했다. 18㎡ 단칸방 월세가 19만원이고 관리비 12만원을 따로 내야 한다. 교통비 7만원, 통신비 10만원, 생활비 25만원이 들어간다. 거기에 월세 보증금을 내려고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갚자니 원금 30만원과 이자 8만원이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대학 때 받은 학자금 대출도 여전히 달마다 10만원씩 갚아야 한다. 부모님께는 15만원씩 드린다. 이밖에 병원비가 대략 10만원, 할부로 내는 치아교정비 19만원도 매달 들어간다.
생활의 안전망을 만들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도 있다. 실비보험(3만7000원), 암보험(1만2000원)과 주택청약(2만원), 연금보험비(20만원)로 매달 27만원가량 나간다. 고교 동창들과는 3만원짜리 계를 만들었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5만원을 내고 명상원에 다닌다. 시민단체에 매달 1만원씩 후원도 한다.
통장에 구멍이 난 건 지난달이었다. 예상에 없는 경조사비 30만원이 빠져나갔다. 연말에 친구들 결혼식이 몰려 지출 규모가 커졌다. 자동이체되는 적금 20만원을 급히 경조사비로 끌어다 썼다. 적금 자동이체를 풀고, 부족한 돈은 비상금 통장에서 꺼내 썼다. 정씨는 “이제 비상금 통장에도 20만원밖에 남지 않았다. 다음달에도 적금을 다시 붓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달 352시간 노동한 대가, 270만원
눈이 쏟아지는 한겨울 도로에서, 누군가는 밤을 새우며 일을 한다. 시민들 출퇴근 길에 도로가 얼지 않도록, 아스팔트가 뿌옇게 변할 만큼 염화칼슘을 뿌리는 것이다. 박형우씨(41)는 지난달부터 한국도로공사와 계약을 맺고 고속도로 제설작업에 투입됐다. 덤프트럭에 제설장비를 싣고 대기하다가 눈이 내리면 현장으로 이동해 제설작업을 돕는 게 박씨의 일이었다. 눈·비 올 확률이 30%가 넘으면 하루 종일 도로공사 작업대기실에서 대기해야 했다. 이달 초 전국에 폭설이 내렸고, 그는 덤프트럭으로 제설기계와 염화칼슘을 운반한 뒤 도로 위에서 직접 눈을 녹였다.
덤프트럭 운전사 박형우씨는 올겨울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려 눈을 녹이는 일을 했다. 제설장비를 싣고 트럭에서 대기하면서 박씨가 찍은 사진에 눈 덮인 도로가 보인다. 지난해 12월 밤낮없이 일해 받은 돈은 420만원 정도인데 트럭 할부금과 고정비용을 빼니 270만원이 남았다. 사진 박형우씨 제공
어는 점을 낮춰 눈이 녹게 하는 것만으론 안 된다. 녹은 눈이 얼어붙지 않도록, 노면이 마를 때까지 계속 대기해야 한다. 닷새에 한 번씩은 24시간 당직도 섰다. 일주일 동안 집에 못 들어간 적도 있다. 도로공사에선 따로 식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대기실에 있는 컵라면으로 대부분 끼니를 때운다.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박씨는 바퀴 10짝 달린 15t 덤프트럭 운전사다. 그는 요즘 말 그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다. 일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다. 밤이든 낮이든 일할 기회가 오면 가리지 않고 공사발주업체와 계약을 맺어야 네 식구가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다섯 달 동안 서울 강남의 한 관공서에서 하수구 교체 작업을 했다. 한달 중 일한 날은 보름가량. 쉬는 날이 많지만 업체 한 곳과 계약을 하면 그 기간에는 다른 업체와 계약하기 어렵다. 공사 일정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공식 작업시간은 오후 9시부터 오전 4시였다. 박씨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주차장소에서 덤프트럭을 움직여, 작업에 필요한 흙과 배관·골재를 싣고 다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오후 5시쯤 집에서 나와야만 했다. 오후 8시30분쯤 공사 현장에 도착하면 작업 준비를 한다. 실어온 자재를 내려놓는다고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밤새 현장 노동자를 도와 삽질, 빗자루질, 자재 운반을 해야 한다. 여름에는 몇 시간만 일하면 몸에서 쉰내가 난다. 새벽 4~5시에 일이 끝나도 바로 집에 갈 수 없다. 폐기물들을 다시 싣고 집하장에 들러야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밤새워 일하고 하루 일당 40만원을 받았다.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여서 야간근로수당은 없다. 덤프트럭은 1.5㎞에 1ℓ씩 기름이 필요하다. 하루에 기름값만 8만~10만원가량 들어간다. 일거리를 중개해주는 사무실에 매달 20만원씩 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20만원씩 하는 바퀴와 엔진오일도 갈아줘야 할 만큼 차량 소모비용도 크다. 하루에 40만원을 받아도 이씨가 손에 쥐는 돈은 28만원 정도다. 이씨는 “한 달에 쥐는 돈이 420만원 정도인데 여기서 덤프트럭 할부 150만원과 각종 고정비용을 빼면 아내에게 생활비로 250만원 주기도 벅차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밤낮 없는 대기시간과 노동시간을 포함해 총 352시간을 작업 현장에 있었다. 그렇게 일한 대가는 480만원이다. 트럭 할부비용과 고정비용을 빼고 270만원을 벌었다. 도로공사에서 기름값을 보전해줘 그만큼이라도 벌 수 있었다.
“노후는 생각할 수 없어요”
박씨 부부는 맞벌이를 하는데도 생활이 빠듯하다. 박씨는 “노후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버는 생활비 250만원과 부인의 월급 230만원으로 고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 두 아들과 함께 산다. 매달 고정비용으로 59㎡ 크기 임대아파트 월 임대료 30만원과 관리비 20만원이 나간다. 네 식구 통신비와 차량유지비를 합치면 100만원 가까이 된다. 외식을 거의 하지 않지만 식비도 100만원 넘게 들어간다. 방학 때면 두 아들 학원비도 120만원가량 내야 한다. 양가 부모님들에게 드리는 용돈 60만원, 보험료 17만원, 옷값 등등 27만원을 합하면 매달 지출은 500만원이 넘는다. 얼마 전에는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었다.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려 눈이 녹게 한 뒤에는 얼어붙지 않도록 노면이 마를 때까지 다시 대기해야 한다. 그사이 박형우씨를 비롯한 작업자들은 대기실에 있는 컵라면으로 배를 채운다. 사진 박형우씨 제공
박씨는 미안한 마음에 용돈을 따로 쓰지 않는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고 남은 돈으로 식비와 접대비, 덤프트럭 유지비를 쓴다. 생활비를 빼고 나면 남는 돈이 없어 그동안 조금씩 모아둔 돈까지 끌어 쓰고 있다. 박씨는 “일감을 따려면 건설업자들에게 꾸준히 저녁 식사 접대를 해야 한다. 한 달 접대 비용만 해도 50만원은 될 것”이라고 했다.
시민단체 간사인 장희준씨(32·가명)는 아직 함께 사는 가족은 없지만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다. 시민단체들이 대개 그렇듯 그의 임금은 많지 않다. 일한 지 4년째인 그는 세후 월급 170만원 정도를 받는다. 그는 월급을 5분의 1씩 나눠 쓴다. 집세와 공과금으로 5분의 1을 쓴다. 식대와 교통비에 5분의 1, 데이트 비용과 여가생활 그리고 다른 시민단체 후원비에 5분의 1을 쓴다. 적금에 5분의 1, 통신비와 경조사비에 5분의 1씩을 쓰면 남는 월급은 없다.
당장 먹고살기에 큰 문제는 없다. 다만 미래가 걱정이다. 머지않아 결혼할 생각인데 지금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빠듯할 게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장씨는 “성취감이나 개인의 성장이라는 소득이 있긴 하지만 월급을 적게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열정페이’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결혼을 하고 살아가려면 월 200만원만 넘게 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내면 월 250만원? 300만원 정도 받으면 정말 먹고살 만할 것 같다”고 했다.
콜센터 상담원 이정민씨는 “고객에게 욕설을 듣는 비용, 감정노동을 하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한 달에 500만원은 받고 싶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러기 어려우니 더도 덜도 바라지 않고 다달이 250만원만 받고 싶다”고 했다. 작업치료사 김지현씨도 “솔직히 말하면 300만원은 받고 싶다. 일에 쏟는 에너지와 마음 관리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액수는 250만원 정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50만원은 주 40시간 기준 올해 한 달 최저임금 157만3770원보다 100만원가량 많은 금액이다. 연봉으로 따지면 3000만원이다. 물가와 주거비 등을 반영한 올해 서울시 생활임금은 시간당 9211원, 한 달 192만5099원이다. 힘들게 일해 번 돈으로 아끼며 살아가는 이들이 생각하는 ‘살 만한 월급’은 그것과 60만원 정도 차이가 나는 셈이다.
'적정임금'은 얼마일까
이진우씨(33·가명)는 2013년 9월부터 석 달 동안 호주 시드니의 메리어트 호텔에서 일했다. 맡은 일은 청소와 룸서비스였다. 손님들이 쓴 수건을 처리하고 보조 베드를 설치하는 일도 했다. 하루 8시간 일하고 15호주달러, 약 1만2700원의 시급을 받았다. 한 달에 최소 25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까지 벌었다.
방 하나 얻어 월세를 내고도 저축을 할 수 있어 모은 돈으로 호주 여행도 했다. 그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일한 것이어서 월급이 적었지만 현지인들은 같은 일을 하면서 당시 시간당 22호주달러(약 1만8650원)를 받았다.
이씨는 “대학교 1학년 때 한국에서 ‘노가다’를 했는데 하루 11시간씩 일해 일당 5만원을 받았다. 온갖 ‘시다바리’(잔심부름)를 하는 경험 없는 막내여서 더 적었겠지만, 주 엿새를 일해도 집세를 내고 이것저것 쓰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아마 지금 한국 호텔에서 호주에서 했던 일과 같은 일을 해도 150만원 정도밖에 못 받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형우씨는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대기시간과 노동시간을 포함해 352시간을 현장에서 보냈다. 근무시간표에 '4호 352시간'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다. 사진 박형우씨 제공
법에 정해진 대로 하루 8시간을 일하고, 돈을 모아 휴가 때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임금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정부는 공공분야에서 최저임금과 서울시 생활임금을 상회하는 ‘적정임금’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공공기관이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적정임금을 지급하도록 노력할 것을 명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에서 정의한 적정임금은 ‘노동자가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며 최소한 문화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이다. 먹고사는 데 들어가는 돈 외에 책 사보고, 영화 보고, 여행 갈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렸다.
올해 하반기부터 정부 산하기관이 맡은 사업에서 일부 건설 노동자를 대상으로 적정임금제를 시범 운영한다. 하지만 아직 적정임금의 개념이 불분명하고 직종별 적정임금의 하한선과 상한선도 명확하지 않아 앞으로 관계부처 사이에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하는 이들이 꿈꾸는 월급, 그리고 바라는 만큼 소득이 늘어나면 하고 싶은 소망에 정부 관료들이 결정할 적정임금 범위의 힌트가 숨어 있다. 콜센터 상담원 이정민씨는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아직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그는 “월급이 250만원 정도 되면 여행 적금을 모아 엄마를 모시고 가까운 일본에라도 한 번 가보려 한다”고 말했다. 덤프트럭 운전사 박형우씨는 “모든 걸 다 떼고 월 350만원만 쥐면 좋겠다. 그 정도만 매달 들어오면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 애들이 원하는 국내 도시로 1박2일 여행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작업치료사 정지현씨는 “통장에 ‘빵꾸’만 안 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다음주에 조카 돌잔치가 있는데 요새 너무 쪼들려서 돈은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고향에 내려가기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걱정하지 말고 내려오라고 했지만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돈이 없어서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돈 걱정이 심할 때는 연애마저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걱정 없이 사람을 만날 정도의 월급은 받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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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①월급의 재구성···‘영끌 연봉’에 울고 웃는 사람들 (0) | 2018.01.21 |
[기자메모-시험사회]개천은 어디고 용은 누구인가 (0) | 2018.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