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4 김상범 기자
지난해 6월은 유독 더웠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기온이 31도까지 치솟은 날, 급식조리사 박현희씨(가명·47)는 그곳에 있었다. 주위는 연두색, 분홍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로 온통 울긋불긋했다. 급식실, 행정실, 도서실 등 공립학교 구석구석에서 그림자처럼 일하는 비정규직들의 조끼다. 급식실에 있을 때보다는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아이들 밥 걱정이 뒤통수를 잡아당기더라고요.” 2012년 이후 해마다 열려 온 학교 비정규직들의 파업. 박씨는 여기 나가 본 게 처음이었다. 급식실 일을 한 지 6년 만이었다.
박씨는 경기도 광명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하루 여덟 시간 일한다. 둘째 낳을 때까지 했던 간호조무사 일보다 근무시간이 길진 않다. 그러나 노동 강도는 몇 곱절이다. 급식실은 뭐든지 대량이다. 식재료 꾸러미 하나하나가 몇십㎏에 이른다. 신도시에 지어진 학교는 대개 공간이 널직널직하다. 급할 땐 숨이 차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익어가는 음식물을 태우지 않으려면 커다란 주걱으로 쉼없이 저어 줘야 한다. 뜨거운 솥과 세척기에서 나오는 열기로 급식실은 50~60도를 쉽게 넘나든다.
99 대 1 지난해 6월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 1만원 쟁취와 비정규직 철폐 등을 요구하는 사회적 총파업 사전대회가 열리고 있다(위 사진). 2016년 12월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대기업 총수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이다. 이들이 그해 받은 보수를 모두 더하면 390억4536만원이다. 김승연 회장은 당시 배임으로 집행유예 상태라 등기이사를 사임해 보수를 받지 않았다.
“솔직히 조리사라는 거 별거 아니다. 그 아줌마들, 그냥 동네 아줌마, 밥하는 아줌마들.” 어느 국회의원은 박씨를 비롯해 파업을 하는 조리사들을 가리켜 그렇게 말했다. 막말은 박씨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이 발언에 여론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그럼에도 박씨와 동료들은 움츠러들었다. 그게 사회 평균의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밥하는 아줌마들’ 비아냥까지 들으면서 박씨가 올려받은 돈은 연간 근속수당 7만원이었다. 월 기준으로 하면 5833원 늘었다. 그 돈을 받기 위해 뙤약볕에 파업을 하고, 모욕감을 참아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적잖은 수의 노동자들은 힘겨운 협상을, 시위를, 파업을 해야 한다.
‘을들의 전쟁’. 누가 더 받고 덜 받느냐를 놓고 흔히 벌어지는 싸움이다. 일자리를 놓고, 급여를 놓고, 이익금의 배분을 놓고 을들끼리 싸워야 한다. 보수 진영이라 불리는 이들은 늘 의도적으로 그렇게 전선을 긋는다.
노동의 대가는 얼마만큼이어야 할까. 먹고살만 해야 한다. 최소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는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책정된 돈이 최저임금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그래서 생활임금, 적정임금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정당한 대가’에는 다른 기준들이 더 있다.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다. 더 나아가, 이익을 거뒀을 때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누가 어느 정도를 가져가는 것이 공정한 것일까.
연봉협상을 거쳐 직원 급여가 정해지는 기업들은 많지만 이른바 ‘오너 일가’라 불리는 이들이 챙겨가는 돈의 액수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직원들도 잘 알지 못한다. 월급 많이 받는 대기업 노조원들은 ‘귀족노조’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정규직이 되게 해달라는 비정규직들의 외침은 “입사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자들이 특혜를 요구한다”는 비난에 부딪친다. 노동자들이 ‘투쟁 조끼’를 입고 힘들게 조금이라도 제 몫을 더 받으려 싸울 때 ‘1%의 가진 자들’이 얼마를 가져가는지는 시야에서 가려진다.
배추·무 취급 받는 급식 노동자
박씨는 아침 8시까지 출근해 점심 시간까지 5명이 400인분을 만든다.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전에 다녔던 학교에서는 6명이 800인분을 만들었다. 점심 배식을 끝내면 다리와 손은 후들후들, 온몸은 땀으로 흥건하고 얼굴을 벌겋게 익어있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일당은 5만3120원, 시급으로 계산하면 6640원이다. 지난해 최저시급보다 170원 많다. 방학에는 급식실도 닫기 때문에 연 근무일수는 275일, 여기에 일급을 곱한 뒤 12개월로 나눈 게 급식실 종사자들의 월 기본급이다. 121만원. ‘다행히’ 박씨는 조리실무사들의 중간관리자 격인 조리사 직급이라 수당 6만원이 더 붙는다.
월급 명세서는 복잡하지 않다. 기본급과 수당 서너개. 기본급은 교육청이 ‘알아서’ 올려 주는 유일한 돈이다. 선의가 아니다. 올려주지 않으면 최저임금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씨 임금이 오르려면 첫째, 법정 최저임금이 올라야 한다. 파업에 나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당시 파업은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을 앞두고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캠페인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받고 사는 사람에게 사회적 요구와 개인적 요구의 경계선은 뚜렷하지 않다. 둘째, 각종 수당을 올리는 방법이다. 이번에는 근속수당이었다. 매년 월급이 자동으로 오르는 교사와 공무원만큼은 아니지만, 그들과의 격차가 줄도록 조금만 더 달라는 것이었다. 연차가 1년 늘어날 때마다 주던 가산금 2만원을 3만원으로 올려 주고, 상한선을 높여 달라고 했다.
기본급은 어쨌든 최저임금을 따라 올라간다. 관건은 근속수당 1만원 인상이었다. 이 돈을 받으려면 1년 가까이 교육청과 줄다리기 해야 한다. 양선희씨(52)는 김씨가 다니는 학교와 멀지 않은 중학교 급식실에서 일한다. 학교 비정규직노조인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의 광명시 지회장이다. 지난 한 해 교문을 나서기 무섭게 교육청과의 교섭장에 쫓아다녔다. “임금 요구부터 시작해 상견례, 본교섭과 실무교섭 15차례가 넘어요. 사실상 1년 내내 교섭을 벌이는 거죠.”
‘더 달라’와 ‘돈 없다’가 반복되는 지리한 협상보다 견디기 어려운 건 세상의 시선이다. 교육청 과장들부터 학교의 교장·교감, 행정실장들까지 모두 ‘아이들 먹일 돈’만 이야기한다. “아이들 먹일 돈에서 떼 주는 거 아시죠.” “학생들 입에 덜 들어가는 건 생각해 봤나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급식실 인건비는 인건비가 아니다. 학교 회계비의 식품비 항목에서 나간다. 식품비를 관리하는 영양사들은 간혹 “여사님들 월급 올라서 단가가 안 맞는다”라며 골치를 싸매기도 한다. “우리가 채소입니까”라는 한숨이 나온다. “인건비는 인건비로 따로 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상처를 정말 많이 받거든요.”
지난해 3월 시작한 교육청과의 줄다리기는 연말에 마무리됐다. 지난해 12월 박현희씨 통장에 근속수당 7만원이 더 들어왔다. 딱 박씨의 경력(7년)만큼 늘었다. 세금 떼고 각종 공제를 하고나면 명세표에 찍힌 돈은 135만원. 작년 월 최저임금이다. 파업과 기나긴 협상을 거쳐 얻어 낸 돈이다.
“사람답게 살려면 200만원은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박씨는 그나마 맞벌이지만 동료 중엔 혼자 가계를 꾸리는 이들도 많다. 고무장갑을 벗어던지자마자 치킨집이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부업을 뛰는 사람도 있다. 낙상, 화상, 골절의 위험은 도처에 널려있지만 험한 일을 견뎌내는 수당은 고작 5만원. 보험회사들은 급식조리원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보험료가 6~7만원 높다. 상당수가 어깨, 허리, 무릎의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산다. 조리사들이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이유다. 연간 수십만원에 달하는 통증주사, 침, 물리치료 비용은 고정비용이나 다름없다.
135만원으로는 보통 사람으로 살기 부족하다. 박씨는 노동의 가치를 말했다. 받는 돈이 적으면 세간의 평가도 박해진다. 배추와 무 취급을 받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생리다. “아이들이 ‘엄마, 우리 학교는 일하러 오지 마’ 하는 경우도 있대요. 연배 드신 분들일수록 그냥 회사 다닌다, 주부다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자식들한테 당당하지만, 아무래도 주위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볼 거라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죠.” 무형의 가치를 평가하는 지표는 숫자로 찍히는 돈밖에 없다. 팍팍한 생계만큼이나 박한 세상의 평가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자존감을 깎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남편도 아직 박씨가 정확히 얼마를 버는지 모른다. 박씨가 말하지 않았다.
‘답정너’인 한국식 연봉협상
지난해 말 서울에 있는 한 정보기술(IT) 중소기업의 회의실 풍경. 책상을 사이에 두고 부서장 ㄱ씨와 살짝 긴장한 최정은씨(가명·26)가 마주 앉았다. “정은씨, 요즘 회사 다니기 어때요. 별 일 없죠?” “네, 별 일 없습니다” “잘 됐네요. 이건 내년 연봉 계약서니까 여기에 사인 하시고….”
내 노동의 ‘원가’는 얼마일까. 시장에서의 가격은 수요선과 공급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고 경제학 책에는 적혀 있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격은 임금이며 이 또한 같은 원리를 따른다. 책에나 등장하는 X자 수요공급 곡선을 직장인들이 피부로 느낄 때는 연봉협상 시즌이다. 연봉제를 택한 기업들은 직원들을 상대로 다음 해 연봉을 정하는 협상을 한다. 직장인들이 본인의 성과(상품의 가치)를 임금(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최씨는 “처음에는 이게 협상인 줄도 몰랐다”고 했다. 부서장이 “연봉계약서 쓰러 오라”며 회의실로 따로 부르길래 사인을 했는데, 동료들과 얘기를 해보고 나서야 그게 연봉협상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입사 3년차, 두 번의 계약서를 쓰고 난 뒤였다. 회사에서는 연봉에 대해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다. 선배도, 동료들도, 아무도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직원 개개인의 아이디어와 역량이 조직에 곧바로 반영되는 회사,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회사일수록 연봉제를 시행하는 곳이 많다. 최씨가 개발자로 일하는 IT회사 역시 업계 대부분이 그렇듯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 해 동안 만든 프로그램과 코딩 등 실적을 바탕으로 회사와 밀고당기기를 해야 하건만, 실상은 3분 동안 쓸데없이 안부를 물은 뒤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계약서에는 올해보다 150만원 오른 내년 연봉이 적혀 있었다. “친구 말로는 메일로 원하는 금액을 적어 보내라는 회사도 있고, 저처럼 통보하듯 하는 곳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최씨는 “이사님들끼리 얘기해서 정해 놓은 금액 아닐까요”라며 “200만원만 올려 줬으면 했는데 말도 못 꺼내보고 받을 돈이 결정나버렸네요”라며 웃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업계와 회사에서 알아주는, 헤드헌터들이 탐내는 인재들은 원하는 액수를 놓고 진짜 협상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봉계약은 돈 주는 쪽, 즉 회사가 열쇠를 쥐고 있다. 직원 스스로 자신의 고과가 몇 점인지, 어떻게 결정됐는지 잘 모른다. 회사 실적과 재무상황에도 깜깜이다.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대등한 협상이 이뤄지기는 어렵다. ‘답정너 연봉’, ‘무늬만 협상’이라는 볼멘소리가 들려오는 이유다.
사실 사업주도 해마다 직원별로 얼마를 올려줄 지 정하는 것보다 일괄 기준을 따르는 쪽이 편하다.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의 기업들이 직원 성과평가에 따라 연봉을 조정하고 성과급을 정하는 연봉제를 도입했지만, 실제로는 직급과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사실상 호봉제’로 운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노조가 있으면 단체교섭으로 인상폭을 결정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은 명쾌한 공식이 없다. 나라에서 정하는 최저임금에 맞춰 기본급을 올려주거나 회사 사정에 따라 정한다.
한 대기업 그룹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회사가 맨 처음 설립된 수십년 전으로 돌아가 봅시다. 고급 인재가 경쟁사로 가지 않을만큼, 생활수준을 보장할 만큼을 회사 사정에 맞춰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금액으로 결정했을 겁니다. 어느 정도 회사의 골격이 잡히고 업계 규모도 커지면 좀 더 정밀해지긴 하지만, 특별한 산식은 없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500만원 줬는데 경쟁사에서 700만원 줬다고 하면 우리도 좀 높여 주는 거죠. 직원들 불만 안 나올 정도로 기본급을 잡고, 나머지는 수당이나 복리후생으로 채워줍니다. 인수합병을 하면 형평성을 맞춰주는 경우도 있고요. 업계 눈치보기와 ‘이 정도는 줘야 사람이 오겠다’는 기본 틀은 같습니다.” 한마디로 임금을 올려주는 ‘근의 공식’ 같은 것은 따로 없다는 말이다.
연봉 8000만원이면 귀족 노동자?
“현대차 최악 위기에 노조는 새해 초부터 파업” “생산라인 세우고 임금은 받고···현대차 노조 ‘신종 파업’”. 포털 검색창에 ‘현대차 노조 파업’을 치면 나오는 기사들이다. 댓글창에는 “강성노조도 적폐다” “답이 없는 이기주의, 그냥 해외로 공장 이전해라” 같은 원색적 비난이 달린다. 이제는 ‘귀족노조’를 넘어 ‘황제노조’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대기업 공장의 정규직. 1980년대 후반 노동조합 운동의 물꼬를 텄던 이들은 어느덧 한국 사회의 임금격차와 갖은 불평등을 유발하는 장본인으로 낙인찍혔다. 매년 관성적으로 벌어지는 파업, 임금협상 결렬, 다시 파업…. 돌고 도는 레퍼토리에 짜증을 내는 이들이 늘어난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정말 현대차 노동자들은 분에 넘치게 많이 받는 것일까. 이들이 높은 임금을 달라고 ‘생떼를 쓰면’ 사측이 어쩔 수 없이 ‘출혈을 감수하며’ 들어주는 것일까. 지난해 현대차노조는 30년만에 처음으로 임금·단체협상(임단협)을 연내 타결하지 못했다. 기본급 5만8000원 인상, 성과급 300%와 일시금 300만원 등의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됐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이 예년보다 낮은 인상폭에 불만을 느꼈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하영철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조합원은 예년보다 성과급 등이 적어 불만을 가진 조합원도 일부 있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임금 외적인 부분에 있었다”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단체협약 내용에 노동강도를 높이는 조항이 있었던 것”이고 “임금보다는 노동강도가 강해지는 데 대한 현장 기술직들의 반발이 심했다”라는 것이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임금인상을 얼마나 요구할 수 있겠느냐”라는 회의적인 정서가 많았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자료를 보면, 회사 매출액과 순이익 성과일시급 지불능력은 항상 비례했습니다. 실제 타결금액은 오로지 그 안에서만 움직였어요. 노조가 파업을 하니 더 주고 그런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회사는 매년 ‘노조 등쌀에 해외로 공장을 옮기겠다’라며 엄살을 부리지만 손해를 보면서도 임금을 올려주는 기업은 없다. 노동자들은 늘 회사의 손바닥 안에 있다. 현대차 노동자들이 전체 임금 노동자들 가운데 상위 그룹에 속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강하다는 이 회사 노조도 월급을 올리기가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는 않다.
‘고졸 생산직이 감히’라는 인식도 비난 여론에 한몫한다. 같은 대기업 소속이라도 사무직이나 연구직 등 소위 화이트칼라 직군에 ‘귀족노조’ 딱지를 붙이지는 않는다. 하 국장은 “가져가는 몫으로 치면 금융권 직원이 더 많고, 삼성처럼 성과가 나면 자동으로 임금에 반영해 올려주는 곳도 많다”라고 했다. 오히려 그는 파업을 하며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를 지적했다. “현대차는 교섭을 하지 않으면 임금을 올려 주지 않습니다. 임금이 저절로 오르는 호봉제도 2006년에야 도입했습니다. 임금이 동결되더라도 물가상승률만큼이라도 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물가가 오르는 만큼 안정적으로 임금이 오른다면 매년 파업까지 해가면서 교섭을 할 필요도 없죠.”
회장님 연봉 기준은 ‘1급 비밀’
현대차는 지난해 수출 부진같은 핑계라도 있을지 모르지만, 회사가 눈부신 성과를 냈어도 월급은 소폭 오르거나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9월 광화문 LG 본사 앞을 100여개의 텐트가 가득 메웠다. LG생활건강의 임금협상이 진척되지 않자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본사 앞으로 몰려든 것이다. 치약과 화장품 따위를 만드는 공장 생산직들, 그리고 그 상품을 판매하는 면세점 직원들이었다. LG생건은 중국과의 사드 갈등에 수출이 줄고 내수 부진 악재를 만났지만 지난해 3분기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 이들은 “성과를 낸 만큼 회사가 구성원들에게 임금인상으로 보상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업은 52일간 이어졌지만 큰 소득 없이 끝났다. 회사와 노조는 인상률 3%와 12%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결국 회사가 낸 수정안 5.25%를 노조가 받아드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노조는 “5.25%에서 호봉상승률 등을 빼면 실제로 인상한 것은 1%에 불과하다”고 했으나 그 선에서 결정됐다.
소득은 자본소득과 사업소득, 근로소득으로 나뉜다. 상품을 만들어낼 회사도, 지대를 얻을 건물이나 땅도 없고 내다 팔 것은 두뇌와 신체밖에 없는 사람들은 모두 근로소득자다. “밥하는 아줌마”라고 욕설을 들어가며 파업하는 급식 조리원들, ‘답정너’ 연봉협상에 풀이 죽는 직장인들, 졸지에 귀족과 황제가 돼버린 대기업 노조원들 모두 남의 일을 해 주고 그 대가로 먹고사는 근로소득자다. 이들을 연소득에 따라 낮은 순에서 높은 순으로 도열하면 왼쪽은 낮고 오른쪽은 급격히 높아지는 ‘서저동고’ 형태의 곡선이 나타난다. 편의점 파트타이머에서 중소기업 계약직, 대기업 정규직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최정상에 위치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에서 이 ‘최정상 그룹’이 받는 정확한 몫이 알려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2013년 자본시장법이 개정된 이후에야 연간 5억원 이상을 받는 등기임원들의 급여 내역이 공개됐다. 상·하반기 사업보고서가 모두 공개된 2016년 기준으로 국내 경영인 중 가장 많은 급여를 받은 임원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현대차에서 53억400만원, 현대모비스에서 39억7800만원 등 총 93억8200만원을 받았다. 정 회장은 2014년부터 3년 연속 가장 많은 보수를 받았다. 손경식 CJ 회장이 82억원, 허창수 GS 회장 74억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66억원 순이었다.
대개 지배주주 일가인 이들 경영자들과 일반 직원과의 격차는 수십~수백배다. 정 회장이 받아간 보수는 현대차 직원들의 56배, 현대모비스 직원들의 48배다. 격차가 가장 큰 임원은 영원무역홀딩스의 지배주주 성기학 이사였다. 퇴직금 138원을 포함해 직원 평균임금의 613배인 141억6000만원을 받았다. 경제개혁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상위 10명의 임원은 직원 평균보수와 격차가 약 85배~200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들은 모두 주식회사다. 원칙적으로 주주가 권한을 위임한 이사회에서 성과보수위원회 등을 가동해 임원 보수를 결정한다. 하지만 액수만 공개됐을 뿐 그 ‘산식’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현대차 사업보고서를 보면 정 회장이 받아간 보수는 “직무·직급, 근속기간, 회사기여도, 인재육성 등을 고려한 임원급여 테이블 및 임원 임금 책정기준 등 내부기준에 의거해 지급했음”이라고 돼 있다. ‘내부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현대차 관계자는 “주주총회에서는 전체 임원들의 연봉 총액 한도만 정해지고, 실제 액수는 내부 규정에 따라 정한다”라며 “산정 기준은 비공개”라고 밝혔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경영인들의 연봉, 특히 지배주주 일가의 연봉을 계산하는 기준은 ‘1급 비밀’로 분류한다.
1대 99의 격차
경영계에서는 국내 임원 연봉이 해외 기업과 비교하면 적다고 주장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글로벌 기업의 위상에 비하면 많이 받는 편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경영성과에서 경영진이 기여한 것과 직원들이 기여한 것이 진짜로 급여수준 격차만큼 차이가 나는지, 회사 내 소득 최상위 그룹과 일반 직원의 갭이 정당한지에 대한 물음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지표만 놓고 봐도 그렇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해 8월 발표한 ‘임원보수의 성과연동 분석’ 보고서에서 주가, 총자산이익률, 총자산영업이익률, 총자산대비 영업현금흐름 등 일반에 공개된 4개 지표를 가지고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2015년부터 2년간 보수증가율이 가장 높은 임원은 GS의 허창수(155.13%),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조양래(138.2%), 두산의 박정원(124.17%)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성과지표에 비해 보수의 상승폭이 과도해 뚜렷한 연관관계를 찾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창민 연구위원은 “기업 내부에서 평가하기에는 충분한 성과라고 판단할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사업 공시 등에서 객관적인 지표 없이 애매모호하게 설명하다 보니 그 결정 과정을 알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깜깜이 연봉협상’을 하는 직장인들처럼 최상위 그룹의 연봉도 노동의 가치를 면밀히 평가하지 않은 채 불투명하거나 불합리한 방식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상위 그룹이 받는 몫이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얼마나 심화시키는지에 대해 지적해 왔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엔 부(富)를 독식하는 1%에 대한 반발이 ‘월가를 점령하라’ 같은 시위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한국의 불평등을 설명하는 데에도 ‘1%가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한 요소가 돼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2년마다 ‘세계임금보고서’를 내는데, 2016년 보고서에서는 CEO·고위 임원과 일반 직원 간 격차처럼 기업 내부의 격차가 사회 전체의 임금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주 요인으로 등장했다고 썼다. 한국은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더불어 “고위 경영진에 대한 보상체계에서 미국과 가장 가깝게 닮아가고 있는 나라”로 꼽혔다. 더군다나 한국 기업들은 미국처럼 전문경영인이 최소한이나마 실적을 가지고 주주들에게 평가를 받는 시스템도 아니다.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2015년 쓴 <자본주의를 구하라:상위 1%의 독주를 멈추게 하는 법>에서 이렇게 썼다. “급여가 자기 가치를 반영한다고 여전히 믿는 사람이라면 지난 30년간 일반 근로자와 비교해 미국 대기업 CEO의 급여가 치솟은 까닭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두 집단이 받는 급여의 비율은 1965년 20대1에서 2013년 296대1로 벌어졌다.
라이시는 전문경영인과 기업 고위 임원들이 어떻게 스톡옵션을 통해 거액을 챙겼는지, 실적이 저조하거나 심지어 회사를 ‘훌륭하게 망가뜨리고도’ 수백만 달러를 거머쥐었는지 설명한 뒤 되묻는다. “그만한 가치가 있으므로 보상을 받는다는 무의미한 말을 제외하고 CEO에게 엄청난 보수를 받을 만한 가치가 정말 있을까?” 소득분포곡선의 왼쪽에 위치한 이들끼리,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과 그 바로 위 계층끼리 밥그릇 싸움을 벌이기 앞서 한국에서도 던져봐야 할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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