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글이 올라왔다. “얼마 전 일하던 회사가 문 닫고 새로 일을 구하는데 눈에 들어온 게 오토바이 배달대행이네요. 이쪽은 잘 몰라서 고민돼요. 건당 2500원에서 4000원 정도, 오토바이는 하루 5000원에 대여하고 건당 100원씩 차감, 콜 프로그램 사용료 100만원당 3만3000원 차감, 근무시간은 자유. 평균 300만원 이상은 벌어가고 진짜 돈에 미쳐서 하는 한두 명은 700만원 이상 가지고 간다고…. 의심도 드는지라 경험해 보신 분들 조언 부탁드립니다.”
누리꾼들이 남긴 조언은 이랬다. “종일 일하시면 평균 3000원 25개 정도 해요. 베테랑은 30개 이상, 진짜 미친 사람들은 40개 정도. 30개 잡고 밥값, 콜비, 대여료, 쉬는 날 빼면 월 150만~200만원 정도. 그런데 사고율이 무지 높아요. 두 개씩 묶어가야 해서 시간이 촉박. 그냥 덜 벌더라도 다른 일 하세요. 사고 나서 일 못하면 더 손해예요.” “열심히만 하시면 돈 됩니다만, 열심히 다니던 기사가 종종 사라져요….”
판매자와 구매자,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주목받는다. 승객과 운전자를 잇는 우버, 콘텐츠와 시청자를 잇는 넷플릭스, 집주인과 숙박객을 연결해주는 에어비앤비는 이미 세계인의 삶 깊숙이 들어왔다. “글로벌 4대 플랫폼 기업(페이스북·애플·구글·아마존) 총시가총액은 910조원” “디지털 혁신 주역은 대부분 플랫폼 기업” “플랫폼 비즈니스는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라는 찬사만 보면 새 시대를 여는 메시아처럼 보일 정도다.
쏟아지는 찬사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노동이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플랫폼 노동은 배달대행이다. 동네 중국집과 피자집에서 일하던 배달 노동자들은 배달대행업이 퍼지면서 ‘사업자’가 됐다. 중국집에 고용된 배달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적용받지만 짜장면·치킨·피자·보쌈이나 사무실 문서, 옷 보따리, 그 외 온갖 종류의 배송물을 나르는 ‘라이더’는 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
계약의 형태는 경제 패턴이 변하면서 계속 바뀐다. 식당 주인과 배달원 사이의 고용계약은 배달대행업체와 라이더가 맺는 ‘사업계약’이 됐다. 이들의 사업계약은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기사나 퀵서비스 기사들의 계약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국내 배달대행업체 바로고의 ‘라이더 준수 약관’은 사실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만든 ‘퀵서비스 표준약관’과 거의 같다. 다른 점이라면 퀵서비스 표준약관 제1조가 “이 약관은 배송사업자와 고객 간 공정한 배송거래를 위해 그 계약조건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 반면, 라이더 준수 약관 제1조에는 “이 약관은 바로고와 고객 간 공정한 배송거래를 위해 그 계약조건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제1조를 제외한 나머지에서 ‘바로고’라는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바로고의 의무나 책임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라이더의 책임을 규정하는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배달원, 이제는 ‘라이더’라는 사업자
“저희 서비스를 이용하면 골치 아팠던 라이더 구인에 힘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문이 없어도 고정으로 나가던 라이더 인건비 부담은 줄고 주문이 들어오면 라이더가 시간 맞춰 상점에 도착해 효율적으로 배송합니다.” 한 배달대행업체가 내건 광고 문구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플랫폼 노동이 어떤 방식으로 고용을 바꾸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배달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면 식당 주인은 더 이상 배달 알바를 구할 필요가 없다. 고정으로 나가던 기본급이나 상여금, 각종 수당과 4대 보험, 퇴직금 부담도 없어진다. 배달을 하다 다쳐도 병원에 보내거나 산재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사장에게는 직원한테 주던 ‘월급’이 대행업체에 지불하는 ‘가격’으로 바뀔 뿐이다. 기업이 핵심 기능을 제외한 일자리를 외부로 돌려 직접고용을 줄이는 일을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은 저서 <균열 일터(Fissured workplace)>에서 ‘고용 털어버리기’라고 불렀다. 예전엔 전문경영인과 고숙련 엔지니어, 생산직 노동자와 청소원, 건물 관리인과 경비원이 한 기업에 고용돼 일했다. 하는 일은 달라도 회사가 얻은 수익을 함께 나눴다. 지금은 각기 다른 회사에 속한 엔지니어, 생산직 노동자, 청소원, 경비원이 같은 곳에서 일한다.
플랫폼 노동만이 아니다. 기업은 수익을 내는 핵심 기능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하청, 위탁경영, 프랜차이징 등을 이용해 회사 밖으로 넘기고 있다. 프로젝트형 고용계약, 주문형 거래, 외주화와 임시직 채용도 모두 기업이 비용을 줄이려 노력하면서 나온 결과다. 노동자는 ‘사람’이 아닌 ‘비용’으로 계산된다. 와일은 기업이 노동조합 결성을 막고, 실업보험과 산재보험 같은 노동비용을 줄이고, 차별이나 성희롱 혹은 부당해고로 생기는 회사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고용을 다른 업체로 “털어버린다”고 했다.
청소노동자를 직접고용하면 회사가 ‘임금’을 정해야 하지만 하청업체로 넘겨버리면 회사는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경영 원칙과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구조가 만날 때 노동의 값은 싸진다. 미국에서 실질임금이 줄고 고용안정이 떨어지고 복지혜택이 줄어드는 업종, 근로기준법 위반이 잦고 노동여건이 악화된 산업은 “식당·숙박업·청소용역 서비스·제조업·건설·홈헬스케어 등”이었다.
고용의 틀을 바꾸는 자본
고용은 변하고 있는데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사회보장제도 등은 새로운 형태의 고용계약을 보호하지 못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임금을 더 주느냐 마느냐는 과거의 패러다임이다. 기업은 프리랜서나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형태 종사자 등 고용형태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비표준적인 계약관계’로 규제를 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법정 근로시간을 얼마나 줄이느냐, 가산임금에 포함하는 수당을 어떻게 정하느냐, 고용안정성을 어떻게 보장하느냐 하는 문제는 한국의 근대적 고용체계에서 벌어진 논쟁일 뿐이며 앞으로는 쟁점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인 배달대행 기사한테는 시간당 임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성과에 연동된 보수체계로 움직이는 이들의 노동은 분·초 단위로 짜이고 실행된다”고 했다. 그는 “자율성이 늘어났다는 착시 속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보다 더 심각한, 노동자를 보호하는 기존 법과 제도에서 이탈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표준적 계약’과 기술 혁신이 결합하면 임금 결정 과정에서 기업과 원청의 입김이 더 많이 반영될 가능성은 커진다. 고용계약이 사업계약이 되면 노동자는 법으로 보호받는 노동자의 지위를 잃지만, 사용자는 책임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고용을 계속할 수 있다. 노동의 대가는 이런 과정에서 계속 줄어들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조사한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점유율의 추이’에서 이런 추세가 숫자로 확인된다. 전체 부가가치를 100으로 볼 때 임금소득 하위 90% 집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 46.6%에서 2010년 38.8%로 7.8%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임금소득 상위 10% 집단의 비중은 16.0%에서 20.1%로 올랐지만 2006년 이후 정체 또는 소폭 하락했다.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의 소득 비중은 17.3%에서 8.5%로 반토막 났다. 반면 자본소득은 20.2%에서 32.5%로 12.3%포인트 뛰어올랐다. 임금 격차보다 더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자본과 노동의 격차였다. 노동의 몫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있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 이후 자본과 노동의 간극 확대에 제동이 걸릴까, 아니면 더 빨라질까.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지금까지의 추이가 뒤집힐 것이라 기대할 만한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간극은 4차 산업혁명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산업 일자리’는 저임금 사회복지사
스마트의류 개발자, 착용로봇 개발자, 드론 운항관리사, 스마트도로 설계자, 공유경제 컨설턴트, 사물인터넷 전문가, 빅데이터 전문가, 인공지능(AI) 전문가, 가상현실 전문가, 로봇 윤리학자, 개인 간 대출 전문가, 스마트팜 구축자. 언뜻 봐서는 무슨 직업인지 잘 알 수 없는 이런 직종들은 한국고용정보원이 제시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유망직업’들이다. 앞으로 노동시장에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니 넉넉한 보수를 받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뜻이다.
현실은 관측과 거리가 멀다. 가장 많이 생기는 일자리는 사회복지사다.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2026 중장기 인력수급전망’을 보면 이 기간 새로 취업하는 이들 189만8000명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은 21개 대분류 중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으로 55만9000명(29.45%)이었다. 세부항목에서는 보육시설·종합복지관·사회복지 상담서비스 등 비거주 복지시설 운영업 취업자가 24만7400명으로 가장 많았고 병원 취업자가 15만6000명으로 뒤를 이었다.
4차 산업혁명이 이끌 긍정적 변화도 감지된다. 취업자 수 증가 2위인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은 기술혁신 추세가 반영된 업종이다. 그러나 이 분야 취업자 수는 21만8000명으로 전망돼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세 번째로 취업자가 많이 늘어나는 산업은 제조업(21만7000명)이지만 이는 취업자 수 자체의 증가폭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 취업자가 연평균 2.7%,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 취업자가 1.8% 늘어날 때 제조업은 연평균 0.5%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과학 전문가와 제조업 종사자만큼 많이 늘어나는 것은 카페 알바, 상점 종업원이다. 4·5위를 차지한 도소매업(20만5000명)과 숙박·음식점업(17만3000명)은 2·3위와 큰 차이가 없었다. 도소매업에서 취업자 수 증가폭이 큰 업종은 약국·안경점·중고상품점 등 기타 상품 전문 소매업(13만8000명)과 기타 전문 도매업(3만2800명)이었다.
숙박·음식점업 취업자 증가를 견인하는 것은 대부분 주점 및 비알코올음료점업(13만8800명)인데 이는 전체 숙박·음식점업 취업자 증가분의 80%를 넘는다.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은 다른 산업보다 저임금 일자리가 많다. 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보면 2016년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의 평균 월급여액은 235만4000원으로 전체 21개 산업 분류 중 15위, 도소매업은 272만2000원으로 11위, 숙박·음식점업은 188만4000원으로 꼴찌였다. 반면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은 365만9000원으로 3위, 제조업은 298만4000원으로 8위였다.
불안정 노동도 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2017년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를 보면 전체 비정규직 842만7000명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숙박·음식점업(111만4000명·13.21%)이었다. 두 번째는 도소매업(108만3000명·12.85%)이었고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은 6위(75만7000명·8.98%)였다. 개별 산업 내에서 보면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 종사자의 41.0%, 도소매업의 46.8%, 숙박·음식점업의 76.8%가 비정규직이었다.
노동의 미래상 없는 한국
“2020년까지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진다”는 세계경제포럼(WEF)의 보고서나 국민 10명 중 9명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에 동의했다는 얘기 등 기술혁신과 일자리에 쏟아지는 잿빛 전망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자동화된 국가다. 세계로봇협회(IFR)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16년 한국의 로봇집약도는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631대로 2010년 이후 7년째 세계 1위다.
한국에서 로봇 일자리가 늘어나게 한 주된 분야는 전기산업과 자동차산업이다. 자동차산업은 노동자 1만명당 2145대의 로봇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2009년의 1057대에서 2배로 늘었다. 보고서는 하이브리드 차량과 전기차의 배터리 공정에 로봇이 많이 투입된 것으로 보았으며, 2020년까지 한국에 수입되는 로봇이 18만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추세라면 ‘자동화 1위 국가’ 타이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자리가 사라져도 이곳에서는 다른 일자리가 생길 테니까요. 회사가 우릴 챙길 겁니다.” 한국 사람의 말이었다면 좋겠지만 아니다. 스웨덴 볼리덴 광산에서 일하는 미카 페르손(35)이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스웨덴 정부의 메시지는 더 선명하다. 이바 요한슨 고용통합부 장관은 “일자리가 사라지면 우리는 사람들을 훈련해 새 일을 구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일자리를 지키지는 않겠지만, 노동자는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연방노동사회부는 ‘산업 4.0’에 이어 ‘노동 4.0’을 발표하면서 바람직한 미래의 노동상을 제시했다. ‘노동 4.0 백서’ 서론에서 안드레아 날레스 연방노동사회부 장관은 “고용주의 노동유연성에 대한 요구와 노동자들의 요구 간에 정당한 협상이 이뤄지길 원한다. (중략) 노동시장 참여, 투명하고 정당한 임금체계 구축도 우리 목적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기술혁신과 노동의 변화를 코앞에 둔 국가들은 여러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관련 부처 공무원들의 말은 이렇다. “자율주행 기술로 생기는 일자리 수나 임금 수준에 대한 검토가 없는 걸로 안다. 시장과 산업의 규모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보니 일자리와 임금에 대해서도 정교한 연구 결과가 없다.” “태동 단계에 있는 시장이라 기존 틀로 분석하기 어렵다. 임금 수준은 물론, 양질의 일자리가 될지도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구 구조의 변화로 서비스업 종사자가 많이 늘어나는 건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지 않겠나.”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한다며 스마트시티와 자율주행 기술, 드론산업 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 일하게 될 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별 얘기가 없다.
줄어드는 노동 몫, 분배로 메꿔야
‘인천공항공사 좋은 일자리 자문단’ 자문위원을 맡았던 이원재 LAB2050 대표는 최근 페이스북에 “공무원·공기업 러시는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기술혁신이 초래할 고용시스템의 변화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지만, 노동시장의 가장 예민한 관계자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고 봤다. “기계를 파괴하는 대신 기계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피신하는 것, 가장 젊고 유능한 이들이 신분이 보장된 직장으로 향하는 현상은 ‘좋은 일자리 없는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그는 “향후 고용의 변화는 기술혁신으로 생산시스템이 사람의 노동을 벗어던지는 데에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저임금 일자리와 고용 불안정은 지금껏 우리 사회가 밟아온 길이자 앞으로 걸어갈 어두운 길이다. 다음 창업자인 이재웅 소풍 파트너는 ‘노동의 몫’ 대신에 ‘사회의 몫’을 주장하자고 했다. 개인의 돈벌이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공공의 재분배 기능으로 보완하려면 “이익을 챙기는 기업의 부담이 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와 똑같은 규모의 매출을 올려도 직원 수가 절반도 안되는 건 소수 혁신가와 자본가가 이익을 모두 가져가기 때문”이라며 “법인세나 혁신세, 로봇세 등의 방법으로 국가가 개입해 분배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기술혁신이 창출하는 모든 부는 자본가에게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정치권도 공유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016년 6월 일명 ‘살찐고양이법’을 발의했다. ‘살찐고양이법’에는 당해 최저임금보다 민간 대기업 임직원은 30배, 공공기관 임직원은 10배, 국회의원·고위공직자는 5배 이상 받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는 노조를 만들 권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성별 임금 격차, 법과 제도의 보호 밖으로 밀려난 노동자들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지난 세기의 가치조차 완전히 보장하지 못해 다툼이 벌어진다. 그사이 세상은 숨가쁘게 변해간다. 20세기의 과제들과 21세기의 과제들을 함께 풀어가야 하는 처지다. 제도가 바뀌는 것보다 더 빨리 우리가 하는 일의 형태와 고용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운용해온 제도를 조금 뜯어고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김영선 연구위원은 “임금을 높이고 법을 개정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해 현 체제의 규칙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과 임금의 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에는 또 다른 소득체계와 사회보장체계가 필요하다. 기존 법 제도를 덧대는 방식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확장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아동과 청년, 노인을 아우르는 적극적인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되면 임금 교섭력이 없는 노동자도 고용 여부나 근로조건과 무관하게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며 “기술혁신 때문에 일한 대가를 보장받을 수 없다면 임금 변동과 무관하게 모두가 안정된 생활을 누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람의 밥그릇은 사람이 결정해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나란히 참여해 투명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사람의 밥그릇은 결국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노조의 중요성’을 말한다.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임금 협상일지언정 그나마 이끌고 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노동자들이 뭉쳐 오래된 기본권을 활용할 때에만 나온다. 2016년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3%. 2003년 이후 단 한 번도 10%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핵심은 협상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술혁신의 주도권을 쥔 이들, 플랫폼을 소유한 이들이 노동의 대가를 정하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면서 전통적인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가 재편되고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교섭력을 공공 차원에서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드론과 인공지능이,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에 미칠 영향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비관론과 “언제나 그랬듯 기술의 혁신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긍정적 전망이 엇갈린다.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마차가 사라지고 마부들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자동차산업이 생겨 엄청난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낙관론자들은 말한다.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 이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마부들이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기계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될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정부가 정책을 준비하고, 일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갈 방법을 찾지 않으면 답은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모호함 탓에 미래의 노동을 주제로 하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보고서나 학계의 논문이나 미래예측 서적들은 위기, 부침(浮沈), 변화, 난관, 과제, 기회 같은 추상적인 표현들로 채워져 있다.
일자리가 줄든 늘든, 임금이 깎이든 오르든 사람은 노동의 대가로 삶을 잇는다. 4차 산업혁명이 뒤엎을 노동시장에서 일한 대가는 어떻게 정해질까. 자율주행버스 운행자, 드론조종시스템 관리자, 스마트의류 개발자들은 종전처럼 일한 시간에 맞춰 단위시간당 임금을 기준으로 월급을 받을까. 미래에도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려 기업에 고용되고, 임금에 현격한 차이가 날까. 반도체 하나에 미치는 사람의 손길이 점점 줄어든다면 그 사람이 받는 임금도 줄까.
이미 현재와 겹쳐지기 시작한 미래, 하지만 노동의 대가를 짐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산업과 상품을 놓고 ‘위기냐 기회냐’ 갑론을박하기보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의 노동과 그 대가에 대한 것이다. 임금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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