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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양대 노총 연쇄 회동]문 대통령 ‘노사정 대화’ 물꼬…‘유연안정성’ 구상 첫 제시

2018.1.19 김상범 기자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양대 노총 위원장이 만나면서 지난 20년 가까이 얼어붙은 노사정 대화를 되살리는 작업이 본 궤도에 올랐다. 특히 민주노총 새 집행부가 그간 정부와의 대화를 피하던 태도를 벗고 11년만에 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나면서 ‘거리 좁히기’ 수순에도 들어섰다. 이날 대통령과의 회동을 징검다리 삼아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는 양극화와 미래 일자리 문제 등 숱한 현안을 어떤 틀과 방식 아래서 풀어갈지 머리를 맞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근로기준법 개정 등 노·정관계의 암초를 어떻게 넘어설지는 숙제로 남았다. 아울러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유연안정성’이라는 노동시장 개편 방향을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도 불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언급

문 대통령은 이날 한국노총과 만난 자리에서 ‘노동 유연안정성’이라는 개념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노동 유연 안정성을 위한 산적한 과제가 많이 있다. ILO 핵심 협약 비준과 법 개정을 위해 노동계가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국노총이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노총 지도부와의 오찬 간담회에서 김주영 위원장과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노총 지도부와의 오찬 간담회에서 김주영 위원장과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유연안정성은 유연성과 안정성을 섞은 용어다. 덴마크·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 한때 유행했던 개념이다. 기업에는 고용과 해고의 유연성을 주는 동시에 실업급여·직업훈련 등 사회안전망을 두텁게 만들어 노동자들의 안정성을 보장하자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뒤 이 개념을 입에 올린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민주노총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는 유연안전성을 다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양대 노총은 문 대통령의 유연안정성 발언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지나가는 말’로 했을 뿐 공식적으로 논의를 요청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대통령이 안정성과 유연성 두 가지를 다 말씀하셨다. 특별하게 딱 찍어 의미를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언급을 한 만큼 유연안정성은 향후 노정 대화 테이블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뜨거운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노동계가 ‘쉬운 해고’에 반대하고 있는 데다 한국의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강력한 증세가 필요하다. 

노사정 대화 물꼬 트나

이번 만남을 디딤돌 삼아 지난 11일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이 제안한 ‘노사정대표자회의 개최→새로운 대화기구 마련’의 프로세스도 가동될 것으로 관측된다. 대표자회의는 경총·대한상의와 양대노총, 노동부, 노사정위가 참여하는 6자 테이블이다. 양대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노사정위가 ‘기업 입장만 들어주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노동계 반발을 고려해 장외 테이블에서 신뢰를 먼저 쌓자는 취지다. 

양대노총도 “노사정위를 허물고 백지 상태에서 다시 쌓아올리자”는 정부의 대표자회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은 90%의 노동자를 어떻게 대변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 마련될 사회적 대화체는 비정규직·청년·여성 등의 계층을 폭넓게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새 집’에서 무엇을 논의할지도 대표자회의에서 정한다. 중앙 단위의 대화기구를 넘어서서 산업별·지역별 교섭구조 마련, 노동헌법 개헌 등의 광범위한 이슈까지 이야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첫삽은 떴지만 변수는 곳곳에 남아 있다. 정부·여당이 추진중인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그리고 휴일근로 중복할증을 허용하지 않는 근로기준법 개정은 노동계에서 ‘2대 개악’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모처럼 접어든 해빙무드가 자칫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날 양대노총 위원장들도 대통령에게 두 사안이 “사회적 대화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민주노총의 경우 한상균 전 위원장 석방, 전교조·전공노 합법화 등을 신뢰 회복의 잣대로 보고 있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 위원장 석방 요구에 “분위기와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총 등 사용자단체는 “현 정부의 노동친화적인 정책으로 경영에 어려움이 많다. 경제 주체들의 협의가 필요하다”며 이번 대표자회의를 환영하고 있다. 한국노총도 참석을 확정지었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결단만 남았다. 

청와대 측이 이날 면담 뒤 “민주노총이 이달 중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자 김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일단 선을 그었다. 내부적으로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달 25일로 예정된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 노사정 대표자 6자 회의 참석과 관련해 현안 보고와 토론을 마친 뒤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내부사정을 고려해 당초 24일로 예정됐던 노사정대표자 첫 회의는 한차례 미뤄졌다. 그러나 이달 말 중에는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민주노총 청와대 방문 입장

  • 1월 19일, 오후3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노총 9기 지도부(김명환 위원장/김경자 수석부위원장/백석근 사무총장) 면담이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는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 반장식 일자리수석비서관 등이 배석하였다. 

  • 2007년 이후 약 11년만에 이루어진 대통령과 민주노총 지도부와의 공식 면담은 예정된 1시간을 조금 넘겨 약 70분 간 진행되었고 진행되었다

  • 면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사회 구현에 대한 강한 의지를 위해 재확인하고 노동계와 함께 하겠다는 뜻을 표명하였다. 이를 위해 오늘 면담을 시작으로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주 만나겠다는 뜻을 전하고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의 조속한 복원을 위해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해서는 노동기본권, 노조할 권리의 대폭 신장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사회적 대화를 포함해 산별교섭 활성화, 노정협의 정례화 등의 다양한 교섭과 대화의 필요성과 한상균 전 위원장의 조속한 석방도 거듭 요청하였다. 또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논의하는 시점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노동시간단축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문제와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가 시대역행적으로 흘러가서는 안된다는 점을 전하고, 2월을 새로운 기회의 2월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더불어서 여전히 구시대의 연장선에 있는 장기투쟁사업장의 조기해결 문제를 비롯하여 민주노총 소속 산별노조(연맹)으로부터 취합된 정책협의 요청 의제들을 문서로 전달하였다.

  • 면담을 통해 1월 24일로 예정되어 있는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관련하여 양대노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일정을 순연하고 이후 구체적인 협의를 통해 결정해나가기로 하였다.

  • 민주노총 지도부와의 면담을 시작으로 이후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와 지역본부의 지도부들과 문재인대통령과의 만남 자리를 추진키로 하고 보다 생생한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로 하였다.

<민주노총의 주요 요청 내용>

  • 한상균 전 위원장 석방
    한상균 전위원장 석방 문제는 정치적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 정의와 상식에 관한 문제라는 점에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함

  • 사회적대화 체제·산별교섭·노정교섭(정책협의)
    노동존중사회·노조할권리 보장을 위해 사회적대화기구 재구축 논의 참여 의지. 동시에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산별교섭 활성화와 노정교섭(정책협의) 정례화 필요함

  • 2대 긴급현안-노동시간·최저임금
    노동시간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관련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회와 정부 차원의 논의에 심각한 우려. 현행보다 후퇴한 ‘개악’이라 규정할 수밖에 없음. 이제 막 첫발을 떼려는 노사정 3자대화 및 노정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 

  • ILO 협약비준·노조할권리
    ILO 협약비준을 위한 본격적인 프로세스 진행 촉구. 노동계와도 관련법 개정 방향에 대한 본격 협의 필요. 법 개정 이전에라도, 전교조·공무원노조 법외노조화 철회. 특수고용비정규직 노동자 노조설립 인정 필요함 

  • 노동헌법 개헌
    ‘근로’·‘근로자’ → ‘노동’·‘노동자’ 명칭 정상화, 공무원·특수고용비정규직 노동자·방위산업체노동자 노동3권 보장 등 노동헌법 개헌이 필요함

  •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현장 적용 과정에서 문제점 발생. 광범위한 전환 대상 예외, 노동조합·당사자와 충분한 협의 부재, 처우개선 없는 무늬만 정규직화 등.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위한 중간점검 필요함.

  • 산별연맹 현안·투쟁사업장·해고자 복직 문제
    투쟁사업장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부와 실무협의 진행되고 있으나 일정한 성과도 있었지만 한계가 확인됨. 청와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점검해줄 것을 요청. 또한 산별연맹 현안과 공공부문 해고자 복직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대처해주실 것을 요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