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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돈 벌기

영세기업들에 3조원 규모 ‘일자리안정자금’은 그림의 떡...최저임금 대책, 정부의 딜레마

2017.1.17 김상범 기자

서울 종로구에 있는 전자상거래업체 ㄱ사는 정부의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할 계획이다. 직원 23명 가운데 포장을 비롯한 저숙련 업무를 맡고 있는 7명은 월급이 190만원 이하여서, 신청 요건에 들어맞는다. 이 회사 대표 윤모씨(37)는 “최저임금이 16.4% 올랐는데 7명 인상분이면 사람 한명을 더 채용할 돈”이라며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웹사이트


올해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서 정부의 후속 대책인 3조원 규모의 일자리안정자금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직원이 서른 명이 못 되는 작은 회사에, 올해 월 최저임금의 120%인190만원 미만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1인당 13만원까지 지원해주는 제도다. 인건비가 갑자기 뛰어오르면 영세사업장들이 직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ㄱ사처럼 자금을 신청하려 하는 곳은 드물다. 지원을 받으려면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윤 대표가 고민없이 안정자금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은 회사를 ‘적법하게’ 운영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청 대상 직원 7명은 모두 4대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에 가입돼 있다. 윤 대표는 “법을 지키면서 (보험료같은) 비용을 부담하고도 수익을 낼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운영해 왔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인건비를 줄이는 것 말고는 적자를 면할 길이 없는 ‘한계기업’이 아니다. 판매망과 독자기술을 갖추고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다. 직원 7명에 대해 안정자금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은 월 91만원, 1년이면 1000만원 돈이 된다. 윤씨는 “고마운 돈이지만, 회사의 존립을 가를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일자리 안정기금 지원사업 시행 방안을 발표한 뒤 나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싼 인건비에 기대온 영세업체들은 안정자금 신청을 망설인다. 고용보험에 들어있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71.2%다. 비정규직만 놓고 보면 고용보험 가입자는 44.1%에 그친다. 아르바이트 등 시간제 노동자에게선 23%로 더 떨어진다. 최저임금을 주는 음식점, PC방, 숙박업소, 편의점같은 일자리는 대개 비정규직과 시간제 노동자들이 맡고 있다. 고용보험료는 급여의 1.3%인데, 사업주와 노동자가 절반씩 나눠 낸다. 보통 4대보험에 함께 가입하기 때문에 사업주 입장에서 적은 부담은 아니다.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노동자 스스로 4대보험 가입을 꺼리기도 한다.

직원을 1명이라도 고용했으면 4대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그런데도 저임금 직종에선 4대보험이 제공되는 직장은 ‘괜찮은 일자리’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노무법인 신아의 심규환 노무사는 “생계가 어려워 콜센터 등에서 ‘투잡’을 하는 노동자들은 다른 일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걱정해 4대보험 가입을 거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안정자금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대상이 될 노동자가 300만명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 예산에는 이를 위해 2조9708억원을 편성해놨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들 83%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지원하면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한 인원감축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고용노동부 웹사이트


하지만 정책의 타깃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돼버렸다. 지난 11일 기준으로 안정자금 신청은 1200여건에 그쳤다. 고용보험 가입이 장애물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법을 어기고 4대보험조차 제공하지 않는 업체에 세금을 퍼줄 수는 없다.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서도 고용보험으로 근로소득 총액과 실제 고용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안정자금의 또다른 목적이 고용보험 가입율을 높이는 것인만큼, 영세업체들을 사회안전망 안으로 얼마나 끌어들이느냐가 관건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고용보험료와 국민연금 신규가입 보험료를 최대 90%까지 지원해, 월 157만원을 받는 노동자 1인당 사업주가 부담하는 사회보험료는 월 13만7700원에서 1만7420원으로 줄일 수 있다”며 “영세업체들이 임금을 지급하는 1월말~2월초가 지나면 신청자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