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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중국과 싸우자고? "연구가 국력"...'빨대 비행기'에서 시작된 한국의 미세먼지 항공측정


“이 사람이 아마 저인 것 같네요.”

속이 깊지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그가 25년 전의 사진 한 장을 보여주자 표정이 달라졌다. 프로펠러가 하나인 단발 비행기 선체 바닥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한 사내를 가리키며 그는 멋쩍게 웃었다. 충남 태안에 있는 한서대 비행교육원의 조관표 정비부장은 30년 넘게 항공기만 들여다보고 살아온 기술인이다.

황사를 연구하기 위해 만든 대기오염물질 측정용 비행기 ‘창공’. _ 김동술 경희대 교수 제공


사진 속 소형 비행기의 이름은 ‘창공’. 당시의 한국항공우주연구조합 등이 중심이 돼 1990년대 초에 국내에서 만든 비행기다. 과학자들은 이 비행기 천장에 구멍을 뚫고 관을 꽂아 바깥 공기가 객실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사진 속 비행기엔 더듬이 같은 모양의 관이 보인다. 이 비행기의 사진이 실린 1993년도 연구보고서의 이름은 ‘황사 및 장거리 이동되는 오염물질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 및 저감대책에 관한 연구’다. ‘창공’은 겨울과 봄에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를 연구하기 위해 개조를 한 비행기였다. 대기오염 연구자인 김동술 경희대 교수는 이 보고서를 스캔해 따로 보관해왔다. 그는 “‘창공’이 대기오염 측정 항공기가 된 배경엔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중국 영향’ 확인하려 시작된 항공관측

1990년대는 한·중·일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대기오염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건너오는 황사와 대기오염물질 때문에 고민이 컸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 간 대기오염 피해는 민감한 외교 문제다. 김 교수가 당시 전해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한국이 중국에 황사 피해를 언급하자 중국은 “구체적인 근거를 대보라”며 맞섰다. 그래서 국책연구기관이 비행기를 이용해 황사의 장거리 이동 연구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글쎄요. 그런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저희의 관심은 한국의 대기오염에 국외 영향이 정말 있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지상 측정소만으로는 그걸 알 수가 없었죠.” 안준영 국립환경과학원 연구관의 말이다. 황사를 둘러싸고 한·중 간 설왕설래가 정말 있었는지는 명확지 않지만 ‘창공’을 동원한 연구가 중국으로부터의 대기오염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시작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서대 비행교육원의 조관표 정비부장이 비행기 ‘창공’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송윤경 기자

한서대 비행교육원의 조관표 정비부장이 비행기 ‘창공’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송윤경 기자


처음 시도한 항공관측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창공’이 항공관측의 길을 닦은 것은 틀림없다. 안 연구관은 산성비를 일으키고 미세먼지를 만들어내는 이산화황이 중국에서 얼마나 건너오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1997~2001년 38회 실시한 항공측정을 바탕으로 쓴 논문에서 그는 “봄철에 이산화황과 황화합물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산화황은 유연탄을 쓰는 화력발전소에서 주로 배출된다. 그는 베이징, 산둥반도, 보하이만 연안을 주로 지나온다는 것도 알아냈다.

항공관측은 단지 국외 영향만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상 측정소에서 얻어낸 정보와 대조해 국내의 주요 오염원을 추적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2008~2012년 정부는 서울, 대전, 경기 광주, 울산, 제주, 백령도 6곳에 미세먼지 성분까지 알아낼 수 있는 집중측정소를 설치했다. 이곳들에서 쌓인 데이터를 보니 수도권 미세먼지엔 질산염 비중이 컸다. 그런데 당시 항공관측으로 확인한 바로는 중국발 미세먼지 성분에는 황산염과 유기물이 많았다. 질산염은 어디서 온 것일까. 연구자들은 국내 자동차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을 지목했다. 이후 정부는 자동차의 오염물질을 줄일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열기구에서 항공기까지

국립환경과학원은 수도권 미세먼지 농도가 치솟았던 지난 14~19일에도 항공관측을 하려 했다. 특히 서해안과 수도권 내륙의 미세먼지 농도와 성분을 비교하고 싶었다. 이번 고농도 미세먼지는 대기정체에 따른 국내 요인이 컸지만, 중국에서 건너온 미세먼지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그것들이 국내 오염물질과 만나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연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미세먼지는 워낙 낮게 깔렸다. 상공 300~400m에서 저공비행을 하기가 여의치 않았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결국 항공기는 뜨지 못했다.

연구자들은 항공관측으로 꾸준히 데이터를 축적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온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는 쉽지만, 먼저 무엇이 한국의 공기를 뿌옇게 만드는지, 어떤 경로로 오염물질이 확산되는지 알아야 한다. 중국 영향이 크다면 중국에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충실한 연구자료를 축적해야 한다.

안 연구관은 “대기오염 농도를 분석해 내놓으면 연구진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것”이라면서 “항공관측으로 오염원의 성분과 확산 과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면 대기오염 정책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9년 환경위성까지 쏘아올리면 지상 측정소와 항공관측, 위성관측으로 입체적인 비교·분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미세먼지가 생겨나 퍼지는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오염 항공관측의 시작은 ‘열기구’였다. 국립환경과학원에서 30여년간 대기오염을 파고들었던 한진석 안양대 교수가 1992년 레포츠용 열기구를 타고 대기 상층을 분석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나 열기구는 같은 기류, 즉 같은 공기덩어리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오염물질의 농도 변화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원 공급이 잘 안돼 장비를 제대로 쓸 수도 없었다. 대형 풍선에 대기오염물질 농도를 파악하는 센서를 매달아 띄우기도 했으나 풍선 역시 한자리에서 고도별 농도를 파악하는 것만 가능했다. 와이어가 끊어져 사고가 날 위험도 있었다.

한서대가 보유한 ‘킹에어90GT’의 꼭대기에 공기 흡입용 관이 달려 있다. 송윤경 기자

한서대가 보유한 ‘킹에어90GT’의 꼭대기에 공기 흡입용 관이 달려 있다. 송윤경 기자


1993년 즈음부터 시작된 비행기 측정도 만만치는 않았다. 하나뿐인 프로펠러 부근에 공기를 빨아들이는 흡입구를 설치하면 대기 상층의 순수한 공기가 아니라 프로펠러 운동의 영향을 받은 공기가 샘플로 채취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한 교수 등 연구진은 프로펠러가 두 개 달린 쌍발기를 수소문했다. 항공사진 촬영에 특화된 민간항공사 범아항공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항공사 입장에서 대기오염 관측용 비행기 임대는 수익성이 없었다. 항공사는 오래가지 않아 난색을 표했다. 모 대기업 회장과 임원이 썼던 항공기를 인수한 창운항공과 다시 손을 잡았지만 이 회사의 항공기와 헬기도 항공사 사정 때문에 오래 쓸 수 없었다. 2011년부터는 한서대가 소유한 항공기 ‘킹에어C90GT’를 주로 활용하고 있다.

20인승 ‘1900D’ 추가투입

19일 오후 한서대 비행교육원 격납고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킹에어C90GT를 볼 수 있었다. 장비를 싣지 않을 경우 조종사를 포함해 최대 8명이 탈 수 있는 소형 항공기다. 꼭대기에는 빨대같이 휘어진 금속관이 여러 개 있었다. 비행기 안에 들어가니 관에서 빨아들인 공기를 내려보내는 또 다른 관이 천장에 달려 있었다. 이 관에 여러 장비를 연결해 대기 속 오염물질의 성분을 분석한다. 동행한 서범근 한서대 환경연구소 연구교수가 한쪽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장비들이 차지하는 공간 때문에 연구자는 이런 자세로 3시간 동안 비행해야 한다더라고요.”

킹에어C90GT에 실리는 장비는 280~300㎏ 정도다. 비행기 위쪽 흡입관을 통해 기체가 빠르게 밀려들어오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의 공기를 얻으려면 유입량을 조절하는 기기가 필요하다. 미세먼지를 만들어내는 질소산화물 등의 질량을 실시간 분석하거나 미세먼지 입자 주요 성분을 분석하는 장비도 실린다. 이 기기들은 비행기 엔진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아 작동한다. 이 때문에 직류인 비행기 엔진의 전기에너지를 교류로 바꿔주는 대형 컨버터도 필요하다. 엔진과 각종 장비가 함께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최대 비행시간은 3시간30분 정도다.

‘킹에어90GT’의 실내. 천장에 공기 흡입구와 연결된 파이프가 보인다. 송윤경 기자

‘킹에어90GT’의 실내. 천장에 공기 흡입구와 연결된 파이프가 보인다. 송윤경 기자


2015년 한·미 대기질 공동조사 때 한국 연구진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끌고온 DC8이라는 189인승 항공기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고 한다. 김종호 한서대 교수는 “NASA는 항공기에 탑재된 장비 한 대마다 박사급 연구원을 한두 명씩 붙여 연구를 진행했는데, 장비 하나하나가 연구실 수준이었다”고 했다.

NASA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한국도 20인승 항공기 1900D를 구해 대기오염 관측용으로 개조할 준비를 하고 있다. 킹에어C90GT와 마찬가지로 미국 항공기 제조회사 비치크래프트가 제작한 것으로 일본 쓰시마섬 등에서 민간인들을 태우던 항공기다. 선체 꼭대기는 물론 창문에도 구멍을 뚫어 공기흡입구를 장착하고 더 많은 장비를 탑재할 예정이다. 연구진은 1900D로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세먼지, 중국 등 ‘국외 기여율’은 어떻게 추산할까 

30~80%. 미세먼지에 중국 등 국외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정부는 이런 숫자를 내놓는다. 연평균으로는 30~50%, 고농도일 때에는 60~80%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국내외 미세먼지 발생요인의 ‘기여율’은 국립환경과학원이 모델링으로 수치를 분석해 추산한다. 중국과 한국의 대기오염물질 배출통계, 기상여건, 미세먼지 농도 실제 관측값 등을 입력하면 대기물리학과 화학에 바탕을 둔 복잡한 연산모델을 통해 기여율을 구한다. 그러나 이렇게 나온 수치는 ‘국내 발표용’에 가깝다. 입력값인 배출통계 자체가 오래된 것이라 정확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수치모델에 입력하는 중국 대기오염물질 통계의 원본은 2010년 중국 칭화대 팀이 만든 것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이 자료를 가지고 ‘2015년 통계 추정치’를 자체적으로 만들었지만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서울에 올들어 세 번째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18일 오후,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에 올들어 세 번째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18일 오후,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지난 14~19일 수도권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세 차례 발령되자 또다시 ‘중국 책임론’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최근의 고농도 미세먼지는 대기정체에 따른 국내 영향이 컸다. 환경부도 그렇게 발표했지만 여론은 잦아들지 않았다. 과거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을 충실히 세우는 대신 중국만 손가락질했던 탓도 적지 않다. 겨울과 봄에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날아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문가들은 중국과 ‘싸워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임영욱 연세대 교수는 “두 나라가 학술교류와 공동연구를 계속해 중국 자료를 얻어와야만 한다”면서 “자료를 토대로 중국 미세먼지가 심할 것으로 예측될 때 국내 미세먼지 농도라도 일시적으로 떨어뜨리는 등 빠르게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 대기오염물질 배출통계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소규모 소각장, 사업장뿐 아니라 선박, 건설장비에서도 대기오염물질이 나오지만 정부 통계엔 들어 있지 않다. 임 교수는 “캡스(국내 대기오염물질 배출통계) 같은 자료는 현재 국내 상황의 절반도 설명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배출원별 통계를 빨리 구축해서 지역별로 배출총량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석 안양대 교수도 “국내 배출원을 촘촘하게 확인해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돈이 가장 덜 들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5년 미 항공우주국(NASA)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미세먼지를 만들어내는 질소산화물과 휘발성유기화합물의 국내 배출량이 그동안 정부가 파악한 것보다 많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환경부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질 때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해 공공부문 차량 2부제를 실시하고 공공·행정기관 사업장과 공사장 가동을 줄이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오자 후퇴할 조짐을 보인다. 환경부와 서울·인천·경기의 부시장·부지사들이 19일 모여 대책을 논의했는데, “비상조치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술 경희대 교수는 “환경정책은 10년은 내다보고 세워야 한다”면서 “정부가 표면만 보지 말고 배출원 현황부터 파악하고 세부대응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