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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정리뉴스] 미세먼지 중국서 오는데 왜 차량운행을 줄이냐고요?

2018.1.18 송윤경 기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네 번째 발령된 18일 수도권은 유난히 어두웠다. 출근길에 늘 서울 용산의 삼각지를 지나는 직장인 ㄱ씨는 가까이 있는 남산조차 뿌연 먼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것에 놀랐다. 이날 오전 서울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평균 80㎍/㎥ 수준으로 매우 나빴다. 중랑구에선 새벽 5시에 156㎍/㎥까지 치솟았다. ㄱ씨는 “먼지 때문에 지구에 살 수 없어 새로운 행성을 찾아나서는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오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초미세먼지로 ‘인터스텔라’된 서울...대체 언제까지?

연일 초미세먼지의 습격이 계속되고 있다.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사흘간 서울의 초미세먼지 최고 농도는 ㎥당 168㎍(15일 밤 10시·구로구), 159㎍(17일 오후 1시·구로구), 156㎍(18일 새벽 5시·중랑구)에 이르렀다.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지 않은 16일에도 서울의 초미세먼지 최고 농도는 182㎍/㎥(자정·서대문구)였다.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산과 한강이 미세먼지로 덮여 있다. 김기남 기자


초미세먼지는 ‘은밀한 살인자’라 불린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폐 깊숙이 침투하며 혈관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공기를 뿌옇게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 공포’만은 아니다. 입자 지름이 더 큰 미세먼지(PM10)보다 대기를 더 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초미세먼지는 질소산화물, 암모니아, 이산화황과 탄소 덩어리들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공기 중에서 생성되는 경우가 많다. 초미세먼지에 포함된 질산암모늄, 황산암모늄 등은 수분을 끌어당기고 빛을 산란시킨다.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가 같은 질량만큼 있을 때 초미세먼지는 개수가 훨씬 많고 표면적의 총합도 더 넓어 빛을 더 많이 산란시킨다. 초미세먼지가 많은 날 장시간 시야가 트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18일 초미세먼지가 수도권을 뒤덮은 이유는 지난 며칠 동안과 마찬가지로 국내 대기 정체 탓이 컸다. 이날 수도권의 풍속은 초속 1~3m 정도로 약한 수준이었다. 황사까지 한반도를 덮쳤다. 다만 황사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지역은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수도권이 아닌 서해안 지역이었다. 황사는 초미세먼지보다 입자가 커 미세먼지 농도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날 흑산도의 미세먼지 농도가 148㎍/㎥로 가장 높았고 진도의 농도도 111㎍/㎥에 달했다. 서해안과 비교적 가까운 내륙인 광주는 물론 경북 내륙도 황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올봄 미세먼지, 지난해 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나을 듯

19일 서울과 인천에선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모두 ‘보통’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북과 강원 영서, 충북·전북·경북 등 내륙지방엔 ‘나쁨’ 상태가 이어질 듯하다. 20일에는 부산, 경남, 제주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이 다시 ‘나쁨’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초미세먼지의 습격이 올해도 봄까지 이어질까. 국립환경과학원은 이틀 뒤까지의 미세먼지 상황을 예보한다. 하지만 대기 움직임과 국외 요인에 따라 변화가 많기 때문에 장기예보는 아직 하지 못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장임석 대기질통합예보센터장은 “기상청이 올봄 이동성 고·저기압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했는데 이동성 고·저기압 때는 주로 대기 정체가 나타나므로 미세먼지 농도가 지난해 봄 수준이거나 조금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지난해 1~3월 초미세먼지 농도는 2015년 이후 3년간 가장 심각한 수준을 기록해 대선 이슈가 될 정도였다. 지난해 1분기 초미세먼지 ‘나쁨’ 일수는 2016년 같은 기간의 2배, 서울은 7배였다. 지난해 전국의 ‘초미세먼지 주의보’는 86회로 2016년 같은 기간의 48회를 훌쩍 넘었다. 

[정리뉴스] 미세먼지 중국서 오는데 왜 차량운행을 줄이냐고요?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하루가 머다하고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됐습니다. 0시~오후 4시 사이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이고 다음날에도 ‘나쁨’으로 예측되면 비상조치가 발령됩니다. 18일 오후부터는 먼지가 좀 옅어질 것이라곤 하지만, 근 몇 년 새 겨울부터 봄까지 맑은 날이 길게 이어지지 못한 채 미세먼지에 모두가 허덕거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비상저감조치는 단시간에 미세먼지 발생량을 줄이기 위한 것인데 아직은 공공·행정기관 차량들만 2부제를 실시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아예 민간차량까지 ‘2부제’를 해서 운행제한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 환경부와 국회도 이런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간차량으로 '2부제' 확대해야 하나

[사설]미세먼지 줄이기 시민의 참여에 달렸다

서울시는 민간 차량도 운행을 줄이도록 유도하기 위해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날 출퇴근 시간대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경기, 인천이 반드시 참여하도록 해서 실효성을 높이고 시민들의 보다 많은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중교통 무료, 취지 공감하지만 효과 있나요”

하지만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중국에는 아무 말 못하면서 왜 우리만 불편하게 만들려는 것이냐”는 댓글이 줄을 잇습니다. 미세먼지는 중국에서 오는데, 왜 한국만 그 부담과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수도권 주민들을 콜록거리게 만드는 미세먼지가 모두 중국에서 온 것일까요?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세게’ 요구하지 못해서 연초부터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것일까요?

미세먼지 책임 공방이 어떻게 진행돼왔는지 정리해봤습니다.

한국 정부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합동으로 ‘한·미 협력 국내 대기질 공동 조사(KORUS-AQ)’를 했습니다. 지난해 7월 19일 결과 일부가 공개됐습니다. 결론은 조사기간인 2016년 5~6월에 한국에서 발생한 초미세먼지(PM2.5)의 52%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34%는 중국 내륙에서, 9%는 북한에서 생겨났다는 겁니다.

잊을만하면 생각나는 고등어...가 아니고 미세먼지. 이 문제에서 국민들을 먼지 자체만큼이나 열 오르게 만든 것은 환경대책을 내놓는 대신 고등어에 책임을 돌린 당시 정부의 태도였습니다.

고등어를 위한 변명…진짜 미세먼지 문제는

미세먼지 논란은 고등어에서 중국으로 옮겨갔지요. 중국의 대기오염이 한국으로 옮겨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연구원에서는 지난해 4월 서울의 미세먼지 55%가 중국 등 국외 지역에서 왔다는 조사결과를 내놨습니다.

짙어진 서울 미세먼지, 수도권 요인 줄고 중국발 늘었다

과학학술지 네이처에도 중국발 초미세먼지가 주변국들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원고가 실렸습니다. 2007년 한 해 동안에만 중국에서 날아온 초미세먼지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서 3만9000명이 조기 사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기 사망’은 최근 해외 언론이나 논문에도 많이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대기오염이 없었다면 더 오래 살았을 사람들이, ‘제 명대로’ 못 살고 더 일찍 사망한다는 것이죠.

“중국 초미세먼지로 2007년 한국·일본서 3만900명 일찍 죽어”

지난해 봄에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고, 오염 농도는 더욱 악화됐습니다. 2017년 3월 측정된 수도권 초미세먼지의 52~86%가 중국에서 유입됐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오랜 기간, 2015년 5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1년7개월 동안의 모니터링 자료를 분석해봐도 중국 등 국외 영향이 2011년 49%에서 지난해 55%로 6%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주의보 발령 등 미세먼지 농도가 짙을 때는 국외 영향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세먼지에 빼앗긴 봄…올해 더 심해진 까닭은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시 중국 등 국외 영향 72%로 증가

급기야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미세먼지 피해 손해배상을 하라는 소송까지 제기됐습니다. 지난해 4월의 일입니다.

[미세먼지에 갇힌 대한민국]한·중 정부에 ‘미세먼지 피해’ 첫 손배 소송

[정리뉴스]“미세먼지, 관리 못한 국가 탓”···줄잇는 전세계 국가 상대 피해 소송

하지만 중국 책임이 얼마이든 간에, 더이상 중국 탓만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시민환경연구소 소장은 “우리가 미세먼지 문제를 천재지변으로 받아들이면서 체념하는 것은, 미세먼지 문제의 주범은 중국이라는 단정적인 믿음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색세상]미세먼지 대처, 중국 탓만 말라

미세먼지 문제는 지난해 대선에서도 주요 이슈 중의 하나였습니다. 주된 논란 중 하나는 중국에 어떻게 항의하고 대책을 요구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당시 후보는 기술교환·정보공유와 함께 미세먼지를 한·중 정상회담에서 다루겠다고 했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한·중·일 환경협약과 사무국 신설을,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한·중·일 환경정상회의체를 공약했지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중국에 할 말 하겠다”, “이제 중국에 책임 따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장 중국에 책임을 따지기엔 한국의 기초연구가 부실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미세먼지 중국에 책임 묻겠다”는 후보들…정작 한국은 기초연구 부족

환경부와 NASA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미세먼지는 ‘국내산이 절반, 중국산이 3분의1’이라는 것인데요. 이전의 예측치들을 뒤엎는 수준은 아닙니다. NASA는 자체적으로 환경위성 측정자료를 보완할 데이터를 구하기 위해 이번 조사에 연구용 항공기를 띄우고 위성들도 여럿 동원했는데, NASA의 이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발 미세먼지 영향이 적은 시점을 일부러 택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전에 나왔던 조사들이 보여주듯이, 중국발 미세먼지가 대거 유입되는 시기에 조사하면 ‘중국 책임’이 더 크게 나올 것 같습니다.

미 NASA가 280억원 써 가며 한국 미세먼지 연구한 까닭은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중국과 논의할 것은 하되 국내에서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친환경 정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세계 최대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충남 당진에서 운영되고 있고, 2개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도 신설될 예정인 한국. 제니퍼 모건 그린피스 국제사무총장이 지난해 4월 경향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했던 지적은 계속 유효합니다. “한국 정부는 환경을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석탄 사용을 줄이고 있고, 신재생 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 정부만 그 변화에 역행하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되겠지요.

“석탄 사용 축소에 역행하는 한국, 환경·경제적으로 위험한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