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청소·경비 등 5개 직종, 호봉제 대신 직무중심 ‘표준안’ 마련
ㆍ노동계 “저임금 고착” 반발…정부 “초안 성격, 아직 협의 중”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가 아니라 하는 일의 ‘내용’에 따라 월급을 받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할 수 있을까. 정부가 최근 정규직으로 전환된 공공부문 청소·경비 등 직종에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를 적용할 방침이다. 노동계에서 “하위 직급에 대한 차별과 저임금을 고착화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실제 적용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24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모델(표준안)’은 이른바 ‘직무급제’로 요약된다. 지난해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맡긴 것으로, 새로 정규직이 된 노동자 중 청소·경비·시설관리·조리·사무보조 등 5개 직종이 대상이다.
표준안은 먼저 비슷한 가치를 지니는 직무끼리 모아 등급체계를 만들었다. 일의 내용과 난이도, 전문성에 따라 등급을 나눴다. 청소직종은 ‘일반청소’와 ‘전문청소’로 나뉜다. 일반청소는 단순·반복적인 육체노동에 가깝다는 이유로 직무등급 1이, 전문청소는 직무등급 2가 매겨진다. 시설관리도 도난·화재방지에만 종사하는 ‘일반시설’은 등급 2가, 전기·기계·소방 등을 다루고 자격증도 필요한 ‘전문시설’은 등급 4가 매겨진다.
가장 낮은 1급의 첫 급여는 그해 최저임금으로 설정했으나 임금이 오를 여지도 뒀다. 등급 안에서 다시 6단계까지 나누고, 숙련도가 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설계했다. 다만 “숙련 형성 정도에 따르는 것이지, 근속 연수에 따라 매년 자동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5개 직종만 먼저 직무를 분석한 것은 이들이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대상 20만5000명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추진하면서 재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표준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환자들이 모두 호봉제에 편입되면 예산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선 국내 대기업·공공기관에 널리 쓰이는 호봉제를 손봐야 한다는 취지도 담고 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정규직은 급여가 오르고 비정규직이나 이른바 ‘중규직’인 무기계약직은 내내 낮은 임금에 머물러 왔다. 같은 무기계약직이라도 기재부의 예산 통제를 받는 공공기관은 임금이 오르지 않지만, 자치단체장 재량이 큰 지자체·지방공기업 소속은 호봉제를 적용받는 등 ‘뒤죽박죽’인 임금체계를 정리하자는 목적도 있다. 표준안은 “합리적인 임금체계로 임금의 공정성을 늘리고, (정규직 전환) 정책의 지속가능성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노동계에서는 “하위 직급에 대한 저임금과 차별을 고착화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예컨대 지난달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한 정부청사관리본부 환경미화직(1급)은 1단계 월급(157만3770원)과 6단계 월급(173만1157원) 차가 크지 않다. 10년을 일해도 임금이 14만원 오른다.
장인숙 한국노총 정책국장은 “해당 직무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최저시급 수준의 임금을 설정해 그 가치를 상당히 폄하해 놓았다”며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마련한 개편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표준안 마련에 참여한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오히려 전환 이전에 임금 상승이 거의 없는 ‘단일임률제’를 적용받아온 노동자들은 새 임금체계로 임금이 오를 것”이라며 “어떤 기관에서 일하든 같은 직무에는 고르게 임금을 주는 것이므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구현할 여지가 더 크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표준안은 초안 성격이고 아직 노동계와의 협의를 거치는 중”이라고 말했다.
표준임금체계는 새로 정규직이 된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되며 기존에 호봉제를 적용받던 정규직들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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